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제연구소, 인권재단 사람, 참여연대, 한반도문제를 걱정하는 학자연맹(The Alliance of Scholars Concerned about Korea), 5.18기념재단으로 꾸려진 ‘정전협정 60년 맞이 평화기행 조직위원회(이하 평화기행 조직위)'에서 어제까지 진행한 행사에 대한 소식입니다.

'한반도에 평화를! 전쟁은 끝내자! 해군기지 반대한다! 평화와 인권을!'이란 구호를 외치는 평화기행단.

 

http://www.seogwipo.co.kr/news/articleView.html?idxno=89282

정전협정 60주년. 이제는 "반공과 안보 넘은 평화에 초점"을 맞출때입니다.

7월 6일부터 진행되는 '역사, 평화를 이야기하다'에도 많은 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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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정전 60주년 특별기획

역사, 평화를 이야기하다

 

그 첫번째 시작.

7월 6일 14:00 - 18:00

<학술토론회> 끝나지 않은 전쟁 60년, 평화의 길을 묻다.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한반도. 위기가 재생산되는 구조는 무엇이며

     그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이 문제를 고민해 온 연구자들과 함께 깊이있는 토론을 해보는 시간

  - 정전협정 무엇이 문제인가? - 정전협정의 쟁점과 그 유산 (김보영)

  - 정전체제와 한미동맹, 그리고 한반도 핵위기 (서재정)

  -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 (김연철)

사회 : 정태헌

장소 :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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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에세이] 서재정, 정전협상의 국제정치

  오는 7월 27일이면 정전협정이 조인된 지 60주년이다. 정전협정을 위한 협상은 1951년 7월 10일부터 시작됐지만 그 협상과정이 2년 이상을 끌어 1953년에나 조인이 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면 정전협상은 왜 2년이나 걸렸을까?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1951년 11월부터 불거진 포로송환 문제 때문이었다. 즉 중국과 북은 제네바협정 118조에 따라 전원 자동 송환을 주장했으나, 유엔군측은 인도주의를 제기하며 포로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전협정에 반대하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은 이 와중인 1953년 6월 18일 포로수용소에서 2만7천명을 일방적으로 석방시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한반도 주변국가들에게 전쟁의 지속은 그들의 국익과 일치하는 것이었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스탈린은 당시 북이 당하던 피해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전투원 사상자뿐만 아니라 미군의 폭격에 의한 피해를 잘 알고 있었던 것뿐만 아니라 여론동향까지 추적하고 있었다. 정전협상이 지연됨에 따라 북의 피해는 늘어만 가고 여론도 악화되고 있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며 “조선은 전쟁으로 생긴 사상자 이외에는 아무런 피해를 본 것이 없다”고 궤변을 펼쳤다. 소련에게는 미군을 동북아시아에 묶어두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의 폐허에서 경제를 재건하고 동유럽을 공고화할 시간이 필요하던 당시 미군을 한반도에 묶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기회였다.

  모택동은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정전이 되면 소련이 공여하던 군사원조가 감축되거나 중단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스탈린은 “미국이 이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절대로 대만을 획득하지 못할 것”이라며 중국을 부추기기까지 했다. 모택동도 전쟁이 계속되면 미군이 한반도에 묶여 다른 데 관심을 돌릴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는데 동의했다. 모택동은 김일성이 정전협상을 조속히 종결짓자고 종용하자 이를 스탈린에게 전달하겠다고 약속하고는, 그 날 스탈린에게 정전협상의 조속한 종결에 반대한다는 전문을 보내기까지 한다.

  트루만에게 한국전쟁은 무척이나 중요했다. 2차대전 종식과 함께 세계최강국으로 등장한 미국은 1950년 전후 세계전략으로 NSC 68을 채택했다. 전세계적 규모에서 공산권을 군사적으로 봉쇄한다는 이 전략은 한 가지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여론이 군대의 증강과 국방예산의 증액을 지지하지 않고 있었고, 국방예산은 계속 삭감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계기로 1950년 GDP의 5%였던 국방예산이 1953년에는 14.5%로 3배가 증액됐다. 애치슨의 말대로 “한국전쟁이 [NSC 68]을 구제해준 것”이다. 거기다 정전협상에서 공산권 포로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많은 이들이 자유세계를 선택했다고 선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은 한국전쟁을 세계적 냉전으로 진화시키는데 결정적인 것이었다.

  각국의 이해관계로 정전협상이 지지부진 2년을 끄는 동안 피해를 본 것은 군인과 민초였다. 이 기간에 유엔·국군과 공산측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대부분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유엔군과 국군은 12만 이상, 공산측에서는 25만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이 기간 북은 미 공군의 폭격에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었다.

  주변강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2년이나 더 전쟁을 치룬 끝에 정전조약이 체결되기는 했지만, 이 조약 4조 60항이 요구하는 “평화적 해결”은 60년이 되도록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평화적 해결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이익을 본 건 누구고 피해를 입은 건 누구일까? 정전협정 60주년을 앞두고 그 협상과정을 되새겨 봐야 할 이유이다.

2013년 6월 10일, 서재정(존스홉킨스대학)

서재정 대학 교수
출생1960년 00월 00일
출생지대한민국
경력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서재정 교수님께서는

 7월 6일(토) 14시부터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학술토론회> 끝나지 않은 전쟁 60년, 평화의 길을 묻다'에서

발표를 하실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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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에세이]  김동춘, 평화는 바로 우리의 일상의 문제 

  사람들은 평화는 자신과 관계없는 아주 고상한 가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국가들 간의 전쟁과 갈등에 무력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국가 간의 전쟁은 국회조차도 통제하기 어려운 최고 권력자들의 고도의 정치적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이 그러한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노무현 정부 당시 이라크 파병 결정과정에서 보았듯이 애초 이라크 파병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대통령이나 정부조차도 결국 전통적인 한미관계의 틀을 넘어서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실을 지켜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 간 전쟁과 갈등 문제에 관한 한 더욱 무력감을 갖고 있고, 그 사회의 민주주의의 수준이 낮을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인간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고, 최고권력자들의 생각과 판단, 그러한 권력자들을 선출하는 국민들의 판단과 생각이 바뀌면 세상은 변하게 된다. 전쟁이 나서 죽고 죽이는 존재는 주로 군인이지만, 전선이 없는 현대전에서는 민간인들이 군인보다 훨씬 많이 죽는다. 그렇다면 민간인들은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을 지지하거나 그것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셈이다. 이 점에서 권정쟁 선생님이 2004년 당시 이라크 전쟁 발발 후 김선일씨의 사망을 보고 쓴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할 수 있다는 글은 일상적 삶과 전쟁의 관계를 잘 밝혀준 에세이였다. 그는 지금 내가 타고 가는 승용차 기름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사람들의 목숨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고 느낀다면 평화의 길은 멀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를 했다. 즉 풍요롭게 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미국은 이라크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한 전쟁을 감행했고, 우리는 그 전쟁의 들러리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풍요를 지속하고 싶어서 미국 군대가 한국에 주둔해야 한다고 엎드려 빌면서, 우리의 주권을 미국에 양도하고 남북한 간의 전쟁상태를 부끄럽게 여지기 않는다는 이야기다. 결국 승용차를 버리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다니고, 아파트 평수를 줄여서 좀 불편하게 살 준비가 되어 있어야 아까운 젊은 목숨이 죽은 일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권정생 선생의 주장은 미국의 평화주의자 니어링(S. Nearing)의 주장과도 통한다. 20세기 들어서 미국이 전 세계에 모든 분쟁과 전쟁에 개입한 것은 바로 오늘의 자본주의 유지 발전의 피라고 할 수 있는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미국의 정치가들이 그러한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들을 선출한 미국인들이 좋은 집, 좋은 차를 굴리면서 살고 싶어하는 욕망을 계속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미국의 중산층이 누리고 싶어하는 삶을 모든 미국인과 전 세계 사람들이 누리게 된다면 지구가 6개가 있어야 한다는 말도 있듯이,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풍요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착각하면서 전 세계 거의 천 곳 이상에 미군 기지가 설치되어 모든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일이나 전 세계의 모든 분쟁에 개입하는 일을 용인하거나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인들이나 유럽 부자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일자리를 위해 지난 시절의 냉전, 오늘날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전 세계에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인들은 지난 60년 동안 지속되는 중동의 피비린내 나는 갈등의 원인제공자가 바로 미국의 이스라엘 지지에 주로 기인한 것이며, 사우디를 비롯한 중공 여러나라의 독재자들을 지지하고 그들의 인권탄압을 묵인한 것도 자신들의 부와 일자리의 요구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동아시아나 전 세계의 군비경쟁의 강화나 아프리카 여러나라에서의 종족들 간의 분쟁과 학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 등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과 유럽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줄이고, 그러한 전쟁을 통해 이득을 얻는 세력을 제압할 정도로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1945815일의 남북한의 분단 역시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고, . 소의 패권전략에 기인한 것이었으며, 지난 1950년의 한국전쟁은 북한 김일성 세력의 무력통일의 열망과 상황 판단 착오에 주로 기인한 것이었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분단을 지속시킨 내외적인 조건은 바로 미국과 한국, 그리고 북한의 권력자들의 기득권 유지와 이해관계에 기인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이해를 국민의 이해와 요구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미국과 남북한 국민들의 판단과 의식은 전쟁이 실제 가져온 비참성과 그 주요 피해 집단, 그리고 사실상의 전쟁상태인 분단을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하는 비용들과 비용의 실제 부담자들에 대한 무지에 기초한 것이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이 그 전쟁의 희생자가 된 한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만 충분히 알고 있어도, 누가 이 전쟁으로 이득을 보았는지에 대한 자료나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고 그것이 교육된다면 한국사람들의 분단과 전쟁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른다.

  정전 60년을 맞아, 교육과 미디어의 영향을 받아 모든 것을 북한 탓으로만 돌리는 데, 익숙한 한국인들은 이 분단 전쟁 체재를 유지하는 데는 한국민들의 몰이해, 자신의 물질적 욕망을 계속 추구하고 싶어 하는 태도도 중요하게 깔려 있다는 것을 한번 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남북한의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세력을 권력권에 진출시키지 못한다면, 군사력에서 북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우위에 있는 남한이 왜 막대한 예산을 미국 무기도입에 지출해야하는지에 대한 정당한 의문을 품고, 또 정치가들에게 묻지 않는다면, 자신과 자신의 자녀가 또 다른 전쟁과 갈등의 희생자가 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김동춘 대학 교수
출생1959년 09월 29일
출생지대한민국 경북 영주시
경력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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