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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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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 1. 13:50 역문연 광장

'근대의 교차로, 제물포에서 인천으로' 소감문

 

황 찬 익 (신성고역사동아리 등불)

 

    나는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신성고 역사동아리 ‘등불’에 가입하였고, 이 역사 기행에도 신청하게 되었다.


    이번 답사는 인천의 제물포에서 근현대사에 대하여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인천에 도착하여 역사 문제 연구소 팀과 만났던 장소는 인천역이었다. 이 인천역은 우리나라 근대 철도의 시작점으로 노량진_인천을 오가던 경인선의 시작이었다. 경인선의 개통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장소를 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가게 된 곳은 내가 가보고 싶었던 차이나타운이다. 조선 말 개항 이후 인천이 청나라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설정되면서 화교인들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딱히 중국인들은 많이 보지 못한 거 같지만 ‘패루’를 보며 중국문화가 느껴지는 듯하였다.

( 중국의 전통 대문, 패루 )

 

    인천 차이나타운하면 모두 짜장면을 떠올릴 것이라 한다. 그 짜장면 집중에서 가장 유명한곳은 단연 공화춘! 공화춘이란 이름은 아시아 최초의 민주공화국인 중화민국을 세운것을 경축한다는 의미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밑에 사진에 있는 곳은 현재 짜장면 박물관으로 사용 된다고 한다.

( 구 공화춘: 짜장면 박물관 )

 

    공화춘의 설명을 들은 우리는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을 맛보았다. 평소와 다른 느낌의 짜장면에 신기했고 맛도 괜찮았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가 이동한곳은 청국 영사관 터이다. 청나라는 1884년 조계를 설치하고 그해 10월에 영사관을 설치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청국영사관 회의청 이외의 본 건물이 손실되었고 그 터에 화교중산학교가 신축되었다고 한다. 화교학교는 소학교-중학교-고등학교가 각각 설립되었으며 중산소학교와 중산중학교로 개편 되었다. 지금도 대만 교육부의 후원과 지원을 받고 있는다 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들어갈 수는 없다하여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 인천화교중산중학교 )

 

    청국 영사관 터(인천화교중산학교)를 지나 쭉 걸어가다 보면 청일조계지경계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을 경계로 청과 일본의 조계지를 나누었다고 한다. 길 하나를 두고 서로 다른 문화가 보여지는 것이 너무 인상 깊었다. 이번 탐사에서 내가 제일 기억에 남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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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일조계지경계계단 - 중국문화 - 일본문화 )


    청일조계지경계계단을 따라 쭉 올라오면 만국공원에 오게 된다.
    만국공원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영국 등 여러 국가의 외교관들이 공동서명하여 설립한 공원으로 한국 최초의 공원이라고 한다. 인천시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세우면서 공원의 이름이 자유공원으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람이 많이 불어 더운 날씨에는 딱 인 듯 했다.

( 만국공원 안 맥아더 동상 )

 

    다음으로 가게 된 곳은 제물포구락부이다. 건물 내부는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옛 까페처럼 보였다. 이 건물이 서양인 중심의 사교클럽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클럽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모여 음료를 마시고 모임을 즐겼다고 한다. 하지만 후에 일본재향군인회 인천지부가 되어 일본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고급져 보이던 카페가 싫어졌다.


( 제물포 구락부 )


    제물포구락부에서 내려오면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이라는 고급스러운 한옥이 보인다. 본래 일본인 무역상의 별장이었던 자리로 해방 후 서구식 레스토랑이 되었다가 다시 사교클럽, 현재 역사자료관으로 쓰인다. 일본식 가옥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옥의 외양을 띠고 있는 묘한 모습을 느낄 수 있다.

(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

 

    다음으로는 중구청이라는 곳을 가보았다. 중구청은 줄곧 인천행정의 중심이었던 곳이며 일본의 식민행정의 핵심기관들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인천부 청사로도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인천중구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도 맘에 들지 않았다.


( 중구청-인천중구청사 )

 

    현재 <인천개항박물관>, <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등이 있는 밑에 사진의 거리는 개항 이래 인천지역 금융의 중심지이자 번화가였던 혼마치였다고 한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그리 중심지는 아닌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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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혼마치 일대 - 현재 혼마치 일대 )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이곳은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들, 그리고 그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물류를 옮겨다주는 기선회사였다.

    인천중동우체국은 1884년에 우정총국의 분국이 개설되면서 생겨났다. 현재도 계속 인천중동우체국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답동성당은 조선과 프랑스 사이에 체결된 조불수호조약이후 건설을 계획 지금 모습이 완성된 것은 1934년이다. 종 탑은 이 교회의 상징물이다. 큰 건물의 성당은 처음 와 보았다. 저 큰 종을 울리면 어떻게 될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 답동 성당 )

 

    밑의 사진은 인천부윤 관사다. 고급져 보이는 건물이 길을 가르고 있었다. 주택가이다 보니 큰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저런 집에서 살기위해서는 얼마나 돈이 많아야할까..왠지 부러웠다..


( 과거 인천부윤의 관사 )


 

    드디어 이번 답사의 마지막 장소 애관극장! 차가 다녀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답동 성당과  비교해도 될 정도로 컸다. 최초 설립자가 친일파였다지만 이후 조선인들의 소유로 이어졌다고 한다. 극장으로서의 공간적 성격뿐만 아니라 시위, 축제 등의 공간으로서 향유되기도 한다고 한다. 현재도 영화를 상영한다고 하니 나중에 시간나면 친구들과 함께 와보아야 겠다고 생각하였다.

 

    이렇듯 짧은 듯 긴 답사가 끝이 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설명 들으며 걸어 다닐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집에 오니 다리가 너무 쑤셨다. 다리 아픈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재미있었나 보다. 다음에도 이런 체험을 한다 하니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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