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01 13:46 역문연 광장

 

제물포 속 인천찾기


박소연

 

    인천은 자주 못갔다. 멀기도 하고 배가 아파서다. 부산의 입지를 좁게 만드는 것 같아서이다. 같은 개항장인 부산은 그렇게 근대유산이 많이 안 남아 있다. 부산근대역사관 외에는 잘 모르겠다. 먼저 발달했기 때문에 싹 쓸어 담아버렸다. 인천 개항장은 볼 것이 참 많은 곳으로 관광사업으로 특화하려고 하고 있다. 인천 개항장답사에 사람이 과연 많이 올까? 답사 주제가 특이한 것도 아니고 인천시에서도 도보관광 답사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역사문제연구소(이하 역문연) 답사에 많이 안 올것 같았다. 그런데 무려 40명이나 참가했다.  네살. 초등학생. 고등학생들이 온것은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지만 말이다.

 

 

    인천부윤의 사택. 염교수님의 사전 답사 사진 한장을 보고 역문연 답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인천 혹은 답동 모두 가본것도 아니고 안가본것도 아닌데 꼭 이타이밍에 답사를 가야할까 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인천부윤사택 사진을 보니 역문연 답사아니면 가보기 어려운 곳이라고 동했기 때문이다.


    주택을 몇번 고치고 개조한것은 분명하지만 일본식 가옥의 낮은 2층 목가옥의 모습이 남아있었고 멋진 향나무가 한그루 보였다. 개인적으로 향나무는 좀 특별해 보이는 나무다. 아마 7~80년이 되었을 법한 집. 서울에서도 돈의문 부암동등지에서 보긴했지만 그래도 신기했다.

 

 

백년짜장.
    답사 첫 코스는 들뜨게 하는 차이나 타운이다. 인천 차이나타운 오랜만에 와서 정말 많이 변했다.  흐리긴 했지만 비도 안오고 날씨도 도와주었다.  짜장면 박물관인 구 공화춘(共和春)에서 코스가 시작.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100년의 역사를 전해주는 짜장면 박물관은 인기가 많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공화춘이 최초의 짜장면집인지와 연도는 분명하지 않지만, 산둥반도 사람들이 모였던 산둥회관으로서의 가치도 있는 곳이었다. 현재 화교의 몸 속에 중국인의 피는 6.25%라는 강사의 설명 재밌었다. 6.25세대 한국에서도 자국에서도 이방인. 그들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겠지.....

 

    그리고 점심도 짜장이었다. 백년짜장. 짜장은 건강해질지도 모르는 맛이었고 예전 짜장면이라길래 열심히 먹었다. 또한, 탕수육이 너무 맛있었다. 탕수육이 없었으면 섭할뻔 했던 점심이었다. 차이나타운과 딱 맞는 점심! 공화춘- 우리가 먹는 한국식 자장면은 인천에서 시작되었다.

 


청일 조계지 계단 

    차이나 타운에는 중국식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중구청 앞에는 일본식도 있었다. 조계지 계단은 왼쪽은 중국식 오른쪽은 일본식이었다. 여기가 개항장이자 조계지 인것이 아득하게 실감나는 공간이었다. 좀 제대로 만들지.... 돌은 너무 조악했다. 예전 차이나 타운 이라는 증거는 가짜 건물이 아니라 대만 화교 중산중학교(1934년) 에서 찾을 수 있었다. 청국영사관터에 생긴 학교다. 대만 국기도 꽂혀 있다. 현재도 차이나타운에는 중국 본토 사람보다는 대만 출신 사람이 많은 듯하다.

 

자유공원

   ​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을 올라가 자유공원으로 향했다. 자유공원은 개항기 각국공원(1888-The Public Garden)이다. 한국 최초의 공원이다. 인천에는 여러 가지 최초의 기록이 많은데 자의적이기 보다는 타의적이라 관심이 덜간다. 

    자유공원은 예전 신사가 있던 곳이자 각국조계지가 있던 얕으막한 산이다. 서울 남산. 부산 용두산 공원과 같은 구조다. 신사는 신성한 공간이므로 높은 곳에 위치한다는 것을 실감한 곳이다. 부산의 조계지는 초량왜관. 즉 지금의 용두산공원이다. 남산에서는 한강이 용두산공원에서는 부산 앞바다가 시원하게 보인다. 모두 일본이 차지한 곳들이다. 그들이 남겨준 선물 씁쓸하다.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 너무 멋지다! 맥아더 장군 동상자리는 세창양행 사택이 있던 곳이다. 세창양행은 무역상사인데 나로서는 바늘과 실로 기억한다. 박물관에서 세창양행 바늘 세트를 본 적이 있다.

    자유공원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자유 공산주의로부터의 자유였다. 맥아더는 미국숭배주의자들이 좋아하는 인물인데 과잉진압이라는 설을 들은 적이 있다. 우파들이 이용하기 딱 좋은 인물이다.

 

제물포 구락부
    각국조계석을 지나쳐서 들어간 제물포구락부(1901년)에서 가장 편안한 휴식을 취한 것 같다. 안락한 응접실 의자가 있어서이다. 구락부는 영어로 클럽(Club)이고 일본식으로 표현한것이다. 구락부 용어는 알고 있었는데 어떤 공간인지 잘 피부에 와닿지 않았는데 이번에 보고 확실하게 감을 잡았다. 구락부 내부에 사교실, 도서실, 당구대, 테니스코트 백년전 제물포의 모습은 이렇게 화려했을까? 의문의 1패를 당하는 느낌이다.  상하이의 것등을 참고로 하여 재현한 것이라고는 한다. 제물포 구락부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사교의 공간이 부족했던 당시 회원제 사교공간이다. 제물푸 구락부는 외국인을 위해서 주로 쓰이다가 전쟁기에는 북한군이 점령하기도 한 우리나라속의 외국공간이었다. 제물포구락부는 당시 상황을 재현해서 꾸며져 있었고 사진이나 영상물로 전시를 하는 곳이었다.  제물포 구락부에서 인천문화관광해설사 사무실이 보였다. 반갑다. 무료이고 재미있는 공간이어서 못 가본 분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점심시간은 꼭 피해서 가자. 그 인근에 인천시 사료관도 세트로 보아야 할 곳이다.

 


​인천 중구청
    중구청은 일본영사관으로 쓰인 건물인데 골격이 잘 남아 있었다. 조계지(組界地)는 일본지계, 청국지계, 각국지계로 나뉜다. ​일본 지계는 3개 지계 중 가장 좋은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항구로 볼 때 가장 중심에 있다. 중구청앞에서 보니 여기가 제일 좋은 위치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구청에서 마신 시원한 커피가 압권이었다. 과거 개항의 역사성 있는 건물을 뒤에 받치고 앞에 부두를 바라보면서 쉬어가는 휴식이 달콤했다. 앉을곳만 보면 잽싸게 앉아야 하는 나이여서 더 반가웠는지 모른다. 현재의 중구청에서 시원하게 일본 영사관을 찾는 시간이었다.

 

 

대한통운 창고
    대불호텔 부지를 지나쳐 왔다. 최초의 호텔이라고 알려져 있는 곳이다. 발굴을 완료하고 가려져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강사 중 한명이 사유지로 빌딩이 지어질 것이라고 했다. 검색해보니 중구청이 사서 모종의 계획중에 있는 것이었다. 이럴때 아쉽다. 현지인인 문화관광해설사에게 해설을 요청하셔도 될것을.. 너무 내부에서 해결하려고 한건 아닐까?

    개항장 창고를 보고 제일 이곳이 항구라는 것이 실감났다. 지금은 인천아트 플래폼으로 문화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희미한 대한통운 글자가 숨은 그림인것 같다. 일제강점기 컨테이너 창고가 현재도 연결되어 있다니 대단하다. 홋카이도 갔을때도 이런 개항장 창고가 멋있게 잘 남아서 활용되고 있었고, 부산에서도 영도에 이런곳이 있고 본적이 있는데 인천처럼 잘 남아 있지는 않다. 개항장 창고를 지나 미두취인소에서 설명들었다. 현재 은행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인천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쌀을 수탈당했던 곳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애관극장

    인천 최고(最古)의 답동성당(1886년)을 거쳐 마지막 답사 장소는 애관극장이었다. 애관극장은 최초의 극장 인천 협률사(1898~1900)의 후신이다.  노란페인트로 칠해져 있어서 실감은 안 났지만 정말 말 안했으면 숨은 그림이었을 극장이었다. 한 마디로 너무 반가웠다. 이것도 인천시가 확보해서 활용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욕심이 난다. 인천부윤 관사와 함께 말이다. 애관극장은 인천 중구에 만들어졌던 복합공간이다.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고 멀티플렉스다. 대만에도 일본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이런 공간이 남아 있다. 시먼홍러우(西門紅樓)인데 공연도 하고 영화도 하던 곳이다. 현재 거기는 쇼핑공간으로 되어 있고 건물이 특이하게 생겨서 지나가다가 눈에 띈다. 아마 애관극장도 빨간 벽돌로 만들어졌을 것인지 아닌가 싶다.
    흑백사진만 남아 있어서 정확한 확인이 힘들다.
 

 

     역사문제연구소의 인천답사를 해보니 개항장 인천은 중구의 관심속에 관광에 대한 기대를 많이 품고 있는 곳이었다. 잘 단장해놓고 건물도 매입해 놓고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고 노력이 돋보였다. 그래서 화장해서 못알아 보겠는 옛 친구같다.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건물이 전시관으로 많이 바뀌었는데 물론 반갑지만 좀 낯설다. 뭐든 인천이 최초 인천이 제일 앞선다고 하는데 고증이 필요한 부분이 분명히 있다. 안남아있다고 역사가 없는것은 아니니깐 말이다.부산과 인천의 비교연구 필요하다.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등을 보니 더 많은 고민으로 좀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 그래도 부산의 근대유산 관리보다는 훨씬 낫다. 의문의 1패를 당한 기분이다. 

 

     개항 130주년 기념 개항장 답사는 한줄로 운영한 사람들의 정성이 보이는 답사였다. 하루 답사 치고 과도하게 두꺼운 답사 자료집 보고 빙그레 웃었다. 공부한거 다 보여주고 싶어하는구나... 공부하는 사람들답다 싶었다. 강사가 여러명이니 산만했다. 전달을 어떻게 할까에 좀 더 치중했으면 어땠을까 아쉽기도 했다. 

 

    답사 혹은 여행은 누구와 가는 것인가도 정말 중요하다. 답사 말미에 지쳐 떨어진 학생들과 어린이들은 끌려온것은 아닌지 무엇을 느꼈을지 궁금했다. 어쨌든,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과 함께한 답사 기분좋은 피곤함이었다. 뿌듯하달까. 다른 연구회도 답사 가는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역사문제연구소처럼 대중에 개방적이지는 않다고 본다. 준비하느라 고생 많은 연구원분들 진심으로 감사하다. 역사문제연구소의 기획이 돋보이는 근현대 도시 답사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고 기회가 되면 또 참여하고 싶다.


글 : 박 소 연
역사문제연구소와 가까운 학교,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졸업생이다. 온라인에서는 페북, 오프라인에서는 고양,파주를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원 연구원으로 해설사로 활동 중이다. 역사대중화라고 하기엔 부끄럽다. 전문가도 아닌 관심 많은 일반인도 아닌 어중간함 속에 고민하는 중이다.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