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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옥바라지골목은 살아 있다 옥바라지골목은 살아 있다 서대문형무소 맞은편에 위치한 옥바라지골목에서는 지금도 철거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행정 측에서 ‘무악 제2구역’이라고 부르며 그 존재 자체도 부인하려고 했던 옥바라지골목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여전히 살아 있음을 이 자리에서 먼저 선언한다. 철거공사가 진행되는 바로 옆에서 30여명이나 되는 주민들은 오늘도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매일매일 포크레인이 건물을 부수는 소리를 들으며 그 물리적 폭력이 언제 자신들의 생활을 파괴할지 모른다는 공포와 싸우면서 말이다. 우선 서울시는 주민들과의 협의가 끝나지도 않은 상태로 진행되고 있는 이 철거가 틀림없는 강제철거이며 주민들의 인권을 짓밟는 폭력임을 인정해야 한다. 펜스로 가려진 옥바라지골목 속에 남은 몇몇 집들에서 주민들은 외부에서 .. 더보기
[2016년 역사문제연구소 역사기행. 개항 140주년 답사] 근대의 교차로, 제물포에서 인천으로 (2016년 4월 30일 토 오전 10시반. 1호선 인천역) 역사문제연구소 답사팀에서 봄을 맞아 4월 30일 답사를 준비했습니다. 올해는 개항 140주년을 맞이한 해이기도 하여 겸사겸사 인천 개항장 일대를 둘러볼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2016년 역사기행. 개항 140주년 기념답사. 근대의 교차로, 제물포에서 인천으로 1876년 開港. 그것은 다른 세계와의 만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어떤 관계를 만들어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하지만 이미 주변에서는 수많은 폭력들이 관철되고 있던 순간의 만남이었다. 인천군 다소면(多所面)의 제물포(濟物浦), 이곳은 1883년 개항의 공간이 되면서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창구가 되었다. 중국인, 일본인, 그리고 각국의 외국인들이 이곳을 통해.. 더보기
<역사3단체 공동성명> 서울시는 '옥바라지 골목'을 보존하라! (역사문제연구소,역사학연구소,한국역사연구회) △ 사진출처는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의 재개발을 반대하는 비상대책주민위원회. 지도출처는 대경성부대관(서울역사박물관, 2015)입니다. 서울시는 ‘옥바라지 골목’을 보존하라! 2011년 11월, 서울시 종로구는 독립문역 3번 출구 앞에 “서대문형무소 옥바라지 아낙들의 임시기거 100년 여관골목” 글귀가 적힌 골목길 관광코스 표지판을 세운 바 있다. 기록에 따르면 종로구가 일종의 관광자원으로 골목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이다. 종로구청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2009년 9월 23일부터 몇 차례에 걸쳐 “600년 옛 도시 종로의 길을 걷다 ― 고샅길 20코스”라는 제목의 공지사항을 올렸고, 당시 언론은 종로구가 “골목마다 숨어 있는 역사의 흔적을 찾아” 되살렸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옥.. 더보기
[성명서] 종로구청은 외국인 차별과 폭력행위를 사과하라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의 재개발을 반대합니다) △ 사진출처는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의 재개발을 반대하는 비상대책주민위원회. 지도출처는 대경성부대관(서울역사박물관, 2015)입니다. 종로구청은 외국인 차별과 폭력행위를 사과하라 2016년 3월 15일 종로구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의 철거 강행에 대해 후지이 다케시가 골목 주민 등과 함께 귀관에 항의 방문하였습니다. 당시 종로구청 주택과장 김진수는 “왜 내정간섭을 하고 그래”, “한국 사람도 아닌데”, “위안부 문제나 가서 해결하세요”, “밀었는데 어떡할래” 라는 발언과 함께 민원인을 밀치는 폭력 행위를 하였습니다. 주택과장은 후지이 다케시가 외국 국적을 지녔다는 이유로 정당한 민원 행위를 ‘내정간섭’이라고 왜곡하였습니다. 재한외국인 기본법(법률 제11298호) 제10조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재한외국인.. 더보기
<세월호 참사 2주기 포럼> "세월호 2년, 진실과 기억을 위한 연대" (역사문제연구소, 인문학협동조합 공동주최. 2016년 4월 9일 오후 1~6시) 역사문제연구소는 인문학협동조합과 함께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시민들과 함께하는 열린 포럼을 준비했습니다. 역사문제연구소는 416기억저장소와 함께 구술작업을 진행하며, 세월호 문제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과 해결에 힘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세월호 2년, 진실과 기억을 위한 연대 ” 참사 이후 2년, 우리는 그동안 무엇을 보았고, 또 어떤 일을 행해왔습니까. 과연 우리는 어느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요. 시민으로서의 역사적 책임은 무엇일까요? 세월호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어디까지 왔고 진상 규명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 회 강부원(인문학협동조합 대외이사) 발 표 1. 세월호, 진실의 사회성과 시민 참여의 의미 오준호( 저자) 2. 사진 아카이브로서의 세월호 기록 .. 더보기
[제43회 토론마당] 협력과 연대의 경제는 어떻게 가능한가? (2016년 4월 1일. 발표 조형근. 토론 조정우, 후지이 다케시) [제43회 역사문제연구소 토론마당] 협력과 연대의 경제는 어떻게 가능한가? 발표: 조형근 (한림대)토론: 조정우 (한림대), 후지이 다케시(역사문제연구소)일시: 2016년 4월 1일 금요일 저녁 7시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관지헌(5층 강당) 고도성장에 근거한 경제와 삶의 모델이 불가능해진 시대, 우리는 이제 어떤 방식으로 경제, 사회, 그리고 삶을 바꾸어야 할까? 다시 말해 헬조선의 상황에서 벗어날 길은 무엇일까? 발표자는 최근 출간된 『섬을 탈출하는 방법』에서 성장은 멈추고 일자리는 점점 더 불안정해져 모두가 끝없는 경쟁으로 내몰리게 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시대에 다르게 살아갈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역사문제연구소에서는 발표자와 함께 새로운 사회의 가능성, 즉 ‘협력과 연대의 .. 더보기
[연구소 30주년 나아가며 함께하기] 416을 마주한다는 것 (이봉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본 글은 연구소 회보 59호 창립 30주년 기념호에 실린 기사 중 하나입니다. 연구소 회보는 연구소 후원회원들을 대상으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의 글들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합니다. 416을 마주한다는 것 이봉규 연구원 재수할 때였지 싶다. 주류문화와 비주류문화 내지는 상위문화와 하위문화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밝히라는 논술문항을 접한 적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참 막연한 질문인데, 논술기계로의 자처를 마다않던 당시 나는 둘 사이의 조화라는, 어쩌면 더욱 막연한 답으로 글을 맺었던 기억이 난다. 거기에는 어린 나를 키웠던 가정교육의 영향이 겹쳐지고 있었다. 적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나아가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지지해 줄 해법을 찾아내는 것이 최선이라 믿고 가르쳤던 내 부모의 생각이 투영되었던 것이다.. 더보기
[연구소 30주년 나아가며 함께하기] 기획모임 이야기: 내 안의 차별과 폭력을 넘어서 (김아람,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본 글은 연구소 회보 59호 창립 30주년 기념호에 실린 기사 중 하나입니다. 연구소 회보는 연구소 후원회원들을 대상으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의 글들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합니다. 기획모임 이야기 내 안의 차별과 폭력을 넘어서 김아람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위원회 초대위원장 회보 원고를 쓰는 지금의 머릿속은 ‘차라리 논문이 낫지’, ‘왜 나는 펑크 낸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한편, 이 생각들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되고,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우선, 논문보다 어렵게 느껴지고 부담이 되는 것은, 내 주위에 적어도 네 명이 회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역사비평과 역사문제연구는 그렇지 않지만 회보는 어느 한 편 빼지 않.. 더보기
[연구소 30주년 나아가며 함께하기] 국정화 반대국면으로부터의 출발 (권혁은,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본 글은 연구소 회보 59호 창립 30주년 기념호에 실린 기사 중 하나입니다. 연구소 회보는 연구소 후원회원들을 대상으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의 글들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합니다. 국정화 반대국면으로부터의 출발 권혁은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길지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강사를 시작한지 2년이 조금 넘었지만 솔직히 ‘역사교육’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늘 강의에 대해 고민하지만, ‘역사교육’이란 대표어는 나 같이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르는 시간강사나 주로 교육을 받는 역할인 대학원생보다 교수나 역사교사 같은 정규직들에게 더 가까운 단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많은 이름 없는 연구자들이 아마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그래서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관.. 더보기
[연구소 30주년 나아가며 함께하기] 不用의 학문을 有用한 노동으로 인정합시다. (임광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본 글은 연구소 회보 59호 창립 30주년 기념호에 실린 기사 중 하나입니다. 연구소 회보는 연구소 후원회원들을 대상으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의 글들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합니다. 不用의 학문을 有用한 노동으로 인정합시다.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임광순 연구소의 사회적 소통- ‘노동’ 사무국에서 전달받은 글 주제이다. “요즘 노동 공부하는 사람이 참 드물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 누군가에겐 팔뚝질과 땀냄새로, 다른 누군가에겐 희끗희끗한 말일 수도 있다. 관심 가져야하지만 관심갖기 어려운 무언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테다. 대체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해장국보다 식어버린 게 ‘노동’ 아니었던가. 연구소 20주년 기념회보를 들춰보았다. 많은 사연과 이야기들이 있었다. ‘신입’ 연구원이라 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