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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모임 차별과 폭력을 넘어서 1. 섹슈얼리티

두번째 모임(2015.6.12) 후기

 

영화<밀크>와 성소수자의 삶

 

  김 동 주 

 

 

 

 

    올해로 16회를 맞는 퀴어문화축제가 69일부터 15일까지 서울에서 열렸다. 퀴어문화축제는 매년 6월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개최해온 축제로서, 올해의 축제 슬로건은 사회적 억압에 당당하게 저항하자는 의미에서 사랑하라, 저항하라, 퀴어레볼루션으로 정했다고 한다. 이 축제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개막식을 시작으로 15일까지 퀴어파티, 종합성병검사, 그리고 퀴어영화제 등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들을 치렀다. 그러나 이 축제는 시작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순탄치 못한 길을 걸어오고 있다. 개막하기도 전부터 해당 축제를 거부하는 인터넷 서명이 웹상을 달구는 가운데, 개막식이 열렸던 9일에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 회원들을 포함한 약 2000여명의 사람들이 축제반대집회를 열었다.

 

    나는 동성애자다. 그런 나에게 동성애라는 주제는 사실 아는 바도 거의 없고,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불편하다. 아무리 머리로 동성애자 차별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해도, 무지개 깃발을 내건 포스트에 좋아요를 누른다 해도, 나에게 동성애와 관련된 이야기는 불편한 긴장을 준다. 이 불편한 긴장감은 겉으로 동성애 차별에는 반대하면서 정작 내 주변 일로 닥쳐왔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기모순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나에게 동성애는 나와 상관없는 타자의 문제이자, 사실상 자유주의적 차원에서 지지하는 차별금지법 도입 문제였다.

 

    동성애에 관한 화제가 나올 때마다 나는 자기모순을 숨기기 위해 (고민 많은 척하는 표정으로) 한걸음 비켜선 채 살아왔다. 그런 나에게 영화<밀크>는 쉽지 않은 영화였다. 이 영화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싸웠던 하비 밀크(Harvey Milk)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풍의 작품이다. 영화는 하비 밀크가 40세 생일을 맞이한 1970년 어느 날로 부터 시작한다. 그는 게이로서, 40년간 본인의 삶에 솔직하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한다. 이를 계기로 애인 스콧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기로 한 하비 밀크는 카스트로에 정착해 새 가게를 차리고 솔직한 자기 삶을 찾는다. 이런 그가 마주하게 된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한 사회적 편견과 공공연한 폭력은, 그로 하여금 게이 인권운동을 시작하게 만든다. 3번의 실패 끝에 시의원에 당선된 밀크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당시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던 동성애 차별에 맞서 싸우고, 더 나아가 동성애차별금지 조례를 통과시킨다.

 

    영화<밀크>에서 본격적인 갈등들이 시작될 무렵, 여느 때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관람하고 있던 나는 밀크에게 SOS요청을 보내는 한 소년의 다급한 전화통화 장면을 보고 앉음새를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동성애자인 그 소년은 부모님이 본인을 정신병원에 보내려고 한다는 내용을 전하면서, 이제 자기는 자살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깜짝 놀란 하비 밀크는 그 소년에게 당장이라도 자기에게 오라고, 지켜주겠노라고 하지만 그 소년의 대답은 저는 갈 수 없어요.’였다. 그 소년은 걸을 수 없는 장애인이었던 것이다. 휠체어를 탄 소년의 표정에는 벼랑 끝에선 자의 두려움이 가득하고 수화기를 붙잡고 있는 손은 죽음의 절박함으로 떨린다. 화면이 페이드 아웃되어감과 동시에 점차 커지는 그 소년의 부모님 발자국 소리는 정말 끔찍했다. 동성애에 대한 오해와 차별이 그 소년의 삶을 세상 끝까지 몰아세우는 장면은 나조차 그 게이 소년과 함께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그 충격은 나에게 어느 한 사회적 차별문제였던 동성애 차별문제를 한 소년의 목숨이 걸린 문제로 만들었다.

 

    이러한 장면들은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싸움이 하비 밀크 한 사람의 일대기적 투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휠체어 소년을 비롯한 수많은 성적소수자들의 목숨, 내지는 총체적 삶이 걸린 대투쟁임을 보여준다. 그렇다. 동성애에 대한 차별은 당사자들에게 총체적 삶의 문제다. 최근 한국 사회 일반이 성적소수자에 대해 인식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동성애자 차별을 반대하는 비동성애자의 대다수는 자기들끼리 좋다는데 뭐가 문제냐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상당수의 비동성애자들은 (동성애자에 우호적이든, 비우호적이든) 동성애를 놓고 벌어지는 문제가 개인적인 것, 가령 취향의 문제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총체적 삶의 문제는 단순히 동성애들의 성적지향을 둘러싼 사적 영역뿐만 아니라,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공적인 영역까지 걸쳐있는 문제다.

 

    밀크는 학교 선생님들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쫓겨나는 것에 반기를 들고, 더 나아가 동성애자들의 시민적 권리 쟁취를 위해 싸운다. 물론 시민으로서 마땅히 쥐어야할 권리를 외치는 것은 1차적으로 현대국가에서 선택될 수 있는 소수자의 투쟁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1970년대의 미국, 그리고 2015년의 대한민국은 당연한 시민권이 (전략적으로 채택되기 이전에) 너무나도 절박한 사안이다. 동성애자들이 한국 사회의 공적 영역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현실은 나를 포함한 비동성애자들이 일상에서 좀처럼 성적소수자를 만나기 힘들다는 점이 방증해주고 있다. 비동성애자들의 규범은 그들이 공공영역에서 눈에 띠지 않게행동하기를,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이성애자처럼행동하기를 요구한다. 결국 공적 영역에서의 억압이 해소되지 않는 다면 동성애자들에 대한 취향존중은 성적소수자들을 집안에, 그리고 더 깊은 벽장 안에 가두는 폭력 이상이 될 수 없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한국의 성적소수자 운동은 차별문제를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문제로 끌고 왔다. 성과는 거의 전무하지만,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을 비롯한 몇몇 제도적 변화 움직임도 감지된다. 그러나 총체적 삶을 위한 투쟁은 단지 차별을 금지하는 법규를 만든다고 해서한순간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결국 성소수자 차별철폐는 이 사회 구성원들의 충실한 고민이 축적되어야 가능하다. 동성애자와 비동성애자 사이에는 아주 작은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아주 작기 때문에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 분명한 차이 역시 존재한다. 서로간의 진정한 이해는 나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인식하는 곳에서 출발한다. 곧 다가올 628일은 퀴어문화축제의 피날레인 퍼레이드가 있을 예정이다. 많은 비동성애자들은 불편한 차이를 마주하게 될 예정이다. 한 발짝 떨어져 괜찮은 척했던 나는 이 기회를 빌어 더 불편해할 예정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당연한 삶을 위하여 벽장에서 거리로 뛰쳐나온 성소수자 시민들을 더 크게 환영할 예정이다.

 

 


 

 

6월 28일 퀴어문화축제의 피날레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퍼레이드는 28일(일) 오전 11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를 참고 바랍니다.

http://www.kqcf.org/

 

 

 

 

다음 모임은 7월 10일(금)입니다.

기오껭겜의 『동성애 욕망』(중원문화, 2013)을 읽고 1970년대 유럽 성해방운동의 배경이란 주제로 이야기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자세한 공지사항은 다음글을 참고해주세요.

http://kistoryblog.tistory.com/124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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