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그 오류의 끝은 어디인가?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2013.12.18

 


  12월 17일 교육부는 수정명령 승인을 내린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에 대해 재차 표기상 오류 수정사항을 접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논란이 됐던 대부분의 문제가 전부 해소됐기 때문에 이제 학교에서 교과서를 채택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 지 일주일 만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 관계자는 "출판사들이 맞춤법, 띄어쓰기 등 표기 오류를 자체적으로 바로 잡을 것이 있다고 해 내용상 변경을 가져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표기 오류를 수정할 사항이 있으면 23∼24일 이틀간 내도록 요청했다"고 밝혔다. 교과서 검정 이후 829건을 수정 권고한 데 이어 수정 명령까지 내리고서 또 자체 수정을 허용한 것은 수정명령조차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내용상 변경을 가져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표기 오류를 수정하겠다?”
  교육부의 이 발표를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교육부의 꼼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아직도 눈에 선하게 보이는 무수한 사실 오류를 지난 번처럼 속시원히 ‘훈수’를 둘 수도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수정최종본으로 공개된 교학사 교과서는 교육부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몇 차례의 ‘특례수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류투성이의 엉터리 불량 교과서일 뿐이다. 단순히 표기 오류를 수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앞으로 조목조목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이번에는 한 가지 사례만을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수정최종본으로 공개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왜 아직도 총체적인 부실교과서인지는 293쪽에 서술된 화북조선독립동맹의 활동에 관한 서술만 읽어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교과서 원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1939년 민족 연합 전선 운동에서 이탈한 조선 의용대는 (2)한인들이 비교적 많이 활동하고 있는 화북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3)김두봉을 중심으로 화북에 모인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4)태항산 지역에서 국민 혁명군 제8로군에 소속되어 중국 공산당과 함께 항일전을 전개하던 무정 등 공산주의자들과 힘을 합하였다. 여기에 일본군에서 탈주하였거나 포로가 된 한국인 청년들이 가세하여 (5)김두봉을 주석으로 조선 독립 동맹을 결성하였다(1942). (6)이어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를 조선 의용군으로 개편하여 (7)조선 독립 동맹의 당군으로 만들었다.
  조선 독립 동맹은 처음에는 공산주의적인 색체를 드러내지 않고 중국 화북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한인 청년들에게 조국 광복의 대업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그래서 명칭도 (8)화북 조선 청년 연합회라고 하였다. 그러나 (9)곧 조선 독립 동맹으로 개칭하여 중국 공산당의 본거지인 옌안으로 옮겨가 중국 공산당과 협력하였고, 조선 의용군도 중국 공산당 군대인 팔로군과 연대하였다.

 

  밑줄 친 부분이 사실 왜곡이나 오류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13줄에 불과한 본문 서술에서 무려 9개의 서술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 가운데 김두봉이 독립동맹의 ‘위원장’이 아니라 ‘주석’(5번)이라는 것과 ‘조선 청년 연합’의 명칭이 ‘화북 조선 청년 연합회(8)’라는 간단한 사실 오류 2개는 역사단체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수정했다. 그러나 역사단체가 지적하지 않은 나머지 7개의 서술 오류는 최종수정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자세히 살펴보자.

 


1) 조선의용대의 화북 지역 이동 시점

  조선의용대가 화북 지역으로 이동한 것은 1939년이 아니라 1941년 3-5월 무렵이다. 1940년 11월에 열린 조선의용대 확대간부회의에서 화북이동을 결정한 뒤에 각지에 흩어져서 활동하던 대원들은 낙양에 집결하여 4개 그룹으로 나뉘어 1941년 3월 중순부터 5월 하순에 걸쳐서 황하를 건너 중국 공산당 지역인 화북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상황은 당시의 중국 국민당 보고서와 광복군 지도자 김학규 등의 보고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염인호,『김원봉연구』, 창작과 비평사, 1993, 224-247쪽 ; 한시준,『한국광복군 연구』, 일조각, 1993, 58-64쪽]

 

  조선의용대가 1941년 초에 타이항산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은 교학사 교과서 289쪽 오른쪽에 실린 ‘조선의용대의 분할과 북상’이라는 지도에 정확히 서술되어 있다. 지도에는 이처럼 정확히 서술된 내용이 왜 본문에는 이렇게 엉터리로 서술되어 있는 걸까? 아마도 이런 작업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본문을 집필하는 필자와 지도와 시각 자료를 편집하는 출판사 직원이 분업적으로 작업을 하면서 소통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집필자가 제대로 된 지식만 가지고 있었어도 본문 서술 오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소한 오류를 바로 잡을 시간은 많지 않았나?

 


2) 조선의용대의 화북 이동 이유

  조선의용대가 “한인들이 비교적 많이 활동하고 있는 화북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것도 정확한 서술이 아니다. 화북 지역은 행정구역명이 아니라 한반도 보다 몇 배나 넓은 중북 북부 지역의 통칭이다. 한국의 영남, 호남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조선의용대가 북상해서 도착한 목적지는 화북 산서성 진동남 타이항산(태항산) 기슭이었다.
  중국의 그랜드캐넌으로 불리워질 정도로 아름다운 산세를 자랑하는 타이항 산맥은 남북길이 약 600km, 동서길이 250km에 걸쳐있는 험준한 산맥이다. 한국의 소백산맥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소백산맥을 경계로 영남과 호남이 갈라지듯이 중국은 타이항 산맥을 경계로 산서 지방과 호북, 산동 지방이 갈라진다고 한다. 타이항 산맥 일대는 산세가 워낙 험해서 예부터 중국 고대 문명의 중심지인 서안과 낙양 일대의 중원을 지키는 최후 방어선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왜 조선의용대는 이렇게 험한 타이항산으로 이동했을까? 전략적 요충지인 타이항산에는 일본군에 대항하여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는 중국 공산당 팔로군 최전방 사령부가 주둔하고 있었다. 당시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만주지역은 만주국을 세운 일본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조선의용대원들은 중국 공산당과 연합해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기 위해 타이항산으로 이동한 것이다.

 


3) 김두봉의 독립동맹 합류 시점

  주시경의 제자인 김두봉은 한 때 공산당 조직에 이름을 올린 적도 있었지만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역사와 한글연구에 심취한 민족주의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그가 상해에 머무를 때 한인학생들의 교육기관인 인성학교 교장을 역임했다는 사실로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그는 김구의 아내가 1924년 1월 병으로 사망했을 때 그녀를 애도하는 뜻에서 한글로 된 비문을 써주기도 했다. 그런 그가 중경을 떠나 공산주의자들의 근거지로 가서 독립동맹에 가담했다는 것은, 당시에도 논란거리였지만, 지금까지도 역사연구자들 사이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김두봉은 1941년 초에 북상한 조선의용대와 함께 타아항산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는 1942년 4월 무렵 10여 세의 딸을 데리고 벙어리 행세를 하면서 중경에서 연안까지 걸어서 갔다.(김오성,「김두봉론」,『지도자군상』, 대성출판사, 1946, 52-53쪽 ; 심지연,『조선신민당연구』, 동녘, 1988, 36쪽) 조선의용대와 동행하지 않고 조선의용대가 북상을 완료한 지 1년이 지나서야 화북으로 간 것이다. 사실이 이러하기 때문에 “김두봉을 중심으로 화북에 모인 조선 의용대 화북지대”라는 서술 자체가 역사적 사실로 성립될 수 없다.  김두봉은 무장부대인 조선의용대의 지도자가 아니라 정치조직인 독립동맹의 지도자였다. 조선의용대를 확대 개편해 조직된 조선의용군의 총사령은 무정이었다.

 


4) 태항산의 명칭 표기 문제

  외국 인명이나 지명은 외국어 표기 규정에 따라 현지음으로 서술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교학사 교과서 본문에서도 ‘상해’는 ‘상하이’로, ‘중경’은 ‘충칭’으로, ‘연안’은 ‘옌안’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교학사 교과서는 ‘태항산’을 현지음인 ‘타이항산’으로 표기하지 않고 ‘태항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일관성도 없다는데 있다. 두 페이지 앞쪽인 289쪽 조선의용대의 북상과정을 그린 지도에서는 ‘타이항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렇게 많이 지적당하고 고치고도 단순한 지명 표기 오류하나 아직도 바로잡지 못한 것이다.

 


5) 조선의용대 화북지대의 조선의용군 개편 시점

  본문에서는 “이어”라는 표현을 써서 독립동맹 결성에 뒤이어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조선의용군으로 개편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서술대로라면 독립동맹이 결성된 지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점에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조선의용군으로 개편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조선의용군으로의 개편은 독립동맹 결성과 같은 날 같은 회의에서 결정되었다. 화북조선청년연합회는 1942년 7월 10일 제2차 대표대회를 열어 청년연합회를 독립동맹으로 개칭하고,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조선의용군 화북지대로 개편한다는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을 결정했다. [심지연, 『조선신민당연구』, 동녘, 1988, 32쪽]

 


6) 조선의용군은 조선독립동맹의 ‘당군’인가?

  본문에서는 ‘당군’이라고 표현했지만 조선독립동맹은 통일전선체를 지향한 연합조직이지 단일한 강령과 이념을 중심으로 결집된 정치적 결사체인 ‘당(黨)’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의용군도 독립동맹의 ‘당군(黨軍)’이라고 서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조선의용군을 독립동맹의 ‘군사조직’ 혹은 산하 무장세력, 무장부대라고 서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굳이 명칭과 관련해서 서술하고자 한다면 ‘당군’이 아니라 ‘연맹군’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군’이라는 표현은 어디서 나온 걸까? 교학사 집필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무차별적으로 인용한 위키피디아 조선독립동맹 항목에 적혀 있다. 위키피디아의 조선독립동맹 항목 서술에는 오류가 수두룩하다. 조선독립동맹이 특정 당파와 계급을 초월한 통일전선조직체 조직을 지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 형태의 결사체” 조직이라고 서술하고, 동맹의 최고 지도자인 김두봉을 주석이 아닌 ‘당수’라고 적고 있다. 그런가 하면 조선의용군도 동맹 산하의 무장부대가 아닌 “당의 군사조직”이라고, 무정이 총사령인 조선의용군도 ‘조선의용대’라고 표기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이런 오류투성이의 위키피디아를 주자료로 인용해서 교과서를 편찬한 집필자들도 대단하지만, 그런 교과서를 망나니 자식 감싸듯이 두둔하는 교육부의 태도는 차라리 애처롭다. 이쯤에서 교학사 집필자들에게 한번 묻고 싶다. 당신들은 위키피디아를 인용할 때 사전 초기 화면에 적힌 다음과 같은 ‘경고’ 문구도 읽지 않았는가?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이 문서를 편집하여, 참고하신 문헌이나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주석 등으로 표기해 주세요.

 

  위키피디아 측은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다”고, 그래서 신뢰할 수 없다고 분명히,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교학사 필자들이 인용한 조선독립동맹 관련 설명에는 참고 문헌이나 출처가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인터넷의 한 카페에는 “'출처 필요(citation needed)' 표시가 붙어 있거나, 아예 인용 출처가 없는 경우 가급적이면 신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위키피디아 올바르게 쓰는 법’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만큼 위키피디아 자료를 인용할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고, 웬만한 인터넷 사용자들은 다 알고 있지 않는가?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정녕 눈뜬 장님들인가?

 


7) 독립동맹의 연안 이동 문제

  본문에서는 화북조선청년연합회가 조선독립동맹으로 조직의 명칭을 변경하고 나서 곧바로 옌안으로 이동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산서성 진동남 태항산 일대에서 조직된 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이 이동과 조직 개편을 거듭하면서 중국공산당의 본거지인 옌안으로 후퇴한 것은 1944년 초 무렵이다. 독립동맹이 결성된 지 2년이 지나서야 옌안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런데 289쪽에 실린 ‘조선의용대의 분할과 북상’이라는 지도에는 조선의용군이 옌안으로 이동한 것이 1944년 9월이라고 적혀 있다. 교과서 집필자들이 자신들이 집필한 내용만 꼼꼼히 검토했어도 이런 오류는 바로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문제제기에 이어 역사단체의 전문적인 분석 결과로 교학사 교과서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된 지도 벌써 3개월이 훌쩍 지났다. 그 귀중한 시간동안 고친다고 고친 것이 역사단체에서 지적한 딱 두 가지뿐이다. 그때 역사학자들이 미처 지적하지 않고 ‘숨겨둔’ 나머지 일곱 개의 오류는 왜 고치지 못했나? 역사학자들이 ‘친절하게’ ‘안내 싸인’을 보내주지 않아서? 이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지 않나?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교육부 책임자님 내용상 변경을 가져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표기 오류를 정말 수정하긴 할 수 있겠습니까?
  본문 13줄 서술에서 7개의 사실 오류나 왜곡을 고치면 어떻게 될까? 누더기 기운 옷이 되지 않을까? 이쯤에서 작은 결론 하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검인정 취소. 이 쉬운 길을 두고 왜 이렇게 고생을 하나.

 


부록에서 드러난 오류들

  이번 글을 마무리하면서 본문 이외에 부록과 관련된 사소한 실수들을 몇 가지 짚어보자.
  교과서 말미에는 검인정을 통과한 모든 교과서에는 집필자의 현재 소속과 약력이 소개되어 있다. 물론 교학사 교과서에 참여한 6명의 집필자도 현직 소개를 포함한 집필자 약력이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수정최종본에는 논란이 되었던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 중 한 사람인 김도형의 약력 가운데 “(현) (사)통일미래사회연구소”라는 현직 소개가 출판사 자체 수정의 형식으로 슬쩍 빠졌다. 도둑이 제발 지린 것인가?
  “(현) (사)통일미래사회연구소”를 빼고 나니 김도형이라는 집필자만 현재 소속을 밝히지 않은 유일한 집필자가 되었다. 검인정을 통과한 8종의 한국사교과서 집필진은 대부분 현직 교수와 교사들이다. 그렇다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난 뒤 뚜렷한 연구단체나 학교 소속도 없는 사람이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건가?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교과서를 수정한 본인들은 정작 그 ‘어색함’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혹시 이제 최종본이 통과됐으니 이 문제도 그냥 넘어가기를 가슴조이며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부록과 관련해서 교학사 교과서의 ‘사소한’ 실수를 하나 더 지적해 보자.『사상계』에 실린 장준하의 글을 [탐구 활동] 자료로 교과서에 실었다가 국사편찬위원회의 수정권고 지시를 받고 삭제했다. 8월 31일 검인정본이 공개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그로부터 벌써 세 달이 훨씬 지났다. 왜, 아직도 400쪽의 ‘사진 및 인용자료 출처’ 목록에 [“사상계 1961년 6월호”, 사상계, 1961, -328쪽(장준하의 5·16 선언에 대한 평가)』]라는 자료 출전에 버젓이 남아 있는가? 도대체 교학사 집필자들은 무엇을 고치는 걸까?

 

  그런데 ‘사진 및 인용자료 출처’를 보다 보니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점이 눈에 띈다.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교과서 자료 출전 코너의 주인공인 구글, 네이버, 네이트, 다음, 위키피디아, 티스토리 같은 인터넷 자료 출처를 모두 수정했다. 교학사 교과서 내용이 얼마나 바뀌었고, 또 출판사측이 얼마나 교과서를 열심히 고쳤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분들은 단언컨대 교과서 본문을 보지 말고 교과서 제일 끝의 ‘사진 및 인용자료 출처’(395-400)를 살펴보시기를 권한다. 인터넷 인용 자료 목록이 장난 아니다. 얼마나 고쳤기에 그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는 5쪽 분량이 6쪽 분량으로 늘어났을까. 본문을 무수히 고쳤지만 편집의 문제를 고려해 쪽수를 바꾸지 않는 선에서 수정했다. 그런데 ‘사진 및 인용 자료 출처’만은 그 원칙을 어겨가면서까지 과감히 고친 것이다.

 

  얼마나 고쳤는지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교학사 집필자들이 좋아하는 수치로 한번 계산해 보자. 검정본을 기준으로 ‘사진 및 인용 자료 출처’에 적힌 출전 항목수는 총 538개. 이 가운데 인터넷 인용 출처는 모두 321개. 기타 자료 인용 출처 226개를 가뿐이 넘는다. 전체적으로 60%가 넘는 수치다. 근현대 부분만 놓고 보면 인터넷 자료의 인용 비율이 압도적이다. 인터넷 : 기타 자료 비율이 4단원(개항기) 78:29, 5단원(일제강점기) 108:42, 6단원(현대) 73:14였다. 눈이 아파서 2번만 카운트한 숫자라서 다소 수치의 차이는 있더라도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수치 기록 분석을 통해 교학사가 사진 및 인용 자료 작업을 얼마나 안일하게 진행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작업한 것을 불과 2달 남짓한 시간 동안 다 고쳤으니 요 몇 달 사이에 얼마나 고생들이 많았을까. 시각 자료가 많이 들어가는 책을 만들어 본 사람은 잘 안다. 이런 사소한 자료와 출전 하나를 새로 찾고 고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사실 역사단체와 시민단체 등의 ‘훈수’에 국사편찬위원회와 교육부가 친절하게 수정을 도와 준 본문을 고치는 것은 인용 자료 출처를 고치는 것에 비하면 누워서 식은 죽 먹기가 아니었을까. 유경험자로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이 많은 인용 자료를 다시 찾고 수정하느라 고생했을 교학사 출판사 편집자에게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조급하게 너무 많은 양을 고치다 보니 코미디 같은 실수도 더러 눈에 띈다. 그래도 교과서 집필진의 ‘본문 횡포’에 비하면 양반이니 애교로 봐 주고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팁이 하나 더 있다. 검정본에서 ‘한국역사연구회’를 ‘한국역사연구원’으로 잘못 표기한 것도 아직 고치지 않았다. 한국역사연구회는 한국사 최대의 연구단체로 이번 교학사 교과서 오류 분석에도 ‘큰 공을 세운’ 단체가 아니던가? 이런 사소한 실수마저 최종본이 공개될 때까지 수정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도대체 그 중요한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무엇을 고친 건가?
  그런데 어쩌나. 내일 오전 11시 당신들이 단체 이름도 제대로 표기하지 못했던, 바로 그 한국역사연구회를 비롯한 7개의 역사학회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검토 결과를 발표한다고 한다. 16일 민족문제연구소가 교학사 교과서 수정최종본을 검토한 결과 밝힌 개항기 100건, 일제강점기 200건, 광복 이후 현대사 100건 등 총 400건의 오류보다 더 많지 않을까? 내일이 기다려진다.

 

  교학사 교과서, 그 오류의 끝은 어디인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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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지수걸

 

 

* 본글에 현재 실려있는 내용은 지수걸 교수님께서 최초에 제공해주셨던 파일의 서론격입니다. 현재 제공하는 파일은 수정후 새로 게시해줄 것을 요청한 글로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변경된 사항은 빨간 글씨로 적으니, 참고바랍니다.

  

  이명희 교수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다는 소식은 오래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명희 교수가 함께 교과서를 써 보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몇몇 분들로부터 이와 유사한 제안을 받은 바는 있으나, 저는 그때마다 뜻도 능력도 없다고 말하며 고사를 하곤 했습니다. 게다가 20년 이상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살아왔으나 저는 한 번도 교육부나 국사편찬위원회의 부름을 받아 본 일이 없습니다. 이건 제 자랑입니다.

 

  2011년 교육과정 논쟁이 한창일 때, 저는 전국역사교사모임 게시판에 강남 귤, 강북 탱자라는 제목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론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와 똑같은 이유로 교학사판 한국사 바로보기라는 제목의 글을 여러 역사연구단체의 게시판에 올립니다. 현장에서 한국사를 가르치고 계신 선생님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도 저는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이 있고, 또 검정과정을 통과해야 하는데 설마 소문처럼 썼겠는가, 그런 생각을 오히려 더 많이 한 편입니다. 심지어 교과서 검토를 다급하게 부탁하는 분에게, “검정을 통과했다는 8종 교과서,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느냐라고 하면서, 노파심에 심지어는 남송(南宋) 시대 여조겸(呂祖謙)이라는 사람이 쓴 '동래박의'의 한 대목까지 인용한 적도 있었습니다.

 

  “소인의 죄악을 심하게 책망하는 것은 소인의 죄악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것이요, 소인의 죄를 지나치게 많이 늘리는 것은 소인의 죄를 줄여 주는 것이다(甚小人之惡者 寬小人之惡者也 多小人之罪者 薄小人之罪者也).” 따라서 소인배들을 벌하고 할 때는 한 마디의 잘못(一言之誤)’, ‘한 글자의 오차(一字之差)’도 있어서는 안 된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교과서 공개 이전부터 있었던 권희영 교수의 남노당 사관운운하는 도발적인 발언들을 접하면서도, ‘어쩌면 이건 낚시밥이나, 덫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 편입니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를 다 읽어본 뒤,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저들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 같습니다.

 

  9월 초 교과서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여러 가지 우려와 기대(?) 가운데, 교학사 판 한국사를 머리말부터 찬찬히 훑어 봤습니다.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작성한 뉴라이트교과서 검토(고등학교 한국사’, 교학사), 다들 보셨죠. 이 문건의 지적처럼 문제가 많더군요. 이 지경일 줄은 몰랐습니다.

 

  요즘이 바야흐로 입시철인데 학과 게시판은 폐쇄되고, 인터넷에는 저희 학과와 관련한 각종 야유와 험담이 난무하는 등 요즘 학과 꼴이 말이 아닙니다.그런 교수 밑에서 뭘 배울지 학생들이 불쌍하다거나, “앞으로 공주대 출신들은 역사 선생 해먹기 힘들겠다.”는 둥 듣기 민망한 말들이 많더군요. 게다가 뜻있는 동문들이 이명희 교수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사태가 점차 복잡해져 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제가 요즘 저희 학과 학과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게다가 학생들에게 한국 근현대사’(한국 근대사, 한국 현대사, 한국 근현대 민족운동사, 해방과 분단의 역사, 한국 근현대사의 이해)를 가르치고 있는 건 이명희 교수가 아니고 바로 저입니다. 제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그저 참담할 뿐입니다. 해서 짧게나마 제 입장을 밝히고자 이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본의 아니게 장문의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현장 교사 분들이 교과서를 선정하실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첫 번째로 머리말이야기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다른 교과서의 머리말이 어떠한지 잘 모르겠으나, 우선 독특한 부제부터 눈에 뜨이더군요. ‘탐구하는 정신을 위하여라니, 무슨 선언문이나 성명서 제목 같지요. 쌩뚱맞게스리, ‘여러분은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여러분의 탐구 정신을 위하여 아낌없는 지원과 격려를 하겠습니다. 대표 집필자 권희영으로 머리말을 맺고 있더군요.

 

  게다가 문장 또한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국사편찬위원회 명의로 작성된 초중등학교 교과용 도서 편찬상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2011.9)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를 보면, “·탈자, 문법오류, 비문 등 표기·표현상의 오류가 없이 정확하게 기술하였는가?”라는 항목이 보입니다. 머리말만 보면 어떻게 검정을 통과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지경입니다.

 

  추측컨대, 머리말은 심사대상이 아니었던 듯싶습니다. 하긴 시험에 나오는 것도 아닌데, 교사든 학생이든 그걸 누가 읽는다고 심사를 했겠습니까? 단 두 페이지에 불과한 글이긴 하나 참으로 많은 말을 했더군요. 오묘한 비문들이 수두룩하나 참을성 있게 읽어 보면 흥미로운대목을 많이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 이하의 내용(총 A4 38쪽)은 첨부파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찬찬히 감상해주시고, 많은 배포 및 전파를 환영합니다.

 

 

 

지수걸_교학사판한국사바로보기(수정본).pdf

 

 

<이후 글의 목차>

우파 교과서일까, 저질교과서일까?

누구를 위한 누구의 역사일까?

 머리말」에 보이는 편사의 원칙과 방법

단원 제목이나 연표 정리의 책략성

'역사 필연론' 혹은 '고육책론(차선책론)'

교과서 서술에 활용한 주요 이론과 담론

'탐구 학습'을 빌미로 한 역사왜곡

교과 내용의 중대한 오류나 왜곡

기타의 책략적 서사기법이나 수사법

나머지말

 

* 목차에서 빨간 표시가 된 부분들은 기존의 글에서 추가되거나 재편된 제목들을 표시한 것입니다. 그 외에도 글 내부에도 크고작은 수정이 있으니 글 전체로 다시 한번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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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불량식품교과서의 진실을 말한다

-신채호 죽이기와 이병도 띄우기

 

 

    이상한 공개, 아니 사실상 은폐에도 불구하고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에 대해서는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논란의 핵심은 현대사이지만 일제 강점기에 관해서도 친일 미화, ‘위안부서술 잘못, 식민지 근대화론 수용 등이 문제로 거론되었다. 교과서의 일제 강점기 서술 중 언론의 조명을 덜 받았던 부분을 중심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지점을 짚어보겠다. 사소해보이지만 때때로 저의는 작은 곳, 세세한 곳에서 더 잘 드러난다.

 

1.

    교과서의 일제강점기를 다룬 5장의 제5절은 국외 민족 운동의 전개라는 제목으로 1. 무장 독립 투쟁의 전개, 2. 의열 투쟁과 국외 한인 사회, 3. 국외 민족 운동의 발전, [탐구활동] ‘미국과 중국에서의 외교활동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주목되는 부분이 의열 투쟁과 국외 한인 사회와 관련된 서술이다. 3·1운동 이후 전개된 의열 투쟁 사례를 열거한 다음, 의열단 활동을 마무리하는 문장으로 신채호의 조선 혁명 선언을 언급하면서 의열단의 초기 노선과 행동 강령이 잘 나타나 있다(1923)”라고만 서술하고 정작 의열단의 초기 노선이 무엇이고 행동 강령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지 않고 있다. 너무도 불친절하다. 도대체 학생들이 의열단의 초기 노선과 행동 강령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아보라는 것인가.

    힌트 같은 구성이다. 바로 293쪽의 하단에 배치되어 있는 [사료 탐구] 코너에 실린 조선 혁명 선언이다. 그런데 정작 인용문은 의열단의 노선이나 강령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신채호가 외교론과 실력양성론을 비판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조선 혁명 선언의 그 많은 문장 가운데 하필이면 왜 이 문장을 인용한 걸까? 신채호를 삐딱하게 보는 교과서 저자가 조선 혁명 선언을 인용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인용문 바로 아래에 [도움 글]이라는 형식으로 이어지는 다음과 같은 문장에 잘 드러나 있다.

 

미래의 미·일 전쟁 등 국제 정세의 변동으로 우리에게 독립의 기회가 오며, 그때까지 독립의 능력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독립의 방책이라는 외교론과 실력 양성론(준비론)을 정면 부정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외교론과 실력 양성론을 편들어 주고 있다. 신채호의 조선 혁명 선언의 정신을 이렇게 욕보여도 되는가? 이어지는 [생각해 보기]에는 집필자의 의도가 더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신채호가 외교론과 실력 양성론을 비판하는 근거는 무엇이며, 그 주장은 과연 타당할까?(273)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이렇게 쓰였다. ‘과연은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남의 주장에 대하여 그 실현성이나 개연성을 의심할 때 쓰는 말이다. 이럴 때는 주로 뒤에 의문문이 온다. 기껏 의열 투쟁을 설명해놓고 마지막에 운동 노선의 타당성이 의심스럽다고 뒤통수를 때린다. 요새 동네 양아치들도 창피하게 여기는 비겁한 수법이다. 비판을 하려면 근거를 대고 정정당당하게 논쟁을 하라. 교과서는 논쟁의 자리가 아니라고? 그러면 학계에서 논쟁을 하고 그러고 나서 검증된 내용을 써도 늦지 않다. 그런 절차도 거치지 않고 마지못해 쓴다는 투로 의열 투쟁을 쓰고 마지막에 쓱 디스(disrespect)’하는 것은 적어도 교과서에서 할 짓은 아니다.

    참고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조선 혁명 선언항목을 보면 무정부주의적인 요소를 문제로 지적하면서도 이렇게 끝난다. “항일독립운동기에 이것만큼 의열단원뿐만 아니라 모든 독립운동자들과 한국의 전민족구성원에게 독립에 대한 확신과 목표를 불어넣은 것은 없다고 할 정도로 귀중한 문서이다.” 집필자는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한 역사학자 이만열이다.

 

2.

    신채호의 조선 혁명 선언을 디스한 교과서 집필자의 의도가 외교론이나 실력 양성론 옹호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미 언론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친일 미화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친일파 대부분이 실력양성론에 빠져 친일의 강을 건넜다. 그런 인물들을 교학사 교과서는 여러 명 복권시키고 있다. 김성수, 최남선, 유치진 같은 인물들이다. 많은 친일 미화 대목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국내 민족 문화 수호 운동의 전개중 식민사학에 맞선 민족주의적 역사연구를 소개하는 대목이다. 한 문단에 박은식, 신채호, 정인보, 문일평, 백남운의 업적을 간단히 소개한 뒤 이런 문장이 이어 진다.

 

이외에 이병도와 손진태 등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서술해야 한다.’는 실증 사학의 입장에서 한국사를 연구하는 학풍을 세웠고, 1934년 진단학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의 역사 연구는 모두 일제 식민사학을 비판하고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려고 하였다.(266)

 

    이병도일제의 식민사학 비판이라는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한 문장 안에서 행복한 동거를 하고 있다. 그가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근무했다는 것은 잘 알지만, 식민사학을 비판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그는 민족주의사학이나 사회경제사학과 논쟁을 피한 채 철저히 역사 공부에만 애착을 가졌던”(김일수,이병도와 김석형, 실증사학과 주체사학의 분립,남과 북을 만든 라이벌, 역사비평사, 2008) 학구파 연구자였다. 이 시기 전공 연구자라면 이건 상식이다. 무엇보다 이병도는 자기 입으로 일제시대에 총독부 관리들은 독립 사상에 관계된 것이 아니면 그렇게 탄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안심하고 한국사 연구를 하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독립 사상과 관계없는 연구를 한 것이다. “일제의 식민사학 비판은 독립 사상과 관계 깊어 일제가 불온하게 보았고, 그는 그것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굳이 일제에게 미움 받을 연구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3.

    이병도가 변명 없이 자신의 독립 사상과 무관하다고 밝혔던 것은 아마 학문에 대한 자부심이 컸기 때문일 거다. 비록 아세(阿世, 세상에 아첨)는 했지만(본인은 부인하겠지만) 곡학(曲學)은 안했다(여러 사람이 부정하겠지만)는 자부심일 것이다. 그가 추구한 학문은 교과서 집필자도 잘 알고 있듯이 실증이다. 실증의 기본은 사료를 읽고 비판하며 평가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는 양질의 사료가 실릴 필요가 있다. 그런데 교학사 교과서 필자는 한국 실증사학의 대부인 이병도에게 식민 사학을 비판한 민족 사학자라는 영광을 안겨 주었지만, 정작 이병도의 실증 정신은 본받지 못한 것 같다.

 

    구체적인 증거를 들어보자. 교과서 5장 제5절의 [탐구활동] ’미국과 중국에서의 외교활동을 보면(277) 집필자의 실증 수준이 의심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 1, 2에는 출전이 없고 자료 3에만 출전이 달려 있다. 부록(399)을 보면 자료 1, 2도 자료 3과 같은 출전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인용된 자료의 내용을 잘 읽어보면 자료가 아니다. 학술발표회 연구논문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은 단행본이다. 엄밀한 의미로 역사적 사실의 해석에 도움이 되는 1차 사료가 아니라 2차 사료, 그것도 연구자들이 자신의 관점을 드러낸 연구 논문이다. 식품에 비유하자면 원산지 표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학생과 교사를 무시하는 처사다. 가급적 양질의 1차 사료를 제시하고 학생들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2차 사료에도 급이 있다. 인용된 자료에는 특히 임시 정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은 국제 정세 판단에서 놀라울 정도의 탁월함을 보여 주었다.”는 서술이 있다. 정말 놀랍고 탁월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맥락에서 그의 탁월함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쓰지는 않을 거다. “놀라울 정도운운은 논문 심사라면 통과될 수 없는 표현이다. 소위 고무 찬양에 가깝다. 학술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않다. 이승만에게도 누가 되는 표현이다. 이런 격한 표현과 찬양이 담긴 논문을 자료랍시고 인용하다니, 이병도가 경악할 수준이다. 게다가 출전의 편자명 이인희도 틀린 것 같다. 그가 누구일까?

 

    이쯤에서 전문 연구자로서 교학사 교과서가 인용한 자료의 실체를 공개해야겠다. 문제의 인용문이 적힌 대한민국 건국의 재인식2007년과 2008년 여름에 개최되었던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논문을 모아 발간한 책이다. 이 책에 실린 26편의 논문 집필자의 라인업은 화려하다. 유영익, 이영훈, 김일영, 차상철, 전상인, 김용직, 박지향 등. 여기까지만 열거해도, 이 분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들이 어떤 성향의 학자들인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이 책의 서문은 이인호가 썼고, 편집 책임은 강규형이 맡았다. 이 정도면 이인희가 이인호의 오기임을 짐작할 것이다. 본인이 이 책을 보았다면 얼마나 섭섭해 하였을까. 참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교과서이다.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아이들의 생각과 토론을 유도하기 위해 제시된 자료는 객관적이고 공평한 당대 자료여야 한다. 그 이유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작성하여 집필자들에게 제시한 교과용 도서 편찬창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에 분명 위배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편찬상의 유의점 3. 내용의 선정 및 조직 7, 8항에 해답이 적혀 있다.

 

(7) 교육과정에 제시된 학습내용을 중심으로 특정 이론이나 학설에 치우치지 않도록 내용을 선정한다.

(8) 사료, 지도, 연표, 도표, 사진, 통계 등의 자료는 해당 내용의 이해와 학습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한 것을 선별하며 출처를 정확히 제시한다.

 

    이 부분을 대표 집필한 저자는 특정 이론이나 학설에 치우치지 않도록 내용을 선정한다는 구절도 읽지 못한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당대 자료도 아닐뿐더러, 교과서 저자와 같은 이념적 색깔을 지닌(사실은 한 몸이나 다름 없는) 그런 단체에서 발간한 이승만 찬양논문을 자료로 제시할 수 있는가. 국가기관의 심사를 통과한 대한민국 검인정 역사교과서, 그것도 고등학생 교과서가 이래도 되는 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학습량이 많은 고등학생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묻고 싶다. 국편은 검정 심의를 제대로 하기는 한 건가? 왜 이런 내용도 걸러내지 못했을까? 왜 다른 교과서에 비해 두 배 이상이나 되는 수정 지시 사항에 이 부분은 빠진 걸까? 인력이 적어서 제대로 심사를 하지 못했다? 백번 양보해서 오타, 사실 오류, 문장 실수 같은 것은 얼마든지 애교로 보아줄 수 있다. 그런 건 고치면 된다. 그런데 이건 아니지 않는가. 아무리 인원이 부족해도 그렇지 검정 심사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가 일당 백의 전문 연구자들이 아닌가. 그들이 전문가로서 그런 것도 제대로 감식해 내지 못했다면 왜 그들을 임명했나. 검정 심의회의 변명대로 인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던 사소한 실수인가, 아니면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의 집필 의도를 충실히 살려주기 위한 의도적인 직무유기인가?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도 중대한 실수, 의도된 실수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정말 진실이 궁금하다. 국편도 피해갈 생각은 하지마라.

   그래도 가장 중요한 책임은 교과서 필자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이명희 교수님 왜 그러셨나요? 설마 모르고 그러신 건 아니시죠?”

   교과서(교학사)가 포털사이트에서 자료사진을 대거 인용했다는 문제가 드러나자 교과서 집필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한 지적인 것 같다. 피곤하다며 더 이상 해명하지 않으셨는데,(한겨레신문2013.9.6.) 그럼 국편의 이 집필 기준을 어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변하실 건가요? 이 글을 보셨다면 제발 댓글이라도 달아주세요.

 

4.

    앞으로 더 흥미로운 분석이 남아 있지만, 이 정도만 살펴보아도 이번 교학사 교과서는 사실과 동떨어진, 이념/주장이 듬뿍 담긴, 저질 상품 같다. 한마디로 불량식품이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가 많은 불량식품이 국가 기관에서 심사한 검인정 심사를 통과했다? 이건 누가 보더라도 국가가 불량식품을 제작, 판매, 유통시킨 분명한 범죄행위이다. 대통령 말씀처럼 4대악의 하나로 근절되어야 한다. 이런 불량식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어른들은 부끄럽지도 않은가? 왜 이 교과서가 불량식품인지는 교과서 검정 심의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시한 교과용 도서 편찬창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에 잘 드러나 있다. 교과서 개발방향 2번 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2) 헌법 정신에 입각하여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 정체성을 제고하고, 정치적, 종교적, 사회문화적으로 교육의 중립성을 유지하고 이념적으로 편향성이 없으며, 특정 국가, 민족, 지역, 종교, 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협된 시각을 갖지 않도록 교과서를 개발한다.

 

   헌법 정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오해와 편협된 시각을 갖지 않도록 교과서를 개발한다는 기본 규칙은 지켜야 하지 않는가.

    연구자이기 이전에 학생을 둔 학부모로서 이런 불량식품의 유통만은 막아야 한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없다. 불량식품을 만든 사람들은 소비자 검증 과정이나 마찬가지인 일선 학교의 교과서 전시와 채택 일정도 앞당겼다고 한다. 애초에 공정한 규칙은 없었다. 우리 연구자들도 침묵할 수 없는 이유이다. 잘못된 제작 과정은 막지 못했지만 잘못된 유통 과정을 막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지금 막지 못하면 당장 내년 3월부터 고등학교에 배포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고등학생들에게 불량식품을 안겨줄 수는 없지 않은가?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겨우 이것 가지고 수많은 사람이 애써 만든 교과서를 그렇게 폄하할 수 있느냐?”. 걱정하지 마시라. 이 글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이 교과서가 왜 불량식품인지, 학문적 소신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꾸준히 글을 쓸 것이다. 부디 최종 결정은 여기에 실린 글들의 연재가 모두 끝난 다음에 내려주시기를. 그리고 반론이나 이견도 얼마든지 환영한다.

 

 

역사문제연구소 교과서대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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