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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블로그는 사단법인 역사문제연구소의 블로그입니다.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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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2017년 봄호(118호)가 나왔습니다.

 

<<역사비평>>은 1. 역사문제연구소의 후원회원이 되어 받아보시거나 2. 역사비평사에서 정기구독을 신청하시거나 3. 시중의 서점을 통해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연구소에서는 1과 2를 추천해드립니다. :)





가짜 역사를 담은 가짜 역사서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러시아, 일본, 그리고 한국의 위사(僞史)와 위서(僞書)


이번호 특집은 <위사(僞史)와 위서(僞書)>이다. 지난 20161년 동안 계속된 고대사 기획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다른 시각으로 자료담론의 문제를 바라보고자 했다. 한국의 고대사 관련 논란에 근거로 사용되고 있는 거짓으로 만들어진 사료들뿐만 아니라 일본과 러시아에서도 나타나는 비슷한 류의 사료들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러한 사료들이 거짓 역사를 만들어내는 데 어떠한 역할을 했으며, 거짓 역사는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방식을 분석하였다. 가짜 고대사를 만들어낸 가짜 역사’, ‘가짜 역사서는 고대사의 과제만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진 근대이후의 담론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 이번 특집의 공통적인 문제의식이다. 마침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한 오늘날, ‘가짜를 읽어내는 눈은 텍스트 그 너머, ‘가짜를 만들어낸 욕망과 이유를 향해야 한다는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박정희 신화는 어디까지인가

과학대통령 박정희라는 신화


이번호부터 3회에 걸쳐 진행될 연속기획 <‘과학대통령 박정희라는 신화>는 김근배, 최형섭·임재윤의 글 두 편으로 문을 열었다. 박근혜 정부가 초래한 국정 혼란에 대해 국민들이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현 상황은,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라고 흔히 여겨오던 성과들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재평가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정치·경제·사회 등의 영역에서 박정희 신화를 해체하고 새로운 역사 쓰기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데 비해, 박정희 시대의 과학기술에 대한 재평가는 잠잠한 편이다. 역사비평은 이렇게 박정희 신화에서 과학기술이 최후의 성역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박정희 시대의 과학기술계에 실제로 어떤 일들이, 왜 일어났는가? 박정희라는 이름에 가려진, 실제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여한 이들은 누가 있었는가? 박정희 시대에 이야기되었던 과학기술 진흥이 실제로 의미한 것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가 오늘날

까지 한국 현대 과학기술의 아버지인 양 이야기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박정희 시대 과학기술에 대한 총론적 성격의 글 두 편을 시작으로, 여름호와 가을호에서는 과학기술계와 사회 일반의 움직임을 다룬 각론과 아울러, 당대와 오늘날 과학기술인들을 지배했던 과학기술 개발 담론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가 실릴 것이다.

 

 

급변하는 북중관계, 한중관계 대중의 프리즘으로 들여다보기

대중문화로 보는 중국의 남북한 인식


한국은 항상 북중관계의 동향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망사항을 현실화하는 현상(wishful thinking)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 중국의 대중매체는 북한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북한을 여행한 관광객들은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중국 시민사회는 남한과 북한에 대해 어떤 토론을 벌이고 있는지 등이 주요 분석 대상이 되었다. 중국공산당의 통제를 받는 관제 언론의 공식화된 입장이 아니라, 중국의 일반 대중들이 바라는 것, 원하는 것, 남북한의 이미지에 투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이를 통해 한국의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맞추어 고찰되곤 했던 북중관계가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는가를 추적하고자 했다. 이러한 접근은 북중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과 북한의 한국전쟁 당시 사상·심리전 양상과 사회과학의 현장

냉전의 사상·심리전, 한국전쟁을 만나다


<냉전의 사상·심리전, 한국전쟁을 만나다>는 주로 텍스트를 통해 반공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기획되었는가를 분석했다.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이 만든 텍스트들이 공산주의와 북한을 묘사하고 있는 방식, 전쟁을 전후한 시기 만화 속에 나타난 반공의 내용, 북한군이 점령했던 서울의 모습을 묘사한 글들이 미국에서 이용된 방식 등이 주요한 주제들이다. 여기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귀환포로 재교육장에 대한 분석이 더해졌다. 또한 한국전쟁이라는 현장을 희귀한 실험실로 삼아 수집된 사회과학 지식들이 어떤 식으로 미국의 학문 영역에서 정식화되었는지 살펴보는 한편, 그러한 학문적 행위가 전쟁 공간의 정치·선전 과제와 어떤 길항관계를 만들어 나갔는지 추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차례

 

책머리에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끝, 그리고 그 너머 / 박태균


특집: 위사(僞史)와 위서(僞書)

고대사파동과 식민주의 사학의 망령 / 조인성

환단고기의 성립 배경과 기원 / 이문영

벨레스서로 본 러시아의 위서와 21세기 유라시아 역사분쟁 / 강인욱

위서 비판에서 위서 연구로일본 위서의 검토 및 한국 위서와의 비교 / 김시덕

위서(僞書)를 말하다 / 박지현


연속기획: “과학대통령 박정희라는 신화

박정희 정부 시기 과학기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과학대통령 담론을 넘어서 / 김근배

최형섭과 한국형 발전모델의 기원 / 임재윤·최형섭


기획 1: 대중문화로 보는 중국의 남북한 인식

중국의 TV시사토론 속의 한국과 북한 / 백지운

중국 영화와 드라마의 '항미원조' 기억과 재현 / 김란

신비의 나라중국인의 북한 관광과 노스탤지어 / 주윤정


기획 2: 냉전의 사상·심리전, 한국전쟁을 만나다

냉전의 사회과학과 실험장으로서 한국전쟁미공군 심리전 프로젝트의 미국인 사회과학자들 / 김일환·정준영

사상심리전의 텍스트로서 한국전쟁자유세계로의 확산과 동아시아적 귀환 / 옥창준·김민환

전쟁 속의 만화, 만화 속의 냉전한국전쟁기 만화와 심리전 / 백정숙

수용소에 갇힌 귀환용사지옥도용초도의 귀환군 집결소와 사상심리전 / 전갑생


역비논단 

잊혀진 자들의 투쟁한국 성판매여성들의 저항의 역사 / 박정미


문화비평 

누가 촛불을 들고 어떻게 싸웠나2016/17년 촛불항쟁의 문화정치와 비폭력·평화의 문제 / 천정환


서평 

표지의 발견과 이미지의 생태학―『시대의 얼굴: 잡지 표지로 보는 근대(서유리, 소명출판, 2016)/ 박진영

서울의 역사로 순치된 식민지 근대 도시계획사의 불편한 진실―『서울의 기원 경성의 탄생 : 1910~1945 도시계획으로 본 경성의 역사(염복규, 이데아, 2016) / 김백영

유령을 통한 모더니즘의 해체―『베트남 전쟁의 유령들(권헌익 지음, 박충환·이창호·홍석준 옮김, 산지니, 2016) / 박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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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경험과 마이너리티 - 동아시아 민중사의 새로운 모색 ->


한국의 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반과 일본의 아시아민중사연구회가 함께 내놓은 책으로, 일본어판은 <日韓民衆史研究の最前線 -新しい民衆史を求めて>라는 제목으로 먼저 간행되었습니다. 기다림 끝에 한국판이 간행되어 소식을 전합니다. 





한일 공동연구로 밝혀지는 동아시아의 민중사


이 책은 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연구반과 일본의 아시아민중사연구회가 25년에 걸쳐 연구교류를 하면서 내놓은 첫 번째 단행본으로, 한일 양측의 연구와 소통의 산물이다. 그간 공동워크숍에서 발표하고 토론했던 논의를 줄기로 삼아 편집하였으며, 그간의 교류에서 표출되고 수렴된 양측의 민중사 인식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민중사 연구 동향과 방법론적 고민, 민중의 다층성과 그 의미, 민중과 마이너리티라는 주제로 나누어 총 3부로 구성했다. 각 부별 논문들 간에 서로 다른 문제의식이나 시각이 드러나기도 한다. ‘마이너리티 연구와 민중사’, ’민중의 다중적 경험‘이라는 핵심 주제군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이 책에는 다양한 민중상이 제시되어 있다. 민중을 둘러싼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 정치경제적 관계에 대해 다시금 이해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기왕의 민중사를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목차


-책머리에_배항섭 


제1부 민중사 방법론 


미디어를 이용한 민중사 연구 

스다 쓰토무 / 번역 : 이경원 


민중운동사 연구의 방법 

조경달 / 번역 : 배항섭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내재적 접근 

배항섭 


제2부 다양한 민중과 그 경험들 


동학 포교와 유교 윤리의 활용 

이경원 


1894년 동학농민군의 향촌사회 내 활동과 무장봉기에 대한 정당성 논리 

홍동현 


갑오개혁기 경찰제도 개혁과 민중의 경찰인식 

이토 순스케 / 번역 : 홍동현 


아시오 광독 반대운동 지도자 다나카 쇼조의 ‘자연’ 

나카지마 히사토 / 번역 : 한봉석 


산업전사의 시대, 민중의 징용 경험 

사사키 케이 / 번역 : 장미현 


1960~70년대 노동자의 ‘노동복지’ 경험 

장미현 


제3부 마이너리티와 폭력 


마이너리티 연구와 ‘민중사연구’ 

히와 미즈키 / 번역 : 장용경 


민중의 폭력과 형평의 조건 

장용경 


고베의 항만노동자와 청국인 노동자 비잡거운동 

아오키 젠 / 번역 : 유상희 


식민지시기 아내/며느리에 대한 ‘사형(私刑)’과 여성들의 법정 투쟁 

소현숙 


근대 한일 정조(貞操) 담론의 재구성 

한봉석 


아마미제도 ‘주변’형 국민문화의 성립과 전개 

다카에스 마사야 / 번역 : 장용경 


-새로운 민중사를 모색하는 한일 네트워크_허영란





저자소개


스다 쓰토무(須田努) : 메이지대학 정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조경달(趙景澾) : 지바대학 문학부 교수

배항섭 :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HK교수

이경원 :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강사 

홍동현 : 연세대학교 부설 다산실학연구원 연구원 

이토 순스케(伊藤俊介) : 후쿠시마대학 경제경영학류 준교수 

나카지마 히사토(中嶋久人) : 도쿄도 고가네이시 시사편찬위원 

사사키 케이 : 이바라키대학 인문학부 준교수 

장미현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역사와공간연구소 전문연구원 

히와 미즈키(檜皮瑞樹) : 도쿄경제대학 사료실 촉탁직원 

장용경 :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아오키 젠(靑木然) : 담배와 소금 박물관 학예원 

소현숙 :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HK연구교수 

한봉석 :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다카에스 마사야(高江洲昌哉) : 가나가와대학 등 강사 

허영란 :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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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9. 15:03 연구소 소식



역사문제연구소 한독비교사포럼에서 준비한 "최태민과 한국기독교문제" 학술회의를 안내합니다.

"최태민과 한국기독교문제"

발표: 권진관(성공회대, 신학)

일시: 2월 22일(수) 저녁 6시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5층 관지헌

주최 역사문제연구소, 주관 한독비교사포럼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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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9. 15:02 연구소 소식



불안: 구조·감지·주체의 역사

역사문제연구소와 상허학회는 2017년 2월 17일(금) 공동주최 학술회의 <불안: 구조·감지·주체의 역사>를 개최합니다. 이번 학술회의는 역사연구와 문학연구가 공통의 논제를 다루며 대화하는 뜻깊은 교류의 장이 될 것입니다. 이 만남의 자리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한국의 역사·사회 구성에 지속적으로 작용해온 ‘불안’이라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불안’은 다층적이고 다면적입니다. 불안은 (재)생산체계를 갖는다는 점에서 거대한 구조 자체입니다. 그리고 체제 내 주체가 경험하는 환경인 동시에 실감하는 분위기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불안은 주체 내면의 사건이자 상태이기도 하고, 특정한 행위 및 선택으로 연장된다는 점에서 수행성을 지닙니다. 본 학술회의는 이 같은 문제의식 하에서 ‘불안’을 입체화하여 그 역사성과 정치성을 규명하려 합니다. 불안은 가시적이기도 하지만 비가시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그것은 작동하고, 유도되고, 유동하고, 유효합니다. 따라서 ‘불안’에 대한 연구는 엄밀한 실증의 언어와 두터운 해석의 언어를 필요로 합니다. 이번 학술회의는 다양한 방법론적 모색을 통해, 역사의 심층을 향할 때 요구되는 두 언어를 함께 구사할 것입니다. 연구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주최: 상허학회, 역사문제연구소
일시: 2017년 2월 17일(금) 오후 1시~6시 30분
장소: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내 ‘예술가의 집’ 3층 다목적홀 (02-760-4626)

***프로그램
13:00-13:10 개회사: 김성보(역사문제연구소 소장)
1부 <통치의 기원 혹은 기술로서의 불안> 사회: 이진형(건국대)
13:20-13:45 ① 이봉범(성균관대): 냉전과 (납)월북 의제의 문화정치 : 억압/불안의 상호제약적 규율과 내부냉전
13:45-14:10 ② 정무용(서울대): 1960~70년대 유동성의 불안과 사회개발
14:10-14:25 청중질의
#14:25-14:35 휴식
2부 <전쟁의 파국과 불안의 젠더 역학> 사회: 임이랑(이화여대)
14:35-15:00 ③ 양지혜(한양대): 미로에 서서-H씨의 일기(1941~1942년)를 통해 본 전시하 식민지 여성의 일상과 불안
15:00-15:25 ④ 강지윤(연세대): 원한과 내면-탈식민 주체와 젠더 역학의 불안들
15:25-15:40 청중질의
#15:40~15:50 휴식 및 준비
3부 <경제개발과 불안/안전의 개발> 사회: 김준현(고려대)
15:50-16:15 ⑤ 이철호(동국대): 민중이라는 심연-『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연작을 중심으로
16:15-16:40 ⑥ 황병주(역사문제연구소): 1970년대 중산층의 소유 욕망과 불안-박완서 초기소설을 중심으로
16:40-17:05 ⑦ 이정숙(한성대): 1960-70년대 '가족집단자살'을 둘러싼 징후적 불안의 문제
17:05-17:20 청중질의
#17:20-17:30 휴식
4부 <종합토론> 사회: 이상록(국사편찬위원회)
17:30-18:30 종합토론: 손유경(서울대), 전영욱(역사문제연구소)

폐회사: 김현주(상허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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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1. 17:44 연구소 소식

올해 첫번째 저작비평회가 아래와 같이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노관범 저, <<기억의 역전-전환기 조선사상사의 새로운 이해>>(소명출판, 2016)

일시 : 2017년 2월 15일(수) 오후 3시
장소 : 역사문제연구소 5층 관지헌

저자 : 노관범(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회 : 후지이 다케시(역사문제연구소)
토론 : 이태훈(연세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정욱재(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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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5. 21:01 연구소 소식




2017년 1월 24일 화요일, 역사문제연구소 올해 첫 시사토론으로 <‘촛불 민주주의’, 과거 현재 미래>가 열립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 ‘촛불 민주주의’, 과거 현재 미래 **

2016년 10월 29일(토)부터 시작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해를 넘겨 3달째 지속되고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갈구하는 혁명적 변화 열망이 한국역사상 전무후무한 연인원 1000만의 ‘촛불 민주주의’의 기적을 만들었다. ​촛불의 압력으로 국회는 압도적 표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키고 헌재로 최종 결정을 보냈으며, ​특검 수사를 통해 박근혜-최순실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이 진행중이다.

그러나 아직 변한 것은 없다.

​세월호 진상 규명과 위안부 문제도 그대로이고 국정교과서도 철회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탄핵심판 법률 대리인은 “촛불 민심은 국민 민심이 아니”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4.19의거와 6월항쟁의 실패를 되풀이 않기 위해서는 국민주권에 기반을 둔 민주주의 개혁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이다. ​촛불시위는 진행중이며, 헌재의 결정에 따라 앞으로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에 역사문제연구소는 지금 시점에서 촛불시위의 의미를 짚어보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 일시 : 2017년 1월 24일(화) 저녁 7시
** 장소 : 역사문제연구소 5층 관지헌 (1호선 제기동역 1번 출구, 도보 3분)

-발제
노동자 없는 민주주의 : 전원배(역사문제연구소)
집회/시위와 깃발-저항과 참여의 문화사 : 이기훈(연세대)
공범의 전복-세월호 참사와 ‘촛불 민주주의’ : 장미현(역사문제연구소)

-사회 : 전영욱(역사문제연구소)

-토론 : 소현숙(한양대), 윤성준(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

-문의 : 02-3672-4191 / kistory@kistor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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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3. 09:40 연구소 소식/기타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3인이 목요일마다 '낮은 자들의 한국근현대사' 강좌를 진행합니다.

 

패기있는 젊은 연구자들의 한국근현대사 강의에 많은 응원과 관심을 바랍니다.

 

강의 안내와 수강신청은 아래를 참고하세요. ^^*

 

https://goo.gl/70hS9k

(신청접수는 위 링크인 참여연대 아카데미 홈페이지에서 진행합니다.)

 

********************************************************************************************************************

 

낮은 자들의 한국근현대사 : 국정교과서에서 사라진, 광장에서 분출된 우리들의 이야기- 2017 겨울 인문학교     

 

+강사 : 김수향 양지혜 임광순

 

+강좌기간 : 01-12 ~ 02-23 19~2130 6회 강의

 

+수강료 : 90,000 (참여연대 회원 및 역사문제연구소 후원회원 30%할인: 63,000)

 

광화문 광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들었습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은 각자의 분노를 담아 함께 구호를 외쳤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다양한 이들의 연대를 발견합니다. ‘이웃’이란 말이 사라졌다고 했지만, 광장에 모인 이들은 함께 웃고 함께 분노했습니다.

‘높은 곳’에 있는 이들이 내려올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제 그 연대의 모습들을 찾아 한국근현대사를 살피려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 우리는 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가.

그들은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떤 현실을 살았을까. 낮은 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한국근현대사를 찬찬히 읽어보려고 합니다.

그들의 역사적 경험이 현재 내 삶에 미친 영향들도 찾아가 봅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 학자, 시민의 반대에도 고집스럽게 발표된 국정교과서에서 그런 이들에 대한 서술이 사라진 것은 놀랄 일도 아닙니다.

국정 교과서는 특정 정치가와 재벌을 중심으로 한국근현대사를 서술하고, 그 배경에 있은 ‘낮은 자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할 대상은 누구일까요? 기억과 추모의 대상은 꼭 ‘큰 인물’ 이어야할까요?

 

작은 이야기, 그러나 큰 서사로 만나 뵙겠습니다.

 

 

+강의일정

1 1/12

“나는 농민입니다” : 편지를 통해 본 미군정기 사람들

2 1/19

‘국제시장’의 덕수는 행복했을까

: ‘월남’재벌 한진의 탄생과 KAL빌딩 점거 사건    

(김수향)

 

3 2/2

자기를 쓰다 : 일기를 통해 본 식민지의 일상

4 2/9

지배하는 이웃 :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양지혜)

 

5 2/16

1970년대 ‘여공’들의 꿈, 그리고 사회적 연대

6 2/23

6남매의 고군분투 : 농촌에서 도시로

(임광순)

 

 

+강사소개

김수향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미군정기 면방직공업을 소재로 석사학위논문을 썼다. 공장과 사람들, 산업화와 농촌 등 경제를 중심으로 공부 중이다.

 

양지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한국근대사를 전공하며 식민지기의 공업화가 지역사람환경에 미친 영향을 공부하고 있다.

 

임광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공장새마을운동으로 석사학위논문을 썼으며 가족과 이촌향도, 사회적 연대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강의정보

일 시 : 2017. 1. 12 ~ 2. 23 19~2130 6회 강의

장 소 :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참가비 : 9만원 (참여연대 회원 및 역사문제연구소 후원회원 30%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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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2016년 겨울호(117호)가 나왔습니다.

 

<<역사비평>>은 1. 역사문제연구소의 후원회원이 되어 받아보시거나 2. 역사비평사에서 정기구독을 신청하시거나 3. 시중의 서점을 통해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연구소에서는 1과 2를 추천해드립니다. :)



2016 대통령 선거와 미국 사회

― 보수파의 선거전략, 포퓰리즘과 반지성주의, 여혐까지 두루 검토

  역사비평 이번호 특집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이다. 세 편의 글은 모두 이번 선거의 특징을 역사적으로 성찰하였다. 특히 대통령 후보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트럼프 현상으로 나타나는 미국의 보수적 대중주의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가를 고찰하고, 힐러리가 당선될 수 없었던 역사적 배경을 분석했다. 투고된 글들에서 잘 드러나듯이, 이번 대선이 과거와 반드시 연속성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현대사를 통해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대선 구도가 그려진 배경을 이해하기에 좋은 논문들이다.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 ③ 세도정치기의 이질적 시공간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의 한국사를 재조명하고자 했다. 조선 후기에 대한 기존의 역사관에 비판적인 문제제기를 해보고자 한 것이다. 18세기가 그렇게 찬란했다면 그로부터 백 년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조선은 왜 식민지로 전락해야 했는가? 이것이 기획의 배경에 있는 근본적인 질문이었고, 마지막 기획에서 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여기에는 여러 답이 있을 수 있지만, 필자들은 18세기 말 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도시와 지방의 격차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정조와 19세기에 대한 기획은 이번 호에서 마감되지만, 내년에는 이 시기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어 있는 한국문학 분야의 연구자들로부터 이 기획에 대한 비판적 비평의 ‘응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 ③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은 올해 『역사비평』을 가장 뜨겁게 했던 기획이었다. 첫 기획이 나갔던 2016년 봄호는 유례없이 큰 관심을 받았다. 이는 한국 사회의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준다. 물론 기획이 끝났다고 해서 고대사를 둘러싼 논쟁이 다 정리된 것은 아니다. 이 기획이 시작된 이후 ‘사이비역사학’으로 지칭된 그룹들이 모여 새로운 연합체를 만들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아마도 고대사를 둘러싼 논쟁의 제2라운드가 이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비평』 이번호에서는 민족주의 사학을 자칭하는 사이비역사학 측이 왜곡된 형태로 전유하고 있는 표상들로서 신채호와 단군, 백제의 요서 진출 등을 짚어냈다. 앞으로도 이어질 고대사 논쟁이 보다 합리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그 초석을 놓았다고 자평할 수 있었으면 한다.


도시로 읽는 1949년 이후의 중국 ③
  연속기획 <도시로 읽는 1949년 이후의 중국> 세 번째는 사회주의 시기 도시의 여러 양상들을 다룬다. 오랫동안 농촌을 근거지로 농민을 조직 동원하여 혁명에 성공한 중국공산당에게 도시는 매우 낯선 존재였다. 국공내전의 승리가 가까워진 1949년 3월 공산당은 공작 중점을 기존의 농촌에서 도시로 바꾸기로 결정하고, “소비와 향락, 부르주아와 제국주의자의 도시”를 “생산과 건설, 노동자의 도시”로 바꾼다는 방침을 정한다. 1950년대에는 농촌의 희생을 대가로 도시 지역 중공업에의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는 전략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도·농 이원 분리에 기초한 발전 전략을 가능하게 했던 사회정치적 장치들이 ‘단위’ 체제와 ‘호구’ 제도였고, 이 제도들은 개혁기 들어서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변형된 형태로 유지되거나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따라서 개혁기 중국 도시의 여러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배태시킨 사회주의 시기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도시로 읽는 1949년 이후의 중국’ 세 번째는, 개혁기 도시의 여러 문제들의 기원이 되면서 동시에 개혁기와는 다른 이념과 논리에 의해 건설되고 작동되었던 도시의 여러 양상들을, 건국 초기인 1950년대와 60년대 베이징, 상하이, 선양, 판즈화 등 서로 다른 도시들의 사례를 통해 다루고자 했다.



차   례


[책머리에]

트럼프 당선이 주는 의미 / 박태균

[특집: 2016 대통령 선거와 미국사회]
과거에서 길을 묻다―1964·1972 대선을 통해 본 2016 미 대선과 민중주의 / 김정욱
조지 월리스의 부활―트럼프 현상의 연속성과 새로움 / 안병진
68세대의 주역에서 여성 대통령 후보로―힐러리의 도전, 미국의 선택 / 김인선

[연속기획: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 ③ 세도정치기의 이질적 시공간]
18세기 중반~19세기 전반 서울-지방 격차와 지식인의 인식 / 이경구
19세기 조선의 지식인 지형―균열과 가능성 / 조성산
‘근세’ 동아시아의 정치문화와 직소 / 배항섭


[연속기획: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 ③]
민족주의 역사학의 표상, 신채호 다시 생각하기 / 권순홍
단군―역사와 신화, 그리고 민족 / 이승호
민족의 국사 교과서, 그 안에 담긴 허상―4·5차 교육과정기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중심으로 / 장미애

[연속기획: 도시로 읽는 1949년 이후의 중국 ③]
중국공산당의 도시 접관 정책과 ‘신민주주의혁명’ / 이원준
사회주의 시기 상하이 도시 개조와 공인신촌―차오양신촌을 중심으로 / 김승욱
역사적 시각에서 본 중국의 도시 기층조직―거민위원회를 중심으로 / 윤형진
‘특권적’ 노동자계급의 창출―1950년대 초 선양시 테시구 노동경쟁 캠페인과 공인촌 건설 / 한지현
삼선건설과 판즈화―사회주의 시기 초고속 도시화와 그 이면 / 이현태

[문화비평]

‘역사전쟁’과 역사영화 전쟁―근·현대사 역사영화의 재현 체계와 수용 양상 / 천정환


[서평]
멸종 위기의 자본가? ―『자본주의 길들이기(장문석, 창비, 2016) / 장석준

중국 농민으로 상상한 제3의 길―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황쭝즈, 진인진, 2016) / 강진아
중국 고대사 연구자가 바라본 한국 고대사―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심재훈, 푸른역사, 2016) / 송호정
중국 중심 세계사에 대한 해독제―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김호동, 사계절, 2016) / 김시덕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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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 36호가 나왔습니다.

 

본 역사문제연구는 역사문제연구소의 후원회원이 되어 받아보시거나, 시중의 서점을 통해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당연히 연구소에서는 전자를 추천해드립니다. :)

역사문제연구에 수록된 글들은 역사문제연구소 홈페이지(http://www.kistory.or.kr/search_articles.php)를 통해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책머리에: 『역사문제연구』 20년을 돌아보며

  올해 2016년은 학술지 『역사문제연구』가 탄생한 지 정확히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이번 『역사문제연구』 36호 ‘책머리에’에서는 이전처럼 특집이나 기획을 중심으로 수록한 글들을 소개하는 대신, 2016년 2월 『역사문제연구 회보』 59호에 필자가 쓴 「역사문제연구소 30년, 『역사문제연구』 20년」이라는 글을 조금 손질하여 다시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지난 20년 전 『역사문제연구』가 어떻게 처음 시작되었는지 또 이후 20년 동안 『역사문제연구』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그 20년의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볼 것이다.



역사문제연구소 10년의 결과물 - 1996년 『역사문제연구』 창간

  역사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로 약칭) 창립 10주년이었던 1996년을 단 하루 남긴 12월 31일 학술지 『역사문제연구』가 탄생했다. 『역사문제연구』는 창간호에서 학술지가 만들어진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역사문제연구소는 창립과 함께 두 가지 목적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근현대사의 바르고 깊이 있는 연구를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런 연구성과를 대중에게 올곧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목적 중 지금까지 연구소가 주력한 일은 계간지 『역사비평』과 대중강좌 <한국사교실> 등을 통한 연구성과의 대중화 문제였다. 그만큼 1980년대는 역사를 바로보기 위한 갈증에 목말랐다. 이후 연구소에 소속한 유능한 전문 연구인력의 성과를 독자적으로 집약할 수 있는 전문 연구지(논문집) 간행의 필요성이 꾸준히 논의되었다. 자기 소리를 내야한다는 현실적 요청이기도 하였다. 이에 연구소 창립 10주년을 즈음하여 전문 연구지의 발행을 추진했던 것이다.”


  즉 ‘역사연구의 대중화’라는 연구소의 지향과 관련하여,『역사비평』을 통한 ‘대중화’와 더불어 전문적인 ‘역사연구’를 병행하기 위해 『역사문제연구』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학술지 이름도 처음에는 그냥『역사문제연구소 논문집』으로 하려고 했다고 한다. 


  『역사문제연구』의 창간이 단순히 ‘역사연구’와 ‘대중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겠다는 연구소의 의욕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는 창립 이후 역사문제연구소 10년 역사의 결과물이었다. 1986년 개소 직후 초창기 연구소 활동은 연구회원들의 세미나가 중심이 되었다. 1987년 연구소 내에 ‘연구실’이 독립된 단위로 설치되었지만, 이후에도 연구소의 활동은 여전히 연구회원들의 세미나가 중심이 되었다. 세미나를 통해 축적된 연구역량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 구체적인 연구성과를 내는 데까지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1988년 말 정도가 되면 학계에서 소장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분과학문 별 연구회들이 조직되기 시작하면서, 연구회원들도 조금씩 연구소를 떠나게 되었다. 이에 연구소는 1989년 2월 상임연구원 제도를 도입하여, 연구원들을 중심으로 연구사업을 계획․추진하고 수준 높은 연구성과의 산출을 꾀하기 시작했다. 1990년 방기중 연구실장이 취임하면서 보다 체계적으로 상임연구원 제도가 갖추어졌고, 이후 상임/비상임의 구분과 통합 등 약간의 변동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연구원 제도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연구실 체제의 확립 과정에서 그동안 연구소가 간행하던 『역사비평』과 연구실의 관련성이 약화되었다. 또 분과학문 별 구심력이 더욱 강해지면서 연구소에서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많이 빠져나가 연구실은 역사전공자 위주로 축소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소, 특히 연구실이 돌파구로 찾은 것이 전문적인 역사연구 학술지를 발간하는 일이었다. 즉 연구자의 풀(pool)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실천적으로 요구되는 과제들에 일일이 대응하려면 외부의 명망 있는 연구자들에게 계속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며, 그러면 ‘내적인 연구역량’은 축적되지 않고 연구소는 겉모습만 외화내빈의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었다.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일단 차분히 연구소의 내적 연구역량을 쌓아 나가기 위해 전문학술지를 발간하고자 했다.


  연구실을 중심으로 연구소의 전문학술지를 간행하자는 구상은 1994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먼저 편집위원과 편집간사가 선임되었고 그들은 1994년 9월 경 몇 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한국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한 역사 일반을 다루는 전문 연구논문집으로서의 성격을 지향한다는 것, 연구소의 학문적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특집’을 중심으로 발간한다는 것 등이었다. 학술지의 간행은 1995년 하반기부터 1년에 1번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창간호 특집을 책임질 연구반 구성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논문집의 참신성 등이 문제가 되면서 간행시기가 연구소 10주년인 1996년으로 미뤄졌다. 그리고 드디어 1996년 12월 31일 『역사문제연구』가 창간되었던 것이다.

  창간호 특집인 ‘근대 한국의 지식인과 사상’은 방기중 부소장이 주도한 3년 공동연구의 성과였다. 이후 2호부터는 연구소의 각 분과(경제사분과, 운동사분과, 현대사분과)가 돌아가면서 ‘논문집특집연구반’을 구성해 ‘특집’을 맡았다. 또한『역사문제연구』의 초대 편집위원회에는 당시 소장, 부소장, 운영위원, 연구위원, 연구원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었다. 이러한 편집위원회 구성 방식은 이후 한동안 계속되었다. 학술지 지면 구성의 경우 창간호와 2호는 ‘특집’과 ‘논문’만으로 이루어졌고, 3호에는 그 외 ‘기고’와 ‘자료소개’ 코너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처음 『역사문제연구』가 간행되었을 때 외부의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고 한다. 여러 역사연구 단체에서 논문집을 발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또 논문집을 내려는 의도가 뭐냐, 정말 특색 있는 논문집을 만들 수 있겠냐, 논문집이야 말로 ‘파벌성’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역사문제연구』의 기틀 마련 - 연구원 중심의 반년간 정기간행물화

  1996년 12월 31일 창간호 발행 뒤 정확히 1년 후 1997년 12월 예정대로 『역사문제연구』 2호가 간행되었다. 그러나 3호 간행은 1년 뒤가 아니라 1년 반 뒤인 1999년에야 이루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2000년대 초는 『역사문제연구』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시기다. 우선 그동안 1년에 1번이었던 학술지 간행이 2000년 4호부터 연 2회로 늘어났다. 연 2회(반년간) 출간의 정착은 『역사문제연구』의 발전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또한 여전히 연구소 주요 보직자를 망라한 편집위원회가 유지되었지만, 4호부터 편집위원회 내에 정병욱 연구원을 중심으로 한 별도의 편집팀이 꾸려지면서 사실상 연구원들이 『역사문제연구』의 기획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연구원들의 기획력이 강화되면서 학술지 지면 구성도 보다 다채로워졌다. 5호부터는 ‘심포지엄’ 발표나 ‘연구반’ 공동연구는 물론, 당시 막 시작된 ‘토론마당’을 지상중계하기 시작했다. 또 6호부터는 소통의 장으로 ‘광장’이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토론마당과 더불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연구방법론, 연구동향, 자료소개 등 다양한 내용의 글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서평’도 실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특집’, ‘기획’, ‘논문’, ‘광장’, ‘서평’ 등이 『역사문제연구』 지면의 기본 구성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광장’ 코너가 없어지면서 대신 ‘자료소개’나 ‘연구동향’ 코너가 부정기적으로 생기기도 했다.

  2001년 11월에는 『역사문제연구』가 정기간행물로 정식 등록을 마치고 7호부터 정기간행물로 발간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정기간행물 등록을 미루었던 것은 ‘일정함’과 ‘연속성’에 대한 고민어린 신중함 때문이었다. 정기간행물 등록과 더불어 『역사문제연구』는 명실공이 전문학술지로서 위상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또한 7호부터는 표지를 비롯한 책 디자인 전체가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이 디자인은 이후 13년을 지속하면서 『역사문제연구』의 얼굴로 각인되었다.

  2002년 8호부터 편집팀장이 박종린 연구원으로 바뀌면서 그동안 연구소의 주요 보직자들로 구성되었던 편집위원회가 전면 개편되었다. 그리고 『역사문제연구』는 연구소 2세대(주로 80년대 학번) 연구원들만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편집위원회에 연구소 외부 연구자들도 결합하기 시작했다. 보다 젊어지고 다양해진 『역사문제연구』 편집위원들은 『역사문제연구』가 역사학은 물론 인접 학문분야와의 적극적인 교류 속에서 다양한 역사연구 방법론과 역사이론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고 토론하는 장이 되도록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한국사학계에서는 다소 생경한 주제들이 인문학 연구자들의 공동연구를 통해 ‘특집’이나 ‘기획’으로 가시화되었다.

  그런데 이전과는 달리 2000년대 이후에는 연구소 자체의 공동연구가 단행본 형식으로 거의 외화 되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문제연구』가 제자리를 잡으면서 연구소 심포지엄 등의 연구성과를 『역사문제연구』에 게재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물론 더 본질적으로는 연구원 중심의 연구실 활동이 침체해 있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일례로 『역사문제연구』의 ‘특집’은 상반기의 경우 연구반의 공동연구를 외화하고, 하반기의 경우 정기심포지엄 결과물을 외화 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는데, 8호가 처음으로 ‘특집’ 없이 출간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는 당시 연구소 연구반 활동의 부진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동시에 『역사문제연구』 편집진의 기획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역사문제연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연구소의 연구역량과 활동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척도였다.

  2004년 12호부터는 이승렬 연구위원이 편집위원장을 맡아 새로운 편집위원들과 함께 『역사문제연구』를 이끌었다. 새 편집진은 각국의 역사인식을 비교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일례로 12호에는 총 7편의 논문이 실렸는데(서평과 부록 제외), 그 중 3편이 일본, 대만 등 외국 사례에 대한 외국 연구자의 논문이었다. 2006년 16호부터 다시 편집진이 크게 개편되어 류시현 연구원이 편집주간을 맡았다. 이때 해외편집위원이 처음으로 영입되었고, 2세대 연구원들 이외에 3세대(주로 90년대 학번) 연구원들도 조금씩 편집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들 새 편집진은 『역사문제연구』를 통해 새로운 문제의식과 연구방법론을 담고자 했던 그동안의 노력을 계속하면서, 이러한 방향성에 덧붙여 보다 자유로운 형식으로 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성과를 지속적으로 담아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시론적이지만 새로운 관점과 방향을 제시하는 글이나, 기존 연구성과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는 부분을 언급하거나 우리 학계가 놓치고 있는 외국의 사례에 주목한 성과물을 담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역사문제연구』, 등재지가 되다

  2006년 16호 간행 때 새로 꾸려진 편집진은 곧바로 2007년 17호 간행과 더불어 다시 한 번 완전히 개편되었다. 이는 『역사문제연구』의 한국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으로 약칭, 2009년부터 한국연구재단으로 통합) 등재신청 여부와 관련하여 연구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이어졌던 논란이, 마침내 등재신청을 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기 때문이었다. 『역사문제연구』의 학진 등재신청과 관련한 논란은 이미 2000년경부터 있었다. 등재신청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에서는, 학진 등재지 및 등재후보지에 실린 논문이 여타 지면에 실린 논문보다 유리하게 평가되는 상황에서 등재신청을 하지 않으면 『역사문제연구』에 지속적으로 양질의 원고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현실론을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당시 결론은 소위 ‘학진 등재지 체제’에 구애받지 말고 『역사문제연구』를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연구와 발표의 공간으로 살려 나가자는 원칙론으로 기울었다. ‘등재지 체제’가 강요하는 치열한 실적 쌓기 경쟁이 연구자들을 논문의 ‘대량 생산자’로 전락시키는 가운데, 연구의 독창성과 인문학․역사학의 생명인 긴 호흡이 사라지는 현실을 거부했던 것이다. 당시의 분위기와 고민을 반영해 2001년 7호의 ‘책머리에’는 “적어도 『역사문제연구』를 통해 소통의 장에 임하는 연구자들은 실적 쌓기 전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생각, 색깔, 냄새를 자유롭게 펼쳐 보이기 바란다. 정기간행물로 등록한 마당에 한마디 더 한다면 좀 더 불순하고 기존 질서를 어지럽히는, 난을 일으키는 글들이 나오기 바란다”는 소회를 피력했다. 

  그러다가 2004년부터 『역사문제연구』의 등재신청 문제가 다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등재신청의 필요성은 이전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다만 당시 연구소 내에 박사 연구원이 늘어나게 된 상황을 반영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전과 달리 원고의 수합문제를 원고 투고자의 입장까지 시야에 넣고 논의가 진행되었다. 즉 대학 전임 임용 등을 고려한다면 박사를 받은 연구자들이 비등재지에 투고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는 곧 연구주체의 재생산 문제와 직결된 문제였다. 『역사문제연구』의 등재신청 여부를 둘러싸고 제기된 ‘자유로운 모색’이라는 원칙론과 ‘연구주체의 재생산’이라는 현실론은, 이제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 잡아야 할 ‘두 마리의 토끼’가 되어 버렸다. 결국 2007년 연구원들은 치열한 찬반 논란 끝에 『역사문제연구』의 학진 등재신청을 결정했다.
우선 2007년부터 발행되는 17호부터 20호까지 2년간 4개호를 학진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발간함으로써 ‘등재후보지’가 되는 것이 1차 목표가 되었다. 편집진의 경우에도 학진이 요구하는 틀에 맞춰 개편이 필요했다. 이에 17호부터 이승렬 편집위원장, 류시현 편집팀장 체제를 확립하고, 연구소 외부에서 지역 및 연구소와의 관계 등을 고려하여 교수급 편집위원들을 다수 영입했다. 그리고 등재신청의 실무를 담당하기 위해 ‘유급’ 편집간사로 홍정완 연구원을 임명했다. 결국 2008년 등재심사를 통과해 19호부터 『역사문제연구』는 ‘등재후보지’가 되었고, 2011년 다시 등재심사를 통과해 25호부터 ‘등재지’가 되었다. 학계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등재지가 됨으로써 『역사문제연구』는 학술지 발간에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2009년 21호부터 편집위원장과 편집팀장을 통합하여 류시현 연구원이 편집위원장을 맡았다. 또 22호부터는 편집위원에 연구소 2세대들이 다시 대거 포진하였다. 2011년 25호부터 편집위원장이 황병주 연구원으로 바뀌면서 편집위원회도 개편되었다. 새 편집진은 26호부터 ‘연구노트’ 코너를 신설하고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서평’과 ‘토론마당’ 코너를 다시 살렸다. ‘연구노트’는 논문쓰기의 부담을 덜면서 참신하고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었다.



등재지 이후『역사문제연구』의 발전과 고민지점

  2013년 29호부터 이상록 연구원이 새롭게 편집위원장을 맡으면서 편집위원회에도 대폭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2015년 34호부터 편집위원장이 오제연 연구원으로 다시 바뀌었지만, 연구소 3세대가 주도해 나가기 시작한 2013년 이후의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3세대 중심의 새로운 편집진은 보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역사문제연구』만의 색깔을 갖추기 위해, 『역사문제연구』를 연구자들 간의 소통을 중계하고 토론을 자극하는 장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역사문제연구』에 몇 가지 큰 변화가 생겼다. 우선 외형적으로 2014년 32호부터 『역사문제연구』 간행 출판사가 창간호부터 31호까지 출판을 계속 담당해왔던 ‘역사비평사’에서 ‘소명출판’으로 바뀌었다. 출판사 변경과 함께 지난 2001년 7호 이후 13년 동안 이어지던 책 디자인 역시 전면적으로 개편되었다. 또한 지면상에 ‘저작비평’, ‘주제비평’, ‘현실비평’, ‘집담회’와 같은 새로운 코너를 마련하여 지금까지 계속 이어오고 있다. ‘저작비평’의 경우 주요 저작의 저자를 초청하여 지정된 토론자들과 3시간 정도의 심도 있는 토론을 벌이는 자리이다. 이는 ‘서평’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서평이 의례적인 내용소개와 상찬으로 끝나버리는 고질적인 관행과, 또 소위 논문 카운트에서 서평이 제외면서 연구자들이 서평 쓰기를 꺼려하는 현실을 극복위해 기획된 것으로, 현재도 『역사문제연구』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학술적 소통 기획이다. 


  ‘주제비평’과 ‘현실비평’의 경우 특정 주제, 특히 시사적인 주제에 대해 학술적인 접근을 모색하는 자리이다. 일례로 30호 ‘현실비평’ 코너에 수록된 정대훈의 ‘일베’ 분석 글은 디비피아(DBPIA) 조회 수 최상위권을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역사문제연구』는 젊은 역사학자들의 다소 거칠지만 감각적이고 도발적인 문제제기에 대해 꾸준히 지면을 할애하였다. 31호부터 시작된 ‘집담회’는 이러한 젊은 연구자들의 목소리들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시도이다. 집담회와 같은 기획을 통해 『역사문제연구』는 흡사 논문제조공장과도 같은 학제 시스템과 권위주의, 엄숙주의로 숨 막히는 학계 풍토 속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자 했다. 이러한 다채로운 지면 구성과 더불어 등재지가 된 이후에는 일반 투고 논문도 많이 늘어나 책의 볼륨이 자연스럽게 커졌다. 그 결과 30호까지 300페이지 정도였던 책 볼륨이 31호 500페이지를 넘어 32호부터는 600페이지에 육박하게 되었다.

  최근의 특징 중 하나는 연구소 밖 연구자들의 글이 『역사문제연구』에 갈수록 많이 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문제연구』는 이제 ‘역사문제연구소’만의 학술지가 아니라 학계 전반을 아우르는 학술지로 성장했다. 특히 편집위원회의 기획력이 더욱 강화되면서 시의성 있는 특집 및 기획과 다양한 지면 구성 등으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 속에서도 고민해야할 지점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가장 큰 고민지점은 『역사문제연구』와 연구소, 특히 연구실의 관계이다. 『역사문제연구』에 연구소 밖 연구자들의 글이 많이 실리고 있다는 것은, 결국 반대로 연구소 구성원, 특히 연구실 연구원들의 글이 상대적으로 적게 실리고 있다는 얘기다. 창간 이후 한동안 『역사문제연구』에는 연구소 소속 연구자들 글들만 주로 실렸다. 등재신청 이후에도 연구소 소속 연구자들의 글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일례로 등재후보지가 된 2009년에 간행된 21호와 22호에 실린 21편의 글 가운데 당시 12편(57%)의 글이 연구소 연구위원, 연구원의 글이었다. 그런데 2015년 33호와 34호에 실린 22편의 글(저작비평회와 집담회 제외) 가운데 8편(36%)만이 연구위원, 연구원의 글이었다. 특히 가장 최근에 간행된 34호는 저작비평회를 제외한 11편의 글 중 단 2편(18%)만이 연구소 구성원의 글이었다.

  이러한 현상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역사문제연구』가 등재지가 된 이후 외부 연구자들의 투고가 자연스럽게 많아진 것과 더불어, 편집위원회가 특집과 기획을 준비하면서 필자를 연구소 밖에서 섭외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 하나의 이유이다. 시의성 있는 특집과 기획 주제를 선정하고 이에 적합한 필자를 연구소 외부에서 섭외하다보니, 최근 『역사문제연구』가 『역사비평』과 비슷해졌다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역사문제연구』 편집위원회가 자율성을 갖고 특집과 기획을 하며 이에 적합한 필자를 찾기 위해 섭외 범위를 연구소 밖으로 범위를 넓히는 것 자체는, 좋은 학술지를 만들기 위한 당연한 노력으로 문제 될 것이 없다. 단 『역사문제연구』가 애초 연구소의 전문학술 기관지로 출발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특집과 기획의 필자 섭외 과정에서 손쉽게 이미 ‘준비된’ 필자만 찾기 보다는 연구소 내에서 새로운 필자들을 계속 발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조금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젊은 연구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연구소 밖에서 필자를 섭외할 경우에도 참신하고 도전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더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역사문제연구』는 소위 ‘등재지 체제’ 속에 안주하는 기성 학술지와 큰 차별지점을 갖지 못할 것이다. 이는 앞으로『역사문제연구』 편집위원회가 연구소, 연구실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역사문제연구』는 역사문제연구소의 연구역량과 활동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척도이다. 『역사문제연구』가 연구소 전문학술 기관지로서 계속 역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연구소, 특히 연구실의 학술활동이 활성화되고 『역사문제연구』를 통한 그 결과의 외화가 더 조직적,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20년 전 『역사문제연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문제의식과 통하는 지점이며 『역사문제연구』를 『역사문제연구』답게 만드는 길이다. 역사문제연구소 내 연구반인 ‘6070연구반’의 워크숍에서 발표된 3편의 논문을 묶어 이번 『역사문제연구』 36호의 ‘특집’ <1960~70년대 ‘자본주의 인간형’의 창출>을 기획한 것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역사문제연구』는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러한 고민지점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소, 연구실은 물론 학계 전반과의 접점을 넓혀나가고자 한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성원, 그리고 참여를 부탁드린다. (오제연)



목    차


[특집1 1960-70년대 ‘자본주의적 인간형’의 창출]
1960~70년대 ‘인간관리’ 경영지식의 도입과 ‘자기계발’하는 주체 / 이상록
산업화 시기 여성 노동자들의 숙련과 ‘작업장 질서’의 전복 / 장미현

갈채와 망각, 그 뒤란의 ‘산업 전사’들 -‘국제기능경기대회’와 1970~1980년대의 기능인력 / 김태호

[저작비평회]

만주모던은 1960년대 한국에서 실현되었는가?
- 한석정, 『만주모던: 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문학과지성사, 2016)


[일반]

지역 ‘번영단체’의 개발 프로젝트와 그 사회정치적 의미 - 원산시영회와 원산시민협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 오미일

미시나 쇼에이(三品彰英)의 신화연구와 근대역사학 - 식민주의 역사학의 사상사적 재구성 / 심희찬

일제시기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의 산업공해문제와 ‘식민성’ / 양지혜

한국전쟁 전후 조선인민군의 월남병(越南兵)과 분단체제의 강화 / 김선호

북한의 ‘신해방지구’ 주민 편입 정책과 그 특징 / 한모니까


[자료소개]

해제: 『中․高等學校 國史敎育改善을 爲한 基本方向』 /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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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9. 14:57 연구소 소식

긴급 토론회

국정 농단과 ‘최순실 교과서’

  박근혜 대통령은 2회에 걸친 대국민담화를 통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의혹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전국민적인 퇴진 요구는 무시하고 있다. 꿈쩍하지 않는 것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 국정교과서 계획 자체의 폐기 전망이 나오는 속에서도, 교육부는 11월 28일 교과서 공개를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혼란스러운 시국에서 보수정권이 안보와 역사를 이용한 보수-진보 프레임을 반전카드로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혹은 정권 스스로 국정교과서를 폐기함으로써 지지율 반등을 꾀할 수도 있다. 국정교과서 문제가 시국상황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국정교과서를 비롯하여 교육행정 전반과 역사관련 정책이 ‘국정농단’에 놀아난 상황에서, 정부는 당장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폐기할 뿐만 아니라 그 추진 과정의 잘못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하루하루가 앞날을 예측하기 힘들만큼 상황이 급변하는 시점이다. 이에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역사문제연구소는 지금 시점에서 박근혜 정권하 역사교육정책의 실상을 폭로하며, ‘최순실 교과서’에 대한 대응과 이후 노선을 고민하는 긴급 토론회를 마련하였다. 관심있는 많은 분들의 참여 부탁드린다.


일시: 2016년 11월 11일 (금) 저녁 7시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관지헌
주관: 역사문제연구소, 전국역사교사모임
주최: 역사교육연대회의 (민족문제연구소,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전국역사교사모임, 한국역사교육학회, 한국역사연구회)


발제1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육정책과 교육부의 메커니즘 - 전정윤 (한겨레 기자)
발제2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육 농단 -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
사회 김태우(전국역사교사모임)
토론 김창록(경북대,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 김한종(한국교원대), 이지원(한국역사연구회), 후지이 다케시(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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