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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문연 광장

[연구소 30주년 나아가며 함께하기] 416을 마주한다는 것 (이봉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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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연구소 회보 59호 창립 30주년 기념호에 실린 기사 중 하나입니다. 

연구소 회보는 연구소 후원회원들을 대상으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의 글들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합니다. 



 

<나아가며 함께하기>


416을 마주한다는 것

 


이봉규 연구원

 

    재수할 때였지 싶다. 주류문화와 비주류문화 내지는 상위문화와 하위문화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밝히라는 논술문항을 접한 적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참 막연한 질문인데, 논술기계로의 자처를 마다않던 당시 나는 둘 사이의 조화라는, 어쩌면 더욱 막연한 답으로 글을 맺었던 기억이 난다. 거기에는 어린 나를 키웠던 가정교육의 영향이 겹쳐지고 있었다. 적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나아가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지지해 줄 해법을 찾아내는 것이 최선이라 믿고 가르쳤던 내 부모의 생각이 투영되었던 것이다. 불온보다 화합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답이었던 당시 논술의 모범답안의 영향도 적지 않았겠다.

 

    416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안산에서 하루하루를 나던 가족들에게 벼락과도 같았던 416이었다. ‘각인’이란 단어 정도로 언어화하기 힘들만큼 고통을 겪는바 누가 모르겠냐며 동감하던 대중이었다. 그런데 2~3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 고통은 이제 한편에 두거나 혹은 묻어 버리고, 일상으로 ‘정상’의 사회로 돌아가자고 이야기한다. 무려 그 고통을 2~3년간씩이나 이해하고 있었으니, 이제는 우리 사회 밖에서, 한편에서만 고통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위령탑이든 추모기념관을 세우든 아무래도 좋으니 그렇게 단원고에서, 화랑유원지에서 이제는 나가달라 말한다. 왜냐? 고통은 고통대로이되, 우리는, 우리 사회는 사회대로 건강성을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저간의 태도 때문일 게다.

 

    어떻게 한 반만을 놔두고 교실을 ‘정상화’할 수 있느냐, 수색이 완료되지도 않았는데, 진실이 규명되지도 않았는데,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유가족들의 절규는 이제 불온한 외침으로까지 간주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 모두가 애를 썼으면 된 것이지, 이걸 계속하자는 것은 무언가 의도가 있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는 것이다. 이제 그만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그 건강에의 강박, 정상에의 강박은 저 주류들의 수사 속에서야 늘 그러했다 치더라도, 이제는 뭇 대중들마저 받아 안기 시작하는 것 같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유가족들에게도 저 강박이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 자신이 스스로에게도 옥죄는 주문이 되어버리기도 한 것이다. 고통의 심연, 그 근저를 치고 올라서서 다시금 정상의 무대에서 쟁투하자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모습 속에는 일견 안도와 회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내가 바라보았던 그 강박은 그마저도 서글픔 그리고 분노였다.


    금요일마다 나서는 피케팅 시위에서, 광화문 거리에서, 왜 이들은 그렇게도 이성적이고 사회적인 규준에 대면해야 하고 나아가 스스로를 옥죄어야 하는 것일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홀로 집에서 김치에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는 이들의 버거운 숟가락질은, 왜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이 사회에서, 심지어 이 학술장에서도 점잖게 처리되고, 또한 주변화되어야 할까. 그러한 인간성의 일상적인 것에 마주할 때에야 비로소 인간과 사회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416은 사회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려는, 이제 30년이 되어가는 이 연구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416과 그에 엮인 이들에게 항상적으로, 또한 잠재적으로 종용하는 일상으로의 복귀와 ‘정상화’에 대적하고 질문하는 주체가 이 곳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씻길 리 없는 서글픔과 분노는 이제 곁에 두고 살아갈 수밖에 없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