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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 4. 10:57 역문연 광장

개화기와 인천 차이나타운

 

유동호 (신성고역사동아리 등불)

 

    인천 차이나타운과 개화기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번 역사 답사를 가기 전 가진 의문이었다.

 

    처음 역사 동아리 담당 선생님께 이번 답사에 대해 들었을 때에는 시험 끝나고 놀기만 하느니 의미있는 체험을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답사 참가 신청을 했다. 또한 답사지가 평소에는 관광지로만 알고 있었던 인천 차이나타운이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다. 나 말고도 이런 호기심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나 보다. 10명 정도의 친구들이 함께 답사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답사 당일, 화창한 햇살 아래 지하철을 타고 인천역에 도착했다. 역 앞에 가 보니 우리 동아리 부원들 말고도 20명 정도 더 와있었다. 다른 분들과 답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눠보니 모두들 역사에 흥미가 있고, 올바른 역사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문득 그분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졌고, 내가 처음에 가졌던 답사 동기가 새삼 부끄럽게 느껴졌다. 반면에 그런 점이 역사 답사에서 많은 점을 알아가고 깨닫게 해준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셀카봉에 달린 오리 인형을 따라다니며 개화기의 숨결이 녹아있는 여러 장소를 둘러보았다. 맥아더 동상이 우뚝 서있는 자유공원, 짜장면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화춘 건물, 이제는 헌책방 거리가 된 배다리 등등의 개화기의 흔적과 기록을 이곳저곳 누비며 느끼고 보았다.

 

    그 중 인상깊었던 장소는 인천 구락부였다. 구락부는 ‘클럽’을 한자음으로 옮겨 쓴 것이니, 인천 구락부의 실제 이름은 ‘인천 클럽’쯤 된다. 즉 당시 고관들의 사교 클럽으로 쓰였던 곳이 인천 구락부이다. 구락부 내부에 들어가 보면 목재 바, 샹들리에, 그리고 작은 피아노까지 전형적인 서양식 사교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이 모습은 구락부의 원래 모습이 아닌데, 이전에 구락부 건물을 이론에서 사무소로 사용하던 것을 다시 개화기 시대 사교클럽의 모습을 상상하여 복원하였기 때문이다. 관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던 당시 구락부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은 안타까웠지만, 그곳에서 마치 내가 조선 후기의 인천 구락부 회원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답사를 끝내고 집에 갈 때 친구들은 다리가 아프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나도 다리가 아프기는 했지만 글쎄, 과연 차를 타고 답사를 했어도 걸어다닌 것만큼 개화기에 대해 생각하고 느낄 수 있었을까? 나는 오히려 두 발로 걸으면서 개화기의 현장을 직접 보고 그 의미를 머리에 새겼기에 뜻깊은 답사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번 답사에서 15군데가 넘는 다양한 장소를 누비면서 개화기의 상황을 여러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었기에 개화기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워간 답사였다고 생각한다.


     인천 차이나타운과 개화기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번 답사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조선인의 개화기, 일본인의 개화기, 외국인의 개화기 등 다양한 시각과 관점의 개화기의 숨결이 녹아 있다. 그리고 이번 답사에서 개화기의 흔적들을 직접 만나보면서 우리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유익한 답사 경험을 제공해주신 역사 동아리 선생님과 역사문제연구소 답사팀 분들께 감사하며, 겉모습은 변해도 그 의미는 변하지 않는 개화의 현장으로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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