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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영화와 포럼; 맛보기 에세이] 또 하나의 전후 일본사를 위해 (히라사와 고, 영화연구자) 또 하나의 전후 일본사를 위해 히라사와 고(平沢剛, 영화연구자) 전쟁 직후의 일본 영화라면 전후 민주주의, 반전을 주제로 한 영화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영화는 GHQ의 점령 하에서 1945년부터 1952년까지 검열이 이루어졌다. 그 때문에 이 시기에는 국가주의를 예찬하는 내용이나 사극 등의 장르가 금지되었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영화가 나왔으며, 검열 해제 후에 전쟁을 주제로 하는 영화가 잇달았다. 그 중에서 구로자와 아키라(黒澤明), 기노시타 게이스케(木下恵介), 이마이 다다시(今井正), 신도 가네토(新藤兼人) 등 좌파 영화인에 의해 많은 걸작이 만들어졌으며, 일본의 전전(戰前) 군국주의의 철저한 비판을 통해 새로운 전후 일본의 방향성이 제시되어 갔다. 그러.. 더보기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강좌; 맛보기 에세이] 재일조선인에게 해방이란 무엇이었는가?(이성, 한신대)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해방 재일조선인에게 해방이란 무엇이었는가? - 해방 70년을 맞이하여 - 이 성 (한신대) 특별영주권을 가지는 재일조선인 인구는 현재 약 38만 명 정도다. 과거 최대 65만 명에 달했을 때도 있었지만 그 후 계속 줄어들고, 21세기 들어서는 연간 약 1만 명 가까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대로라면 40년 후에는 재일조선인은 ‘자연소멸’ 될 것이라는 주장도 공공연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서 본국 국적 유지에 집착하다간 재일조선인이 소멸될 것이 뻔하므로 적극적으로 일본국적을 취득해서 ‘조선계 일본인’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재일조선인이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다만 이미 귀화 등을 통해 상당수의 재일조선인이 일본국적을.. 더보기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강좌; 후기] 해방-화교편 (김선호) 해방 - 화교편 김선호(2015.8.26) 차이나타운 내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해외여행 중 일본에서 차이나타운을 본 이후다. 공교롭게도 일본의 3대 차이나타운을 모두 가보게 되었는데, 이 가운데 나가사끼의 차이나타운은 규모도 제법 크고 2대, 3대째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제법 많았다. 그런데 인천공항에 들어와 생각해보니 일본에 비해 인천의 차이나타운은 보잘 것 없었다. 무엇보다 남아있는 화교들이 별로 없었다. 전세계 어디에나 있는 현대적 공간이 맥도날드라면, 전세계 어디에나 있는 근대적 공간은 차이나타운이다. 뉴욕에도 있고, 베트남에도 있고, 런던에도 있고, 중국의 반대편 멕시코에도 있다. 물론 해방전 한국에도 8만명이 넘는 화교가 살았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화교는 겨우 2만명을 헤.. 더보기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영화와 포럼; 맛보기 에세이] 해방으로 시작된 실어증 (백지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해방 해방이 가져온 실어증 2015.8.27. 백지운(白池雲) 동아시아에서 제2차 대전의 종결을 알린 8.15는 또 다른 억압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그 복잡한 현대사를 예고한다. 일제의 식민은 종결되었지만 한국, 일본, 대만의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반공’이라는 강력한 이념을 앞세운 냉전사가 시작되었다. 네이션 빌딩 프로세스 속에서 만들어진 국민들. 이들은 식민지 시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훈육되었고 식민지에 대한 기억과 서사 또한 국가의 네이션 빌딩 프로세스 속에서 새롭게 구축되었다. 1894년 청일전쟁의 패배로 일본의 식민지가 된 대만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1945년 일본 패망과 함께 해방을 맞았다. 대만을 경험해 본 한국 사람들이 가장 먼저 놀라는 것은 대만 사람들.. 더보기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강좌; 후기] 해방이 여는 것, 열림이라는 해방 (석민구)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해방 해방이 여는 것, 열림이라는 해방 석민구 ‘해방’을 묻다 두 해 전쯤 처음으로 ‘만주출정가’를 들어보았다.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서로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던 와중 한 선배가 핸드폰으로 공연 영상을 찾아 틀었던 것이다. 무대랄 것도 없는 조촐한 장소에서 소박하게 노래를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처연함과 결기어림이 섞여있는 듯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핸드폰의 조야한 음질마저도 그런 미묘한 정서를 돋우는 느낌이었다. 독립운동을 위해 새벽녘 이북의 추위를 마주하며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향하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앞부분의 노랫말에서는 처연함이 느껴졌지만, ‘해방의 그날까지 총칼을 들고 나가 목숨 바쳐 싸우겠다’는 내용의 후렴구는 강한 결의로 가득했다. 적어도.. 더보기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답사; 후기] 해방의 마을로 답사 소감문 (송윤희)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해방 '해방의 마을로' 답사 소감문 송윤희 며칠 전에 한홍구 선생님 강의를 들었다. ‘노덕술(독립운동가를 체포하고 밀고하고 고문한 사람)’에서 ‘이근안(민주화 운동하시던 분들을 고문하던 전기고문기술자)’으로 이어지는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화도 나고 나는 참 모르는 게 많구나 싶었다. 그래서 ‘해방의 마을로’ 답사 연수가 있어 참여하게 되었다. 순간순간 공간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연구원님들의 설명을 들으며 지난 역사의 현장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랐지만, 역사의 현장으로 온 ‘남산’은 처음이었다. 일본공사관, 총독 관저, 조선총독부, 중앙정보부로 이어지는 모습이 참 공포스러웠다. 공간이든 사람이든, 그것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는 변하지 .. 더보기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답사; 후기] 해방의 마을로 답사 소감문 (정명섭)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해방 '해방의 마을로' 답사 소감문 정명섭 공간은 기억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남산이라는 공간 역시 마찬가지 일 수밖에 없다. 케이블카와 남산타워, 사랑의 자무쇠로 알 잘려진 남산이 우리 역사 속에서 어떤 존재였으며, 그리고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답사에 운 좋게 참여하게 되었다. 충무로 역에 모여서 남산을 향해 걸어가면서 답사가 시작되었다. 맨 처음 들린 곳은 통감관저 터였다. 강화도 조약이후 조선에 발을 뻗게 된 일본은 공사관을 세웠다. 처음 세워진 공사관은 1882년 임오군란 때 불탔고, 새로 만든 공사관 역시 2년 후의 갑신정변 때 불타버리고 말았다. 이후 일본은 남산 중턱에 새로 영사관을 지었다.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들이 남산 근처인 진.. 더보기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강좌; 맛보기 에세이] 해방 70년, 한국화교에 대한 이해(왕언메이, 대만국립사범대 동아시아학과)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해방 해방 70년, 한국화교에 대한 이해 -의미 있는 사건과 ‘진정한 해방’을 위한 과제 왕언메이(王恩美) 대만국립사범대학 동아시아학과 부교수 한국에서는 1945년 8월 15일 이후를 ‘해방 후’라고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방’은 “어떤 대상을 억누르거나 얽매었던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제 지배로부터 풀려난 일”을 가리킨다. 이렇듯 ‘해방’이라는 말은 한국에서 무척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일본의 ‘구속’과 ‘억압’에서 벗어났다는 상징적인 용어인 것이다. 올해는 해방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필자는 한국인에게 있어 해방 70주년 중 가장 의미가 있었던 일은 일제통치로부터의 해방, 국가의 설립, 민주화의 달성이라고 .. 더보기
<평화기행 참가자 대모집중!!!>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70주년맞이 평화기행 2015. 8. 8. - 11 해방 분단 70년 평화기행 Peace Tour 2015년 평화기행은 안산과 서울 일대의 국가폭력(인권탄압) 현장과 화천·철원의 비무장지대와 동두천의 주한미군 피해현장을 찾아간다. 화천·철원·동두천은 분단과 전쟁의 상흔이 생생히 남아있는 비극적 현장이자 대규모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냉전의 최전선’이다. 화천 베트남 참전기념관의 깨어진 조각상을 통해 여전히 진행 중인 베트남전쟁을 둘러싼 기억투쟁의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끊어진 금강산전기철도교량·평화전망대·승일교·노동당사를 둘러보는 길 위에서는 해방의 꿈을 산산히 부셔버린 분단과 전쟁의 아픈 상처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폐허로 버려져 있는 기지촌여성 성병검사소, 이름 대신 번호가 새겨진 나무 묘지석이 줄지어 늘어선 초라한 기.. 더보기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 해방; 영화와 포럼; 맛보기 에세이] '사랑과 맹세'에서 '자유만세'로 (정병욱,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역사문제연구소 해방 70주년 연속기획]해방 '사랑과 맹세'에서 '자유만세'로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정병욱 해마다 8월이 되면 동아시아는 기억의 홍수에 잠긴다. 조선과 타이완을 식민지로 삼고 중국과 동남아시아 일부를 점령했던 일본이 1945년 8월 15일 연합군에 항복했기 때문이다. 올해처럼 10년 단위의 주년에 되는 해는 더욱 기억이 범람한다. 올해도 식민통치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끊임없는 저항을 상기하는 자료와 증언 보도가 이어질 것이다. 연례행사로서 해방의 날이 거듭되면 될수록 ‘해방’에 무뎌지는 것은 왜 일까? 그 상투성에 하도 지쳐서 더는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늘날 우리의 무기력함이 반영된 것인지 모르겠다. 무감각과 무기력을 넘어 ‘해방’을 새롭게 보기 위해 당시로 돌아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