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22 11:46 역문연 광장

본 글은 연구소 회보 59호 창립 30주년 기념호에 실린 기사 중 하나입니다. 

연구소 회보는 연구소 후원회원들을 대상으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의 글들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합니다. 


 

 

不用의 학문을 有用한 노동으로 인정합시다.[각주:1]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임광순

 

연구소의 사회적 소통- ‘노동’
    사무국에서 전달받은 글 주제이다. “요즘 노동 공부하는 사람이 참 드물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 누군가에겐 팔뚝질과 땀냄새로, 다른 누군가에겐 희끗희끗한 말일 수도 있다. 관심 가져야하지만 관심갖기 어려운 무언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테다. 대체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해장국보다 식어버린 게 ‘노동’ 아니었던가.


    연구소 20주년 기념회보를 들춰보았다. 많은 사연과 이야기들이 있었다. ‘신입’ 연구원이라 몰랐던 이야기들이 재미있었고, 내게 “선생님”인 연구원 선배들의 글이 흥미로웠다. ‘아! 10년 전에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 그때나 지금이나 고질적 문제들은 같구나. 지금 예전 글을 들이밀면 어떻게 대답할까. 나는 10년 뒤에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하지만 상상은 여기까지. 다시 내게 질문을 돌린다. ‘사회적 소통으로서 노동’은 적절한 질문인가? 연구소 단위에서 누구를 향해 어떤 말을 던져야 할까?

 

    나는 연구원이 되기 전부터 역사문제연구소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연구소 소식을 들으며 “저기는 연구자 사회구나!”라고 생각했다. 당시 내 입장에서 대학은 연구자 개인만 있을 뿐 연구자 사회가 아니었다. 복고적일 수 있지만 무릇 사회라면 내 공부와 삶을 털어놓고 나누는 공간이어야 했다. 내가 고립되지 않으면서도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들어줄 귀가 필요하고 말을 건넬 용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권력관계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입과 귀를 가리지 않을 것이란 신뢰가 필요했다. 내가 보기에 역사문제연구소는 그런 ‘연구자 사회’일 것이라 생각했고, 그 기대는 여전히 풍화되지 않았다.


    다시 연구소로 돌아와 1994년 5월 사단법인 설립취지서를 읽어본다. 마지막 구절을 옮긴다.

 

    “우리는 우리사회의 비민주적 요소를 타파하고 한국사회의 완전한 민주화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근현대사의 연구와 그 성과의 홍보에 힘쓸 것이다.”

 

    옳은 말이다. 시대가 변해도 계속 지켜야 할 말이기도 하다. 대신 말의 방향은 변할 수 있겠다. 1994년의 ‘우리’는 ‘우리사회’에 ‘근현대사의 연구와 그 성과의 홍보’로 말을 건다. 이러한 말걸기는 현재에도 연구소 운영을 평가하는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하지만 1994년의 말에는 ‘우리’의 속사정, ‘우리’의 노동 이야기가 빠져 보인다. ‘우리’가 사회의 내부에 있다면 보다 솔직하게 ‘우리’의 속사정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수군거림이 한 곳에 모여 웅덩이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사회에서 타자로서 존재할 뿐이다. 타자로서 접근하는 사회적 연대는 쉽게 동력을 잃는다. 연구소의 사회적 소통은 우리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유경쟁과 학문사회의 불편한 동거 - ‘연구노동’의 이물감
    학계와 대학사회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지 오래되었다. 논자마다 원인과 대안을 다르게 말하지만 대체로 학진시스템에 의한 경쟁질서 강화, 프로젝트형 연구에 대한 문제점을 공유한다. 이제는 이런 비판마저 익숙해져서 자극적인 사건(인분교수, 지방시, 연구비 횡령 등)이 터질 때에만 언론에서 반짝하고 말 뿐이다. 학계에서도 일부 비상식적 개인의 일탈로 여겨지곤 한다. 문제는 지난 10여 년간 ‘개인의 일탈’이 광범위하게 구조로서 축조되었다는 점이다. 예전에도 (예비)연구자의 생활고, 도제식 위계질서의 문제는 존재하였다. 다만 과거에는 일도 없고 돈도 없었다면, 이제는 일이 많지만 여전히 가난하다. 익숙한 광경이다. 전후 높은 실업률 속에서 날품팔이의 가난과 1960~70년대 노동자의 가난은 똑같이 비참하지만 그것을 감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우리의 일은 늘었지만 그것에 대한 이름표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학진체제의 외부를 바라보든, 그 내부에서 변화를 도모하든 연구노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다.


    상황은 익숙해졌지만 ‘연구노동’의 개념은 여전히 낯설고 불편하다. 간사와 조교들은 학회/연구소/학교에서 사무행정을 담당한다. 일부는 연구활동을 보조한다. 이것은 분명히 ‘노동행위’이다. 그러나 “학회/연구소/학교가 노동하는 곳이냐”라는 질문은 이것들을 손쉽게 비노동으로 이름 붙인다. 학회나 연구소는 ‘활동’을 명목으로, 대학은 ‘연구’를 명목으로 세속적 언어-노동을 폐기한다. 세속적이어서는 안 되는 조교와 간사들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며 임금 대신 장학금 또는 활동비를 받는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나도 예전에 간사해봤는데, 예전에 조교해봤는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합리적’ 학진체제는 인문학의 비판기능만 무디게 하지 않았다. 학진체제가 요구한 성과주의는 학문사회와 어울리지 않아 보였지만 절묘하게 합을 맞추었다. 지난 10여 년은 학계에 경쟁을 내면화시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일시키는 자/일하는 자의 감수성은 과거 방식에 머물렀지만 우리의 놓인 자리가 크게 뒤틀렸다. 정책적 변화는 중앙에서 출발하지만 일상의 변화는 가장자리에 놓인 사람들부터 시작한다. 삶은 더 팍팍해졌다.


    더 어려운 문제는 ‘연구’ 영역에 있다. 젊은 연구자들은 사무행정을 노동으로 인정하는 편이지만 ‘연구’ 영역에 있어 큰 이견을 갖는다. 노동의 범위를 설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책과 논문은 지식노동의 산물이라 인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책과 논문을 쓰기 위한 준비작업, 즉 선행연구 검토, 세미나, 사료수집 및 분석, 외국어 학습 등은 어떻게 개념화해야 하는가? 또한 연구를 노동으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얼마의 임금을 받아야 하는가? 요구해야하는가? 연구를 노동으로 바라본다면 학문연구의 특수성은 어떻게 되는건가?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연구자는 프로젝트에서도 학위별 ‘인건비 총액 상한선’이 있을 뿐 ‘하한선’(최소보장선)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장구한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임금체계를 일급제에서 주급제, 월급제로, 성과급제를 기본급제로 진전시켰다. (물론 이러한 흐름에 반하는 자본의 운동은 신자유주의 이전부터 존재하였다.) 이런 역사적 성과 아래 노동자들은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을 요구하며 싸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는 스스로의 기준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한때 육체노동만이 노동행위로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노동’의 개념은 정신노동, 감정노동까지 확장되었고, 형태도 사무직 노동, 가사노동, 돌봄노동으로 넓어졌다. 2014년 고려대 대학원총학생회는 메이데이를 맞이하여 “우리는 연구노동자입니다”라는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활동은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학내 대학원생들에게 “연구노동”이란 단어를 한번쯤 고민하게끔 만들었다. 이제는 조금 더 구체적인 말들을 나눌 때가 되었다. 특히 “한국사회의 완전한 민주화”를 지향하는 연구소라면 ‘연구’, ‘활동’, ‘노동’ 세 개의 층위를 각각 어떻게 개념화해야 하는지, 또한 그것을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해야 한다. 제기동시대를 맞이하여 안정적 재원이 생겼다면, 외부활동의 증가만큼이나 가장 기초적인 것을 되돌아볼 시간이라 생각한다. 중앙에 있든 가장자리에 있든 연구소 구성원들은 학계의 깊숙한 ‘내부자’, ‘공모자’ 아니던가.

 

    연구노동의 논의는 더 이상 선의나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연구활동을 ‘노동’으로 인정하고 선언하자는 말도 아니다. 보다 구체적인 의견들을 나누고 현실을 진단하자는 제안이다. 현재의 구조대로라면 인문학에 투입되는 정부재정이 늘어나더라도, 프로젝트가 성황이라 해도, 다시 각종 위원회가 생겨나도 ‘비판적’ 학문후속세대의 재생산이 쉽지 않을 것이다. 인문학 비판기능의 침식원인은 박근혜 정부의 인문학 고사시키기, 대학구조조정에만 있지 않다.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들고 안으로부터 ‘노동친화적 감수성’을 고사시킨 우리에게도 있다. 데리고 일하기 편한 대학원생만 길러내는 대학시스템과 그 구성원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당장 학계에서 내가 서있는 위치, 내가 쥐고 있는 권력의 크기를 헤아려야 한다. 이로부터 이물감을 느낄 경험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의 완전한 민주화”는 여기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不用한 학문을 권하고, 그것이 有用한 노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미래를 개척합시다.

  1. 글 제목은 20주년 기념회보 ‘不用의 학문을 권합시다’에서 차용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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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