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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역사비평 & 역사문제연구

역사문제연구 제30호 소개

 

역사문제연구 30호가 나왔습니다.

본래 2013년 10월 30일에 나와야했던 잡지가 원고 수합과 출판사 사정 등으로 인해

많이 늦어졌습니다. 늦어진 점 사과드립니다.

 

본 역사문제연구는 역사문제연구소의 후원회원이 되어 받아보시거나, 시중의 서점을 통해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당연히 연구소에서는 전자를 추천해드립니다. :)

 

 

 


 

죽은 역사가의 사회

 

2013년 역사교과서로 또다시 한국사회가 소란스럽다. 2008년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교과서 파동에 이어 발생한 이번 교학사 한국사교과서 사태는 역사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지는 기억투쟁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이른바 뉴라이트의 역습이라고 할 만한 이번 교학사 교과서의 탄생은 사실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교학사 교과서는 지난 2008년 교과서포럼이 교과서 시장이라는 제도권 밖에서 출간할 수밖에 없었던 대안교과서-한국 근현대사의 기획의도를 계승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안교과서에 비해 보더라도 현격하게 수준 낮은 역사서술과 수많은 사실오류로 점철된 졸속 교과서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역사학계는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냉전적 사고로 가득 찬 이 함량 미달의 교과서가 검정 통과한데 대해 즉각 반발하며 검정취소를 요구하고 나섰고,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의 오류를 인정하면서도 검정 통과된 8종 교과서 전체에 대해 수정권고를 하면서 검정취소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야당이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통과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사이에 여당은 나머지 7종 교과서를 친북좌편향, 대한민국 자학사관 교과서라고 비난하는 식의 색깔공세로 맞섰다. 역사학계는 교학사 교과서에 깔린 냉전적 인식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재 한국사회의 교과서 논쟁은 냉전적 구도에 고스란히 갇혀있다. 그 사이에 극우 정치인들과 보수 언론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꿔야 한다는데 77.4%의 응답자가 찬성했다는 설문조사 등을 앞세우면서 국정교과서로의 전환 논의에 불씨를 지피고 있고, 국무총리와 교육부장관은 국회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보아야 한다고 답변하는 등 정부는 국정교과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만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시간도 거꾸로 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교과서 논란이 국정교과서로의 전환 논의로 귀결되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교과서 논란 속에서 정작 바람직한 역사교육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교학사 교과서만 퇴출되면 역사교육은 정상화되는 것인가’, ‘교육과정집필기준안으로 표준화된 역사서술 체제를 국가로부터 승인받는 검정제도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의 목소리가 부각되지 못했다. 역사학계는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수능 필수화 정책에 대해 그 기저에 깔린 의도를 일면 의심하면서도 한국사 교육강화 정책을 환영하였고, 역사를 사지선다형 지식으로 환원시키는 평가방식이 역사교육의 밑바닥을 망가뜨리는 지점에 대해서는 사실상 침묵하였다.

 

피터 위어 감독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89)에서 키팅 선생님은 시()를 다루는 문학수업 시간에 바이런의 시는 중요도는 높지만 완성도는 겨우 보통을 넘는다. 반면 세익스피어의 시는 두 가지 면에서 모두 높다라고 쓰인 교과서 속 문장을 두고 어떻게 음악 프로그램에서처럼 시를 평가하지?”라고 반문하며 그 페이지와 서문 전체를 당장 찢어버릴 것을 학생들에게 요구한다. 명문대로의 진학을 위해 교과서를 있는 그대로 암기하는 대신, 학생 스스로가 문학작품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과서를 찢으라고 지시하는 키팅 선생님의 교육법이 어쩌면 지금 한국의 역사교육 현실에 가장 절실한 것이 아닐까. 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하기 위해 좋은 교과서 갖고 밑줄 그어가면서 역사를 공부하는 것과 역사교과서를 잠시 덮어놓고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역사해석간의 차이를 토론하는 수업 중에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한 역사교육일까를 생각해보아도 이는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교과서 문제를 교과서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역사문제연구30<특집: 정치적 텍스트로서의 교과서와 역사교육의 미래> 교과서 자체를 정면에서 다루었다. 교과서 문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성찰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현실에 긴박되지 못한 채 이상론에만 머문다면 공허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은 영화에서처럼 교과서를 찢을 수 없고, 시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다시 역설적으로 교과서는 중요해진다. 교과서를 관통해서 교과서 밖을 꿈꿀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 속에서 이번 특집은 기획되었다. 이신철의 탈식민탈냉전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뉴라이트한국사 교과서는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텍스트 분석과 그간 교과서 문제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들을 분석한 글이다. 교학사 교과서 비판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는 이 글에서 2013년 현재 교과서 문제가 어디에 놓여있는지에 대한 진단을 시도하고 있다. 후지이 다케시의 1950년대 반공 교재의 정치학은 교과서 문제의 역사성을 드러내려는 기획 의도 속에서 쓰여졌다. 그는 냉전의식이 교과서를 통해 어떻게 정전화되고 있는가를 1950년대 반공 교재를 통해 분석하고 있는데, 기성의 윤리를 매개로 자유 민주 국가공산주의 국가를 대비시키면서 민주국가의 우위를 드러내고 공산주의를 일제의 식민지배와 교차시키는 등의 교재 속 재현전략이 흥미롭다. 위의 두 논문이 현재와 과거의 교과서를 비판적으로 다루는데 비해, 김한종의 비판적 사고를 위한 역사교과서 내용구성과 서술은 가까운 미래의 역사교육을 위해 대안적 교과서의 모델을 모색하는 글이다. 검정시스템에 적합한 표준화된 지식으로서의 교과서가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보다 자유로운 역사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만들 교과서를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이 글을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역사문제연구 편집위원회에서는 이번호부터 최근의 문제작에 대한 저작비평회를 개최하고 이를 지면을 통해 중계하기로 하였다. 그 첫 문제작은 권명아의 음란과 혁명으로 선정되었고, 그 결과는 <풍기문란과 부적절한 정념, ‘다스릴 수 없는 자들의 정치를 말하다>라는 저작비평으로 수록되었다. “8월에 부산으로 가보자는 다소 낭만적이고 무모하기도 했던 이 기획은 의외로 손발이 척척 맞아 성황리에 행사를 개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행사를 위해 노력해주신 저자(권명아), 사회자(송은영), 토론자들(장신, 천정환, 황병주)과 동아대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문학과 역사학의 경계에서 던지는 저자의 도발적인 문제제기와 33색 토론자들의 개성넘치는 비평이 어우러져 3시간 넘게 진행되었던 이 날 토론의 향연을 독자여러분께서도 즐겁게 만끽하실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저작비평뿐만 아니라, 이번호에는 주제비평현실비평이라는 두 개의 코너를 마련하였다. 우선 주제비평에는 최근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가야트리 스피박 외, 2013, 그린비), 하위주체성과 재현(존 베벌리, 2013, 그린비)이 번역 출간된 것에 발맞추어 김원의 민중사는 어느 방향으로 탈구축될 것인가 - ‘서발턴논의를 비추어 본 질문이라는 글을 수록하였다. 김원은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에서 한국에서 민중재현의 위기에 맞서 보다 적극적으로 서발턴 논의를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는데, 이 글에서는 서발턴 연구와 한국의 새로운 민중사연구 사이의 공통교착 지점을 추적하면서 보다 심화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민중사의 탈구축 방향이라는 문제설정으로부터 민중사와 서발턴 연구의 한계를 넘어설 전망을 모색하고 있다. ‘현실비평코너에는 소장 역사학자 정대훈이 일베현상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글을 써주었다. 젊은 역사학자들의 다소 거칠지만 감각적이고도 도발적인 문제제기에 대해 앞으로도 역사문제연구는 꾸준히 지면을 할애하고자 한다.

 

일반논문에는 지난 7월 역사문제연구소가 야심차게 진행하였던 <역사, 평화를 이야기하다> 행사의 일환으로 발표되었던 김한상의 주한미국공보원(USIS) 영화의 응시 매커니즘등 모두 4편의 논문이 수록되었다. 영화(김한상), 감성규율(이하나), 외국자본 투자유치(장미현),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김보현) 등을 키워드로 한 이 논문들은 한국현대사 연구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의의를 드러내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한국근현대사 연구 흐름을 이끄는 참신한 연구 성과들을 역사문제연구에서 앞으로도 꾸준히 접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3년 한국의 지금 모습을 훗날 역사가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구시대의 통치 질서가 부활하는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생존경쟁의 통치성이 공고해져만 가는 이 민주주의의 시대를 말이다. 이 시대에 다시 역사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표준화된 일국사적 집단기억의 기록으로서의 한국사 교과서를 정정해가며 국민의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정전화 된 교과서를 내려두고 역사적 사유의 장으로 시민들을 초대하여 함께 책상 위에 올라서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역사가들은 국민적 정체성 만들기의 수단으로 역사가 오용되는데 맞서 그에 억눌린 다른 기억들을 드러내고 다성(多聲)의 목소리로 더욱 웅얼거리거나 소리쳐야 할 것이다. 그 목소리는 불온하여도 음란하여도 문란하여도 좋다. 대한민국의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도, 잡을 수 없는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다.

 

(이상록)

 

 

 

 

 


목  

 

 

 

책머리에: 죽은 역사가의 사회

 

<특집: 정치적 텍스트로서의 교과서와 역사교육의 미래>

 

이신철, 탈식민탈냉전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뉴라이트한국사 교과서

후지이 다케시, 1950년대 반공 교재의 정치학

김한종, 비판적 사고를 위한 역사교과서 내용구성과 서술

 

<저작비평: 풍기문란과 부적절한 정념, ‘다스릴 수 없는 자들의 정치를 말하다>

권명아, 음란과 혁명(2013, 책세상) [토론: 장신천정환황병주, 사회: 송은영]

 

<일반논문>

 

  김한상, 주한미국공보원(USIS) 영화의 응시 메커니즘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와 가시화하는 힘의 과시

이하나, 1970년대 감성규율과 문화위계 담론통속의 정치학과 권위주의 체제

 

  장미현, 1970년대 초반 재계의 외국인 투자 유치 활동과 그 결과기술도입과 저임금 생산 기반 형성의 이중주

김보현,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경유한 분단의 재고와 탈분단의 전망

 

<주제비평>

김원, 민중사는 어느 방향으로 탈구축될 것인가서발턴논의를 비추어 본 질문

 

<현실비평>

정대훈, 일베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