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비평> 2017 가을: 120호


 

 

역사문제연구소편 | 152x224(신국판452쪽 15,000원 | ISSN 1227-3627-73

책임편집정윤경 전화02-741-6125 영업담당정순구 팩스02-741-612

주소1049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중로 100, 506호 역사비평사 이메일yukbi88@naver.com

 

 

여말선초조선 건국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재해석

연속성의 관점에서 본 왕조교체

여말선초 시기에 대한 재해석은 이미 오래 전에 본격적으로 검토되었어야 할 주제이다예전부터 국내·외 학계 일각에서는 고려와 조선의 왕조교체를 중세와 근세의 분기점으로 보는 국내 주류 학계의 통설에 대하여 비판적 입장이 개진되어왔다하지만 토론이나 논쟁의 활성화로 확산되지는 못하였다역사비평이 지난 1년간 수차례의 필자회의를 거쳐 야심차게 준비한 이 특집은여말선초의 시대적 성격을 고려 후기로부터 조선 전기까지 이어지는 연속성의 관점 속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이 특집은 가을호 정치 세력과 통치 제도에 대한 검토에 이어 3호에 걸쳐 계속될 것이며다양한 매개를 통하여 몽골 간섭기에서 조선의 건국을 거쳐 조선 중기 사림의 집권으로 이어지는 기간 동안의 변화를 재조명하고자 한다특집이 진행되는 동안 가능하면 반론도 게재하여치열한 논쟁의 공간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21세기 민주주의는 안녕한가

프랑스미국남미에서 바라보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기회

올해는 러시아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다양한 학회와 매체가 러시아혁명을 집중 조명하는 기획을 준비하는 와중에역사비평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보고자 했다.우리는 러시아혁명이 민주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이었다고 보고오늘날 서양 사회에서 표출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그 대안에 대한 검토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인식하에서서양 주요 국가들에서 포착되는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을 돌아보기로 했다지역별 차이는 있으나 세계화시대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라는 상황 속에서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가 파국적으로 심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프랑스에서 인민전선의 강세작년 미국 대선에서 나타난 트럼프 민주당원의 역설을 지역사와 세계사의 맥락에서 검토하는 한편최근 난무하는 레토릭으로서의 포퓰리즘이 어떤 실체와 한계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라틴아메리카에서 나타난 세 가지 유형의 포퓰리즘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면서 살펴보았다.

 

 

기본소득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기본소득 이론의 역사적 검토와 한국적 적용

2017 장미대선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한때 이상론으로 치부되었던 기본소득의 아이디어가 전 세계적으로 유의미한 지지 세력을 얻고실제로 부분적으로나마 현실에 적용된 지도 오래다. ‘기본소득’ 논의는 지금까지 세 번의 밀물과 썰물을 타며 개혁의 수면에 올라왔다 가라앉기를 반복했고이제 네 번째 밀물을 타고 다시금 우리 시야에 유의미한 가능성으로 포착되고 있다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대안적 노력으로서세계사적 차원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발전해온 맥락을 살피고한국에서 거론되고 있는 기본소득 모형을 통계적으로 검토하면서 개념과 발전 가능성을 점쳐본다.

 

 

촛불의 힘은 계속되어야 한다

문빠’ vs ‘··’ 대립 너머 촛불혁명’ 지키기

이번호 문화비평은 촛불항쟁 이후 나타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상을 2000년 초 노사모까지 거슬러 올라가 되짚어보고 있다팬덤정치와 반지성주의라는 비난과 폄하 이면에는 죄의식과 증오의 정치라는 한계와 동시에 대중지성의 가능성도 엄연히 존재한다촛불항쟁의 성과가 과거의 항쟁들처럼 정치적 소용돌이에 묻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성찰은 중요하다.

 

 

 

차례

 

책머리에 헌법 개정을 앞두고

특집 1: 조선 건국 다시 보기연속성의 관점에서 본 왕조 교체 ① 정치 세력과 통치 제도

· 고려 말~조선 전기 정치 세력의 이해’ 다시 보기 송웅섭

· 고려 후기~조선 전기 수령 중심 군현 편제의 전개와 연속성 정요근

· 고려 말 조선 초 토지제도 개혁과 사회 변화 이민우

· 고려 말 조선 초 재정 구조의 연속성과 공납제 운영 소순규

특집 2: 21세기 민주주의의 위기

· 프랑스 민족전선의 인종정치와 반이민 담론의 형성 신동규

· 2016년 미국 대선과 민주주의의 역설 이찬행

· 라틴아메리카 포퓰리즘의 세 가지 유형과 민주주의의 연관성 박구병

기획기본소득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 서양의 기본소득 논의 궤적과 국내 전망 안효상

· 기본소득과 국토보유세등장 배경도입 방안그리고 예상 효과 전강수·강남훈

연속기획: ‘과학대통령 박정희라는 신화 

· ‘전국민 과학화운동과학기술자를 위한 과학기술자의 과학운동 문만용

· 박정희 정권 시기 저항 세력의 사회기술적 상상 김상현

역비논단 · ‘재독 한인 여성에서 한국계 이주민 여성으로재독한국여성모임의 정치운동 한운석

문화비평 · 촛불항쟁 이후의 시민정치와 공론장의 변화문빠’ 대 한경오’, 팬덤정치와 반지성주의 천정환

서평 · ‘해방과 통일’ 사이 후지이 다케시

―'한국전쟁과 수복지구'(한모니까푸른역사, 2017)

· ‘경성의 프리즘을 통해 식민지를 읽는 또 하나의 방법 염복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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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 37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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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에 수록된 글들은 역사문제연구소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책머리에

 

2016129일 대한민국 국회는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찬성 234대 반대 56으로 가결했다. 탄핵 가결과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었다. 그리고 2017310일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가결한 탄핵소추안을 재판관 전원일치의 의견으로 인용하였다. 대통령 박근혜가 파면된 것이다. 대통령은 내란과 외환의 죄 이외의 범죄에 대하여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제84조의 보호막이 사라지면서 검찰조사가 본격화되었고 박근혜는 결국 구속되었다. 최순실 사태, 즉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에서 비롯된 소위 탄핵정국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탄핵정국의 와중에도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였던 역사교과서 국정화작업은 계속 진행되었다. 20161128일 교육부는 국정 역사교과서의 현장검토본을 집필진과 함께 공개했다. 이후 약 한 달 간 인터넷으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학계와 교육현장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의 여러 문제점, 특히 졸속 제작으로 사실 관계 자체에 오류가 많고, 친일 문제를 축소 혹은 합리화하며, 시대착오적인 냉전의 이분법 및 대결 논리만을 강요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를 미화하는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컸으나, 애당초 의견 수렴 절차는 요식일 따름이었다. 요샛말로 답정너’(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너는 그냥 대답만 하면 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현장검토본에 대한 큰 수정 보완 없이 국정 역사교과서가 만들어졌다.

국정 역사교과서가 세상에 나왔지만 국민 다수의 여론은 계속 부정적이었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마저 국회 탄핵으로 직무를 정지 당하자 교육부는 일단 한 발 물러섰다. 20161227일 교육부장관은 국정 역사교과서의 적용 시기를 1년 유예한다고 밝혔다. 대신 2017년도에는 국정교과서를 희망하는 모든 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해 주교재로 사용하고, 다른 학교는 기존의 검정교과서를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2018년도부터는 국정과 검정을 혼용해 사용하겠다고 했다. 이는 2015년 이후 박근혜 정부가 강행한 역사교과서 국정화시도 때문에 발생한 모든 문제들을 각급 학교와 다음 정부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결정이었다. 실제로 연구학교 지정 과정에서 일부 학교에서는 혼란과 갈등이 커졌다. 최종적으로 단 1개 학교가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정 역사교과서를 주교재로 쓰는 연구학교 신청을 했으나, 이마저도 법원이 연구학교 지정학교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실제로는 중단된 상태다.

박근혜 정부는 왜 이렇게도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집착했을까? 또 왜 마지막까지도 무책임하게 모든 문제를 다른 데로 떠넘겨 국정 역사교과서를 여전히 논란거리로 놔뒀을까? 그 정확한 이유는 보다 깊이 있게 따져봐야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특정 세력에 의해 역사학과 역사교육이 휘둘리는 일이 앞으로 절대 없어야겠다는 사실이다.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은 인적·제도적 보완 등 다양한 방면에서 이루어져야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역사학계가 이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의미 있는 성과들을 내서 일선 교육현장 및 시민사회와 꾸준히 소통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역사문제연구37호의 첫 번째 특집 <‘국정 교과서문제 이후 기억과 역사서술을 생각한다>는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 특집은 201610월에 있었던 역사문제연구소 창립 3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원고들을 수정 보완해서 묶어낸 것이다. 특집 소개글에도 나와 있듯이 심포지엄이 열렸을 당시만 해도 탄핵정국이 진행되어 결국 대통령이 파면되고 국정 역사교과서가 사실상 폐기 국면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점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당장 국정 역사교과서를 비판하고 그 적용을 막는 것 못지않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역사학계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점을 역사문제연구소의 연구자들은 공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역사문제연구소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의 주제로 국정 역사교과서 이후의 역사학, 특히 기억과 역사서술의 문제를 잡은 것이다. 이 문제의식은 상황이 급변한 현재 더욱 절실해졌다. 역사문제연구37호 특집에 실린 4개의 논문이 향후 우리가 모색해야 할 방향을 완벽하게 제시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유의미한 고민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특집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특집 소개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역사문제연구37호의 두 번째 특집 <불안: 구조감지주체의 역사>20172월 역사문제연구소와 상허학회의 공동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원고들 가운데 절반 정도를 수정 보완해서 묶어낸 것이다. 최근 한국근현대사 연구의 특징 중 하나가, 국문학계에서 관련 연구들이 다수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학제간 벽이 높은 한국 학계의 현실로 인해, 역사학계의 연구와 국문학계의 연구가 그동안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못했다. 하지만 역사문제연구소는 30년 전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학제간 벽을 넘어서고자 노력했다. 역사학 연구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현재에도 이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때마침 국문학계에서 활발하게 근현대사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상허학회가 먼저 공동 학술행사를 제안해 와 이렇게 소중한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공동 심포지엄 당시 발표된 7편의 원고 중 역사문제연구에는 3편이 실렸는데, 나머지 4편은 상허학회에서 간행하는 학술지 상허학보에 곧 실릴 예정이다. 이 특집은 학제간 벽을 뛰어넘으려 한 첫 번째 시도의 결과물인 만큼, 앞으로 보다 심화된 소통과 교류가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특집의 주제(‘불안’)에 대한 설명과 구체적인 논문 소개는 역시 특집 소개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역사문제연구만의 특별한 기획으로 자리매김한 저작비평회, 이번에 노관범 교수의 기억의 역전전환기 조선사상사의 새로운 이해(소명출판, 2016)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책의 부제가 잘 보여주듯이, 이 책은 우리가 흔히 개항기라고 부르는 근대 전환기의 사상, 특히 유교사상의 존재양상과 이후 변용을 다루고 있다. 근대주의에 의한 유교 전통과 서양 근대의 이분법으로는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 다양한 논점들에 대해, 저자와 토론자, 사회자, 청중들이 3시간 동안 열띤 토론을 진행했다. 특히 토론 말미에 신채호의 ()’비아(非我)’의 개념을 둘러싸고 벌어진 열띤 논쟁은 사상사 연구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게 해준다. 유익한 말씀을 해 주신 저자, 토론자, 사회자를 비롯한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이번 37호에는 연구논문으로 4편의 논문을 실었다. 일제강점기 개성 시변(時邊)의 변동 고찰 (양정필), ‘제국의 브로커아베 미쓰이에(阿部充家)와 문화통치 (이형식), 1950년대 신해방지구개성의 농업협동화10월 농업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이준희), 195060년대 엘리트 지식인의 빈곤 담론 (황병주) 모두 엄격한 심사를 거쳐 수록된 논문들이다. 각 논문이 한국 근현대사 연구를 보다 풍성하게 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장신 편집위원이 지난 36호에 이어 이번에도 1970년대 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자료를 소개 및 해제하는 글을 실었다. 이번에 소개 및 해제한 자료는 19735월 제출된 <국사 교육 강화를 위한 건의내용(2)>으로서, 박정희 정부의 국정교과서 국정화 방침이 확정되는 시점에 나온 자료라는 면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 오늘날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와도 연관된 중요한 자료들을 발굴하여 학계에 소개하는 데 앞장서고 계시는 장신 편집위원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끝으로 역사문제연구편집위원회가 기획한 여성혐오관련 집담회를 지상 중계했다. 역사문제연구는 이미 201635호에서 혐오관련 특집을 기획한 바 있었다. 오늘날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는 다양한 혐오 문제들을 고민하면서, 그것을 좀 더 역사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이번 37호의 집담회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역사문제연구소 안팎의 젊은 역사연구자들로부터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문제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고, 무엇보다 연구자 스스로가 발 딛고 있는 연구 환경 속에서 발생하는 관련 문제들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했다. 이것이 혐오 문제에 대한 우리의 감수성과 문제의식을 키워주고, 역사적이고 학술적인 접근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번 집담회 기획에 앞장서 주신 장미현 편집위원과 참여해주신 모든 연구자들께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도역사문제연구는 여성혐오를 비롯한 혐오 전반의 문제를 계속 의제화 시켜나갈 것이다.

이 책이 독자들 앞에 들어갈 때쯤에는 이미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해 있을 것 같다. 이변이 없는 한 새 정부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기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국정 교과서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교과서 검정제도의 유지나, 관련 기관의 재편만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수는 없다. 이미 많은 제안들이 나오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조급해하지 말고 또 멈추지도 말고 우리의 지혜를 모아나가자.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처음 추진되었을 때 현재의 상황을 예측한 사람이 누가 있었나?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역사문제연구도 일관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길에 앞장서겠다. (오제연)

 

 

*** 목차

 

책머리에

 

특집 1: 국정 교과서문제 이후, 기억과 역사 서술을 생각한다

박정희정권기 역사교육학계의 민족주체성 인식과 국사교육 강화 / 이봉규

8, 90년대 진보적한국사학계의 올바른 역사인식이라는 자기규정 / 전영욱

국민에서 시민으로-새로운 동아시아사 인식의 가능성과 의미를 찾아서- / 신주백

역사교과서와 지역사, 기억의 굴절-‘울산공업센터의 역사와 기억을 중심으로 / 허영란

 

특집 2: 불안 - 구조, 감지, 주체의 역사

가면을 따라 걷기-전시체제기 어느 전화교환수의 일기(1941~1942)와 피식민지민의 내면’ / 양지혜

냉전과 ()월북 의제의 문화정치 / 이봉범

1960~70년대 증대하는 유동성과 불안, 그리고 위험 관리로서의 사회개발 / 정무용

저작비평회

유교 전통과 서양 근대의 이분법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노관범, 기억의 역전-전환기 조선사상사의 새로운 이해 , 소명출판, 2016.

 

연구논문

일제강점기 개성 시변(時邊)의 변동 고찰 / 양정필

제국의 브로커아베 미쓰이에(阿部充家)와 문화통치 / 이형식

1950년대 신해방지구개성의 농업협동화10월 농업협동조합을 중심으로 / 이준희

195060년대 엘리트 지식인의 빈곤 담론 / 황병주

 

자료소개

해제-국사 교육 강화를 위한 건의내용(2)/ 장신

 

집담회

젊은 역사연구자들이 바라본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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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2017년 여름호(119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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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에서는 1과 2를 추천해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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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체제와 87년 헌법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본다

시민사회의 힘과 요구는 어떻게 모아지고 배신당했나

 

 

2017역사비평여름호의 특집은 ‘87년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편집위원회가 87년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난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고 기념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정한 주제다. 다양한 매체에서 87년체제를 논의할 것이고, 그 논의는 새 정부 출범 이후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더 적극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또한 다양한 학회와 조직에서 6월 항쟁 30주년을 기념하는 사업들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역사비평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비평의 선택은 1987년의 상황을 다시 보는 것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되돌아봄으로써 87년체제의 문제를 그 출발점으로부터 찾고자 한 것이다. 87년체제의 문제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그 출발에서 문제를 찾는 시도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87년체제의 출발점을 그대로 분석하기보다는 이에 대한 논쟁을 시도했다. 87년체제의 출발, 그리고 개정된 헌법에 대한 평가를 의제로 삼았다. 역사학(박태균)과 정치학(강원택)의 관점에서 글을 쓰고, 이에 대해서 역사학, 정치학, 문학 전공자가 토론하는 좌담의 형식을 도입했다.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으로 폭발했던 시민사회의 힘과 요구대통령 직선제라는 이름으로 헌법에 반영되었지만, 여야 정치지도자들만의 밀실협의, 정치협상 과정에서 시민은 배제되고 말았다.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담보했던 87년 헌법은 30년의 세월 동안 한국 사회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준 것이 사실이다. 이제 또 다른 도약이 필요한 시점에서 87년체제와 87년 헌법을 어떻게 극복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지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한다.

 

 

북한지식인학생의 간첩사건 조작의 원형을 찾아서

50년 후 돌아보는 동백림 사건

 

 

올해로 동백림 사건이 50주년을 맞는다. 젊은 세대들은 동백림이라고 하면 무슨 숲 이름인가?’ 생각하겠지만, 동베를린을 부르는 한자식 이름이다. 냉전시대 동독 지역에 위치했던 베를린은 동과 서로 나뉘어 있었고, 동과 서를 구분하는 장벽을 넘다가 비극을 맞이한 동베를린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냉전시대 북한은 동독과 유난히 가까웠고, 서독에 거주하던 교포들 중에는 동베를린의 북한대사관을 통해 북한과 접촉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대다수는 분단으로 인해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었던 분들이다. 독일 교포들 중 일부가 이산가족을 만나기 위해 북한의 기관원들을 접촉하고 북한에 다녀오기도 한 일이 밝혀지자 이들을 간첩혐의로 체포한 것이 바로 동백림 사건이었다.

동백림 사건의 전체적인 내용과 역사적 의미, 논란의 쟁점을 정리한 글(오제연), 동백림 사건을 전후한 시기 한국과 독일의 경제협력 관계에 대한 글(이정민), 그리고 동백림 사건 수사 과정에서 나타났던 사회적 담론에 대한 글(임유경)까지 세 편을 기획에 담았다. 세 글 모두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중요한 내용이다. 특히 사회적 담론에 대한 글은 문학 전공자가 쓴 글인 만큼 당시의 상황과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들이 경험했던 1960년대와 유신시대를 다시 회고하게끔 해준다. 분단시대의 비극이 한반도라는 경계를 넘어 진행되었던 동백림 사건을 보면서, 최근에 무죄로 재판결이 있었던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박정희 신화는 어디까지인가

과학대통령 박정희라는 신화

 

연재기획 <‘과학대통령 박정희라는 신화>는 원래 박근혜 정부 마지막 해를 장식(?)하고자 작년 초부터 준비해오던 것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 기획이 끝나기를 기다려주지 않고 스스로 퇴장하는 길을 택했다. 이번 호에는 과학영농에 대한 글이 실렸다. 1970년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귀에 박히게 들었던 과학영농통일벼를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과학영농이라는 말이 언제 시작되었고 왜 유행했는지, 통일벼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박근혜 정부가 그토록 선전하고 싶어 했던 새마을운동이 성공했다면 과학영농도 그 실체가 있어야 했는데, 지금 농촌의 현실은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부 지역의 농촌으로부터 냉전적 보수세력이 표를 얻고 있다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과학영농에 대한 글은 역사비평이 앞으로 천착해볼 만한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져주고 있다.

 

 

국제사회에 대한 절실한 외침, 3·1운동을 준비한 또 하나의 탄환

몽양 여운형, 윌슨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가 발견되다

 

몽양 여운형이 서거한 지 70년을 맞는 올해, 3·1운동 직전 여운형의 활동을 규명하는 글을 특별기고로 게재했다. 특히 이 글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여운형과 관련된 소중한 자료를 발굴·소개했기에 더더욱 그 가치가 크다. 파리강화회의를 앞두고 윌슨 대통령의 특사로 아시아에 파견되었던 크레인에게 여운형이 보낸 간곡한 편지와, 윌슨 대통령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던 탄원서가 그것이다. 비록 이 탄원서는 윌슨 대통령에게 전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일제의 조선 침략이 조선 백성의 뜻을 짓밟은 무도한 행위임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은 미주와 일본 등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3·1운동으로의 대폭발을 준비하는 또 하나의 탄환이 되었다.

 

 

 

차례

 

책머리에 왜곡된 프레임과 좌절된 개혁 / 박태균

특집: 87년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87년 헌법의 개헌 과정과 시대적 함의 / 강원택

왜곡된 87년체제―󰡔민주화의 길󰡕 분석을 중심으로 / 박태균

좌담: 6월 항쟁 30주년, ‘87년체제를 평가한다

기획: 50년 후 돌아보는 동백림 사건

동백림 사건의 쟁점과 역사적 위치 / 오제연

한독 경제협력과 동백림 사건 / 이정민

불고지죄와 증언동백림 사건을 통해 본 권력의 히스테리와 문학 / 임유경

특별기고: 여운형 서거 70주년

    3·1운동의 기폭제여운형이 크레인에게 보낸 편지 및 청원서 / 정병준

연속기획: ‘과학대통령 박정희라는 신화

    ‘과학영농의 깃발 아래서박정희 시대 농촌에서 과학의 의미 / 김태호

역비논단 1956년 헝가리 사태에 대한 남한의 인식과 대응 / 김도민

    19568월전원회의 직후 중·소의 개입과 북한 지도부의 대응 / 이재훈

서평    학병세대의 탈식민 근대화 전략은 무엇이었나 

           ―『대한민국의 설계자들학병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김건우, 느티나무책방, 2017) / 이상록

     공간이 기억을 배반하는 신형 민족사

      ―『독일사 깊이 읽기: 독일 민족 기억의 장소를 찾아』(고유경, 푸른역사, 2017) / 전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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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2017년 봄호(118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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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역사를 담은 가짜 역사서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러시아, 일본, 그리고 한국의 위사(僞史)와 위서(僞書)


이번호 특집은 <위사(僞史)와 위서(僞書)>이다. 지난 20161년 동안 계속된 고대사 기획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다른 시각으로 자료담론의 문제를 바라보고자 했다. 한국의 고대사 관련 논란에 근거로 사용되고 있는 거짓으로 만들어진 사료들뿐만 아니라 일본과 러시아에서도 나타나는 비슷한 류의 사료들을 분석했다. 그리고 그러한 사료들이 거짓 역사를 만들어내는 데 어떠한 역할을 했으며, 거짓 역사는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방식을 분석하였다. 가짜 고대사를 만들어낸 가짜 역사’, ‘가짜 역사서는 고대사의 과제만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진 근대이후의 담론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 이번 특집의 공통적인 문제의식이다. 마침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한 오늘날, ‘가짜를 읽어내는 눈은 텍스트 그 너머, ‘가짜를 만들어낸 욕망과 이유를 향해야 한다는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박정희 신화는 어디까지인가

과학대통령 박정희라는 신화


이번호부터 3회에 걸쳐 진행될 연속기획 <‘과학대통령 박정희라는 신화>는 김근배, 최형섭·임재윤의 글 두 편으로 문을 열었다. 박근혜 정부가 초래한 국정 혼란에 대해 국민들이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현 상황은,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라고 흔히 여겨오던 성과들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재평가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정치·경제·사회 등의 영역에서 박정희 신화를 해체하고 새로운 역사 쓰기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데 비해, 박정희 시대의 과학기술에 대한 재평가는 잠잠한 편이다. 역사비평은 이렇게 박정희 신화에서 과학기술이 최후의 성역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박정희 시대의 과학기술계에 실제로 어떤 일들이, 왜 일어났는가? 박정희라는 이름에 가려진, 실제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여한 이들은 누가 있었는가? 박정희 시대에 이야기되었던 과학기술 진흥이 실제로 의미한 것은 무엇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가 오늘날

까지 한국 현대 과학기술의 아버지인 양 이야기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박정희 시대 과학기술에 대한 총론적 성격의 글 두 편을 시작으로, 여름호와 가을호에서는 과학기술계와 사회 일반의 움직임을 다룬 각론과 아울러, 당대와 오늘날 과학기술인들을 지배했던 과학기술 개발 담론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가 실릴 것이다.

 

 

급변하는 북중관계, 한중관계 대중의 프리즘으로 들여다보기

대중문화로 보는 중국의 남북한 인식


한국은 항상 북중관계의 동향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망사항을 현실화하는 현상(wishful thinking)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 중국의 대중매체는 북한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북한을 여행한 관광객들은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중국 시민사회는 남한과 북한에 대해 어떤 토론을 벌이고 있는지 등이 주요 분석 대상이 되었다. 중국공산당의 통제를 받는 관제 언론의 공식화된 입장이 아니라, 중국의 일반 대중들이 바라는 것, 원하는 것, 남북한의 이미지에 투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이를 통해 한국의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맞추어 고찰되곤 했던 북중관계가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는가를 추적하고자 했다. 이러한 접근은 북중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과 북한의 한국전쟁 당시 사상·심리전 양상과 사회과학의 현장

냉전의 사상·심리전, 한국전쟁을 만나다


<냉전의 사상·심리전, 한국전쟁을 만나다>는 주로 텍스트를 통해 반공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기획되었는가를 분석했다.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이 만든 텍스트들이 공산주의와 북한을 묘사하고 있는 방식, 전쟁을 전후한 시기 만화 속에 나타난 반공의 내용, 북한군이 점령했던 서울의 모습을 묘사한 글들이 미국에서 이용된 방식 등이 주요한 주제들이다. 여기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귀환포로 재교육장에 대한 분석이 더해졌다. 또한 한국전쟁이라는 현장을 희귀한 실험실로 삼아 수집된 사회과학 지식들이 어떤 식으로 미국의 학문 영역에서 정식화되었는지 살펴보는 한편, 그러한 학문적 행위가 전쟁 공간의 정치·선전 과제와 어떤 길항관계를 만들어 나갔는지 추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차례

 

책머리에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끝, 그리고 그 너머 / 박태균


특집: 위사(僞史)와 위서(僞書)

고대사파동과 식민주의 사학의 망령 / 조인성

환단고기의 성립 배경과 기원 / 이문영

벨레스서로 본 러시아의 위서와 21세기 유라시아 역사분쟁 / 강인욱

위서 비판에서 위서 연구로일본 위서의 검토 및 한국 위서와의 비교 / 김시덕

위서(僞書)를 말하다 / 박지현


연속기획: “과학대통령 박정희라는 신화

박정희 정부 시기 과학기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과학대통령 담론을 넘어서 / 김근배

최형섭과 한국형 발전모델의 기원 / 임재윤·최형섭


기획 1: 대중문화로 보는 중국의 남북한 인식

중국의 TV시사토론 속의 한국과 북한 / 백지운

중국 영화와 드라마의 '항미원조' 기억과 재현 / 김란

신비의 나라중국인의 북한 관광과 노스탤지어 / 주윤정


기획 2: 냉전의 사상·심리전, 한국전쟁을 만나다

냉전의 사회과학과 실험장으로서 한국전쟁미공군 심리전 프로젝트의 미국인 사회과학자들 / 김일환·정준영

사상심리전의 텍스트로서 한국전쟁자유세계로의 확산과 동아시아적 귀환 / 옥창준·김민환

전쟁 속의 만화, 만화 속의 냉전한국전쟁기 만화와 심리전 / 백정숙

수용소에 갇힌 귀환용사지옥도용초도의 귀환군 집결소와 사상심리전 / 전갑생


역비논단 

잊혀진 자들의 투쟁한국 성판매여성들의 저항의 역사 / 박정미


문화비평 

누가 촛불을 들고 어떻게 싸웠나2016/17년 촛불항쟁의 문화정치와 비폭력·평화의 문제 / 천정환


서평 

표지의 발견과 이미지의 생태학―『시대의 얼굴: 잡지 표지로 보는 근대(서유리, 소명출판, 2016)/ 박진영

서울의 역사로 순치된 식민지 근대 도시계획사의 불편한 진실―『서울의 기원 경성의 탄생 : 1910~1945 도시계획으로 본 경성의 역사(염복규, 이데아, 2016) / 김백영

유령을 통한 모더니즘의 해체―『베트남 전쟁의 유령들(권헌익 지음, 박충환·이창호·홍석준 옮김, 산지니, 2016) / 박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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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2016년 겨울호(117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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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대통령 선거와 미국 사회

― 보수파의 선거전략, 포퓰리즘과 반지성주의, 여혐까지 두루 검토

  역사비평 이번호 특집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이다. 세 편의 글은 모두 이번 선거의 특징을 역사적으로 성찰하였다. 특히 대통령 후보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트럼프 현상으로 나타나는 미국의 보수적 대중주의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가를 고찰하고, 힐러리가 당선될 수 없었던 역사적 배경을 분석했다. 투고된 글들에서 잘 드러나듯이, 이번 대선이 과거와 반드시 연속성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현대사를 통해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대선 구도가 그려진 배경을 이해하기에 좋은 논문들이다.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 ③ 세도정치기의 이질적 시공간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까지의 한국사를 재조명하고자 했다. 조선 후기에 대한 기존의 역사관에 비판적인 문제제기를 해보고자 한 것이다. 18세기가 그렇게 찬란했다면 그로부터 백 년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조선은 왜 식민지로 전락해야 했는가? 이것이 기획의 배경에 있는 근본적인 질문이었고, 마지막 기획에서 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여기에는 여러 답이 있을 수 있지만, 필자들은 18세기 말 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도시와 지방의 격차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정조와 19세기에 대한 기획은 이번 호에서 마감되지만, 내년에는 이 시기에 대한 연구가 축적되어 있는 한국문학 분야의 연구자들로부터 이 기획에 대한 비판적 비평의 ‘응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 ③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은 올해 『역사비평』을 가장 뜨겁게 했던 기획이었다. 첫 기획이 나갔던 2016년 봄호는 유례없이 큰 관심을 받았다. 이는 한국 사회의 고대사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준다. 물론 기획이 끝났다고 해서 고대사를 둘러싼 논쟁이 다 정리된 것은 아니다. 이 기획이 시작된 이후 ‘사이비역사학’으로 지칭된 그룹들이 모여 새로운 연합체를 만들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아마도 고대사를 둘러싼 논쟁의 제2라운드가 이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비평』 이번호에서는 민족주의 사학을 자칭하는 사이비역사학 측이 왜곡된 형태로 전유하고 있는 표상들로서 신채호와 단군, 백제의 요서 진출 등을 짚어냈다. 앞으로도 이어질 고대사 논쟁이 보다 합리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그 초석을 놓았다고 자평할 수 있었으면 한다.


도시로 읽는 1949년 이후의 중국 ③
  연속기획 <도시로 읽는 1949년 이후의 중국> 세 번째는 사회주의 시기 도시의 여러 양상들을 다룬다. 오랫동안 농촌을 근거지로 농민을 조직 동원하여 혁명에 성공한 중국공산당에게 도시는 매우 낯선 존재였다. 국공내전의 승리가 가까워진 1949년 3월 공산당은 공작 중점을 기존의 농촌에서 도시로 바꾸기로 결정하고, “소비와 향락, 부르주아와 제국주의자의 도시”를 “생산과 건설, 노동자의 도시”로 바꾼다는 방침을 정한다. 1950년대에는 농촌의 희생을 대가로 도시 지역 중공업에의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는 전략이 형성되었다. 이렇게 도·농 이원 분리에 기초한 발전 전략을 가능하게 했던 사회정치적 장치들이 ‘단위’ 체제와 ‘호구’ 제도였고, 이 제도들은 개혁기 들어서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변형된 형태로 유지되거나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따라서 개혁기 중국 도시의 여러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배태시킨 사회주의 시기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도시로 읽는 1949년 이후의 중국’ 세 번째는, 개혁기 도시의 여러 문제들의 기원이 되면서 동시에 개혁기와는 다른 이념과 논리에 의해 건설되고 작동되었던 도시의 여러 양상들을, 건국 초기인 1950년대와 60년대 베이징, 상하이, 선양, 판즈화 등 서로 다른 도시들의 사례를 통해 다루고자 했다.



차   례


[책머리에]

트럼프 당선이 주는 의미 / 박태균

[특집: 2016 대통령 선거와 미국사회]
과거에서 길을 묻다―1964·1972 대선을 통해 본 2016 미 대선과 민중주의 / 김정욱
조지 월리스의 부활―트럼프 현상의 연속성과 새로움 / 안병진
68세대의 주역에서 여성 대통령 후보로―힐러리의 도전, 미국의 선택 / 김인선

[연속기획: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 ③ 세도정치기의 이질적 시공간]
18세기 중반~19세기 전반 서울-지방 격차와 지식인의 인식 / 이경구
19세기 조선의 지식인 지형―균열과 가능성 / 조성산
‘근세’ 동아시아의 정치문화와 직소 / 배항섭


[연속기획: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 ③]
민족주의 역사학의 표상, 신채호 다시 생각하기 / 권순홍
단군―역사와 신화, 그리고 민족 / 이승호
민족의 국사 교과서, 그 안에 담긴 허상―4·5차 교육과정기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중심으로 / 장미애

[연속기획: 도시로 읽는 1949년 이후의 중국 ③]
중국공산당의 도시 접관 정책과 ‘신민주주의혁명’ / 이원준
사회주의 시기 상하이 도시 개조와 공인신촌―차오양신촌을 중심으로 / 김승욱
역사적 시각에서 본 중국의 도시 기층조직―거민위원회를 중심으로 / 윤형진
‘특권적’ 노동자계급의 창출―1950년대 초 선양시 테시구 노동경쟁 캠페인과 공인촌 건설 / 한지현
삼선건설과 판즈화―사회주의 시기 초고속 도시화와 그 이면 / 이현태

[문화비평]

‘역사전쟁’과 역사영화 전쟁―근·현대사 역사영화의 재현 체계와 수용 양상 / 천정환


[서평]
멸종 위기의 자본가? ―『자본주의 길들이기(장문석, 창비, 2016) / 장석준

중국 농민으로 상상한 제3의 길―중국의 감춰진 농업혁명(황쭝즈, 진인진, 2016) / 강진아
중국 고대사 연구자가 바라본 한국 고대사―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심재훈, 푸른역사, 2016) / 송호정
중국 중심 세계사에 대한 해독제―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김호동, 사계절, 2016) / 김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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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 36호가 나왔습니다.

 

본 역사문제연구는 역사문제연구소의 후원회원이 되어 받아보시거나, 시중의 서점을 통해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당연히 연구소에서는 전자를 추천해드립니다. :)

역사문제연구에 수록된 글들은 역사문제연구소 홈페이지(http://www.kistory.or.kr/search_articles.php)를 통해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책머리에: 『역사문제연구』 20년을 돌아보며

  올해 2016년은 학술지 『역사문제연구』가 탄생한 지 정확히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이번 『역사문제연구』 36호 ‘책머리에’에서는 이전처럼 특집이나 기획을 중심으로 수록한 글들을 소개하는 대신, 2016년 2월 『역사문제연구 회보』 59호에 필자가 쓴 「역사문제연구소 30년, 『역사문제연구』 20년」이라는 글을 조금 손질하여 다시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지난 20년 전 『역사문제연구』가 어떻게 처음 시작되었는지 또 이후 20년 동안 『역사문제연구』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 그 20년의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볼 것이다.



역사문제연구소 10년의 결과물 - 1996년 『역사문제연구』 창간

  역사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로 약칭) 창립 10주년이었던 1996년을 단 하루 남긴 12월 31일 학술지 『역사문제연구』가 탄생했다. 『역사문제연구』는 창간호에서 학술지가 만들어진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역사문제연구소는 창립과 함께 두 가지 목적을 제시하였다. 하나는 근현대사의 바르고 깊이 있는 연구를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런 연구성과를 대중에게 올곧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목적 중 지금까지 연구소가 주력한 일은 계간지 『역사비평』과 대중강좌 <한국사교실> 등을 통한 연구성과의 대중화 문제였다. 그만큼 1980년대는 역사를 바로보기 위한 갈증에 목말랐다. 이후 연구소에 소속한 유능한 전문 연구인력의 성과를 독자적으로 집약할 수 있는 전문 연구지(논문집) 간행의 필요성이 꾸준히 논의되었다. 자기 소리를 내야한다는 현실적 요청이기도 하였다. 이에 연구소 창립 10주년을 즈음하여 전문 연구지의 발행을 추진했던 것이다.”


  즉 ‘역사연구의 대중화’라는 연구소의 지향과 관련하여,『역사비평』을 통한 ‘대중화’와 더불어 전문적인 ‘역사연구’를 병행하기 위해 『역사문제연구』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학술지 이름도 처음에는 그냥『역사문제연구소 논문집』으로 하려고 했다고 한다. 


  『역사문제연구』의 창간이 단순히 ‘역사연구’와 ‘대중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겠다는 연구소의 의욕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는 창립 이후 역사문제연구소 10년 역사의 결과물이었다. 1986년 개소 직후 초창기 연구소 활동은 연구회원들의 세미나가 중심이 되었다. 1987년 연구소 내에 ‘연구실’이 독립된 단위로 설치되었지만, 이후에도 연구소의 활동은 여전히 연구회원들의 세미나가 중심이 되었다. 세미나를 통해 축적된 연구역량을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 구체적인 연구성과를 내는 데까지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1988년 말 정도가 되면 학계에서 소장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분과학문 별 연구회들이 조직되기 시작하면서, 연구회원들도 조금씩 연구소를 떠나게 되었다. 이에 연구소는 1989년 2월 상임연구원 제도를 도입하여, 연구원들을 중심으로 연구사업을 계획․추진하고 수준 높은 연구성과의 산출을 꾀하기 시작했다. 1990년 방기중 연구실장이 취임하면서 보다 체계적으로 상임연구원 제도가 갖추어졌고, 이후 상임/비상임의 구분과 통합 등 약간의 변동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연구원 제도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연구실 체제의 확립 과정에서 그동안 연구소가 간행하던 『역사비평』과 연구실의 관련성이 약화되었다. 또 분과학문 별 구심력이 더욱 강해지면서 연구소에서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많이 빠져나가 연구실은 역사전공자 위주로 축소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소, 특히 연구실이 돌파구로 찾은 것이 전문적인 역사연구 학술지를 발간하는 일이었다. 즉 연구자의 풀(pool)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실천적으로 요구되는 과제들에 일일이 대응하려면 외부의 명망 있는 연구자들에게 계속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며, 그러면 ‘내적인 연구역량’은 축적되지 않고 연구소는 겉모습만 외화내빈의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었다.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일단 차분히 연구소의 내적 연구역량을 쌓아 나가기 위해 전문학술지를 발간하고자 했다.


  연구실을 중심으로 연구소의 전문학술지를 간행하자는 구상은 1994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먼저 편집위원과 편집간사가 선임되었고 그들은 1994년 9월 경 몇 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한국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한 역사 일반을 다루는 전문 연구논문집으로서의 성격을 지향한다는 것, 연구소의 학문적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특집’을 중심으로 발간한다는 것 등이었다. 학술지의 간행은 1995년 하반기부터 1년에 1번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창간호 특집을 책임질 연구반 구성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논문집의 참신성 등이 문제가 되면서 간행시기가 연구소 10주년인 1996년으로 미뤄졌다. 그리고 드디어 1996년 12월 31일 『역사문제연구』가 창간되었던 것이다.

  창간호 특집인 ‘근대 한국의 지식인과 사상’은 방기중 부소장이 주도한 3년 공동연구의 성과였다. 이후 2호부터는 연구소의 각 분과(경제사분과, 운동사분과, 현대사분과)가 돌아가면서 ‘논문집특집연구반’을 구성해 ‘특집’을 맡았다. 또한『역사문제연구』의 초대 편집위원회에는 당시 소장, 부소장, 운영위원, 연구위원, 연구원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었다. 이러한 편집위원회 구성 방식은 이후 한동안 계속되었다. 학술지 지면 구성의 경우 창간호와 2호는 ‘특집’과 ‘논문’만으로 이루어졌고, 3호에는 그 외 ‘기고’와 ‘자료소개’ 코너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처음 『역사문제연구』가 간행되었을 때 외부의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고 한다. 여러 역사연구 단체에서 논문집을 발간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또 논문집을 내려는 의도가 뭐냐, 정말 특색 있는 논문집을 만들 수 있겠냐, 논문집이야 말로 ‘파벌성’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역사문제연구』의 기틀 마련 - 연구원 중심의 반년간 정기간행물화

  1996년 12월 31일 창간호 발행 뒤 정확히 1년 후 1997년 12월 예정대로 『역사문제연구』 2호가 간행되었다. 그러나 3호 간행은 1년 뒤가 아니라 1년 반 뒤인 1999년에야 이루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2000년대 초는 『역사문제연구』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시기다. 우선 그동안 1년에 1번이었던 학술지 간행이 2000년 4호부터 연 2회로 늘어났다. 연 2회(반년간) 출간의 정착은 『역사문제연구』의 발전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또한 여전히 연구소 주요 보직자를 망라한 편집위원회가 유지되었지만, 4호부터 편집위원회 내에 정병욱 연구원을 중심으로 한 별도의 편집팀이 꾸려지면서 사실상 연구원들이 『역사문제연구』의 기획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연구원들의 기획력이 강화되면서 학술지 지면 구성도 보다 다채로워졌다. 5호부터는 ‘심포지엄’ 발표나 ‘연구반’ 공동연구는 물론, 당시 막 시작된 ‘토론마당’을 지상중계하기 시작했다. 또 6호부터는 소통의 장으로 ‘광장’이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토론마당과 더불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연구방법론, 연구동향, 자료소개 등 다양한 내용의 글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서평’도 실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특집’, ‘기획’, ‘논문’, ‘광장’, ‘서평’ 등이 『역사문제연구』 지면의 기본 구성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광장’ 코너가 없어지면서 대신 ‘자료소개’나 ‘연구동향’ 코너가 부정기적으로 생기기도 했다.

  2001년 11월에는 『역사문제연구』가 정기간행물로 정식 등록을 마치고 7호부터 정기간행물로 발간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정기간행물 등록을 미루었던 것은 ‘일정함’과 ‘연속성’에 대한 고민어린 신중함 때문이었다. 정기간행물 등록과 더불어 『역사문제연구』는 명실공이 전문학술지로서 위상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또한 7호부터는 표지를 비롯한 책 디자인 전체가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이 디자인은 이후 13년을 지속하면서 『역사문제연구』의 얼굴로 각인되었다.

  2002년 8호부터 편집팀장이 박종린 연구원으로 바뀌면서 그동안 연구소의 주요 보직자들로 구성되었던 편집위원회가 전면 개편되었다. 그리고 『역사문제연구』는 연구소 2세대(주로 80년대 학번) 연구원들만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편집위원회에 연구소 외부 연구자들도 결합하기 시작했다. 보다 젊어지고 다양해진 『역사문제연구』 편집위원들은 『역사문제연구』가 역사학은 물론 인접 학문분야와의 적극적인 교류 속에서 다양한 역사연구 방법론과 역사이론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고 토론하는 장이 되도록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한국사학계에서는 다소 생경한 주제들이 인문학 연구자들의 공동연구를 통해 ‘특집’이나 ‘기획’으로 가시화되었다.

  그런데 이전과는 달리 2000년대 이후에는 연구소 자체의 공동연구가 단행본 형식으로 거의 외화 되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문제연구』가 제자리를 잡으면서 연구소 심포지엄 등의 연구성과를 『역사문제연구』에 게재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물론 더 본질적으로는 연구원 중심의 연구실 활동이 침체해 있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일례로 『역사문제연구』의 ‘특집’은 상반기의 경우 연구반의 공동연구를 외화하고, 하반기의 경우 정기심포지엄 결과물을 외화 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는데, 8호가 처음으로 ‘특집’ 없이 출간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는 당시 연구소 연구반 활동의 부진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동시에 『역사문제연구』 편집진의 기획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역사문제연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연구소의 연구역량과 활동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척도였다.

  2004년 12호부터는 이승렬 연구위원이 편집위원장을 맡아 새로운 편집위원들과 함께 『역사문제연구』를 이끌었다. 새 편집진은 각국의 역사인식을 비교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일례로 12호에는 총 7편의 논문이 실렸는데(서평과 부록 제외), 그 중 3편이 일본, 대만 등 외국 사례에 대한 외국 연구자의 논문이었다. 2006년 16호부터 다시 편집진이 크게 개편되어 류시현 연구원이 편집주간을 맡았다. 이때 해외편집위원이 처음으로 영입되었고, 2세대 연구원들 이외에 3세대(주로 90년대 학번) 연구원들도 조금씩 편집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들 새 편집진은 『역사문제연구』를 통해 새로운 문제의식과 연구방법론을 담고자 했던 그동안의 노력을 계속하면서, 이러한 방향성에 덧붙여 보다 자유로운 형식으로 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성과를 지속적으로 담아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시론적이지만 새로운 관점과 방향을 제시하는 글이나, 기존 연구성과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는 부분을 언급하거나 우리 학계가 놓치고 있는 외국의 사례에 주목한 성과물을 담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역사문제연구』, 등재지가 되다

  2006년 16호 간행 때 새로 꾸려진 편집진은 곧바로 2007년 17호 간행과 더불어 다시 한 번 완전히 개편되었다. 이는 『역사문제연구』의 한국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으로 약칭, 2009년부터 한국연구재단으로 통합) 등재신청 여부와 관련하여 연구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이어졌던 논란이, 마침내 등재신청을 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기 때문이었다. 『역사문제연구』의 학진 등재신청과 관련한 논란은 이미 2000년경부터 있었다. 등재신청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에서는, 학진 등재지 및 등재후보지에 실린 논문이 여타 지면에 실린 논문보다 유리하게 평가되는 상황에서 등재신청을 하지 않으면 『역사문제연구』에 지속적으로 양질의 원고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현실론을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당시 결론은 소위 ‘학진 등재지 체제’에 구애받지 말고 『역사문제연구』를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연구와 발표의 공간으로 살려 나가자는 원칙론으로 기울었다. ‘등재지 체제’가 강요하는 치열한 실적 쌓기 경쟁이 연구자들을 논문의 ‘대량 생산자’로 전락시키는 가운데, 연구의 독창성과 인문학․역사학의 생명인 긴 호흡이 사라지는 현실을 거부했던 것이다. 당시의 분위기와 고민을 반영해 2001년 7호의 ‘책머리에’는 “적어도 『역사문제연구』를 통해 소통의 장에 임하는 연구자들은 실적 쌓기 전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생각, 색깔, 냄새를 자유롭게 펼쳐 보이기 바란다. 정기간행물로 등록한 마당에 한마디 더 한다면 좀 더 불순하고 기존 질서를 어지럽히는, 난을 일으키는 글들이 나오기 바란다”는 소회를 피력했다. 

  그러다가 2004년부터 『역사문제연구』의 등재신청 문제가 다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등재신청의 필요성은 이전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다만 당시 연구소 내에 박사 연구원이 늘어나게 된 상황을 반영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전과 달리 원고의 수합문제를 원고 투고자의 입장까지 시야에 넣고 논의가 진행되었다. 즉 대학 전임 임용 등을 고려한다면 박사를 받은 연구자들이 비등재지에 투고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는 곧 연구주체의 재생산 문제와 직결된 문제였다. 『역사문제연구』의 등재신청 여부를 둘러싸고 제기된 ‘자유로운 모색’이라는 원칙론과 ‘연구주체의 재생산’이라는 현실론은, 이제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 잡아야 할 ‘두 마리의 토끼’가 되어 버렸다. 결국 2007년 연구원들은 치열한 찬반 논란 끝에 『역사문제연구』의 학진 등재신청을 결정했다.
우선 2007년부터 발행되는 17호부터 20호까지 2년간 4개호를 학진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 발간함으로써 ‘등재후보지’가 되는 것이 1차 목표가 되었다. 편집진의 경우에도 학진이 요구하는 틀에 맞춰 개편이 필요했다. 이에 17호부터 이승렬 편집위원장, 류시현 편집팀장 체제를 확립하고, 연구소 외부에서 지역 및 연구소와의 관계 등을 고려하여 교수급 편집위원들을 다수 영입했다. 그리고 등재신청의 실무를 담당하기 위해 ‘유급’ 편집간사로 홍정완 연구원을 임명했다. 결국 2008년 등재심사를 통과해 19호부터 『역사문제연구』는 ‘등재후보지’가 되었고, 2011년 다시 등재심사를 통과해 25호부터 ‘등재지’가 되었다. 학계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등재지가 됨으로써 『역사문제연구』는 학술지 발간에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2009년 21호부터 편집위원장과 편집팀장을 통합하여 류시현 연구원이 편집위원장을 맡았다. 또 22호부터는 편집위원에 연구소 2세대들이 다시 대거 포진하였다. 2011년 25호부터 편집위원장이 황병주 연구원으로 바뀌면서 편집위원회도 개편되었다. 새 편집진은 26호부터 ‘연구노트’ 코너를 신설하고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서평’과 ‘토론마당’ 코너를 다시 살렸다. ‘연구노트’는 논문쓰기의 부담을 덜면서 참신하고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었다.



등재지 이후『역사문제연구』의 발전과 고민지점

  2013년 29호부터 이상록 연구원이 새롭게 편집위원장을 맡으면서 편집위원회에도 대폭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2015년 34호부터 편집위원장이 오제연 연구원으로 다시 바뀌었지만, 연구소 3세대가 주도해 나가기 시작한 2013년 이후의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3세대 중심의 새로운 편집진은 보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역사문제연구』만의 색깔을 갖추기 위해, 『역사문제연구』를 연구자들 간의 소통을 중계하고 토론을 자극하는 장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역사문제연구』에 몇 가지 큰 변화가 생겼다. 우선 외형적으로 2014년 32호부터 『역사문제연구』 간행 출판사가 창간호부터 31호까지 출판을 계속 담당해왔던 ‘역사비평사’에서 ‘소명출판’으로 바뀌었다. 출판사 변경과 함께 지난 2001년 7호 이후 13년 동안 이어지던 책 디자인 역시 전면적으로 개편되었다. 또한 지면상에 ‘저작비평’, ‘주제비평’, ‘현실비평’, ‘집담회’와 같은 새로운 코너를 마련하여 지금까지 계속 이어오고 있다. ‘저작비평’의 경우 주요 저작의 저자를 초청하여 지정된 토론자들과 3시간 정도의 심도 있는 토론을 벌이는 자리이다. 이는 ‘서평’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서평이 의례적인 내용소개와 상찬으로 끝나버리는 고질적인 관행과, 또 소위 논문 카운트에서 서평이 제외면서 연구자들이 서평 쓰기를 꺼려하는 현실을 극복위해 기획된 것으로, 현재도 『역사문제연구』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학술적 소통 기획이다. 


  ‘주제비평’과 ‘현실비평’의 경우 특정 주제, 특히 시사적인 주제에 대해 학술적인 접근을 모색하는 자리이다. 일례로 30호 ‘현실비평’ 코너에 수록된 정대훈의 ‘일베’ 분석 글은 디비피아(DBPIA) 조회 수 최상위권을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역사문제연구』는 젊은 역사학자들의 다소 거칠지만 감각적이고 도발적인 문제제기에 대해 꾸준히 지면을 할애하였다. 31호부터 시작된 ‘집담회’는 이러한 젊은 연구자들의 목소리들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시도이다. 집담회와 같은 기획을 통해 『역사문제연구』는 흡사 논문제조공장과도 같은 학제 시스템과 권위주의, 엄숙주의로 숨 막히는 학계 풍토 속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하고자 했다. 이러한 다채로운 지면 구성과 더불어 등재지가 된 이후에는 일반 투고 논문도 많이 늘어나 책의 볼륨이 자연스럽게 커졌다. 그 결과 30호까지 300페이지 정도였던 책 볼륨이 31호 500페이지를 넘어 32호부터는 600페이지에 육박하게 되었다.

  최근의 특징 중 하나는 연구소 밖 연구자들의 글이 『역사문제연구』에 갈수록 많이 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문제연구』는 이제 ‘역사문제연구소’만의 학술지가 아니라 학계 전반을 아우르는 학술지로 성장했다. 특히 편집위원회의 기획력이 더욱 강화되면서 시의성 있는 특집 및 기획과 다양한 지면 구성 등으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 속에서도 고민해야할 지점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가장 큰 고민지점은 『역사문제연구』와 연구소, 특히 연구실의 관계이다. 『역사문제연구』에 연구소 밖 연구자들의 글이 많이 실리고 있다는 것은, 결국 반대로 연구소 구성원, 특히 연구실 연구원들의 글이 상대적으로 적게 실리고 있다는 얘기다. 창간 이후 한동안 『역사문제연구』에는 연구소 소속 연구자들 글들만 주로 실렸다. 등재신청 이후에도 연구소 소속 연구자들의 글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일례로 등재후보지가 된 2009년에 간행된 21호와 22호에 실린 21편의 글 가운데 당시 12편(57%)의 글이 연구소 연구위원, 연구원의 글이었다. 그런데 2015년 33호와 34호에 실린 22편의 글(저작비평회와 집담회 제외) 가운데 8편(36%)만이 연구위원, 연구원의 글이었다. 특히 가장 최근에 간행된 34호는 저작비평회를 제외한 11편의 글 중 단 2편(18%)만이 연구소 구성원의 글이었다.

  이러한 현상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역사문제연구』가 등재지가 된 이후 외부 연구자들의 투고가 자연스럽게 많아진 것과 더불어, 편집위원회가 특집과 기획을 준비하면서 필자를 연구소 밖에서 섭외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 하나의 이유이다. 시의성 있는 특집과 기획 주제를 선정하고 이에 적합한 필자를 연구소 외부에서 섭외하다보니, 최근 『역사문제연구』가 『역사비평』과 비슷해졌다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역사문제연구』 편집위원회가 자율성을 갖고 특집과 기획을 하며 이에 적합한 필자를 찾기 위해 섭외 범위를 연구소 밖으로 범위를 넓히는 것 자체는, 좋은 학술지를 만들기 위한 당연한 노력으로 문제 될 것이 없다. 단 『역사문제연구』가 애초 연구소의 전문학술 기관지로 출발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특집과 기획의 필자 섭외 과정에서 손쉽게 이미 ‘준비된’ 필자만 찾기 보다는 연구소 내에서 새로운 필자들을 계속 발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조금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젊은 연구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연구소 밖에서 필자를 섭외할 경우에도 참신하고 도전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더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역사문제연구』는 소위 ‘등재지 체제’ 속에 안주하는 기성 학술지와 큰 차별지점을 갖지 못할 것이다. 이는 앞으로『역사문제연구』 편집위원회가 연구소, 연구실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역사문제연구』는 역사문제연구소의 연구역량과 활동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척도이다. 『역사문제연구』가 연구소 전문학술 기관지로서 계속 역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연구소, 특히 연구실의 학술활동이 활성화되고 『역사문제연구』를 통한 그 결과의 외화가 더 조직적,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20년 전 『역사문제연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문제의식과 통하는 지점이며 『역사문제연구』를 『역사문제연구』답게 만드는 길이다. 역사문제연구소 내 연구반인 ‘6070연구반’의 워크숍에서 발표된 3편의 논문을 묶어 이번 『역사문제연구』 36호의 ‘특집’ <1960~70년대 ‘자본주의 인간형’의 창출>을 기획한 것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역사문제연구』는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러한 고민지점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소, 연구실은 물론 학계 전반과의 접점을 넓혀나가고자 한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성원, 그리고 참여를 부탁드린다. (오제연)



목    차


[특집1 1960-70년대 ‘자본주의적 인간형’의 창출]
1960~70년대 ‘인간관리’ 경영지식의 도입과 ‘자기계발’하는 주체 / 이상록
산업화 시기 여성 노동자들의 숙련과 ‘작업장 질서’의 전복 / 장미현

갈채와 망각, 그 뒤란의 ‘산업 전사’들 -‘국제기능경기대회’와 1970~1980년대의 기능인력 / 김태호

[저작비평회]

만주모던은 1960년대 한국에서 실현되었는가?
- 한석정, 『만주모던: 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문학과지성사, 2016)


[일반]

지역 ‘번영단체’의 개발 프로젝트와 그 사회정치적 의미 - 원산시영회와 원산시민협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 오미일

미시나 쇼에이(三品彰英)의 신화연구와 근대역사학 - 식민주의 역사학의 사상사적 재구성 / 심희찬

일제시기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의 산업공해문제와 ‘식민성’ / 양지혜

한국전쟁 전후 조선인민군의 월남병(越南兵)과 분단체제의 강화 / 김선호

북한의 ‘신해방지구’ 주민 편입 정책과 그 특징 / 한모니까


[자료소개]

해제: 『中․高等學校 國史敎育改善을 爲한 基本方向』 / 장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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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2016년 가을호(116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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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읽는 1949년 이후의 중국

― 중국의 어제와 오늘그리고 내일을 읽어내는 키워드 ‘도시’

 

    역사비평 이번호 특집은 지난호에 이어 중국을 읽는 새로운 키워드로서 ‘도시’에 집중하고 있다급변하는 국제정세와 동아시아 상황에서 ‘중국’을 잘 알고 대처해야 할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이유는 나날이 늘어간다역비의 이번 특집은 과거의 틀에 박힌 중국 상()을 되풀이하거나 익숙한 담론을 재탕하는 기획이 아니다각자 수많은 현지조사로 연구의 바탕을 튼튼히 다진 중국학 연구자들이 모여 어디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중국’이라는 나라의 현재 모습을 성실히 그려내고이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이번호의 주된 내용은 1990년대 시장화 개혁에 의해 급속한 변화를 겪기 시작한 도시의 여러 가지 양상들이다중국의 1990년대는 도시 개혁의 시기였다국유기업 개혁으로 전체 기업의 90%가 사유화되고주식제 개혁을 핵심으로 하는 소유권 개혁을 통해 노동자의 신분이 기존의 “공장의 주인”에서 “직공”으로 바뀌었다그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었다.호구제도의 이완과 농업생산방식의 변화로 도시로 이동할 조건이 마련된 농민들은 1990년대 들어서 도시 지역 국유기업의 개혁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도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이들은 농민의 신분으로 노동자(工人)의 일을 한다는 의미에서 농민공(農民工)이라 불리면서동일 노동에 대해 도시민보다 저임금을 받고도시 공공재인 의료·교육·주택 등으로부터 배제되어 도시의 ‘2등시민’으로 살아간다도시민인 노동자들도 사회주의 시기와 달리 의료·교육·주택 등을 시장에서 스스로 구매해야 했다이번호 <도시로 읽는 1949년 이후의 중국>에서는 국유기업 개혁노동자 해고농민공의 도시 진입공간의 ‘상품화’로 시작된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도시 공간의 몇 가지 측면들을 여러 도시들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 ② 정조와 세도정치

―탕평의 영광세도의 어둠이분법을 넘어선 ‘역사학’의 고민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 18세기, 19세기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재검토하자는 기획이다지난호에서 정조에 대한 새로운 분석과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이 논의되었다면이번 호에서는 19세기를 세도정치 시기로 규정하고 정조시대와 구분되는 ‘타락’의 시대로 보아왔던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보고자 했다. 19세기의 정치는 분명 정조 시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지만정조 시대의 유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이런 측면에서 본다면,정조뿐만 아니라 세도정치에 대해서도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것이 편집위원들의 의견이었다.

이번호 기획에서는 특히 필자 사이에 이견이 제기되었다는 점도 주목된다지난호에 게재된 정조시대 정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글에 대해 이번호 투고자 중 한 분이 이의를 제기했다.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기획이 이 시기에 대한 새로운 상을 제시하는 것과 함께 학계에서 논쟁을 이끌어보고자 했던 기획의도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환영할 만한 일이다앞으로 이 기획이 조선 후기와 관련된 새롭고 생산적인 논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7·10 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강남역 살인사건과 메갈리아 논쟁 등

 

    계간지라는 시기적 한계는 있지만역사비평은 학술적 치밀함과 진중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늘 동시대의 이슈들과 긴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이번호에서 그 결실은 <초청논단>에 실린 논문 7·10 참의원 선거와 아베 정권의 향방(박철희), <문화비평>에 실린 글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메갈리아’ 논쟁까지―‘페미니즘 봉기’와 한국 남성성의 위기(천정환)에서 특히 빛을 발하고 있다.

일본은 현재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정치적으로나 경제적사회적으로 모두 중요한 전환기에 서 있다편집위원회는 이 전환기에 나타나는 정치적 변화의 징후를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이를 위해서 지난겨울 두 차례에 걸쳐 일본에서 현지조사를 수행했던 일본 정치 전문가를 필자로 모셨다과거와 다르게 전개되고 있는 일본 정치의 현주소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고미래를 전망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1차 아베 내각 시기와는 다른 현재의 정치구도를 이해함으로서 앞으로 정상화된 한일관계를 꾸리기 위한 것이다.

    이번 호 문화비평은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여성혐오 및 페미니즘 논쟁과 그 효과에 대한 것이다강남역 살인 사건에서 ‘메갈리아’ 논쟁에 이르는 과정은 우리 사회의 민낯과 젠더 관계의 새로운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필자는 글의 제목대로 특히 이를 한국 남성성의 문제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차    례

책머리에

다시 8·15를 맞으며 / 박태균

 

특집도시로 보는 1949년 이후의 중국 ②

동향촌의 변화를 통해 본 베이징 성중촌 현상과 개조 / 장호준

1990년대 중국 주택제도 개혁과 도시 기득권의 확립―상하이시 사례를 중심으로 / 김도경

중국 개혁기 자본의 도시강탈의 도시로의 이행―광주의 사례를 중심으로 / 신현방

중국의 도시화와 공공토지 사유화 / 조성찬

중국 동북 지역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노후공업도시’ / 박철현

 

기획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 ② 정조와 세도정치

19세기 부세 운영과 ‘향중공론’의 대두 / 송양섭

19세기 정조의 잔영과 그에 대한 기억 / 노대환

오늘날의 역사학정조 연간 탕평정치 및 19세기 세도정치의 삼각대화 / 오수창

 

초청논단          

7·10 참의원 선거와 아베 정권의 향방 / 박철희

 

역비논단           

조선시대 대중국 역사변무의 의미 정병설

베를린장벽 역사기념물 만들기―관광의 풍경에서 기억의 터전으로 / 육영수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 조경란

 

문화비평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메갈리아’ 논쟁까지―‘페미니즘 봉기’와 한국 남성성의 위기 / 천정환

 

서평    

순치된 나세르, JP의 소이부답 / 오제연

 (<김종필 증언록―JP가 말하는 대한민국 현대사김종필와이즈베리, 2016)

일본은 기지국가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 박태균

(<기지국가의 탄생일본이 치른 한국전쟁>, 남기정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

중국혁명은 마오의 것이 아니다 / 김희교

(<1945 중국미국의 치명적 선택>, 리처드 번스타인책과함께,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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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2016년 여름호(115호)가 나왔습니다.

 

<<역사비평>>은 1. 역사문제연구소의 후원회원이 되어 받아보시거나 2. 역사비평사에서 정기구독을 신청하시거나 3. 시중의 서점을 통해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연구소에서는 1과 2를 추천해드립니다. :)

 



 

‘도시’로 읽는 1949년 이후의 중국
― 개혁개방 이후, 변화하는 중국의 오늘을 확인한다


    『역사비평』 이번호 특집은 중국 도시화에 대한 연구이다. 중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실제 중국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연구가 진지하게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다. 중국의 주가지수, 경제성장률, 대북정책 같은 것들만 관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2016년 현재 14억의 중국 전체 인구 중 50%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다. 개혁기 초기인 1980년에는 중국 전체 인구 10억 인구 중 단지 2억 명만이 도시에 살고 있었다. 36년 만에 도시화율이 30% 이상 증가한 것이다. 급속한 도시화율의 증가는 ‘시장(市場)’의 확산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마오쩌둥 시대의 계급투쟁 및 계획경제와 결별을 선언하고 경제발전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삼은 개혁기 중국은 재화와 서비스를 분배하는 핵심기제로서 시장을 도입했고, 1990년대에 급속하게 확산된 시장은 중국의 사회와 경제의 거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이러한 변화가 가장 압축적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중국의 도시공간이다.

    이번 계간 역사비평의 중국 도시 기획은 ‘도시’를 키워드로 중국의 정치, 사회, 경제를 탐구하려고 한다. 이 기획은, 시민권, 이민도시, 주택, 토지, 성중촌(城中村), 철거 등 개혁기의 도시문제만이 아니라, 접관(接管), 노동자거주지, 도농이원구조, 삼선건설, 국유기업 등 사회주의 시기의 도시문제까지, 건국 이후 현재까지 중국 사회와 경제의 역동적 변화를 담고 있는 문제들로 구성된다. ‘도시로 이해하는 1949년 이후의 중국’은 기존의 당, 국가, 사상, 정치운동, 계급 등에 의한 기존의 분석들이 조명하지 못한 1949년 이후 중국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자 한다. ‘도시’는 나날이 존재감이 커져만 가는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매우 유효한 키워드이다.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 ① 정조시대의 다학문적 접근
―정조와 19세기, 연속과 단절을 생각하다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는 조선 후기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모색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최근 영화 <사도>를 비롯하여 드라마와 영화에서 18세기는 중요한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18세기에 대한 한국 사학계와 일반인들의 시각은 너무 고정적이다. 이 시기는 문화적 중흥기로 규정되면서 조선시대 정체성론을 반박하는 근거가 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18세기의 융성이 왜 갑자기 19세기의 세도정치와 망국으로 이어지는가라는 질문은 제대로 물어지지 못했다는 것이 이 기획의 문제의식이다. 본 기획에서는 총 3회에 걸쳐 9편의 논문을 게재할 예정이다. 매회 또한 소주제를 잡았다. 소주제는 ‘① 정조시대의 다학문적 접근, ② 정조와 세도정치, ③ 세도정치기의 이질적 시공간’이다. 매회의 제목은 ‘정조시대를 당대의 맥락을 중시하며 바라보고, 정조와 세도정치 사이의 연속과 단절을 고민하며, 18세기의 구심력이 약화되고 새로운 원심력이 작용하는 19세기를 다루어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이번호에 실린 첫 번째 논문은 정조 대 정치사 연구에 대한 비평적 고찰이다. 최근 문학계를 중심으로 정조의 인간적 면모를 중시하며 지나친 구조화에 반발하는 흐름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탈구조의 입장에 선 연구들은 정조가 처했던 복잡다단한 맥락을 개인 영역으로 축소하거나 파편화시키는 등의 문제가 있다. 그 점에서 필자는 정조의 고민과 정책 등을 왕조체제를 떠받쳐온 주자학과 온건한 통합 노선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진정한 실상임을 강조하였다.

    두 번째 논문은 정조의 자연관과 공존 논리에 대한 연구이다. 정조시대는 유교-성리학의 계승과 이탈이 나타난 시기였음은 많이 지적된 바였다. 그러나 그 중층성에 대한 지적에 그치지 않고 ‘생명 존중과 공존의 정신’으로 환기하자는 것이 이 논문의 의도이다. 정조 해석에 과도하게 투영된 현재성을 보여줄 수도 있고, 아니면 전근대 사상 안에서 탈근대의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위의 비평적 고찰과도 사뭇 다른 지점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세 번째는 과학(천문학)을 통해 본 정조시대 학문의 성격이다. 정조시대는 국가 천문학의 전성기라 부를 만했다. 그렇지만 마냥 근대적인 것은 아니다. 길흉을 택일하는 전통 사유의 성격이 굳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점 역시 당대 맥락을 좀 더 온전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던진다. 한편 19세기에도 천문학의 성과가 유지되는 듯하다. 필자는 조심스럽게 국가 차원이나 개인의 교양지식 모두 연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점은 유심히 볼 대목이다.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 ②
―우리 안의 타율성론을 되돌아보다

    지난 『역사비평』 여름호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낳았던 기획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의 두 번째 회차이다. 고대 자료들을 이용한 엄밀한 실증과 학술적 접근을 바탕으로 임나일본부와 한사군의 정체를 구명하는 두 편의 논문은, ‘고대사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의 모델을 보여준다. 자료는 계속 더 발굴될 것이고, 학술적 접근의 방식과 내용은 좀 더 고도화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번호에 실린 논문들의 주장 역시 반박될 수 있겠지만, 무엇을 ‘학문’이라 부르고 무엇을 ‘사이비’라 부를 것인지는 도출된 결론의 ‘정답’ 여부가 아니라 치열하고 엄밀한 연구자의 태도에 따를 것이다. 한편 이번호 고대사 기획의 머릿글에 해당하는 논문 「식민주의 역사학과 ‘우리’ 안의 타율성론」에서는, 다양한 담론의 수용자로서 일반시민들의 머릿속 ‘판타지’와 그 속에 깃든 식민주의,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을 차분하게 성찰하고 있다. 단순히 ‘고대사’ 담론을 넘어서 건강한 21세기 시민의식과 학술적 접근태도 그 자체에 대한 젊은 역사학자들의 용감한 문제제기에 지지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차    

 

책머리에

    20대 국회에 바란다 / 박태균

특집 도시로 읽는 1949년 이후의 중국 ①
    개혁기 위계적 시민권과 중국식 도시사회의 부상 / 박철현
    중국의 급속한 도시화―이중도시, 이민도시로서 선전의 도시발전 / 윤종석
    개혁기 중국의 도시화 경험 / 박인성

기획1: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 ① 정조시대의 다학문적 접근
    총론: 새롭게 보는 정조와 19세기 / 이경구
    조선 후기 정치의 맥락에서 탕평군주 정조 읽기 / 최성환
    정조의 자연·만물관과 공존의 정치 / 박경남
    정조시대 다시보기―천문학사의 관점에서 / 전용훈

연속기획: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 ②
    식민주의 역사학과 ‘우리’ 안의 타율성론 / 강진원
    ‘임나일본부’ 연구와 식민주의 역사관 / 신가영
    한사군, 과연 난하 유역에 있었을까? / 이정빈

기획2: 주변에서 바라본 해방
    오키나와 민주주의의 원형―폐허로부터의 출발 / 모리 요시오
    해방 70년, 한국화교에 대한 이해 / 왕언메이

역비논단

    일기로 구성한 일제 말 전시체제하의 일상 / 김민철
    1959년 이승만 정부의 대일통상중단조치와 미국 / 신재준
    1950년대와 1960년대 전반기 노동운동의 좌절과 도전 / 임송자

서평

    사림파, 사림 네트워크, 사림운동 / 계승범

    (윤인숙, 『조선 전기의 사림과 <소학>』,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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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 35호가 나왔습니다.

 

본 역사문제연구는 역사문제연구소의 후원회원이 되어 받아보시거나, 시중의 서점을 통해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당연히 연구소에서는 전자를 추천해드립니다. :)

 


 

책머리에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인물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경선에 나선 도날드 트럼프일 것이다. 그는 숱한 막말과 기행에도 경선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트럼프가 대중적인 지지와 반발을 동시에 일으키는 주된 요인 중 하나가,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자”, “무슬림의 입국을 금지하자” 등과 같은 이주민․난민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 발언이다. 

    사실 이주민․난민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든지 쉽게 확인 가능하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에게 혐오의 대상인 무슬림들은 비이성애자와 같은 성적 소수자들을 극도로 혐오한다. 일례로 온건한 무슬림 국가로 알려진 인도네시아에서도 최근 정치, 종교, 언론이 한목소리로 성적 소수자인 LGBT, 즉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에 대해 무차별적인 혐오 공격을 가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서구에서 한국인이 유색인종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에 분노하면서도, 많은 한국인들은 국내에서 다른 유색인종들을 배척하거나 혐오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선족이나 탈북자들 역시 혐오의 대상으로 자유롭지 않다. ‘일베’의 여성 혐오에 맞서 ‘메갈리아’의 남성 혐오가 등장하기도 했다. 정보 공유와 소통의 공간인 인터넷은 혐오 담론 전파의 온상이 되고 있다. 조금만 생각이 달라도 네티즌들은 ‘극혐’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극혐’을 ‘극혐’하기도 한다. 혐오와 혐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흡사 “만인의 만인에 대한 혐오”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렇듯 ‘혐오’의 감각이 일상 곳곳에 만연해 있는 이때에, 『역사문제연구』는 ‘혐오’에 대한 표면적 분석을 넘어 이 문제를 역사적 맥락에서 좀 더 긴 안목으로 성찰하고자 35호의 첫 번째 특집을 기획하게 되었다. 먼저 ‘총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권명아의 「신냉전 질서의 도래와 혐오발화/증오 정치 비교역사 연구」는 한국 내는 물론 동아시아와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증오정치’의 사례들을 망라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적 모색을 촉구한다. 즉, 증오정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근대국민국가적 패러다임을 넘어서 ‘식민성’, ‘냉전’, ‘탈냉전’, ‘신냉전질서’ 등의 몇 겹의 역사적 시간과 축적된 모순들을 복합적이고 동시에 분산적으로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당사회에 누적된 차별의 역사적 지층을 구체적으로 탐구하는 비교 역사적 연구 속에서만, 비로소 혐오발화 비판이론이 보편성과 공통성의 지평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이 논문은 강조한다.


    이찬행의 「그들은 왜 빈센트 친을 죽였을까?」는 1982년 디트로이트에서 발생한 중국계 미국인 빈센트 친에 대한 혐오범죄 살해사건을 분석하고 있다. 이 사건은 백인 남성의 인종주의에 의해 일어난 혐오범죄일 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의 전형화, 또 일본의 경제 성장으로 인한 미국 자동차산업의 탈산업화 등의 맥락을 반영하고 있다. 이 논문은 이민의 나라인 미국 사회가 갖고 있는 인종혐오의 복잡한 특성을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변화 속에서 숙고할 수 있게 해준다.


    끝으로 허윤의 「냉전 아시아적 질서와 1950년대 한국의 여성혐오」는 1950년대 공론장의 언설과 대중서사를 통해, 냉전의 격전지였던 한국에서 사회를 통치하는 방법으로 여성혐오가 선택되는 과정을 밝혔다. 1950년대 일선에서 공산주의 북한과 싸우는 남성의 세계를 건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후방’은 언제나 여성화 되었다. 여성화 된 후방에는 혐오와 수치심이 가득했다. 한국전쟁 과정에서 위안부와 위안소가 배치되었고, 냉전질서의 유지를 위해 미국특수위안시설이 운영되었다. 전후의 혼란은 아프레걸, 자유부인이라는 말로 통칭되었다. 풍기단속 차원에서 여성의 성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냉전체제하에서 통치도구로서 반복되었던 것이다.


    35호 두 번째 특집에서는 혐오의 주된 대상이기도 한 ‘난민․이주민’ 문제를 다루었다. 최근에 전쟁과 빈곤을 피해 자유를 찾아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집단 이주를 감행하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난민․이주민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생성되는 난민 또는 이주민 문제에 대한 시각은 대체로 난민 또는 이주민의 문제를 한국과 별개로 바라보거나, 시혜적 관점에 머물고 있다. 이에 『역사문제연구』는 35호 두 번째 특집을 통해 난민․이주민 문제를 한국의 역사 문제로 바라보면서, 강제 이주가 아니라 “원하지는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국민국가의 경계를 벗어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춰 그 역사적 실상과 의미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먼저 특집에 대한, 제목 그대로 ‘시론’의 성격을 가진 이연식의 「해방 직후 ‘우리 안의 난민·이주민 문제’에 관한 시론」은, 해방 직후 한국 안팎에 걸쳐 이루어진 대규모 인구 이동 현황, 즉 해외에서 돌아온 귀환 동포, 한국 전쟁 이전의 초기 월남민, 그리고 재조일본인의 송환 문제를 함께 연계해 정리하고, 이러한 한국 안팎의 대규모 인구 이동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난 전후 인구이동의 보편적 특징과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일국사적 맥락을 넘어 세계사적 접점을 찾고자 한 이 논문은, 현재 한국에서 날로 증가하고 있는 외국인, 조선족, 탈북자들의 사회적 통합이라는 과제를 푸는 데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나혜심의 「독일로 간 한인여성노동자의 난민성」은 1960년대부터 독일로 건너간 ‘파독간호사’들의 ‘난민성’을 다룬 글이다. 그동안 ‘파독간호사’들에 대한 논의가 주로 경제적 이익을 위한 외화벌이라는 차원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면, 이 논문은 이들을 ‘난민’이라는 차원에서 새롭게 조명했다. 국가적 차원의 이주라는 기존 관점을 거부하고, 국경을 넘는 고용-피고용 관계가 맺어지는 과정을 ‘강요된 자발성’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했다는 점이 특히 주목된다.


    김아람의 「38선 넘고 바다 건너 한라산까지, 월남민의 제주도 정착 과정과 삶」은 제주도에서 월남민들이 다수 정착한 지역인 상효리 ‘법호촌’의 기독교교회와 난민정착사업에 대해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육지와 제주의 관계, 월남민과 제주출신인의 관계, 이와 관련된 전쟁 후 제주지역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38선 이북의 지역민이 제주도민이 되는 과정을 통하여 전쟁이, 초래한 삶의 파괴와 소생, 1950년대 지역의 재건 현실과 그 의미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평’을 연구업적으로 인정해주지 않음으로 인해 연구서에 대한 엄밀한 비평이 약화되고 있는 비정상적인 학문풍토를 극복하고자 『역사문제연구』가 힘을 쏟고 있는 ‘저작비평회’는 35호에서도 어김없이 진행되었다. 이번에 ‘저작비평회’의 대상이 된 책은 전진성의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 도쿄, 서울』(천년의상상, 2015)이다.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고대 아테네를 상상한 근대 도시들의 역사적 계보를 추적한 이 책은 건축사, 도시사는 물론 지성사, 문화사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 다양한 사실들과 이론의 융합도 끊임없이 시도하였다. 목소리만 높고 실상 내용적으로는 그 질을 담보하기 못하고 있는 오늘날 ‘학문의 통섭’과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에 비추어봤을 때, 주목해야 할 저작임에 틀림없다. 멀리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저작비평회에 참여해 주신 저자는 물론, 역사학, 건축학, 지리학 등 각 관련 분과학문 별로 심도 있는 비평을 맡아 주신 3명의 토론자들께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번 35호에는 모두 7편의 연구논문을 실었다. 박종린의 「1920년대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社會改造の諸思潮』의 번역」, 윤현상의 「1920년대 총독부 교육재정 정책의 변화와 공립보통학교 설립열의 확산」, 장신의 「조선총독부의 언론통제와 동아일보․조선일보 폐간」, 하재영의 「전시(戰時) 양조업을 통해 본 식민지 공업화의 일면-양조업의 생산동향과 자본 이동에 주목하여」, 김봉국의 「이승만 정부 초기 애도-원호정치: 애도의 독점과 균열 그리고 그 양가성」, 이상록의 「 ‘예외상태 상례화’로서의 유신헌법과 한국적 민주주의 담론」, 오하나의 「80년대 노동운동 내 학생출신활동가를 둘러싼 비판 담론의 분석」 등은 지면 관계상 각각의 구체적 내용을 소개하기 어렵지만, 모두 기존 한국근현대사 연구에서 제대로 해명되지 못한 참신하고 의미 있는 주제들을 치밀한 논증과 분석을 통해 새롭게 규명한 글이라는 점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젊은 역사학자들의 모임인 ‘만인만색’의 집담회 내용을 게재했다. 작년 10월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자 사회전반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역사학계에서도 연구자들이 공개적인 반대와 교과서 집필 거부를 선언하고 거리에 나섰다. 특히 각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는 젊은 대학원생들은 상호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공동으로 대처해 나갔다. 이들은 10월 말 전국역사학대회를 계기로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 여세를 몰아 11월 정식으로 ‘만인만색’이라는 연구자 모임을 출범시켰다. 아직은 초기 단계에 불과하지만 만인만색의 열정과 연대의 정신이 앞으로 역사학계에 큰 활력소가 될 거라는 기대 속에서, 『역사문제연구』는 이들의 목소리를 지면을 통해 전달하기로 했다. 이번 만인만색 집담회가 역사학계 내부에 그들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며 그에 따르는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역사문제연구』 35호를 준비하면서 우리 주변에 만연한 타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극복하기 어려운 역사적 난제인가를 다시 한 번 절감하였다. 아마 ‘알파고’도 풀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얼마 전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알려졌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개발 중인 인공지능 채팅 로봇 ‘테이’가 트위터를 통해 “히틀러가 옳았다, 나는 유대인이 싫다.” “대량학살에 찬성한다”는 등의 혐오 발언과 막말을 쏟아냈다는 것이다. ‘테이’는 인간들의 바둑 기보를 학습한 ‘알파고’처럼, 인간들과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 패턴을 학습하고 이를 대화에 반영하는 인공지능을 갖고 있다. 그런 ‘테이’가 트위터를 하면서 극우 인종주의자들과 성차별주의자들의 혐오 발언과 막말을 학습하여 같은 말들을 반복했던 것이다. 물론 세뇌 수준의 학습에 의한 인공지능의 혐오 발언과 막말은, 각기 다른 다양한 맥락과 내용으로 구성된 인간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마저 혐오를 학습하는 현 상황에서 그 누가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씁쓸한 생각이 든다. 이번 『역사문제연구』 35호가 혐오의 세상을 소통과 관용과 공존의 세상으로 바꿔내는 데 작지만 의미 있는 성찰이 되었으면 한다.

(오제연)

 

 


목     차

 

 

특집1 혐오의 역사 - ‘나’는 왜 그(녀)들을 혐오하는가
  권명아 신냉전 질서의 도래와 혐오발화/증오정치 비교역사 연구

  이찬행 그들은 왜 빈센트 친을 죽였을까? 
  허윤 냉전 아시아적 질서와 1950년대 한국의 여성혐오

특집2 우리 안의 난민‧이주민
  이연식 해방 직후 ‘우리 안의 난민·이주민 문제’에 관한 시론
  나혜심 독일로 간 한인여성노동자의 난민성
  김아람 38선 넘고 바다 건너 한라산까지, 월남민의 제주도 정착 과정과 삶

저작비평회

  아테네를 상상한 근대 수도의 계보학
  - 전진성,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 도쿄, 서울』, 천년의상상, 2015.8


연구논문

  박종린 1920년대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社會改造の諸思潮』의 번역
  윤현상 1920년대 총독부 교육재정 정책의 변화와 공립보통학교 설립열의 확산
  장   신 조선총독부의 언론통제와 동아일보․조선일보 폐간
  하재영 전시(戰時) 양조업을 통해 본 식민지 공업화의 일면 - 양조업의 생산동향과 자본 이동에 주목하여-
  김봉국 이승만 정부 초기 애도-원호정치: 애도의 독점과 균열 그리고 그 양가성

  이상록 ‘예외상태 상례화’로서의 유신헌법과 한국적 민주주의 담론
  오하나 80년대 노동운동 내 학생출신활동가를 둘러싼 비판 담론의 분석

집담회

  만인이 만가지 색으로 저항하라!  -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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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2016년 봄호(114호)가 나왔습니다.

 

<<역사비평>>은 1. 역사문제연구소의 후원회원이 되어 받아보시거나 2. 역사비평사에서 정기구독을 신청하시거나 3. 시중의 서점을 통해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연구소에서는 1과 2를 추천해드립니다. :)

 


 

조일수호조규와 개항에 대한 다양한 시선

 

    올해는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1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개항은 조선이 세계 속에 편입되는 데 결정적 전환점이 되는 거대한 사건이었다. 따라서 조일수호조규와 개항에 대한 논의는 근대의 시점에 대한 논쟁과 함께 한때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였다. 그러나 시대구분과 그 기점에 대한 논의에 대한 비판과 근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조일수호조규와 개항에 대한 논의는 점차 연구자들의 관심사로부터 멀어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건이 한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역사, 국제법, 국제정치, 그리고 경제사의 관점에서 조일수호조규와 개항을 분석하는 글로 특집을 엮었다. 한국 근대사의 어디에서부터 실타래가 꼬이기 시작했는가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연구와 학계의 논쟁을 촉발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 것이다.

 

 

사이비 역사학, 무엇이 문제인가

 

    앞으로 국정교과서가 편찬된다면, 근현대사와 함께 고대사가 논란의 초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의 한국사 지도 제작사업을 둘러싼 논란, 고대사학계에서 한사군의 위치 재조정을 둘러싼 재야사학자들과의 논란으로부터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이 역사적 고증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민족주의라는 이름하에 일부 국회의원들과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의 호응까지 얻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국정교과서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고대사 전반에 대한 인식과 관련하여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며, 이는 한중관계와도 관련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현재 경희대에서 진행 중인 고대사 연구자들의 워크샵에서 발표된 원고들을 수정하여 기획으로 엮었다. 역비에서는 이번호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고대사 관련 기획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샌더스·코빈 열풍에서 풀뿌리 저항의 가능성을 보다

 

    초청논단에는 다양한 현안을 다룬 세 필자의 글을 실었다. 먼저 미국의 대선과 영국의 새로운 정치적 흐름이 단연 주목되는 상황에서 이 흐름이 반영하는 현재의 상황과 대안의 가능성을 점검했다. 쉬운 글쓰기와 풍부한 내용으로 이번 호에서 단연 돋보이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중국과 대만의 정치적 변화에 따라 양안관계가 변화하는 상황을 추적한 글과, 동아시아와 달리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민족주의 문제를 다룬 글도 초청논단에 포함되었다. 냉전 이후 나타난 신자유주의의 확산, 그리고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 각 지역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달하고자 한 것이다.

 

    특별기고는 해방 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사학재단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분석한 글이다. 영남대학교를 대표적인 사례로 해서 분석했지만, 이 문제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립학교에서 겪고 있는 문제이다. 해외의 사학재단에서 보기 힘든 이런 문제들이 실상 공공성의 부재로 인해 일어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응답하라 1988>이 보여주지 않은 그 시절 쌍문동의 역사

 

    이번 호가 이전과 다른 점은 서평의 양이 늘었고 역사문화비평이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역비가 독자들에게 좀 더 친절하게 역사연구의 현황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더 많은 서평이 필요하다는 것이 편집위원들이 공통된 견해이다. 앞으로는 짧은 서평과 함께 같은 주제의 여러 책들을 함께 분석하는 기획서평을 좀 더 많이 게재할 예정이다.

 

     ‘역사문화비평은 대중문화의 흐름에 대한 발빠른 해석을 위해 새로 추가된 꼭지이다. 학자들은 전문적인 측면에서는 앞서 나간다고 할지 몰라도, 대중들의 관심 분야를 발빠르게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대중문화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천정환 편집위원을 필자로 초대해 최근 대중적 인기를 얻은 <응답하라 1988> 신드롬을 돌아보았다.

 

 


차   

 

책머리에

    궁극적 목표를 상실한 대북정책 / 박태균

 

특집: 조일수호조규와 개항에 대한 다양한 시선

    개항을 바라보는 시선의 ()연속 / 박준형

    조일수호조규는 포함외교의 산물이었는가? / 김종학

    고립정책과 간섭정책의 이중주조일수호조규에 대한 영국의 인식과 대응

     / 한승훈

    화교·화인의 시점에서 본 아시아 속 조선 개항 / 이시카와 료타

    19세기 국제법의 성격과 조일수호조규(1876) / 안종철

  

초청논단

     샌더스코빈신드롬지구화시대의 불평등과 제도권을 통한 풀뿌리 저항

       / 김만권

    양안은 화해할 수 있을까?중국몽(中國夢)’과 대만 발전의 갈등과 대화

       / 쉬진위

    인도 벵갈, 방글라데시, 미얀마의 내셔널리즘 / 신재은

 

기획1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

    사이비 역사학과 역사 파시즘 / 기경량

     '한사군 한반도설'은 식민사학의 산물인가 / 위가야

    오늘날의 낙랑군 연구 / 안정준

 

특별기고

    한국 사학의 형성과 지배구조영남대는 누구의 것인가 / 윤지관

 

기획2 분단국의 역사교육: 독일과 한국

     기획 분단국의 역사교육: 독일과 한국에 대하여 / 오제연

    냉전기 서독 반공교육의 변화와 쟁점사회과 교과서에 나타난 반공교육과 다원주의적 관점 / 유진영

     통일 후 분단독일의 역사 다시 쓰기와 역사의식의 공유 / 이진일

    탈냉전시대 한국 통일교육의 딜레마 / 김귀옥

 

역비논단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의 재검토1심 판결의 모순점을 중심으로

       / 임성욱

    육사의 청포도재해석청포도청포(靑袍)’, 그리고 윤세주 / 도진순

 

서평

     근대 일본의 디자이너한국 침략의 원흉사이 / 염복규

                       (『이토 히로부미와 대한제국, 한상일, 까치, 2015)

    문학과 경제로 풀어낸 청일·러일전쟁 / 이형식
                       (청일·러일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 하라 아키라, 살림, 2015)

    메이지의 바깥에서 보는 메이지유신 / 노관범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박훈, 민음사, 2014)

    서구중심주의와 근대중심주의를 넘어서?! / 류준필

                       (동아시아는 몇 시인가?, 미야지마 히로시·배항섭 엮음, 너머북스,

2015)

 

역사문화비평

    <응답하라 1988>에 나타난 역사와 유토피스틱스 / 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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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