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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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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2016년 여름호(115호)가 나왔습니다.

 

<<역사비평>>은 1. 역사문제연구소의 후원회원이 되어 받아보시거나 2. 역사비평사에서 정기구독을 신청하시거나 3. 시중의 서점을 통해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연구소에서는 1과 2를 추천해드립니다. :)

 



 

‘도시’로 읽는 1949년 이후의 중국
― 개혁개방 이후, 변화하는 중국의 오늘을 확인한다


    『역사비평』 이번호 특집은 중국 도시화에 대한 연구이다. 중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실제 중국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연구가 진지하게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다. 중국의 주가지수, 경제성장률, 대북정책 같은 것들만 관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2016년 현재 14억의 중국 전체 인구 중 50%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다. 개혁기 초기인 1980년에는 중국 전체 인구 10억 인구 중 단지 2억 명만이 도시에 살고 있었다. 36년 만에 도시화율이 30% 이상 증가한 것이다. 급속한 도시화율의 증가는 ‘시장(市場)’의 확산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마오쩌둥 시대의 계급투쟁 및 계획경제와 결별을 선언하고 경제발전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삼은 개혁기 중국은 재화와 서비스를 분배하는 핵심기제로서 시장을 도입했고, 1990년대에 급속하게 확산된 시장은 중국의 사회와 경제의 거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이러한 변화가 가장 압축적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중국의 도시공간이다.

    이번 계간 역사비평의 중국 도시 기획은 ‘도시’를 키워드로 중국의 정치, 사회, 경제를 탐구하려고 한다. 이 기획은, 시민권, 이민도시, 주택, 토지, 성중촌(城中村), 철거 등 개혁기의 도시문제만이 아니라, 접관(接管), 노동자거주지, 도농이원구조, 삼선건설, 국유기업 등 사회주의 시기의 도시문제까지, 건국 이후 현재까지 중국 사회와 경제의 역동적 변화를 담고 있는 문제들로 구성된다. ‘도시로 이해하는 1949년 이후의 중국’은 기존의 당, 국가, 사상, 정치운동, 계급 등에 의한 기존의 분석들이 조명하지 못한 1949년 이후 중국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자 한다. ‘도시’는 나날이 존재감이 커져만 가는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매우 유효한 키워드이다.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 ① 정조시대의 다학문적 접근
―정조와 19세기, 연속과 단절을 생각하다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는 조선 후기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최근 영화 <사도>를 비롯하여 드라마와 영화에서 18세기는 중요한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18세기에 대한 한국 사학계와 일반인들의 시각은 너무 고정적이다. 이 시기는 문화적 중흥기로 규정되면서 조선시대 정체성론을 반박하는 근거가 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18세기의 융성이 왜 갑자기 19세기의 세도정치와 망국으로 이어지는가라는 질문은 제대로 물어지지 못했다는 것이 이 기획의 문제의식이다. 본 기획에서는 총 3회에 걸쳐 9편의 논문을 게재할 예정이다. 매회 또한 소주제를 잡았다. 소주제는 ‘① 정조시대의 다학문적 접근, ② 정조와 세도정치, ③ 세도정치기의 이질적 시공간’이다. 매회의 제목은 ‘정조시대를 당대의 맥락을 중시하며 바라보고, 정조와 세도정치 사이의 연속과 단절을 고민하며, 18세기의 구심력이 약화되고 새로운 원심력이 작용하는 19세기를 다루어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번호에 실린 첫 번째 논문은 정조 대 정치사 연구에 대한 비평적 고찰이다. 최근 문학계를 중심으로 정조의 인간적 면모를 중시하며 지나친 구조화에 반발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탈구조의 입장에 선 연구들은 정조가 처했던 복잡다단한 맥락을 개인 영역으로 축소하거나 파편화시키는 등의 문제가 있다. 그 점에서 필자는 정조의 고민과 정책 등을 왕조체제를 떠받쳐온 주자학과 온건한 통합 노선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실상임을 강조하였다.

    두 번째 논문은 정조의 자연관과 공존 논리에 대한 연구이다. 정조시대는 유교-성리학의 계승과 이탈이 나타난 시기였음은 많이 지적된 바였다. 그러나 그 중층성에 대한 지적에 그치지 않고 ‘생명 존중과 공존의 정신’으로 환기하자는 것이 이 논문의 의도이다. 정조 해석에 과도하게 투영된 현재성을 보여줄 수도 있고, 아니면 전근대 사상 안에서 탈근대의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위의 비평적 고찰과도 사뭇 다른 지점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세 번째는 과학(천문학)을 통해 본 정조시대 학문의 성격이다. 정조시대는 국가 천문학의 전성기라 부를 만했다. 그렇지만 마냥 근대적인 것은 아니다. 길흉을 택일하는 전통 사유의 성격이 굳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점 역시 당대 맥락을 좀 더 온전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던진다. 한편 19세기에도 천문학의 성과가 유지되는 듯하다. 필자는 조심스럽게 국가 차원이나 개인의 교양지식 모두 연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점은 유심히 볼 대목이다.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 ②
―우리 안의 타율성론을 되돌아보다

    지난 『역사비평』 여름호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낳았던 기획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의 두 번째 회차이다. 고대 자료들을 이용한 엄밀한 실증과 학술적 접근을 바탕으로 임나일본부와 한사군의 정체를 구명하는 두 편의 논문은, ‘고대사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의 모델을 보여준다. 자료는 계속 더 발굴될 것이고, 학술적 접근의 방식과 내용은 좀 더 고도화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번호에 실린 논문들의 주장 역시 반박될 수 있겠지만, 무엇을 ‘학문’이라 부르고 무엇을 ‘사이비’라 부를 것인지는 도출된 결론의 ‘정답’ 여부가 아니라 치열하고 엄밀한 연구자의 태도에 따를 것이다. 한편 이번호 고대사 기획의 머릿글에 해당하는 논문 「식민주의 역사학과 ‘우리’ 안의 타율성론」에서는, 다양한 담론의 수용자로서 일반시민들의 머릿속 ‘판타지’와 그 속에 깃든 식민주의,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을 차분하게 성찰하고 있다. 단순히 ‘고대사’ 담론을 넘어서 건강한 21세기 시민의식과 학술적 접근태도 그 자체에 대한 젊은 역사학자들의 용감한 문제제기에 지지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차    

 

책머리에

    20대 국회에 바란다 / 박태균

특집 도시로 읽는 1949년 이후의 중국 ①
    개혁기 위계적 시민권과 중국식 도시사회의 부상 / 박철현
    중국의 급속한 도시화―이중도시, 이민도시로서 선전의 도시발전 / 윤종석
    개혁기 중국의 도시화 경험 / 박인성

기획1: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 ① 정조시대의 다학문적 접근
    총론: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 / 이경구
    조선 후기 정치의 맥락에서 탕평군주 정조 읽기 / 최성환
    정조의 자연·만물관과 공존의 정치 / 박경남
    정조시대 다시보기―천문학사의 관점에서 / 전용훈

연속기획: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 ②
    식민주의 역사학과 ‘우리’ 안의 타율성론 / 강진원
    ‘임나일본부’ 연구와 식민주의 역사관 / 신가영
    한사군, 과연 난하 유역에 있었을까? / 이정빈

기획2: 주변에서 바라본 해방
    오키나와 민주주의의 원형―폐허로부터의 출발 / 모리 요시오
    해방 70년, 한국화교에 대한 이해 / 왕언메이

역비논단

    일기로 구성한 일제 말 전시체제하의 일상 / 김민철
    1959년 이승만 정부의 대일통상중단조치와 미국 / 신재준
    1950년대와 1960년대 전반기 노동운동의 좌절과 도전 / 임송자

서평

    사림파, 사림 네트워크, 사림운동 / 계승범

    (윤인숙, 『조선 전기의 사림과 <소학>』, 2016)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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