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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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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75주년에 돌아보는 731부대의 전쟁범죄

민족주의적 소비를 넘어, 진지한 역사 연구와 엄중한 단죄를

 

2020 8월은 해방 75주년이기도 하다. 해방 75주년을 맞이하여 『역사비평』 731부대의 실상에 대한 연구논문과 이 전쟁범죄 행위의 진실을 규명하고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일본 연구자와 법률가의 대담을 특집으로 꾸몄다. 731부대는 마루타와 잔혹한 생체 실험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이들이 세균전 부대였으며 실제로 세균전을 감행하여 수십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많은 언론 보도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비인간적인 생체 실험의 잔혹한 장면들만 강조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동원된 사진 자료들은 잘못된 경우가 많다. 하세가와 사오리와 최규진의 논문은 731부대에 관한 잘못된 지식과 정보를 바로잡으면서 731부대의 역사에 대해 접근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2020 1월 한국 연구자 김옥주, 최규진 등이 이 재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학자 마쓰무라 다카오, 그리고 변호사 이치노세 게이치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담은 제국주의 전쟁범죄의 진상규명과 보상에 관한 민감한 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이들이 기울인 용기와 인내, 그리고 끈질긴 조사 연구와 연대 활동을 잘 보여준다. 사회적 쟁점에 대한 학술연구가 설득력을 얻기 위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 생각해볼 만하다.

 

 

중첩된 재난 속 피난약자들을 기억하라

우생사상을 거부하는 팬데믹 연대에 대한 새로운 요청

 

지난호에 이어 감염병과 사회적 대응의 두 번째 기획을 실었다. 이상동은 다양한 연구와 자료를 검토하여 541년부터 750년까지 2세기 넘게 광대한 지역에서 창궐한 유스티아누스 역병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대규모 페스트 유행이며 최초의 팬데믹이라고 규정하고, 그 발생과 확산, 사회적 대응을 정리했다. 팬데믹은 모든 구성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재앙이지만, 특히 사회적 약자, 그중에서도 장애인들에게 더욱 치명적이다. 신지영은 이런 현상을 중첩된 재난으로 파악하고 한국과 일본의 사례들을 비교 연구했다. 그는 기존 대책이 중첩된 시설화와 우생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소통에 입각한 팬데믹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한국과 일본의 장애인들과 활동가, 그리고 간호사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토대로 한 이 논문은 이 중첩된 재난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데 큰 미덕이 있다.

이 기획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역비논단>에 실린 소현숙의 논문은 장애인 인권을 다룬 다. 그는 1960년대 이래 가족계획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우생학적 관점에서 강제불임시술을 허용한 모자보건법의 제정과 시행, 이를 둘러싼 논란, 그리고 장애인 강제불임시술의 실태를 추적하였다.

 

 

발전에 대한 욕망의 경제학적 재조명

개발주의/발전담론의 비판적 재해석

 

사회발전과 자기계발의 이론과 욕망이 확산되고 변형되는 과정을 비교검토하고자 한 기획이다. 오경환은 1950년대 등장한 발전경제학의 계보가 근대화 이론과 종속이론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데올로기 스펙트럼에서는 양 극단에 존재하지만, 발전이라는 사회기술적 상상의 시점에서는 일치를 이루고 있으며, 종속이론의 비판 내부에는 여전히 발전에 대한 강력한 욕망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록은 1970~80년대 한국의 경영학과 기업경영 현장에서 인간관계론, 인간자원론 등 미국식 인간개발 담론이 확산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복종적 주체와 달리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자기계발을 시도하는 성과주체가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지역학으로서의 한국학 현주소와 전망을 묻는다

해외 한국학자들의 익숙하고 낯선 목소리들

 

21세기 글로벌 한국학의 시대가 왔다고 한다. 실제로 여러 지역 대학에서 한국 관련 학과도 생기고, 학술회의도 활발하다. 그런데 정말 글로벌, 혹은 글로컬하다면 각 지역과 공동체에서 한국 혹은 조선학의 의미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역사비평은 해외 한국학을 각 지역의 입장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호에는 일본의 연구자 이타가키 류타가 자신의 학문을 비판적 코리아 연구라 규정지으며 문제의식을 소개했다. 식민주의와 냉전적 사고를 극복하는 학문적 실천으로서 이타가키의 연구방법론은 한국의 연구자들에게도 큰 자극이 될 것이다.

 

 

차례

 

책머리글 다시 재난과 성찰 / 이기훈

특집: 전쟁과 의학, 그리고 역사적 책임

731부대에 대한 민족주의적 소비를 넘어서731부대 관련 사진 오용 사례와 조선 관계 자료 검토 / 하세가와 사오리·최규진

대담: 731부대와 세균전 연구의 성과와 과제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중심으로

기획 1: 감염병과 사회적 대응 ②

유사 이래 최초의 팬데믹유스티니아누스 역병 / 이상동

중첩된 재난과 팬데믹 연대팬데믹 속 한일 장애 활동가 및 간호사 구술을 중심으로 / 신지영

기획 2: ‘개발주의/발전담론의 비판적 재해석

발전경제학의 계보학발전의 상상과 경제학의 기술정치 / 오경환

동기부여와 인간개발, 자기관리형 인간의 탄생1970~80년대 한국에서 인간개발 담론과 성과주체 생산 / 이상록

연재기획: 해외 한국학 연구의 동향과 의미 ①

비판적 코리아 연구를 위하여식민주의와 냉전의 사고에 저항하여 / 이타가키 류타

역비논단 우생학의 재림과 정상/비정상의 폭력가족계획사업과 장애인 강제불임수술 / 소현숙

미군정기 아동노동법규와 미성년자노동보호법 / 김도민

『임나흥망사』를 통해 본 스에마츠 야스카즈의 역사관 / 정동준

혁명 원조에서 특구 건설로시아누크빌을 통해 본 아시아 냉전의 역설 / 백지운

서평 사상계』를 연구하려는 이들이 통과해야 할 하나의 문―『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사상계』(이상록,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 2020) / 김건우

익숙해진 것들에 대한 낯설음―『서울, 권력 도시일본 식민 지배와 공공 공간의 생활 정치』(토드 A. 헨리, 산처럼, 2020) / 김제정

몽골제국 이후 중앙유라시아 세계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몽골제국의 후예들』(이주엽, 책과함께, 2020) / 최소영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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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머리에

 

잔인했던 봄이 지나가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봄비는 늘 세월호의 기억과 함께 내렸다. 올해는 2월 중순 이후 한국에서도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해치거나 적어도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서 평범한 일상을 포기했다. 3월에는 역사문제연구소의 큰 어른이신 이이화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다. 따뜻해야 할 늦봄까지도 추위는 매서웠다.

코로나19는 현대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해 생각할 거리들을 안겨주었다. 감염병의 매개체로 간주된 중국인(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질병의 진단·치료·예방을 위한 공공 의료 시스템의 중요성, 감염병에 노출되기 쉬운 사회적 약자들, 사람과 물자의 국내외 이동 또는 통제, 인간이 활동을 자제하니 나타난 동물들과 사라진 미세먼지 등등. 사람과 사람이,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기억해야 할 장면들이다.

학교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즉각 비대면 온라인 강의가 도입되었다. 대학, 선생님, 학생 모두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온라인 강의에 던져졌다. 2주면 끝나리라 예상했던 온라인 강의가 한 달, 두 달, 혹은 한 학기 전체로 연장되면서, 학생들 사이에서 강의의 질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나왔다. 선생님들도 강의계획을 수정하고 영상 제작에 필요한 장비를 사비로 구매하는 등 대면 강의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여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온라인 수업이 4차 산업혁명을 가속화한 것처럼 보일지언정, 온라인 수업은 결코 대면 수업의 손쉬운 대체재가 될 수 없고 어디까지나 대면 수업이 기본임을 모두 통감하게 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모임이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도 절감했다. 내 경우, 서울에서 열렸을 행사나 회의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2~3시간 모임을 위해 길에서 허비해야 했던 서울·광주 왕복 6시간, 교통비 10만원, 체력을 아낄 수 있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단순히 기존의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도, ‘낡음을 버리고 새로움으로 내달리는 것도 아닐 것이다.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된 지금 시점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번 『역사문제연구』 43호의 특집과 기획에 실린 논문들은 한국 근현대 신문·잡지를 기본 자료로 활용하면서도, 서로 다른 연구방법을 취했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특집 근대전환기 미디어의 조선 역사·문화론은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사업단의 연구결과물이다. 1896~1910년 발간 신문·잡지에 실린 조선 역사·문화 관련 기사를 추출해 데이터베이스(빅데이터)를 구축한 후,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양적 연구방법을 사용했다. 홍정완은 「근대전환기 한국학 지형 다시 읽기」에서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을 소개하고, 조선 역사·문화 관련 기사가 대외항쟁의 역사 또는 조선 후기 실학을 중심으로 증가했음을 밝혔다. 심희찬의 「근대전환기 신문·잡지 역사 관련 기사 데이터베이스 검토」는 역사(한국사)를 각 신문·잡지가 어떻게 서술했는지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 기타 잡지들을 비교했고, 조형열의 「『황성신문』이 주목한 조선의 역사문화」는 『황성신문』에 실린 조선 역사·문화 기사의 연도별 변화 양상을 분석했다. 장지연, 박은식, 신채호 등 주요 필자의 영향력이 두드러진다. 정유경은 「텍스트의 계량 분석을 활용한 근대전환기 신문의 시계열적 주제 분석법」에서 『황성신문』 논설에 구조적 토픽 모델링과 공기어 네트워크 분석 방법을 적용해 주요 주제(토픽)의 연도별 변화 양상을 분석했다.

반면 기획인 ‘『서울신문』으로 읽는 1950년대는 역사문제연구소 1950년대 연구반이 4년에 걸쳐 『서울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한 후 질적 연구방법을 사용해서 쓴 논문들이다. 『서울신문』은 남은 기록이 많지 않은 이승만 정부와 자유당의 논리와 시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다른 자료들과 함께 분석함으로써 1950년대의 사회·정치·경제상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1950년대 연구반은 ‘『서울신문』으로 읽는 1950년대로 워크숍(2020.3.6.)을 개최했고, 『역사문제연구』 43호 기획에는 이때의 발표논문 중 2편이 게재되었다. 이동원의 「1950년대 한국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 기술 도입과 냉전적 변용」은 원자력 기술 도입을 둘러싸고 다양한 욕망들이 표출되었음에도 전술핵무기 도입의 마중물로 귀결되었음을 분석하였다. 김수향의 「1950년대 후반 이승만 정권의 농업정책과 그 한계」는 이승만 정권이 미곡담보융자제도와 농촌고리채정리안을 마련했음에도 주요 지지층인 농촌이 몰락해갔음을 분석했다. 특집과 기획을 함께 읽으며 전통적인 질적 연구방법과 새로운 양적 연구방법의 특징과 장단점을 이해하고, 자신의 문제의식과 연구대상에 맞는 연구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코로나19의 대대적 확산 직후였던 2020 2 20일에 진행된 저작비평회는 아직까지도 역사문제연구소의 마지막 일반공개 오프라인 행사로 남아 있다. 취소와 단행의 고민 속에서도, 많은 분들이 정영환의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독립으로 가는 험난한 길을 읽고 참석해주셨다. 정영환 선생님은 서울대 집중강의 후 누적된 피로에도 불구하고, 재일조선인 문제사가 아닌 재일조선인을 주체로 한 재일조선인을 위한 역사서술, 정책사와 운동사·민중사의 종합적 이해, 한국과 일본의 국경을 넘는 역사, 해방 공간에서 반공주의와 식민주의의 관계 등등의 문제의식을 열정적으로 토로했다. 김아람 선생님의 매끄러운 진행 속에, 정계향, 하종문, 홍정완 선생님도 각각 재일조선인사, 일본사, 한국사의 관점에서 흥미롭고 중요한 토론을 이어주셨다. 사회적 재난을 뚫고 함께해주신 선생님들과 참석자 분들께 다시금 감사 인사를 드린다.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도 많은 일반논문이 투고되어, 『역사문제연구』 편집위원회는 심사 통과된 논문을 다음 호로 이월해야 할 수도 있겠다는 행복한 고민을 했다. 43호에는 홍문기의 「갑오개혁 이후 중추원의 변화와 중추원=언관(言官)’ 논리의 등장」, 남기현의 「토지조사령에 규정된 사정과 소유권 확정의 차이」, 백선례의 「전시체제기 전염병 예방접종의 강화」, 이정민의 「함흥 전후복구사업을 통해 본 북한-동독 관계」, 유경순의 「1980년대 여성평우회의 기층여성 중심의 활동과 여성운동의 방향 논쟁」, 5편이 수록되었다. 개별논문 소개는 지면 관계상 생략하지만, 연구 시기가 189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고르게 포괄된 점은 기쁘게 생각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통상 4월호에 수록한 역사문제연구소 정기심포지엄 특집이 43호에 실리지 못한 것이다. 2019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기획된 정기심포지엄 만세후의 시대-3·1운동 이후의 융화와 불화는 『역사문제연구』의 지면과 필자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다음 44호로 이월되었다. 기대하셨을 독자분들께는 죄송하고 양해를 부탁드린다. 2020년에는 또 1950년 한국전쟁, 1960 4·19, 1970년 전태일 열사 분신, 1980 5·18 등 한국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기념하는 행사가 마련되어 있다. 다소 소략해진 상반기 행사들이 아쉬운 만큼, 하반기에는 더욱 따뜻하고 치열하게 함께 마주 앉아 이야기할 자리가 많길 기대한다. (이정선)

 

 목차

 

 특집: 근대전환기 미디어의 조선 역사 · 문화론

홍정완, 「근대전환기 한국학 지형 다시 읽기  신문 · 잡지의 한국 역사 · 문화 관련 텍스트 계량 분석을 중심으로」

심희찬, 「근대전환기 신문 · 잡지의 역사 관련 기사 데이터베이스 검토 - ‘한국사 서술의 변화 양상을 중심으로」

조형열, 「『황성신문』이 주목한 조선의 역사문화  관심 소재의 정량적 · 시계열적 분석을 통한 조선연구의 기반 검토」

정유경, 「텍스트의 계량 분석을 활용한 근대전환기 신문의 시계열적 주제 분석법 - 『황성신문』 논설을 대상으로」

 

 기획: 『서울신문』으로 읽는 1950년대

이동원, 「1950년대 한국의 평화를 위한 원자력 기술 도입과 냉전적 변용」

김수향, 「1950년대 후반 이승만 정권의 농업정책과 그 한계」

 

 저작비평회

재일조선인 역사의 다층적 해석

정영환, 『해방공간의 재일조선인사 - ‘독립으로 가는 험난한 길』(푸른역사, 2019)

저자: 정영환

사회: 김아람

토론: 정계향, 하종문, 홍정완

 

 연구논문

홍문기, 「갑오개혁 이후 중추원의 변화와 중추원=언관(言官)’ 논리의 등장」

남기현, 「토지조사령에 규정된 사정과 소유권 확정의 차이」

백선례, 「전시체제기 전염병 예방접종의 강화  장티푸스를 중심으로」

이정민, 「함흥 전후복구사업을 통해 본 북한-동독 관계」

유경순, 「1980년대 여성평우회의 기층여성 중심의 활동과 여성운동의 방향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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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가 바라본 민중사는 다만 변혁운동으로서의 민중운동사가 아니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민중들, 때로는 침묵하고 나약하게 인종의 길을 걷던 그들의 삶과 민중의 용트림, 곧 민중운동이 별개의 것이 아니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또한 그는 역사 대중화를 누구보다 앞장서서 추구해왔다. 그는 일반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와 문장을 역사책에 담아내야 대중화되는 것이죠. 혼자만 아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쉬운 글쓰기를 촉구하였다. 민중사 연구는 더욱 그러해야 할 것이다. 이 역시 폐쇄된 학문이나 빛바랜 진리를 위하여 생애를 맡긴 선비도 또한 오늘의 우리에게 가슴 벅찬 감동을 안겨주지 못한다는 말, 곧 시대와 함께하는 혹은 민중의 삶을 생각하는 연구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이이화의 민중사가 우리에게 남긴 또 다른 과제이다.”배항섭, 이이화의 삶과 민중사 연구 중에서.

 

 

▶◀ () 이이화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

 

 

 

5·18 40주년에 돌아보는 20세기 세계의 국가폭력

, 어떻게 국가가 시민에게 총을 쏘는가?

5·18 광주민중항쟁 40주년을 맞아 ‘20세기 세계의 국가폭력을 특집으로 기획했다. 우리의 질문은 이것이다. “, 어떻게 국가가 시민에게 총을 쏘는가?” 모든 국가들이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던 20세기 후반, 세계 도처에서 국민주권의 원리를 배반하는 참혹한 국가폭력이 광범위하게 나타난 현상과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했다.

문수현은 국가와 폭력의 관계에 대한 슈미트, 벤야민, 아렌트 등의 논의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이를 1980년 광주의 상황에 다시 적용하여 가해-피해의 단선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권력과 엘리트, 대중의 상황을 설명할 단서를 제공한다. 국가 테러리즘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은 극히 문명화된 것처럼 보이는 국가라고 해도 폭력적일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의 공화국은 어떠한가? 서지원은 인도네시아 1965~66년 학살의 배경과 전개, 현재까지의 연구 경향과 사건에 대한 해석을 소개했다. 적어도 수십만 명 이상이 공산당원이거나 관련되었다는 의심만으로 처형당한 이 사건은, 군부가 개입하고 주도한 국가폭력이면서 자발적으로 참여한 청년단 등 민간인들에 의해 더욱 대규모로 자행되었다.

하남석은 1989년 천안문 사건을 단순한 자유민주주의적 저항이나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의 투쟁으로 보는 관점 대신, 사회주의 내부의 계급투쟁과 민주적 사회주의 지향이 공존한 저항운동이었다고 보았다. 이 혼종적인 저항의 역사는 일회적이지 않다. 문화대혁명-천안문 사건-2018년의 노학연대와 홍콩 시위까지 일련의 저항과 탄압의 역사적 경험과 트라우마가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한은 1980년 광주에서의 학살이라는 국민에 대한 국가의 범죄, 5·16 12·12라는 두 번의 쿠데타, 베트남전쟁 경험에서 배태된 것이라고 보았다. 쿠데타를 거치며 정권을 장악한 군부는 공수부대를 정권을 위한 기동타격대로 사용했고, 베트남전쟁 참전 장교와 하사관들의 경험과 기억은 5·18을 또 다른 내전으로 상상하도록 하여 학살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정인철은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이 자행한 국가폭력과 민주화 이후 칠레의 과거사 청산 과정을 분석했다. 민주화 이후 한 세대가 지났지만 여전히 새로운 국가폭력의 문제들이 제기되고 독재의 기억을 둘러싼 대립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매우 시사적이다. 과거사 청산은 과거의 진상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가폭력의 재발을 방지하고 정의를 실천하는 길이라는 지적을 유념하자.

 

 

인문학은 의료에 사회를 이해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감염병과 사회적 대응

기획 감염병과 사회적 대응은 질병의 공포에 직면한 인간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실제 역사 속에서 살펴보았다. 김호는 18세기 경상도 지방에 살았던 처사 구상덕의 일기 승총명록을 통해 역병이 일으킨 가혹한 피해의 실태 속에서도 도덕적 삶을 유지하고 공동체에 기여하고자 한 지식인의 생활 태도를 보여주었다. 김호는 스스로 공동체를 지키려는 이런 자발적인 사()의식이 역병의 시대를 버틴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박윤재는 식민지 시기 총독부의 방역 사례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총독부가 실시한 경찰 중심의 강제적 방역이 실제로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았으며, 시민의 자발적인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코로나 시대 인문학은 의료에 사회를 이해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그의 지적에 귀기울여야 한다. 김호와 박윤재가 각각 개인과 국가·사회의 차원에서 감염병에 대한 대응을 다뤘다면, 이영석은 19세기 후반 방역을 위한 국제공조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21세기 새로운 국제협력의 길을 찾는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도 고민해볼 문제다.

 

 

당대의 시각에서 당대의 정세를 재평가하다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은 연재 기획으로 6회째가 되었다. ‘삼국통일전쟁론 백제통합전쟁론의 논쟁에 대해 여호규는 두 논의 모두 전쟁의 의미를 한반도에만 국한시킨 한계가 있으며, 전쟁의 의도나 목표가 아닌 결과의 차원에서 평가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7세기 전쟁이 삼국을 비롯해 수··왜 등 만주·한반도 지역에 대한 이해관계를 가진 여러 주체들이 참여한 국제전이었고, 최종적으로 이 지역의 지정학 지도를 재편했다는 점에서 ‘7세기 만주·한반도 전쟁으로 명명할 것을 제안했다.

임기환은 7세기에 신라의 김춘추가 당과 군사동맹을 맺을 당시 직접적인 목표는 백제병합이었으나, 당 태종과 협약을 맺는 과정에서 평양 이남의 고구려 영역을 차지하기로 했던 것 역시 중요한 외교적 성과였고, 그렇게 자신들에게 귀속되는 실질적 영토를 삼한으로 규정한 것이 일통삼한 의식의 근간이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7세기 전쟁을 백제병합론으로 한정시키거나 삼국통일로 확대시키는 시각 역시 경계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홍보식은 고고학적 유물을 통해 삼국의 물질문화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 보았다. 건물지나 고분 등 건축문화에서는 백제 지역에서 자기 양식을 상당 기간 유지하다 신라 양식으로 변화하였으나, 식생활에서는 신라토기가 빨리 보급되고 고구려나 백제 양식의 시루가 보급되는 등 삼국문화가 융합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고 파악했다.

 

 

차례

 

○책머리에      

위기 속의 역사학 / 이기훈

특별기고      

이이화의 삶과 민중사 연구 / 배항섭

○특집

5·18광주민중항쟁 40주년: 20세기 세계의 국가폭력

국가와 폭력국가가 실패하는 순간에 대한 고찰 / 문수현

광주 학살의 내재성쿠데타, 베트남전쟁, 내전 / 김정한

1989년 천안문 사건과 그 이후역사의 중첩과 트라우마의 재생산 / 하남석

국가폭력인가 집단 간 폭력인가?인도네시아 1965~66년 학살에 대한 해석들 / 서지원

칠레의 국가폭력과 미완의 과거사 청산 / 정인철

기획 1             

감염병과 사회적 대응

방역에서 강제와 협조의 조화?식민지 시기를 중심으로 / 박윤재

시골 양반 역병(疫病) 분투기18세기 구상덕의 『승총명록』을 중심으로 / 김호

19세기 후반 전염병과 국제공조의 탄생 / 이영석

기획 2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김춘추, 당 태종의 협약과 일통삼한’ / 임기환

7세기 만주·한반도 전쟁과 지정학 구도의 재편 / 여호규

물질문화로 보는 삼국통일고고학적 접근 / 홍보식

역비논단      

정사  비사1950년대 미국의 6·25전쟁사 연구와 냉전문화 / 정용욱 

금강산의 식민지 근대1930년대 금강산 탐승 경로와 장소성 변화 / 김백영

학설의 유령당대 중국 동아시아사 인식 중의 임나일본부설’ / 유용태

루소의 사회계약 이론에 대한 역사적 독해 / 김민철

서평           

베를린장벽에서 38선을 보며―『동독민 이주사, 1949~1989』(최승완, 서해문집, 2019) / 김아람

당대적 맥락이라는 연구의 실천―『병자호란과 예, 그리고 중화』(허태구, 소명출판, 2019) / 김창수

동아시아의 근대와 메이지유신의 위치―『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박훈,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9) / 이새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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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공포는 분노와 증오를 가져온다.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이야말로 가장 두렵고 억울한 일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싶고, 위험의 요소 자체를 사회 속에서 폭력적으로 배제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위협받는 2020년의 한국 사회에도 온갖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떠돌고, 단절과 거부, 추방 등의 혐오에 가득 찬 발언들이 난무한다. 그러나 수많은 역사들이 증명하듯 공포는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며,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전염병이 중세 유럽을 휩쓸 때 병의 근원으로 지목당한 유태인들이 공격당했고, 마녀 사냥은 한층 극성이었다. 간토 대지진 때는 재일본 한국인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공포의 시간에서 인내와 성찰이야말로 사태를 해결하는 길이다. ―「책머리에」중

 

 

대중문화와 민족주의, 반일과 페미니즘의 전선에서

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을 어떻게 기억했는가?

이번호 『역사비평』에서는 대중문화와 민족주의의 측면에서 우리의 3·1운동 100주년을 돌이켜보았다. 작년 한 해 우리는 민족 민족주의에 관한 수많은 사건과 곡절들을 겪었다. 3·1운동 100주년의 수많은 이벤트들을 시작으로 일본의 대한 수출 규제, 한국 사회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 지소미아 연장 논란, 심지어 이영훈의 『반일 종족주의』까지. 한국 사회는 이념적 전장이 되었으나, 전선은 불분명했고 내용은 불충분했으며 의미도 뚜렷하지 않았다. 천정환의 글은 이 특집의 총론으로 작년 한 해 이렇게 복잡하게 전개된 민족주의 대중정치의 양상을 정리하고 분석했다. 국내, 국제 정치의 복잡한 양상 속에서 민족주의의 다면적인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따져보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운동 주체와 지식사회의 과제까지 제시하고 있다. 다른 필자들은 영화, 출판, 드라마, 뮤지컬·오페라의 대중문화 영역에서 3·1운동 100주년의 상황을 분석했다. 이화진과 전지니의 3·1운동 소재 영화와 드라마 연구는 대조적인 두 작품을 다뤘다. 성공한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와 실패한 드라마 <이몽>. 그 사이에는 페미니즘과 민족주의 영웅 이야기가 있거니와, 과거의 기억이 어떻게 현재의 사회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가에 대해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용희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관련 대중 출판물과 베스트셀러 동향, 그리고 일본 서적 불매운동 등 출판시장의 전반적 동향을 분석했다. 그의 분석은 역사학계와 대중미디어 사이의 명확한 거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전우형은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와 오페라 <1945>를 다뤘다. 역사비평』이 오페라나 뮤지컬 작품을 분석한 글을 싣는 것도 드문 일이다. 작품을 소개한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거니와, ‘사이공간 반영웅이라는 특징을 지적한 것이 더욱 신선하다. 이화진, 전지니, 전우형의 글을 비교하며 읽어보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지성사의 흐름 속에서 살펴본 3·1운동 100주년

3·1운동 100주년의 학술 담론

지난호에 다 싣지 못했던 3·1운동 100주년의 학술 활동 평가를 첫 번째 기획으로 묶었다. 오제연은 최근 다시 부각된 ‘3·1혁명론을 학술과 이념 지형의 변화 속에서 분류하고 평가했다. 그중에서도 3·1운동을 촛불혁명까지 연결시키는 장기혁명론의 학술적 정치적 의미를 명료하게 정리, 평가하고 있다. 새로운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아볼 수 있을 것이다. 3·1운동 50주년, 70주년, 90주년, 100주년은 그 자체로 학술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종호는 각 시점에서 대규모 학술 기획들이 어떤 지성사적 의미를 갖는지 비교하고 분석하였다.

 

 

동아시아 속 한반도, 삼국통일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은 벌써 다섯 번째 기획을 이어 나간다. 기왕에 다각적인 학술적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거니와, 이번호에서는 시야를 달리하여 당(중국)과 왜국(일본)의 입장에서 삼국통일 혹은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 문제를 다뤘다. 이기천은 당의 장기적인 국제 전략을 추적하면서 고구려, 백제의 멸망 및 당과 신라의 전쟁을 분석했다. 반면 이재석은 일본의 지배층이 사후적 시점에서 7세기 중·후반 동북아시아의 정세 변화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국민국가의 기원 찾기가 아닌 방식으로 동아시아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차례

책머리에 · 재난과 성찰 / 이기훈

[특집]우리는3·1운동100주년을어떻게기억했는가?  대중문화와민족주의

· 3·1운동 100주년의 대중정치와 한국 민족주의의 현재 / 천정환

· 3·1운동 100주년의 역사영화와 여성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실과 <항거: 유관순 이야기> / 이화진

· ‘3·1운동 100주년 불매운동 속의 대중 출판물 / 이용희

· 반일 이슈와 TV 드라마가 구현하는 민족주의<이몽>(2019)을 중심으로 / 전지니

· 사이공간과 반영웅들의 재현 정치2019 뮤지컬-오페라의 독립운동 / 전우형

[기획 1] 3·1운동 100주년의 학술담론

· 3·1운동 100주년의 연구와 ‘3·1혁명론’ / 오제연

· 3·1운동 연구의 흐름과 매듭들100주년을 맞이하여 / 이종호

[기획 2]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 당의 입장에서 본 신라의 통일 / 이기천

· 왜국(일본)에서 본 백제·고구려의 멸망 / 이재석

[역비논단] · 역사적 관점으로 본 자본주의와 건강, 그리고 한국의 의료민영화 / 박지영

· 안과의사, 시각장애인에게 타자를 가르치다맹인부흥원과 공병우의 시각장애인 자활운동 / 김태호

· 1910~20년대 내선융화 선전의 의미일본인과 부락민·조선인 융화의 비교 / 이정선

· 근대 동아시아 설탕 시장과 홍콩 제당업상인 디아스포라는 지속 가능한가? / 강진아

[서평] · 결국 동아시아사는, 아니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이재환

―『투쟁의 장으로서의 고대사동아시아사의 행방』(이성시, 삼인, 2019)

· ‘중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국제적 토론 / 김선민

―『전통 시기 중국의 안과 밖중국 주변 개념의 재인식』(거자오광 지음, 소명출판, 2019)

· 한국 온돌의 기원과 확산에 대한 실증적 분석과 정합적 결론 / 이종서

―『한국 온돌의 역사최초의 온돌 통사』(송기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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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머리에

 

전 세계가 시위의 열기로 뜨겁다. 6월 홍콩에서 시작된 범죄인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가 대표적이다. 한 홍콩인 남성이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다시 홍콩에서 돈을 훔친 사건에 대해, 홍콩에서는 홍콩에서 일어난 절도만 처벌할 수 있었던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언뜻 보면 범죄인을 대만에 인도해 살인죄도 적용할 수 있게 한다는 송환법의 취지에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나 200만 홍콩 시민이 그에 반대해 거리에 나선 배경에는 중국 정부에 대한 오랜 불신이 있었다. 홍콩은 아편전쟁 이후 150년 동안 영국에 할양되었다가 1997년 중국에 반환되었고, 중국의 일개 행정구역이면서도 독자적인 헌법, 행정부, 법원을 보유할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 그러나 중국은 행정장관을 간접 선출하게 하는 등 홍콩의 입법·행정에 간여했고, 2017년부터 직접선거를 시행하겠다고 약속하고도 후보자는 중국에서 추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맞서 완전 직선제를 요구한 시위가 2014년의 우산혁명이었다. 홍콩 시민들은 이러한 대치 국면에서 중국 정부가 정치범을 제거하는 데 송환법을 악용할 것을 우려하며 반대 시위에 나섰고, 송환법이 철회된 뒤에도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 홍콩 민주화 시위에 한국 5·18단체 등 국내외에서 지지와 연대를 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위를 정치의 문제로 볼 수만은 없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 자본가들은 중국 공산당과 손잡았고, 부동산 개발업자는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이 싼값에 방매한 토지를 사들여 호화 아파트를 지었다. 그 결과 홍콩의 빈부 격차, 주택 문제, 부동산 투기 문제가 심각해진 데다가 청년 실업까지 겹쳤다.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 엘리트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홍콩에서는 송환법이라는 촉매제를 만나 폭발한 것이다. 칠레에서는 지하철 요금 50, 레바논에서는 메신저 앱에 부과된 세금 20센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물파이프 담배값, 인도에서는 양파값이 촉매제가 되었다고 한다. 사회안전망이 무너지고 무한경쟁에 내던져진 청년층에게, 고매한 정치보다도 일상의 폭력과 그를 외면하는 기득권의 위선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들이다. 한국에서도 조국 사태를 둘러싸고, 검찰개혁이라는 민주적 요구에 우선순위를 부여한 구 386세대와 불공정한 입시 제도를 목격하면서 계급적 박탈감을 절감한 20~30대 사이에 현저한 시각 차이가 드러났다. 우리는 말 그대로 일상이 정치가 된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제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도 재점검할 때가 되었다.

우연이지만 필연적이게도 『역사문제연구』 42호의 특집에는 ‘1980년 사북사건-배경, 주체, 지역이라는 주제 아래 사북사건이라는 시위를 새롭게 해석하는 논문들이 수록되었다. 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반 사북팀이 2016년부터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면서 공동연구해온 결과물이다. 김아람은 「1960~70년대 석탄산업 정책과 동원탄좌」에서 정부의 석탄 증산정책에 기대어 동원탄좌가 불법행위를 자행하며 성장한 것이 사북사건의 구조적 배경이었음을 밝혔다. 김아람의 연구가 사북사건의 원인에 대한 정통 역사학적 접근인 데 비해, 문민기는 「탄광사고를 통해 살펴본 사북사건의 배경」에서 사북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탄광에서 함께 일하던 전우 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본 광부들의 감정에 주목했다. 장용경은 「1980 4월의 사북, 광부들의 폭력과 폭력 앞의 광부들」에서 광부들의 노조지부장 부인 린치 사건을 국가 폭력에 대한 항쟁의 일환으로 쉽게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장미현은 「사북사건의 여성들」에서 여성의 사북사건 참여에 주목하면서 그들의 활동이 드러나지 못했던 사회적 맥락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마지막으로 김세림은 「사북사건 이후의 사북」에서 전두환 정권이 지역에 약속한 후생복지가 국가 폭력 및 기업의 일상적 감시와 결합하면서 결국 사북사건 참여자들을 소외시키고 지역공동체를 와해시켰다고 주장하였다. 이 특집논문들은 사북사건을 독재국가 또는 악독기업에 맞선 항쟁으로 제한시키기보다는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해준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각 논문과 논문들 앞에 위치한 사북팀의 취지 설명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저작비평회와 집담회에서도 다양한 주체와 새로운 시각을 모색하려는 시도는 계속된다. 저작비평회에서는 이정희의 『한반도 화교사』를 통해, 1880년대부터 한반도에 살아왔지만 한국인의 뇌리에서 잊혀진 한반도 화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남아시아 화교와 다른 한반도 화교만의 특수성, 한반도 화교 내부의 출신 지역 및 계층에 따른 격차, 한반도 화교와 한국인의 관계를 억압 또는 피억압의 관계로 보려는 공식을 넘을 수 있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대화들이 이어졌다. 집담회에서는 한국 장애사의 현황과 과제를 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집담회는 당장 논문으로 발표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된 당대의 이슈를 다루는 코너였는데, 당초 서평으로 장애사를 다루려던 기획이 집담회로 커지면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게 되었다. 참석자들은 장애사가 기존의 역사서술에서 비가시화된 장애인의 존재를 드러내는 동시에, 장애 또는 장애인이 역사적으로 구성되었음을 밝혀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갖는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는 정상과 비정상,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근대주의적 인식 틀에 문제를 제기하고, 다양하고 중층적인 정체성을 전제로 한 새로운 역사인식, 그리고 우리의 새로운 삶의 태도를 모색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상례화된 가을 태풍과 일상의 무게에도 마다하지 않고 두 기획에 참여해주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역사문제연구』 42호에는 여느 때보다 많은 연구논문이 투고되었다. 그리고 마치 근대사의 비중이 적은 것을 아쉬워한 지난 호의 책머리에에 호응하기라도 한듯이, 근대사 논문의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권기하의 「독립협회의 정치운동 모색 과정에서 의리 관념의 역할」과 이기훈의 「만세 현장의 미디어와 상징체계, 3·1운동의 깃발과 선언서」는 전통적인 관념과 시위 수단이 근대적 운동의 매개가 되어 공존하는 양상을 그렸다. 윤현상은 「1920년대 군산 지역 학교 설립 과정에서의 민족 간 협력과 갈등」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의 관계에 주목한 반면, 장원아는 「근우회와 조선여성해방통일전선」에서 근우회를 일본인에 대항한 민족통일전선으로만 이해하는 민족주의적 서술을 비판하고 여성해방을 위한 통일전선이었음에 주목한다. 식민권력과 토건업계의 통제 및 타협 관계를 다룬 고태우의 「1920년대 말~1930년대 전반 토목담합사건 연구」와 함께, 이들 연구는 다양한 주체들이 상호 길항하는 역동적인 역사상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예진이 「1920~1930년대 조선 배우들의 고용불안정성 인식 및 다각적 생계활동에 관한 연구」에서 배우를 고용불안정 상태에 놓인 생활자로 접근하고, 임유경이 「메이퀸과 페미니즘」에서 메이퀸을 통해 한국의 여대생 표상과 여성 담론의 변화 양상을 추적한 것은 주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서 주목할 만하다. 연구논문들 덕분에 모처럼 역사문제연구 42호에서는 근대사와 현대사의 비중이 균형을 이루었고, 동시에 일정한 문제의식이 전체를 관통하면서 『역사문제연구』만의 색깔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여기 수록된 다양한 코너와 논문들이 독자들과 함께 새 시대를 열어가는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목차

 

 특집: 1980년 사북사건  배경, 주체, 지역

김아람, 「1960~1970년대 석탄산업 정책과 동원탄좌」

문민기, 「탄광사고를 통해 살펴본 사북사건의 배경」

장용경, 「1980 4월의 사북, 광부들의 폭력과 폭력 앞의 광부들」

장미현, 「사북사건의 여성들  사라진 억센 여자들과 말하는 여성들」

김세림, 「사북사건 이후의 사북 - ‘복지라는 외피를 쓴 일상적 감시」

 

 저작비평회

 

한반도 화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정희, 『한반도 화교사  근대의 초석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경제사』, 동아시아, 2018.

사회: 김헌주

논평: 김종호, 박준형, 임광순

 

 연구논문

 

권기하, 「독립협회의 정치운동 모색 과정에서 의리와 관념의 역할」

이기훈, 「만세 현장의 미디어와 상징체계, 31운동의 깃발과 선언서  판결문 자료를 중심으로」

윤현상, 「1920년대 군산 지역 학교 설립 과정에서의 민족 간 협력과 갈등」

장원아, 「근우회와 조선여성해방통일전선」

고태우, 「1920년대 말~1930년대 전반 토목담합사건 연구」

차예진, 「1920~1930년대 조선 배우들의 고용불안정성 인식 및 다각적 생계활동에 관한 연구」

임유경, 「메이퀸과 페미니즘  1960~1970년대 한국의 대학문화와 여성 담론의 변천」

 

 집담회

 

한국 장애사의 현황과 과제

사회: 이정선

참석: 문민기, 박은영, 소현숙, 이순영, 하금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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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돈의 시론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가야사 붐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분석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한다. 원로 고대사학자는 역사가 지역 정치와 개발의 소재로 오용되는 와중에, 학문적 연구와 성찰은 사라지고 이벤트성 행사와 역사상의 왜곡만 남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는 가야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역사가 정치에 종속될 때 역사는 오히려 그 사회적 효용성을 잃게 된다. 그렇다고 역사가 정치와 현실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도 없다. 역사는 끊임없이 현실에 의해 부름받기 때문이다. 역사의 정치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정치에 매몰되지 않는 긴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양한 주체의 자발적 봉기, 혹은 공화국 시민주체의 확립

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을 어떻게 기억했는가?

최근 3·1운동에 대해 진지한 연구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연구들은 크게 두 가지 경향을 가지며, 각각은 현실 정치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함축하고 있다. 일단의 연구자들은 민족적 단일주체의 저항 서사에서 벗어나 다원적 주체와 기억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3·1운동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반면 주체의 다양성이라는 측면보다 공화국과 주권자 시민주체의 형성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연구자들도 있었다. 전자의 입장에서는 촛불항쟁을 기존 정치 범주로 해석할 수 없는 다양성의 도전으로 해석할 것이고, 후자는 공화국의 시민주체와 민주주의의 확립 과정으로 볼 것이다. 실제로 3·1운동 연구에서 이런 차이는 어떻게 드러나며 어떤 문제점과 전망을 가지고 있는가? 『역사비평』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2019년 초부터 연구진을 구성했다. 학술, 대중문화, 공공기억으로 연구 분야를 나누고 학술연구와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연구팀을 만들었으며 공적 행사와 전시 등 공공기억 분야는 개별 연구자에게 연구를 부탁했다. 그 성과를 이번 호와 다음 호에 실을 것이다.

이번호에서는 학술 연구와 특별전을 대상으로 <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을 어떻게 기억했는가>를 살펴보았다. 장원아는 다양한 주체와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최근 연구들을 비교, 평가했다. 그는 3·1운동을 나라 만들기의 출발점으로 해석하는 것의 위험을 지적하면서도, ‘다양한 주체론의 문제점을 비판한다. 명백히 존재하는 집단주체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도식적으로 다양성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성 자체가 새로운 획일화일 수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백승덕은 촛불시위의 스펙터클 속에서 3·1운동을 비폭력, 평화의 운동으로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다. 기존의 사례 연구들을 비교 검토하면서 3·1운동 과정에서 폭력과 평화의 문제를 좀 더 엄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은정은 올해 각각 문학과 역사학계의 대표적인 3·1운동 연구 저작인 『3 1일의 밤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과 『1919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을 집중적으로 비교했다. 이 평화의 꿈을 꾸는 다양한 주체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은 운동의 기획과 실행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다. 방법론과 자료, 이야기 구조의 형성 등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비교를 통해 두 책의 의미를 평가한다. 김민환은 총 44개의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특별전시를 고찰했다. 그는 전시의 구성과 특징을 분석하고 이 특별전들이 대체로 동질적이고 균열없는 민족적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많은 지역 전시들이 중앙 상설전시관 전시물품의 대여에 그치고 있어, 엘리트 중심, 서울 중심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3·1운동의 모습을 시각화할 필요를 제기하고 있다.

 

 

강제동원 판결과 일본의 수출규제, 역사적으로 살펴본 오늘

흔들리는 한일관계, 위기의 기원과 전망

한일관계는 과거의 기억이 국제관계와 현실 정치의 쟁점이 되는 또 다른 전형을 보여준다.이번호에서는 한일관계의 위기를 각각 청구권 문제와 한일 경제분업의 역사 속에서 분석한 두 논문으로 기획을 구성했다. 오타 오사무는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과거사의 문제가 해결 완료되었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다각적으로 분석 비판하면서,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인만은 1960년대 이래 최근까지 한일 경제분업관계의 변화를 분석했다. 그는 2000년대 이래 한일 간에 새로운 균형과 수평적 분업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평가하고, 여기에 입각하여 일본의 대한 수출 규제의 향후를 예측했다.

 

 

삼국통일론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된다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삼국통일을 둘러싼 논쟁은 이번호에서도 계속된다. 지난 호에 신라 삼국통일론의 관점에서 전덕재와 기경량의 논문이 실린 바 있었는데, 이번호에는 그에 대하여 김영하와 윤경진의 반론 논문이 수록되었다. 김영하는 신라와 발해의 남북국 병존의 근거로서 백제통합론이 삼국통일론보다 유효할 수밖에 없다는 본인의 입장을 재차 강조하였다. 윤경진은 전덕재와 기경량의 비판이 실증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통설적 입장에서 기존의 삼국통일론을 옹호한다고 보고, 향후의 논쟁에서는 실증적 논점이 강화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차례

책머리에 · 3·1운동 100주년의 해를 보내며역사와 정치의 긴장 / 이기훈

 

[특집] 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을 어떻게 기억했는가? ①

· 3·1운동 100주년 연구와 현재의 시선민주주의와 다양한 주체들 / 장원아

· ‘비폭력의 스펙터클을 넘어서3·1운동 100주년의 폭력론 / 백승덕

· 3·1운동 100년의 · 바람박찬승과 권보드래의 3·1운동 서사 / 조은정

·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별전의 지형도 / 김민환

 

[시론] · ‘슬픈 가야, 만들어진 가야 / 주보돈

 

[기획 1] 흔들리는 한일관계: 위기의 기원과 전망

· 한일청구권협정 해결 완료론 비판 / 오타 오사무(太田修)

· 한일 경제분업관계의 역사와 대한 수출규제의 의미 / 여인만

 

[기획 2]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④

· 신라의 삼국통일론은 타당한가 / 김영하

· 신라 삼국통일 논쟁의 논점과 방향 / 윤경진

 

[역비논단] · 1960년대 이후 식생활문화의 변동과 삼양-농심 라이벌전 / 이휘현

· 인종주의의 역사와 오늘의 한국 / 박진빈

 

[서평] · 해석에서 해방된 병자호란―『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구범진, 까치, 2019) / 노영구

 

· 탈이념화된 동아시아 세계의 행방―『조선연행사와 조선통신사』(후마 스스무, 성균관대출판부, 2019) / 박상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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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국 사회에서는 현실의 정치가 역사를 광범위하게 동원하고 있다. 역사의 정치성을 부정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 정치의 과정에서, ‘동원된 역사들은 역사를 오용하고 남용하는 전형을 보여준다. 동원된 역사들은 현재에 이어지는 우리의 과거를 민주주의와 번영을 향한 대한민국의 일관된 발전 과정으로 묘사한다. 이렇게 절대적 과거, 부동의 역사를 상상하는 것은 이미 역사학의 영역 밖으로 벗어난 것이다. 우리는 항상 특정한 방식으로 과거를 기억할 수밖에 없고, 기억되지 못한 과거의 단면을 찾아내고 사회적 기억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역사학의 임무 중 하나다. 자신의 방법과 기술만이 과거를 확증할 수 있다는 독선을 실증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실증을 근거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거짓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학문의 기본적 윤리를 저버리는 폭력이다.

 

 

역사적변화와시대구분,그리고역사를기억하는방식에 대하여

1979, 위기와 전환

이번호 특집은 <1979, 위기와 전환>이다. 일부에서는 한국 현대사를 끊임없는 성장의 시대와 문명화의 과정으로 서술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에 그런 성공신화가 있을 리 없다. 1970년대 한국 사회는 정치, 외교, 사회, 문화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었고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박태균은 1979년 박정희 정권의 성장 중심 경제 정책이 심각한 위기 속에서 경제 안정화 종합시책을 통한 전환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그 역사적 의미를 살폈다. 박정희 정권의 위기는 국제적 변화와 국내 정치와 사회적 저항이 교차하는 와중에 더욱 강화되었다. 카터 외교와 한미관계를 다룬 박원곤의 논문,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을 다룬 이상록의 논문을 교차해서 읽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YH노동조합의 신민당사 농성을 다룬 김원의 논문은 여성 노동자의 시각에서 당시를 세심하고 두터운 서술로 재구성하고 있다. 오제연은 1970년대 대학정원의 증가가 일관된 교육 정책의 기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의 압력을 받아 진행되었고, 고등교육의 대중화 또한 혼란스럽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음을 밝혔다.

 

 

삼국통일전쟁인가백제병합전쟁인가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논쟁의 본격화

지난 126호부터 시작된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기획은 3회차를 맞아 네 편의 논문을 실었다. 전덕재는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신라의 주도성이 분명히 존재했고 통일전쟁의 결과 오늘날 한국 민족의 원형이 만들어진 까닭에, ‘백제병합전쟁이나 ‘7세기 중·후반 동북아시아 전쟁보다는 삼국통일(통합)전쟁이 여전히 가장 합리적인 명칭이라고 강조했다. 기경량은 신라인들이 주장한 일통삼한개념에서 삼한7세기 초 수와 당이 고구려를 침공하는 과정에서 창출한 표상으로서의 공간 개념이었는데, 이 가운데 옛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 지역이야말로 삼한개념의 핵심 지역이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전쟁 직후인 7세기 말에 보이는 신라의 일통삼한의식은 백제와 고구려 지역을 아우르는 일통 의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논문은 삼국통일에서 신라의 주도성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관점의 연속선상에 있는 만큼, 다른 입장을 가진 연구자들의 반론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한편 여호규는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 신라 도성의 공간구조 변화를 검토하고, 신라 도성이 당 장안성을 모델로 삼으면서도 통일 이전의 도성 조영 전통을 계승했음을 강조했다. 여호규의 이러한 입장은 중고기 이래 형성되었던 신라 전통의 지배 체제가 삼국통일 이후에 더욱 공고해졌다는 지난호 기획 논문들과 인식상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연식은 의상의 화엄학이 8세기 중반 이후에야 주류적 위상을 차지하고, 선종이 유행하는 9세기 후반 이후에도 그 영향력을 꾸준히 유지했음을 치밀하게 논증했다.

 

 

다시 학문의 영역에서 역사를 논하다

국가정통론의 동원과 역사전쟁의 함정

이번호의 또 다른 기획은 <국가정통론의 동원과 역사전쟁의 함정>이다. 올해 412일에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한국역사연구회 3개 역사연구단체가 합동으로 개최했던 학술회의의 발표문들을 논문으로 다듬었다. 홍석률은 역사 교과서 문제를 중심으로 왜 한국 사회에서 정통론적 역사인식이 주류를 이루는지, 이것이 어떤 식으로 오늘날 역사학의 진전을 막고 있는지 분석했다. 이용기는 대한민국임시정부 법통론의 역사를 21세기 한국 역사학계의 재편과 대한민국 민족주의의 등장이라는 측면에서 추적했다. 임종명은 초기 이승만 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실제로 민주주의적 기반을 파괴하고 있었음을 지적했다. 특히 홍석률과 이용기의 글은 역사전쟁의 와중에 눈 감아왔던 역사학계의 성찰과 자기반성이라는 측면에서 꼼꼼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차례

 

책머리에 · 역사는 역사다역사의 오용을 경계하며 / 이기훈

 

[특집] 1979, 위기와 전환

· 박정희식 경제성장 정책의 종점으로서 경제안정화 종합시책 / 박태균

· 카터의 인권외교와 한미관계충돌, 변형, 조정 / 박원곤

· 1979년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을 통해 본 한국의 인권 문제 / 이상록

· 1979, 그녀들의 선택YH노동조합 신민당사 농성 / 김원

· 1970년대 후반 대학정원 정책의 전환과 고등교육 대중화 / 오제연

 

[기획 1]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려고 하였을까 / 전덕재

· ‘일통삼한 의식과 표상으로서의 삼한’ / 기경량

· 삼국통일 전후 신라 도성의 공간 구조 변화 / 여호규

· 통일신라 시기 화엄학의 성격과 위상의상의 화엄학은 어떻게 통일신라 불교계의 주류가 되었나 / 최연식

 

[기획 2] 국가정통론의 동원과 역사전쟁의 함정

· 역사전쟁을 성찰하며정사(正史정통성(正統性)론의 함정 / 홍석률

· 임정법통론의 신성화와 대한민국 민족주의’ / 이용기

· 건국절 제정론과 비((()역사성19488월 직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성을 중심으로 / 임종명

 

[시론] · 홍콩을 직면하다대중운동의 민주화 요구와 정당정치 / 샹뱌오(项飚)

 

[역비논단] ·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상설·비상설 논쟁 / 임경석

· 18세기 새로운 부()의 인식과 이재론(理財論)이재운의 해동화식전연구 / 안대회

 

[서평] · 착종된 협력의 경계를 찾는 지난한 작업의 이정표―『지배와 협력일본제국주의와 식민지 조선에서의 정치참여(김동명, 역사공간, 2018) / 염복규

· 무역으로 재조명된 16세기 한중관계사의 외교적 레토릭, “예의지국―󰡔16세기 한중무역 연구혼돈의 동아시아, 예의의 나라 조선의 대명무역󰡕(구도영, 태학사, 2018) / 조영헌

· 한국에서 쓰는 영제국의 역사―『제국의 기억, 제국의 유산(이영석, 아카넷, 2019) / 염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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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청산과 동아시아 평화를 위하여

지금 필요한 것은 한일관계 개선이 아닌 재구축

하노이 합의 불발 이후 국내외로 난제들이 부상하는 가운데 한일관계가 문재인 정부 성패의 최대 난관으로 등장했다. 한일관계는 지금 거의 붕괴 직전이다. 과연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남기정 교수는 시론에서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 중 하나로 두 개의 전후로 이어지는 전쟁 상태를 끝내는 일을 꼽았다. ‘두 개의 전후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가 냉전이라는 이름의 전쟁 상태로 이어지고, 한국전쟁의 전후가 정전이라는 이름의 전쟁 상태로 중첩되어 위기를 고조시키는 상태를 말한다. 일본은 이 두 가지 전쟁에 책임이 있는 국가로서, ‘두 개의 전후를 해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나라다.

결국 두 개의 전후를 극복하는 과정은 전쟁 극복과 식민지 극복의 중첩된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남기정은 식민지 문제를 도외시했던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소위 ‘1965년 체제가 이미 한계에 도달했으며, 이를 회복하고 한일관계를 개선하기만을 소극적으로 바라는 일본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속에서 한일관계를 재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한일 사이에 신공동선언 채택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이유는, 다가올 북일 국교 정상화가 한일 1965년 체제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만일 2002년 평양 공동선언에 입각해 북일 수교 교섭이 진행된다면, 북일 사이에서도 1910년 조약의 불법성은 확인되지 못하고 경제협력 방식으로 과거사 문제를 봉합할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일본은 1965년 체제의 복구를 한국에 압박할 근거가 강화된다.”

 

 

 

근대 한국의 공화 담론

왕조와 제국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사고의 탄생과 진화

여름호 특집의 주제는 근대 한국의 공화 담론이다. 2천 년이 넘도록 왕정이 지속된 한국 사회에 공화라는 담론이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렇게 사회 속에 뿌리내린 공화 담론이 이후 어떻게 진화해 나가는지 등이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이다.

이경구는 조선시대 공화(共和) 논의의 정치적 의미에서 공화 개념의 뿌리를 추적했다. republic의 번역어로 채택되기 전, 공화는 중국 고대에 행해진 14년의 공화 통치를 말했다. ‘왕의 부재 대신의 섭정이라는 파격적 정치 시스템은 지속적으로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조선에서는 황경원, 성해응, 정약용 등에 의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논의가 활발했다. 군주정을 보완하는 결정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화에 대한 주장은 새로운 정치 주체인 군중(群衆), 정치 이상인 대동(大同)과 간격을 좁히고 있었다.

이기훈은 3·1운동이라는 격동의 시간 속에서 사회의 비약적 변화를 추적했다. 1919 3월에서 4월 사이 한반도 주민들의 다양한 시간들은 한 방향으로 압축되어 같은 리듬을 가지고 진행되었다.그동안 민족의 역사는 확고부동한 것이 되었고, 민주주의와 민중의 대표성 원리는 정치의 당연한 윤리로 정착했다.

박태균은 조선임시정부의 헌장 초안을 통해서 미군정이 구상한 한국 정부의 형태를 추론했다. 헌장은 미군정이 생각하고 있었던 민주적 정부 수립 방안을 담고 있었다. 핵심은 공화제가 일부 그룹에 의해 독재로 나아가지 않게 합리적인 견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오제연은 1948년 제헌헌법 제정 및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부터 1960 4·19혁명 때까지 한국 사회에서 공화라는 용어, 개념, 담론이 어떻게 이해되고, 또 각 주체들에 의해 어떻게 전유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당대 가장 보편적인 공화 이해는, ‘군주제 배격과 국민주권 지향 그리고 냉전진영론에 입각한 반공주의적 공화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공화의 기본적인 의미는 군주제 배격과 국민주권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정체의 지향이었다. ‘민주주의와 결합한 이러한 공화 이해는 제헌헌법 제정 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또한 공화 자유와 결합하여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다. 황병주는 박정희 체제하에서 헌법 조문과 집권 여당의 당명에 명기될 정도로 거대한 역사적 압력을 지녔던 것이 공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박정희 체제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 전체가 공화에 대해 거대한 무관심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신분제도, 국제관계, 지방제도로 살펴본 신라 삼국통일의 의미

<기획: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은 삼국통일을 전후로 한 나당관계의 추이, 골품제와 관등제의 변화, 지방 제도의 운영 등을 다룬 3편의 논문을 실었다. 김종복은 신라가 임진강 북쪽으로 영토를 개척할 수 있었던 직접적 계기를, 나당전쟁의 승리를 통한 삼국통일의 달성보다 발해의 성립에서 찾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보고 있다. 김창석은 왕경민과 지방민의 차별을 기반으로 한 신라의 왕경민 중심 신분제는 통일 이전부터 운영되었으며 삼국통일 이후에도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음에 주목하였다. 신라의 지방 제도 운영을 분석한 박성현은 삼국통일기에 진행되었던 지방 제도의 개편과 정비가 이미 통일 이전 중고기에 갖추어진 기틀 위에서 성장하고 변화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3편의 논문 모두 신라사의 전개에 있어서 삼국통일이 중대한 변곡점이 되기 어렵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오히려 중고기 이래 형성되었던 신라 전통의 지배체제가 삼국통일을 거치면서 더욱 공고히 갖추어지는 면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차례

책머리에   · 민족자결주의인가, 아니면 대동아공영권인가? / 박태균

시론          · 한일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한일관계 재구축의 필요성, 방법론, 가능성 / 남기정

특별기고   · 운명 앞에 겸허했던 한 여인의 소망이병주의 를 버린 여인에 나타난 인간 박정희 / 임헌영

특집 : 근대 한국의 공화 담론

                · 조선시대 공화(共和) 논의의 정치적 의미 / 이경구

                · 3·1운동과 공화주의중첩, 응축, 비약 / 이기훈

                · 미군정이 만들려고 했던 한국의 공화 체제 / 박태균

                · 이승만 정권기 공화 이해와 정치적 전유 / 오제연

                · 박정희 체제와 공화주의의 행방 / 황병주

기획 :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 7세기의 골품제와 관등제주민의 편적(編籍)과 이주를 중심으로 / 김창석

                · 7~8세기 나당관계의 추이 / 김종복

                · 삼국통일 후 신라의 지방 제도, 얼마나 달라졌나? / 박성현

기획연재 : 근대 우상과 신화의 탄생 

                ·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 다시 보기 / 신주백

역비논단   · 성리학으로 조선시대를 설명하는 연구 경향의 비판적 고찰 / 허태용

                · 정전 후 북한의 사회주의 개조와 민간 상업의 몰락 / 조수룡

                · 서독 정부의 대한 기술원조호만애암/한독고등기술학교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 막스 알텐호펜

서평         · 근대는 죽음을 어떻게 정치화하는가?국가적 죽음의 숭배와 그 너머 / 하상복(『전쟁과 희생』, 강인철, 역사비평사, 2019)

                · 호락논쟁, 조선왕조의 철학 문제 / 계승범(『조선, 철학의 왕국호락논쟁 이야기』, 이경구, 푸른역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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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31운동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일제시기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자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현행 헌법에 명기한 역사적 사건인 만큼, 각계각층에서 일찍부터 다양한 기념행사를 준비했다. 정부 차원에서는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조직해 전체 사업을 총괄했으며,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저마다 31일 또는 그 지역에서 처음 시위가 발생한 날짜를 기하여 일제히 만세시위 재현 행사를 개최했다. 그 모든 시공간에 일반 시민들이 함께 했음은 물론이다. 역사학계를 비롯한 인문사회계열 학회들도 자체적으로 또는 정부, 지자체, 시민단체들과 힘을 합쳐 기념 학술대회를 추진하였고, 연구자들도 집필, 강연, 자문, 실무 등으로 제각각 바쁜 시간을 보냈다. 31절은 지나갔지만 100주년 기념행사는 연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31운동 기념이라는 측면에서 2019년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거족적(擧族的)’ 행동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기념행사에 나선 개개인의 속마음이 모두 똑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라를 사랑하고 순국선열을 추모하려는 마음만으로 움직인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동시에 한편에서는 뉴라이트 진영에서 제기한 건국절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확고한 정통으로 자리매김하는 기회를 만들거나, 새로운 독립운동독립유공자를 발굴해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삼고자 했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대다수 학회의 열악한 재정 형편을 생각건대 31운동 기념 학술대회에 몰린 지원금들이 가뭄의 단비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은 틀림없다. 지금도 그러할진대 100년 전 만세시위에 나섰던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같았을까. 어쩌면 우리가 현재 31운동에서 발견하고 되새길 수 있는 가치들은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많고 다양할지도 모른다. 한국역사연구회가 31운동 100총서에 31운동에 대한 기억과 상식이 만들어진 과정을 검토한 연구들을 포함한 것, 역사 3단체(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한국역사연구회)31운동 기념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정통론으로만 수렴될 것을 우려하며 국가 정통론의 동원과 역사전쟁의 함정학술대회를 개최한 취지도 이와 상통한다. 취지문에 등장한 것처럼, “그 함성은 독립만세라는 하나의 목소리였지만, 또한 저마다의 해방과 인간다운 삶을 열망하는 아우성이기도 했다, “오늘날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들이야말로 31운동의 마땅한 계승자들이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한국사학계가 이러한 가치들을 보듬어나가기 위한 연구들에 눈을 돌려야 마땅할 것이다.

여전히 가야할 길은 멀지만, 이번 역사문제연구41호에 기존의 인식 틀에 의문을 제기하는 다양한 성과들이 수록된 것을 반갑게 생각한다. 먼저 특집 <담론과 주체, ‘80년대를 역사화하기>는 지난 호에 이어 역사학계에서는 아직 생소한 1980년대 연구를 시도한 논문들이다. 특집의 바탕이 된 역사문제연구소 2018년 정기 심포지엄에서는 <1980년대, 혁명과 자본의 시대>라는 주제 아래 8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80년대를 역사의 심문 대상으로 삼아 “80년대를 착취해 오늘의 현실을 정당화하려는 모든 시도에 맞서겠다고 천명한 초대의 글에도 드러나듯이, 독재정권과 민주화운동의 대립을 주축으로 삼는 기존 틀과 다르게 접근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정상 4편의 글만 실렸지만, 혁명의 시대로 기억되는 1980년대를 정치사운동사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당대의 다양한 담론과 실천들에 주목했음을 전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먼저 옥창준은 이론의 종속과 종속의 이론에서 진보학술운동의 전유물로 생각되어온 종속이론이 사실은 제도권 사회과학계에서도 필요에 의해 수용되어, 혁명론보다는 발전론으로 전유되었음을 지적했다. 박치현은 1980년대의 자기기술에서 한국현대사에서 국민시민을 압도하는 핵심적인 정치 주체 개념으로 자리매김한 시기가 1980년대라는 가설 아래, 이 시기 민중’, ‘중산층’, ‘중민’, ‘시민등 사회를 지칭한 여러 호칭들 간의 상호 관계를 추적하였다. 이봉규의 1980년대 경영담론의 변화와 새로운한국사회는 운동을 중심으로 1980년대를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를 제기한다. 1980년대는 자본의 성장이 두드러진 시기이기도 했으며, 노사협조주의를 도입한 경영 담론이 87년 이후 노동운동의 약화를 가져온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이한빛은 노동운동 시대의 탄광 재현에서 1980년 사북사건이 노동운동으로 의미화되면서, 다양한 주체들이 자신의 기대를 담아 그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을 생산했음을 밝혔다. 이러한 글들이 나오게 된 경위와 기획의도에 대해서는 특집 앞의 소개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오랜만에 수록된 집담회 코너에서도 고민은 이어진다. 집담회는 당장 논문으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사회 현안에 대한 역사연구자들의 젊은시각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한 지면으로서, 41호에는 한국근현대사는 대중 속에서 어떻게 서식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역사 대중화에 대한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나누었다. 이야기는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이 되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보편화되면서 한국사 시장이 활성화되는 한편 한국사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 증가하는 상황이지만, 학계가 그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는가에서 시작되었다. 주로 개설서를 통해 대중과 만나온 학계의 방식은 영화팟캐스트유튜브 등 다양한 시청각 매체에 친숙한 세대에게 다가가기 어려울 뿐 아니라, 한국근현대사 개설서에서 기존의 거대서사를 반복재생산한다는 데 비판의 초점이 모였다. 연구 성과를 골방의 자기위안으로 사장시키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어려운 문제에 지혜를 모으기 위해, 연구자, 교사, 출판사 편집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주셨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역사문제연구의 간판 기획인 저작비평회에서는 송은영의 서울 탄생기(푸른역사, 2018)를 링 위에 올렸다. 말 그대로 장안의 화제를 몰고 온 이 책은 학술적 대중서에 대한 일반의 수요를 여실히 증명함으로써, 역사 대중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저작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서울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지나온 1960~70년대의 갖가지 상황들을 당대인의 다양한 기억과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들이 생생하게 추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아울러 문학과 역사학이라는 정형화된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방법론을 구사한 덕분에, 사실과 재현 사이의 긴장, 그 속에서 연구자(서술자)의 위치에 관한 깊이 있는 고민을 나눴다. 역사쓰기가 단순히 사실을 나열하는 작업이 아니라 역사가의 사관을 토대로 사실을 재현하는 작업이라고 한다면, 역사학이라는 분과학문에 속한 사람들도 곱씹어봐야 할 문제이다.

연구논문으로는 5편의 글이 실렸다. 황성신문사의 성립과 신문사 초기 구성원의 결집 양상(문일웅), 국사와 동양학 사이의 좁은 틈(정준영), 한국전쟁 직전 조선인민군의 인적 구성과 북한의 통일전선 재편(김선호), 학교의 문턱, 의무교육제도의 도입과 장애아교육(소현숙), 밑으로부터의 냉전’, 그 연쇄와 환류(허은), 5편은 유난히 심사 탈락 논문이 많았던 이번 호에서도 엄정한 심사를 거쳐 수록된 논문들이다. 역사문제연구만의 색채는 편집위원회가 주관하는 특집기획, 저작비평회, 집담회 등을 관통하지만, 미리 투고를 예측할 수 없는 일반 연구논문이 다시금 그 빛깔을 다채롭게 만들어주기에 늘 기대가 되고 감사할 따름이다.

최근 지속된 경향이긴 했지만 역사문제연구41호는 한국현대사 특집호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해방 이후를 다룬 글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1960~80년대에 집중된 것은 한국사학계에서도 연구의 대상 시기를 최근에 가깝게 내려오려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편집위원장이 한국근대사 전공자라서 생긴 사심이기도 하지만, 역사문제연구가 다양성과 균형을 추구한다면 근대사의 비중이 적은 것이 아쉽기는 하다. 강호제현의 많은 관심과 투고를 부탁드리며, 수준 높고 충실한 기획과 심사로 보답할 것을 약속한다. (이정선)

 

목차

 

특집: 담론과 주체, ‘80년대를 역사화하기

옥창준, 이론의 종속과 종속의 이론 1970년대 중반~1980년대 한국 사회과학 학계와 종속이론

박치현, 1980년대의 자기기술 - 민중, 중산층, 중민, 시민

이봉규, 1980년대 경영 담론의 변화와 새로운한국사회

이한빛, 노동운동 시대의 탄광 재현 - ‘사북사건이후 탄광소설을 중심으로

 

저작비평회

문학으로 역사쓰기 현대도시 서울의 공간과 사람들

송은영, 󰡔서울 탄생기 1960~1970년대 문학으로 본 현대도시 서울의 사회사󰡕, 푸른역사, 2018.

 

연구논문

문일웅, 황성신문사의 성립과 신문사 초기 구성원의 결집 양상

정준영, 국사와 동양학 사이의 좁은 틈 -경성제국대학과 식민지의 동양문화연구

김선호, 한국전쟁 직전 조선인민군의 인적 구성과 북한의 통일전선 재편

소현숙, 학교의 문턱, 의무교육제도의 도입과 장애아교육 - 해방직후1960년대를 중심으로

허 은, 밑으로부터의 냉전’, 그 연쇄와 환류 - 19571963년 미국의 동아시아 냉전 전략 전환과 한국 군부의 대민활동(civic action)’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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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것인가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2019년 봄호의 특집은 한국사에서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는 연구들로 구성했다신라의 삼국통일이 당시 사람들의 인식 속에 존재했던 것인가아니면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상당 기간이 지난 어느 시기 이래로의 역사인식에서 생성된 것인가한국사 속에서 삼국통일의 역사적 위치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와 연결되는 문제이다나아가 이른바 삼국통일전쟁은 동아시아사적인 관점에서 7세기 중·후반 동북아시아전쟁이라는 개념으로 확장시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와전쟁 그 자체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낸 기원적 근거가 아니라 동아시아 각지에서 진행되었던 사회 변화의 결과물이자 사회 변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견해 역시 일국사적 관점에 치우쳐 삼국통일의 의미를 찾아보려 했던 기존의 연구 경향에 신선한 반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이번 봄호에서 시작한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역사적 의미를 되돌아보는 본 특집은 2019년 가을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일상의 근대에 대한 다양한 접근의 시도

근대 동아시아의 도시위생 실천

지금까지 근대와 관련해서는 산업화 이슈에 주목하는 연구가 중심이 되었고베네딕트 앤더슨 이후 출판과 정체성에 대한 문제가 근대화의 또 다른 이슈로 등장하기도 했다그런데 최근에는 사람들의 생활에 보다 초점을 맞추는 연구들이 나오기 시작했고그중 하나가 위생보건의료 문제이다. 원래 이 기획은 근대 도시의 위생 문제를 아시아 차원에서 비교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다양한 도시들을 비교할 만큼 다양한 연구가 없는 상황에서 주로 식민지 시기 동아시아의 위생 문제를 연구하는 기획으로 축소되었다이번 기획을 계기로 근대의 문제에 대한 보다 다양한 접근이 이루어졌으면 한다아울러 그동안 역사비평에서 일제강점기와 근대의 문제에 대해 많이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이번 기획이 앞으로 역사비평의 한국 근대에 대한 연구가 다시 시작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북한러시아몽골베트남의 체제 전환 이후를 들여다보다

포스트사회주의 국가와 자본가의 탄생 

지난호에 이어 이번 호에도 구 사회주의권 국가에서 자유화 이후 등장한 자본가들에 대한 분석이 연속기획의 마지막으로 게재되었다자유화가 된 국가들에서 자본가들이 등장하는 과정에는 불공정한 커넥션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하지만각 국가마다 서로 다른 과정을 거쳐 새로운 성격의 자본가들이 등장했다. 이는 앞으로 북한이 변화해 나갈 과정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새로운 현상들에 대한 사회적인 치료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새로운 위기를 맞이할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적 차원의 자본주의화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를 만들어 나갈지 또 다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천정환의 문화비평우리 사회 가족자유주의를 묻는다

드라마 <스카이캐슬>과 신재민 사건에 나타난 학벌·계급·가족

최근 큰 반향을 일으켰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이번 호 문화비평의 소재가 되었다. ‘스카이캐슬은 그 실재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기형적인 교육열을 적나라하게 반영해서 보여줌으로써 큰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문화비평은 이 문제를 한국 사회 특유의 가족주의와 연초에 공익제보 논쟁을 일으킨 전 기획재정부 관료의 문제와도 연결시켰다이를 통해 저자는 계급세대가족의 문제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문화정치의 맥락을 읽으려 했다이제 전에 없던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여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를 쥔 386세대와 여러 면에서 충돌 또는 협상하고 있다는 점에서이번 호문화비평이 앞으로의 문화 현상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고 보인다.

 

작가 최인훈 인터뷰, 『광장』을 낳은 4·19의 시대정신

무엇을 쓰는지의미를 알지 못했다쓰고 싶었을 뿐이다

정병준은 최근 세상을 뜨신 『광장』의 저자 최인훈을 마지막으로 인터뷰했고그 인터뷰를 정리하여 해제와 함께 역사비평에 보내주었다광장은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준 글이다그러나 이 글이 특별한 자료조사 없이 당시 보도된 신문 자료를 통해 창조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특히 광장을 집필할 당시 최인훈은 군 복무 중이었고이로 인해 최초 집필 이후 광장은 몇 차례에 걸쳐 개고가 이루어졌다는 사실 역시 이 인터뷰를 통해 밝혀졌다정병준은 아울러 자세하고 친절한 해제를 통해 중립국으로 간 포로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이 어떤 방식으로 확산되었는가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었다.

 

 

차례

책머리에 · 꿈은 이루어진다 박태균

특집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 신라의 영토의식과 삼한일통의식 윤경진

· 7세기 중·후반 동북아시아의 전쟁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 이재환

·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무엇을 바꾸었나? / 이정빈

대담 최인훈 인터뷰

· 최인훈의 『광장』과 중립국행 76인의 포로 정병준

· 『광장』과 4·19의 연관성무엇을 쓰는지의미를 알지 못했다쓰고 싶었을 뿐이다” / 정병준·최인훈

기획 포스트사회주의 국가와 자본가의 탄생

· 북한 경제의 변화시장, ‘돈주’, 그리고 국가의 재등장 정영철

· 체제 이행 이후 러시아 상위 자본가 집단의 성격 김동혁

· 체제 전환기 몽골의 경제와 계층 변동 박정후

· 베트남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전과 지대추구에 관한 연구 최호림

기획 근대 동아시아의 도시위생 실천

· 위생에서 청결로서울의 근대적 분뇨 처리 박윤재

· 차별인가 한계인가?식민지 시기 경성 하수도 정비의 좌절’ / 염복규

· 위생이냐이윤이냐근대 상하이 도시위생과 상수도 조정은

역비논단 · 냉전 시기 중국 핵개발 사례를 통해 본 북핵 문제의 현재와 미래 주재우·박태균

· 4이후 김시종의 재일에 관한 재구성 윤여일

· 역사와 기억건국연도와 연호그 정치적 함의 도진순

문화비평 · 드라마 <스카이캐슬>과 신재민 사건에 나타난 학벌·계급·가족 천정환

서평 · 인민국가와 계급국가의 시점과 전환점―『북한 체제의 기원인민 위의 계급계급 위의 국가』(김재웅역사비평사, 2018) / 김선호

· 제국과 식민 사상의 차이와 패배한 최남선―『육당 최남선과 식민지의 민족사상』(윤영실아연출판부, 2018) / 류시현

· 한반도 화교사 연구의 집대성과 문제의식의 격원(隔遠)―『한반도 화교사근대의 초석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경제사』(이정희동아시아, 2018) / 김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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