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행사공지'에 해당되는 글 14건

  1. 2015.09.16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영화와 포럼; 맛보기 에세이] 또 하나의 전후 일본사를 위해 (히라사와 고, 영화연구자)
  2. 2015.09.07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강좌; 맛보기 에세이] 재일조선인에게 해방이란 무엇이었는가?(이성, 한신대) (1)
  3. 2015.08.27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영화와 포럼; 맛보기 에세이] 해방으로 시작된 실어증 (백지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4. 2015.08.02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강좌; 맛보기 에세이] 해방 70년, 한국화교에 대한 이해(왕언메이, 대만국립사범대 동아시아학과)
  5. 2015.07.17 <평화기행 참가자 대모집중!!!>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70주년맞이 평화기행
  6. 2015.07.12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영화와 포럼; 맛보기 에세이] '사랑과 맹세'에서 '자유만세'로 (정병욱,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7. 2015.07.06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강좌; 맛보기 에세이] 오키나와 전후 70년: 사람들이 만드는 민주주의의 발자취 (모리 요시오, 森宣雄, 동지사대학)
  8. 2015.06.28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영화와 포럼: 해방과 제국의 잔영
  9. 2015.06.28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강좌: 주변에서 바라 본 해방.
  10. 2015.06.28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세미나 : '해전사' 다시 읽기

 

 

 

 

 

또 하나의 전후 일본사를 위해

 

히라사와 고(平沢剛, 영화연구자)

 

전쟁 직후의 일본 영화라면 전후 민주주의, 반전을 주제로 한 영화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영화는 GHQ의 점령 하에서 1945년부터 1952년까지 검열이 이루어졌다. 그 때문에 이 시기에는 국가주의를 예찬하는 내용이나 사극 등의 장르가 금지되었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영화가 나왔으며, 검열 해제 후에 전쟁을 주제로 하는 영화가 잇달았다. 그 중에서 구로자와 아키라(黒澤明), 기노시타 게이스케(木下恵介), 이마이 다다시(今井正), 신도 가네토(新藤兼人) 등 좌파 영화인에 의해 많은 걸작이 만들어졌으며, 일본의 전전(戰前) 군국주의의 철저한 비판을 통해 새로운 전후 일본의 방향성이 제시되어 갔다. 그러나 그 한편에서 전후 민주주의와는 다른 가능성을 그려낸 작품은 거의 없었다. 이 발표에서는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는 일본 영화의 뉴웨이브로부터 등장하는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돼지와 군함(軍艦)(1961), 오오시마 나기사(大島渚)태양의 묘지(太陽墓場)(1960), 스즈키 세이준(鈴木清順)육체의 문(肉体)(1964), 마에다 요이치(前田陽一)일본 파라다이스(にっぽんぱらだいす)(1964), 와카마츠 고지(若松孝二)벽 속의 비사(秘事)(1965), 가토 다이(加藤泰)남자의 얼굴은 이력서(履歴書)(1966), 후카사쿠 긴지(深作欣二)인의 없는 싸움(仁義なき)(1973), 모리사키 아즈마(森崎東)들개(野良犬)(1973) 그 전사로서의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밤의 여인들(たち)(1948), 가와시마 유조(川島雄三)스자키 파라다이스 적신호(洲崎パラダイス赤信号)(1956) 처럼 새로운 국민국가의 부흥에서 배제된 하층계급, 재일조선인, 재일중국인을 그린 작품을 언급함으로써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서의 전후 일본 영화사, 전후 일본사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히라사와 고(平沢剛):

가나가와현 출생. 현 메이지학원대학 언어문화연구소 연구원이다. 쓴 글로는 (35ぶりの帰還”)足立正生思想実践 独立映画可能性とは(2007) 등 다수가 있고アンダーグラウンド・フィルム・アーカイブス』(2003), ファスビンダー(2005) 등을 펴냈으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각종 상영회 기획에 참여하였다.

 

[연속기획 해방]의 대미를 장식할 이번 '영화와 포럼: 해방과 제국의 잔영-일본'은 히라사와 고 선생님의 강의로 9월 20일(일) 15시에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진행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일본

강사 히라사와 고 (영화연구자)

일시 9월 20일(월) 15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관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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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해방

 

재일조선인에게 해방이란 무엇이었는가?

- 해방 70년을 맞이하여 -

이 성 (한신대)

 

   특별영주권을 가지는 재일조선인 인구는 현재 약 38만 명 정도다. 과거 최대 65만 명에 달했을 때도 있었지만 그 후 계속 줄어들고, 21세기 들어서는 연간 약 1만 명 가까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대로라면 40년 후에는 재일조선인은 자연소멸될 것이라는 주장도 공공연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서 본국 국적 유지에 집착하다간 재일조선인이 소멸될 것이 뻔하므로 적극적으로 일본국적을 취득해서 조선계 일본인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재일조선인이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다만 이미 귀화 등을 통해 상당수의 재일조선인이 일본국적을 취득했는데 그들의 대부분이 민족성을 상실해버린 현실을 볼 때 조선계 일본인이라는 집단이 뚜렷이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은 현실에서 동떨어진 환상에 불과하고 결국은 일본 동화를 촉진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한편으로 재외국민에게 국정참정권을 부여하는 제도개혁이 한국에서 이루어져 한국국적을 가지는 재일조선인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엄연한 한국 국민인데도 국민의 기본권인 참정권도 주어지지 않은 채 한국 제도정치에서 소외되어온 한국국적 재일조선인이 해방 후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 것이다. 일본인화 현상이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는 이 시점에서 비로소 한국 국민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지만 이 국정참정권 행사를 계기로 재일조선인에게 본국이라는 존재는 무엇이며 본국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물음이 새삼 부상하고 있다.

 

    이렇듯 21세기 들어 재일조선인은 매우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재일조선인의 현주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시 그들의 해방 후 역사를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해방으로부터 한일회담을 거쳐 그들의 법적지위가 확정되는 시기는 재일조선인의 삶을 규정하는 기본적인 틀이 형성된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러므로 이 시기를 중심으로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고찰함으로써 재일조선인에게 해방이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성(李誠):

한신대학교 겸임교수. 한국 현대사와 재일조선인사를 연구하고 있다. 쓴 글로 「재일코리안의 현황과 미래」, 『통일인문학논총』 제52집(2011), 「재일조선인과 참정권」, 『황해문화』 57호(2007) 등이 있으며, 박사학위논문인 「한일회담에서의 재일조선인의 법적지위 교섭(1951-1965년)」으로 제7회 강만길연구지원금을 받았다.

 

  '강좌 : 주변에서 바라 본 해방-재일조선인'는 이성 선생님의 강의로 9월 14일(월) 19시에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진행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재일조선인

강사 이성 (한신대)

 

일시 9월 14일(월) 19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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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해방

 

해방이 가져온 실어증

 

2015.8.27.

백지운(白池雲)

 

 

동아시아에서 제2 대전의 종결을 알린 8.15는 또 다른 억압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그 복잡한 현대사를 예고한다. 일제의 식민은 종결되었지만 한국, 일본, 대만의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반공이라는 강력한 이념을 앞세운 냉전사가 시작되었다. 네이션 빌딩 프로세스 속에서 만들어진 국민들. 이들은 식민지 시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훈육되었고 식민지에 대한 기억과 서사 또한 국가의 네이션 빌딩 프로세스 속에서 새롭게 구축되었다.

 

1894년 청일전쟁의 패배로 일본의 식민지가 된 대만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1945년 일본 패망과 함께 해방을 맞았다. 대만을 경험해 본 한국 사람들이 가장 먼저 놀라는 것은 대만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친근감이다. 한국보다 더 오랫동안 식민지를 겪었음에도 반일은 고사하고 2000년대 한류가 오기 전까지 (그리고 그 후에도) 일본문화가 대만의 젊은 층과 대중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왜 한국과 같이 식민지를 겪었음에도 대만이 일본 식민지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은 우리와 이토록 다른가. 여기에 대만의 해방이 갖는 복잡성이 있다.

 

우녠전의 <또오상(多桑, Borrowed Life)>(1994)은 대만 뉴웨이브 중 일본 식민지 잔재를 다룬 첫 영화이다. 1990년대 대만 영화의 존재를 전세계에 알렸던 뉴웨이브의 성장에는 국민당 권위주의 통치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1980년대라는 정치적 사회적 배경이 있었다. 특히 1987년 계엄 해제 이후, 식민지와 해방을 (국가가 아닌) 개인의 기억에 의거하여 말하는’ <또오상> 같은 영화가 비로소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또오상이란 아버지의 일본어 발음이다. 주인공 또오상은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 일본식 교육을 받고 곧이어 국민당 권위주의 통치 속에 평생을 살았던, 그 시대 전형적인 대만인 아버지의 표상이다. 영화를 보면 느끼겠지만 주인공 또오상은 볼수록 문제적인 인물이다. 아들인 원지엔의 눈에 비춰진 또오상은 한편으로는 일생 가족에게 존중 받지 못하는 무능한 아버지이지만, 다른 한편 영화 전편에서 우리는 원지엔이 또오상에 보내는 짙은 향수와 그리움에 마음이 애잔해진다. <또오상>은 감독 우녠전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아니, 그 세대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제사일지 모른다.

 

이토록 우스꽝스러울 만큼 무능한 아버지를 작가는 왜 그리 못내 그리워하는가. 이를 묻기 위해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 무엇이 또오상을 남자로서, 아버지로서 거세시켰는가이다. 그것은 바로 해방과 함께 찾아온 국민당 통치시대이다. 1987년 계엄해제 이후에야 비로소 정면으로 물을 수 있게 된 이 질문 국민당 통치시대가 대만인에게 무엇이었는가 은 대만이 일본 식민지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라는 질문과 대만인의 무의식의 깊은 층에 복잡하게 착종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의하여 보아야 할 지점은 언어이다. 해방 후 국민당의 네이션 빌딩 프로세스에서 철저하게 거세된 또오상의 무기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언어이기 때문이다. 일본어와 민난화(閩南話)를 말하는 또오상은 학교에서 표준 중국어인 푸통화(普通話) 교육을 받는 자녀들과의 대화에서 소외된다. 푸통화로 구축되는 대만의 근대성 속에서 말할 자격을 박탈당한 또오상은, 자기의 언어로 표상되지 않는 낯선 세계에서 철저하게 이방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왜 이 작품의 영문 제목이 ‘Borrowed Life’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가족들에게 타박을 받을 때마다 사라진 내 청춘이여라며 처량하게 읊던 그의 노래자락을 음미해 보는 것도…….

 

언뜻 보면 또오상은 평범한 인물이다. 종종 한국의 아버지 상을 떠올리게 하는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국민당 통치 시대에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던 전복적 국민상이라는 점에서 또오상은 문제적인 인물이다. 한 개인의 아버지를 기억하는 잔잔한 작품 저변에 대만의 해방과 근대성을 향한 도전적인 시선이 무겁게 감지된다. ‘또오상의 문제성은 대만의 해방과 근대성의 문제성인 것이다.

 

 


백지운(白池雲)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중국 현대문학을 전공했고, 최근의 관심 주제는 동아시아 문화사상의 연쇄이다. 논저로는 “East Asian Perspective on Taiwanese Identity”(2010), 근대 중국의 아시아 인식의 문제성(2012), 네이션 너머의 통일 : 타고르의 내셔널리즘 비판의 아포리아(2015) 등 다수. 제국의 눈(2003), 일본과 아시아(2004), 리저널리즘(2008) 등을 공역했으며, 위미, 시간, 귀거래등의 중국 문학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영화와 포럼 : 해방과 제국의 잔영_대만'은 백지운(白池雲) 선생님의 강의로 8월 29일(토)에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진행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대만

강사 백지운(白池雲,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일시 8월 29일(토) 16시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관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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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해방

 

해방 70, 한국화교에 대한 이해

-의미 있는 사건과 진정한 해방을 위한 과제

 

왕언메이(王恩美)

대만국립사범대학 동아시아학과 부교수

 

 

한국에서는 1945 8 15일 이후를 ‘해방 후’라고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방’은 “어떤 대상을 억누르거나 얽매었던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제 지배로부터 풀려난 일”을 가리킨다. 이렇듯 ‘해방’이라는 말은 한국에서 무척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일본의 ‘구속억압’에서 벗어났다는 상징적인 용어인 것이다.

 

올해는 해방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필자는 한국인에게 있어 해방 70주년 중 가장 의미가 있었던 일은 일제통치로부터의 해방, 국가의 설립, 민주화의 달성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한국인에게 의미가 있었던 세 가지 사건이 반드시 한국화교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화교에게 있어 1948년 한국 국가 수립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새로운 억압구속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정부는 화교를 외국인으로서 관리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박정희정부 시기에는 이 시스템은 더욱 강화되었다. 1987년 민주화 직후에도 한국사회는 화교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화교에게 있어 한국의 민주화가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한국인의 해방이었지 화교들의 해방은 아니었다. 한국인은 독재ㆍ권위주의 정권의 억압에서 풀려난 해방에 젖어 자신들이 화교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민주화가 한국화교에게 영향을 발휘하는 것은 김대중정부 이후이다.

 

그렇다면 한국화교가 한국에서 사는 70년 동안 가장 의미 있었던 일은 무엇일까?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 중 가장 의미 있었던 사건은 1992한중수교’, 1997 IMF경제위기, 2002년 영주자격과 2005년 지방선거 참정권 부여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들은 한국화교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 사건들이 한국화교에게 진정한 해방을 안겨줬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한국화교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과제들이 남아있다.

 

이번 강연에서는 해방 70주년을 맞이해 위에서 거론한 세 가지 사건이 한국화교에게 있어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를 살펴보고, 한국화교가 ‘구속억압’에 벗어난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제들이 남아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IMF경제위기는「외국인토지법」개정, 영주자격ㆍ지방선거 참정권 부여는 재일동포 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다. 이번 강연에서는 특히 재일동포의 문제가 어떻게 한국화교에게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재일동포의 담론구조가 한국화교의 담론구조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밝힘으로서 한국의 피해자의식가해자의식의 구조와 과거사반성문제에 대해 토론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재일동포와의 비교를 통해 한국에서 한국화교의 문제를 거론할 때 얼마나 그 특수성과 역사성이 무시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화교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어떤 과제가 남아있는지를 생각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해방 70주년을 맞이한 올해가 한국화교에게 있어 ‘해방’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왕언메이(王恩美)

: 대만사범대 부교수. 동아시아 근현대사, 화교사를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동아시아 현대사 속의 한국 화교』(2013) 등이 있으며 한국에서 발표된 논문으로 「아시아민족반공연맹의 주도권을 둘러싼 한국과 중화민국의 갈등과 대립, 1953-1956」『아세아연구』56권 3호(2013), 「한반도 화교들의 한국전쟁」『역사비평』91호(2010) 등이 있다.

 

  '강좌 : 주변에서 바라 본 해방-화교'는 왕언메이 선생님의 강의로 8월 7일(금) 19시에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진행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화교

강사 왕언메이(대만사범대)

일시 8월 7일(금)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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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8. - 11

해방 분단 70년 평화기행

Peace Tour

 

  2015년 평화기행은 안산과 서울 일대의 국가폭력(인권탄압) 현장과 화천·철원의 비무장지대와 동두천의 주한미군 피해현장을 찾아간다.

 

  화천·철원·동두천은 분단과 전쟁의 상흔이 생생히 남아있는 비극적 현장이자 대규모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냉전의 최전선’이다. 화천 베트남 참전기념관의 깨어진 조각상을 통해 여전히 진행 중인 베트남전쟁을 둘러싼 기억투쟁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끊어진 금강산전기철도교량·평화전망대·승일교·노동당사를 둘러보는 길 위에서는 해방의 꿈을 산산히 부셔버린 분단과 전쟁의 아픈 상처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폐허로 버려져 있는 기지촌여성 성병검사소, 이름 대신 번호가 새겨진 나무 묘지석이 줄지어 늘어선 초라한 기지촌여성 공동묘지, 미선이 효순이 참사현장에 새워진 미군추모비는 동두천과 양주 지역에 저마다 간직하고 있던 억울한 사연을 들려줄 것이다. 또한 분단현장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민통선마을 사람들과 지뢰피해주민들, 현장 활동가들의 가슴 아픈 사연도 듣게 될 것이다.

 

  평화기행은 국내외 연구자와 활동가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함께 분단과 전쟁의 비극적 현장을 둘러보며 분단 극복과 한반도 평화운동의 방향을 고민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프로그램

 

8.08 학술행사  "해방분단 70년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

서울 l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09:00 - 18:00

 

※ 순서

사회  박래군(인권재단사람), 홍승혜(연세대 교수)
● 환영사  김성보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오웬밀러 (런던대 교수)

 

● 세션 1 10:00-12:00 동아시아 전후 질서와 한반도 분단체제, 그리고 역사전쟁


    사회 : 양미강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발제1 :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와 한반도 - 이삼성 한림대 교수
    발제2 : 역사교과서 논쟁과 뉴라이트의 역사인식 -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발제3 : 북조선의 분단체제와 조선(한국)전쟁 – 수지김 럿거즈 대학 교수


12:00-13:00 점심식사


● 세션2 13:00-15:00 해방·분단 70년,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
     사회 : 유영주 미시간 대학교수
     발제1 :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 변화와 동아시아 군사갈등 – 서재정 교수
     발제2 : 한국 정치의 우경화와 대중적 극우단체의 등장 –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발제3 : 남한의 평화운동과 통일운동  - 참여연대 박정은 협동사무처장


● 세션 3 15:30-17:30 분단 그리고 전쟁을 거부하는 이들
     영상 : Women Cross DMZ 기록 영상
     초대 : 임재성(병역거부자), 제인진 카이젠(영화감독), 리정애(조선적 재일교포)

 

* 한영 동시통역 제공됩니다. 프로그램 중 일부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8.09 - 11 평화기행

1일차 8월 9일(일) : 안산, 서울

2일차 8월 10일(월) : 철원, 화천

3일차 8월 11일(화) : 철원, 동두천, 양주

 

※ 평화기행 코스 안내

● 1일차 8월 9일(일)  안산·서울
서울 경복궁역 집결 → 안산 단원고 → 기억저장소 → 안산합동분향소 방문(유가족과의 만남) → 의릉 전 중앙정보부 강당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 해산

 

● 2일차 8월 10일(월) 화천·철원
서울 경복궁역 집결 → 화천 베트남 참전기념관 → 화천 꺼먹다리 → 철원 승일교 → 철원 금강산전기철도교량 → 유곡리 통일촌(민통선마을 주민과의 간담회) → 철원 두루미평화관(지뢰피해자와의 간담회)

 

● 3일차 8월 11일(화) 철원·동두천·양주
철원 노동당사 → 철원 월정리역 → 평화전망대 → 동두천 기지촌 여성 성병검사소(기지촌 활동가 간담회) → 상패동 기지촌여성 공동묘지 → 양주 효순이 미선이 참사 현장 → 해산

 

 

* 8월 8일과 9일 숙박은 개별신청자에 한해 제공합니다.

 

참가비

● 공동주최 단체 회원

전일정 참가시 10만원 / 학생가 7만원  (부분참가 : 8일 1만원, 9일 2만원, 10-11일 7만원)

 

● 비회원

전일정 참가시 15만원 / 학생가 10만원 (부분참가 : 8일 1만원, 9일 3만원, 10-11일 11만원)

 

※ 입금계좌

우리은행 1002-185-222333 (예금주 : 이지혜)

 

 

>>> 참가신청 바로가기 (선착순 70명)

 

 

 

 

공동주관   인권재단사람 참여연대 역사문제연구소 ASCK(한반도문제를걱정하는학자모임)

공동주최   (사)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4.9통일평화재단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시민평화포럼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천주교인권위

 

 

문의  2015평화기행 준비위원회 (02-723-4250, 2015peacetour@gmail.com)

        연구소에 곧바로 연락을 주셔도 됩니다.

        (02-3672-4191, kistory@kistor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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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해방

 

'사랑과 맹세'에서 '자유만세'로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정병욱

 

  해마다 8월이 되면 동아시아는 기억의 홍수에 잠긴다. 조선과 타이완을 식민지로 삼고 중국과 동남아시아 일부를 점령했던 일본이 1945년 8월 15일 연합군에 항복했기 때문이다. 올해처럼 10년 단위의 주년에 되는 해는 더욱 기억이 범람한다. 올해도 식민통치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끊임없는 저항을 상기하는 자료와 증언 보도가 이어질 것이다. 연례행사로서 해방의 날이 거듭되면 될수록 ‘해방’에 무뎌지는 것은 왜 일까? 그 상투성에 하도 지쳐서 더는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늘날 우리의 무기력함이 반영된 것인지 모르겠다.

 

 


  무감각과 무기력을 넘어 ‘해방’을 새롭게 보기 위해 당시로 돌아가 다양한 사람들의 해방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8월 15일은 동아시아의 누군가에게 해방의 날이었지만 누군가에겐 패전의 날이었으며, 누군가에겐 기쁨이자 희망, 누군가에겐 굴욕이자 절망의 날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간단치 않았다. 지나고 보니 해방이 아니라 또 다른 지배와 피지배의 시작인 경우도 많았으며, 희망과 절망은 교차했다. 많은 사람들은 꿈과 불안을 안고 위기와 기회의 강을 건넜다. 그 경험은 국가나 지역별로 나누어지기도 하지만 같은 지역 안에서도 사람마다 달랐다. 작지만 다양한 ‘해방’을 복원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보자.

 

 

 

  1945년 5월 식민지 조선의 경성에서 영화 ‘사랑과 맹세(愛と誓ひ)’가 개봉됐다. 가미카제 특공대를 선전하는 내용으로 “현존하는 일제시대 선전영화 중 가장 노골적인 군국주의 영화”로 평가 받는다. 이 영화는 이마이 타다시(金井正)와 최인규(崔寅奎)가 공동 감독한 것으로 알려졌고, 최인규도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했다. 그로부터 채 2년이 되지 않은 1946년 10월 서울에서 최인규가 감독한 ‘자유만세’가 개봉됐다. 독립운동가의 투쟁을 소재로 한 영화로 크게 히트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 사이 8.15 해방을 감안하면 내용 변화는 당연하더라도 같은 사람이 감독했다니? 더욱이 관객의 격한 반응은 또 뭐냐, 집단 기억 상실? 아니면 이러 의문을 품는 현재의 우리가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당시 시대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영화를 보면서 해방 공간으로 들어가 보자.

 

  우선 감독 최인규의 변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 사실 이런 변신이야 근현대사에서 너무 자주 봐왔고 대부분의 사례가 그러하듯이 당대부터 지금까지 한편에서 나름의 변명과 옹호가, 다른 한편에선 이런 저런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대조적인 주장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해방 전후 영화계의 상황, 이후 현대사의 흐름과 식민지 기억을 둘러싼 경쟁을 파악할 수 있다. 나아가 비판하는 측과 옹호하는 측 대부분이 함께 공감하는 ‘속죄 영화’론, 즉 최인규가 식민지 시절 친일 영화들을 찍었던 죄를 씻기 위해 독립운동 영화를 찍었다는 주장에 의문을 가져보자. 영화를 보면 볼수록 변한 건 최인규가 아니라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최인규에게 ‘해방’은 무엇이었을까?

 

  다음으로 격하게 반응한 관객은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가? 자유만세는 해방 이후 상영 영화 중 흥행 수입 제2위였다거나 외화의 공세 속에서 ‘조선 영화’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심어줬다는 보도들로 볼 때 관객의 호응이 뜨거웠던 것 같다. 만원 관객에 대해 ‘속죄 의식’의 발로라는 해석도 있다. 항일운동 영화에 열광하면서 식민지 시절 협력하거나 굴종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삶에 대한 자책감을 씻으려 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웃고 손뼉 치며 울었던 관객들의 속마음을 알 길 없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들이 본 영화가 항일영화인지 의문이 든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과 의식을 갖고 영화를 보거나 평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당시 관객들에게 영화는 무엇이었는지, 그들에게 해방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영화를 통해 알아보자.

 

 


 

정병욱

: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교수. 한국근대사 전공으로, 경제사, 에고도큐먼트 등의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식민지 불온열전』, 『한국근대금융연구-조선식산은행과 식민지 경제』가 있으며, 엮은 책으로 『식민지라는 물음』, 『일기를 통해 본 전통과 근대, 식민지와 국가』등이 있다.

 

  '영화와 포럼 :해방과 제국의 잔영-한국'은 정병욱 선생님의 강의로 7월 18일(토)16시에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진행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한국

영화 《사랑과 맹서》(최인규 감독, 1945)

        《자유만세》(최인규 감독, 1946)

강연 정병욱(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일시 7월 18일(토) 16시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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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해방

 

오키나와 전후 70:

사람들이 만드는 민주주의의 발자취

  모리 요시오(森宣雄)

 

  오키나와전의 특징은, 일본 정부가 본토 방위·평화 교섭의 시간을 벌기 위한 버림돌로서 오키나와에서 지상전을 치르게 하고, 이에 맞서던 미군이 일본 본토 공격을 위한 거점으로 상륙과 동시에 기지 건설과 점령을 개시한 점에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버림돌·점령>. 그 결과, 오키나와 주민은 이중적 의미에서의 난민이 되었다. 하나는 전쟁으로 인해 보금자리에서 쫓겨나 주민이 미군 점령 하의 난민·포로가 되었다는 의미에서. 다른 하나는 일본 정부에 의해 국가의 방위 대상에서 제외되고 강화 후에도 미군 점령 하에 방치되어 향토에 있으면서도 지역 사회가 통째로 국가로부터 내쫓겼다는 의미에서.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점령지 그것이 전후 오키나와의 출발점이었다.

 

  1972년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로 오키나와전 이후의 군사점령체제를 계승한 미군통치체제는 끝났다. 1965년에 전후 최초로 오키나와를 찾은 일본의 총리대신, 사토 에이사쿠(左藤榮作)오키나와의 조국 복귀가 실현되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전후는 끝나지 않는다고 연설했다. 일본국 입장에서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키나와 전후사의 출발점을 이룬 또 하나의 요소, 버림돌 정책도 1972년 일본 복귀로 일단락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끝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 의문은 지금 오키나와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확신처럼 오고가고 있다. 그리고 전후 70년을 맞이하는 바로 지금, 오키나와전 이래의 <버림돌·점령> 체제를 끝내려고, 오키나와 사회는 All 오키나와의 태세로 자치와 평화의 요구를 전체 규모로 전개하고 있다. 오키나와 입장에서 전후의 끝이란 미일 양국에 의한 <버림돌·점령> 체제가 끝날 때 바로 그 때 비로소 도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키나와전 최대의 피해자는, 사람 수로 말해도 오키나와 출신자 12, 縣外 출신 일본군 65,000, 미군 12,000, 향토·생활의 터전이 철저히 파괴된 피해의 질로 보아도, 오키나와 민중이었다. 오키나와전의 주역은 오키나와 민중이다. 그리고 그 오키나와 전의 유산으로서 <버림돌·점령>의 전후사를 끝낼 수 있는 자, 그 주역 역시 오키나와 민중에 다름 아니다. 미일 양국의 정부와 국민이 <버림돌의 점령지>로서 오키나와에 대한 군사지배를 계속하는 가운데서, 어떻게 주민의 의사를 모으고, 표현하며, 연대의 테두리를 넓히고, 군사지배의 처지로부터 벗어날까 그 갈등의 궤적이 오키나와 전후사를 형성했다.

 

  이번 교류의 자리에서는 국가로부터 난민으로서 버려진 오키나와 사람들이 70년의 시간을 들여 어떻게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자력으로 획득해 왔는지, 그 발자취를 개관하고자 한다. 그 역사와 거기에서 쌓여 온 가치관은 현재, 나고시(名護市) 헤노코(辺野古)에서의 기지 건설문제를 둘러싸고 오키나와 사회와 일본 정부가 20년 동안 첨예한 대립관계에서 평행선을 걷고 있는 커다란 배경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지금 오키나와 사회는 군대(미국의 패권)에 의지하지 않는 평화를 바라며 여러 외국 사람들과 이어지고자 날마다 모색을 거듭하고 있다. 2차 대전 후 한국 사람들의 발자취와 오키나와의 발자취는 미래를 향해 손을 맞잡을 수 있을까? 부디 한국의 여러분들께 지혜를 얻고 싶다.

 

 


모리 요시오(森宣雄)

: 동지사대학 연구원. 오키나와 근현대사, 대만사, 역사철학 등을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のなかの革命: 沖縄戦後史における存在解放(2010), 台湾日本: 連鎖するコロニアリズム(2001), 臺灣大地震: 1935年中部大震災紀實(吳瑞雲과 공저, 1996) 등이 있으며 엮은 책으로 『「ぐるみ闘争はどう準備されたか: 沖縄目指あまへの(烏山淳과 공편, 2013), 現代沖縄歴史経験: 希望あるいは未決性について(冨山一郎과 공편, 2010), 戦後初期沖縄解放運動資料集(国場幸太郎과 공편, 2005) 등이 있다. 기타 논문 다수.

 

  '강좌 : 주변에서 바라본 해방-오키나와'는 모리 요시오(森宣雄) 선생님의 강의로 7월 13일(월)에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진행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오키나와

강사 모리 요시오(森宣雄, 동지사대)

일시 7월 13일(월) 19시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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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  

 

 

영화와 포럼: 해방과 제국의 잔영

 

    제국의 시대에도 해방의 가능성은 다양한 형태로 분출한다. 그런 한편 해방 이후에도 제국의 잔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해방과 식민이라는 두 역사적 축이 서로 교차하는 양상을 포착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해방의 가능성과 제국의 잔영이 교차하는 양상을 몇 편의 영화를 통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1945년 7월에 ‘친일영화’ <사랑과 맹서>를 공개한 최인규는 1946년에 ‘광복영화’ <자유만세>를 만들었다. 이 당혹스러운 널뛰기는 도대체 무엇일까? 제국으로부터 삶을 ‘빌려온’ 한 개인은 해방 이후에 어떤 삶을 살면서 해방을 받아들였을까? ‘토오상(아버지)’이라는 일본어처럼 발음되는 <多桑>(우녠전, 1994)을 볼 것이다. 그렇다면 제국의 중심지였던 일본에서는 패전 이후 어떤 삶들이 이어졌을까? 그리고 그 삶들을 옭아매던 제국의 잔영은 어떤 형태로 존재했는가? <돼지와 군함>(이마무라 쇼헤이, 1961)을 보고 이를 생각해 보자.

 

한국

영화 《사랑과 맹서》(최인규 감독, 1945)

        《자유만세》(최인규 감독, 1946)

강연 정병욱(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일시 7월 18일(토)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타이완

영화 《多桑》(우녠전 감독, 1994)

강연 백지운(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일시 8월 29일(토)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일본

영화 《돼지와 군함》(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1961)

강연 히라사와 고(영화평론가)

일시 9월 20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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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  

 

강좌: 주변에서 바라 본 해방

 

    해방이란 어디에나 있고 또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해방의 이러한 속성에 대한 무감각이다. 해방이 배타적인 소유물로 인식되면서 다양한 해방의 모습들이 경계선 안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해방이 마치 경계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처럼 인식되면서 해방의 상상과 그 상상의 실현이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진 것이다. 이 무감각을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누구의 해방인가”라는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주변’을 감각하다보면 경계가 먹어버린 가능성이 발견될 수 있고, 그 발견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오키나와, 화교, 재일조선인처럼 주변으로 인식되던 곳에서의 해방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해방은 어떤 상상을 가능하게 할까? 그 상상을 통해 우리는 어떤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해방을 감각하는 것이 바로 해방을 위한 방법인 것이다.

 

오키나와

강사 모리 요시오(森宣雄, 성토마스대)

일시 7월 13일(월)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화교

강사 왕은미(王恩美, 대만사범대)

일시 8월 7일(금)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재일조선인

강사 이성(李誠, 한신대)

일시 9월 중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 9월 일정은 추후에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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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  

 

 

세미나 : '해전사' 다시 읽기

 

    ‘해방’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힘을 지녔던 시기가 있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해방 몇 주년’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출간되어 80년대 내내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이번 <세미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중심으로 주로 80년대에 형성된 ‘해방’에 관한 텍스트들을 꼼꼼하게 읽어보고, 거기서 ‘해방’이 어떤 문체로 서술되며 어떤 의미들의 연쇄를 만들어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 텍스트들이 등장하게 되는 시대적인 맥락도 동시에 고려하기는 하지만, 한 시대를 보여주는 ‘증거 자료’로 그 텍스트들을 보기보다 오히려 그 텍스트가 시대에 개입한 힘을 그 텍스트 자체에서 읽어내려는 작업이 중심이 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하는 ‘역사 서술’이라는 행위의 가능성을 ‘실증’과는 다른 차원에서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기도 하다.


일정 4월~8월 *매월 첫째 주 금요일(변동 가능)

문의 후지이 다케시(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takeshifj@hanmail.net

 

* 7월 모임(변혁운동 속의 '해전사')은 7월 3일(금)에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예정되어 있습니다.

* 8월 모임('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시선')은 향후에 공지해드릴 예정입니다.

* 관심있는 분께서는 위의 후지이 다케시(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에게 문의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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