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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6.12.01 국정 역사교과서 긴급 분석 기자회견 (2016.11.30. 역사문제연구소 5층 관지헌. 주최: 역사교육연대회의, 한국서양사학회, 고고학고대사협의회)
  4. 2015.10.20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음’의 너머 -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 예고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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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3.11.12 [긴급공지! 한국사 교과서와 역사교육문제에 대한 한국사 원로교수 기자회견] "역사교육에 대한 권력과 정치의 개입을 개탄한다" (2013.11.12. 화. 오전11시. 한국언론진흥재단 19층 기자회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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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3 00:21 역사교과서를 논하다

[국정교과서 현대사 분석 긴급발표회 자료집 내려받기]

20161222_국정교과서현대사분석자료집.hwp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현대사 서술 분석 긴급발표회

-박정희 정부 시기를 중심으로

 

 

 

 

[진행 순서]

주제별 분석 발표 : 15:00-16:00

정치사 서술 분석 : 홍석률(성신여대)

경제사 서술 분석 : 정진아(건국대)

민주주의, 인권, 노동 서술 분석 : 허은(고려대)

남북관계, 통일 서술 분석 : 기광서(조선대)

 

토론 : 16:00-16:30

정용욱(서울대), 김성보(연세대), 오제연(성균관대)

 

질의 응답 : 16:30-17:00

 

 

일시 : 20161222() 오후 3-5

장소 : 서울시청 본관 대회의실

주관 : 역사문제연구소

주최 : 서울시교육청, 역사교육연대회의(민족문제연구소, 아시아평화 와역사교육연대,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전국역사교사모임, 한국역사교육학회, 한국역사연구회)




국정교과서 박정희 정부 시기 정치사 서술 분석

 

홍석률(성신여대)

 

교육부가 최근 공개한 국정교과서의 내용은 과거 교학사 교과서에 비해 독재통치를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내용과 표현이 상대적으로 완화되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국정교과서 편찬 자체가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정치상황도 급변했기에 거듭되는 수정작업을 통해 문제가 되는 서술을 가급적 회피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인식은 어떤 문장 표현보다는 어떠한 사실들이 선택되고, 부각되느냐를 통해 더 잘 드러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국정교과서는 여전히 헌정질서 유린과 독재를 안보 논리와 양적인 경제 성장 논리로 옹호하고 변명하는 서술을 하고 있다. 그것을 좀 더 교묘하게 은폐하려고 노력했지만, 엄밀히 살펴보면 사실상 더 노골적으로 변명에 나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사실보다는 독재정권의 명분을 선택하여 서술하며 변명하는 교과서


국정교과서는 5.16 쿠데타, 3선개헌 등에 대해 서술 할 때 사실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평가를 제시하기보다는 집권세력이 내세운 명분을 다음과 같이 전달하고 있다.

 

그들은(5.16 쿠데타의 주체들은; 필자) 사회적 혼란과 장면의 정부의 무능, 공산화 위협 등을 정변의 명분으로 내세웠다.(261)

 

민주공화당은 국가 안보와 경제 개발을 명분으로 1969년 대통령의 3선출마를 가능하게 하는 개헌안을 제출하였다.(265) <강조는 필자>

 

교과서 서술은 매우 한정된 지면만을 허용한다. 다양한 주제와 영역을 집약적으로 다루기 위해 아주 중요한 사실만 추려내어도 지면이 항상 부족하다. 그런데 헌정질서를 유린한 사람들이 자기 합리화를 위해 내세운 명분을 굳이 교과서에 나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것들을 명분으로 내세웠다며 객관적인 서술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을 불필요하게 선택하여 소개함으로써 헌정질서 유린 행위를 옹호하고, 변명하는 서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가 사실보다는 변명을 담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국정교과서는 12.12 쿠데타에 대해서는 지휘 계통을 무시하고 일부 병력을 동원해 군사 반란을 일으켜”(266)라고 하여 헌정질서를 유린한 사실을 명확하게 서술하였다. 그러나 5.16 쿠데타에 대해서는 이 점에 대한 명확한 지적이 없다. 다만 민정 이양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만을 문제로 제시하고 있다. 5.16 쿠데타 주체들의 헌정질서 유린 행위에 대해 축소시켜 서술하거나 여전히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국정교과서의 유신체제기를 다룬 항목의 소제목은 “2-2 유신 체제의 등장과 중화학 공업의 육성이다. 이러한 방식의 제목 설정과 서술 배치를 통해 유신체제기에도 중화학공업화 등 눈부신 경제성장이 있었으며, 나아가 억압적인 통치가 경제성장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예컨대 유신체제기 억압 통치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던 긴급 조치에 대한 서술을 보기로 하자. 국정교과서도 유신체제기 박정희 대통령이 긴급 조치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했다고 서술하기는 했다. 긴급 조치는 모두 아홉 차례 발동되었는데, 이중 4개의 긴급조치(1, 4, 7, 9)가 정치적 탄압 및 인권침해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국정교과서에는 9개의 긴급조치 내용 중 에너지 절약, 세금감면 등 경제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 긴급 조치 3호의 내용만을 본문과 각주로 설명해 놓았다(268). 나머지 긴급 조치에 대해서는 내용 소개가 없다. 1,300여명의 구속자를 발생시킨 긴급 조치 9호도 그냥 3.1 민주 구국선언(명동선언)을 한 인사들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었다는 정도의 서술만 있을 따름이다(268). 지극히 편파적인 내용 선택으로 유신체제가 경제 발전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는 것을 사실상 강조하였던 것이다.


2. 안보 논리에 의해 가려지고, 왜곡된 냉전사 인식

 

국정교과서에서 박정희 정부부터 6월 민주항쟁에 이르는 시기를 다루는 항목의 제목은 “2. 냉전 시기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경제, 사회 발전이다. 세계사적 맥락에서 한국사를 서술 할 때 냉전 문제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국정교과서의 냉전에 대한 서술은 안보 논리로 독재정권을 합리화하고, 과거의 냉전 논리와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어 학생들에게 심어주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 국내외 학계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차원의 냉전사 연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1960,70년대 한국의 경제개발을 다룬 일련의 연구들은 동서 양진영의 공존이라는 냉전사의 변동을 강조한다. 핵무기와 미사일 기술의 발전으로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에 미국과 소련은 군사력만으로는 기존 냉전 대립에서 승패를 가를 수 없는 상태에 돌입하였다. 이에 양 진영의 장기적 공존이 불가피해지고, 냉전 경쟁에서 군사적 대결보다는 경제적 경쟁이 더 많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제3세계 근대화론이 대두되고, 한국의 경제개발, 나아가 5.16 쿠데타도 이러한 맥락과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교과서의 박정희 정부기 경제개발을 다룬 서술에는 이와 같은 내용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안보논리만이 강조된다. 이에 1960년대 초 세계정세에 대한 설명도 당시 세계는 냉전이 격화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하고 있었다”(262)는 식으로 단순화된다.

 

1970년대 초 데탕트 정세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서술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닉슨 독트린으로 미중관계가 개선되고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등 냉전이 완화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197112월 반공을 강조하며 정권을 유지하던 박정희 정부는 국가 안보를 최우선시하며 일체의 사회불안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담화를 발표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265)

 

 

여기서는 닉슨 독트린이 미중관계의 개선을 불러일으킨 중요한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다. 물론 이는 미중관계 개선을 가져온 한 요인으로 이야기될 수는 있다. 그러나 데탕트는 기본적으로 어떤 정책이라기보다는 냉전시기에 조성된 특정한 국제적 상황을 의미한다. 미국의 대외정책인 닉슨 독트린과 국제정세의 변화를 의미하는 미중관계 개선은 관련은 있지만 상당히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냉전사에서 데탕트를 설명할 때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양극화되었던 냉전적 국제질서가 유럽과 일본의 성장, 또한 사회주의권 내부의 중국과 소련의 갈등으로 훨씬 다극화되어가는 상황을 원인으로 주로 강조한다. 미중관계 개선도 기본적으로 중소 분쟁 같은 다극화된 국제질서가 중요하게 작용한 것이었다. 따라서 닉슨 독트린으로 미중관계가 개선되고라는 등의 표현은 냉전사를 조금이라도 이해한 사람이라면 쓰기 어려운 구절이라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다음에 이어지는 197112월 국가비상사태 선언에 대한 서술이다. 미국과 중국이 관계개선에 나서 동아시아에서도 데탕트 정세가 조성되고 한반도에서도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북대화가 시작되었는데, 박정희 정부는 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일까? “이러한 상황에서라는 접속구가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라고 바뀐다면 박정희 정부가 데탕트에도 불구하고 닉슨 독트린 등의 위기적 측면만을 강조하고, 안보 논리만 강조하여 국가비상사태 선언과 유신체제의 수립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술 자체만을 놓고 보면 도대체 데탕트와 국가비상사태 선언이 어떠한 연관을 갖고 있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여러 사실들을 연결시켜 정합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서로 상충되는 사실들을 단순 나열하는 것은 정말 교과서에서 용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엄청나게 많은 예산을 사용하여 만들었지만, 국정교과서의 서술 수준이 크게 문제가 된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현대 경제사 서술 분석


정진아(건국대학교)

 

 

1. 국정 역사교과서 현대 경제사 서술 기조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서 현실을 이해하고, 내일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대한 성찰을 통해 오늘의 현실이 있게 된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국정 역사교과서 현대 경제사 서술기조의 핵심적인 문제는 이점을 놓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기존 검인정 교과서와 비교할 때 국정 역사교과서의 현대 경제사 서술방식은 수량적 통계와 경제학적인 논리를 제시하는데 있어서는 한층 정밀해졌다. 반면, 정치사회적 연관성 속에서 경제사를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현저하게 부족해졌다.

 

그런 점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현대 경제사 서술 기조의 첫 번째 특징은 정치사와 경제사를 분리했다는 점에 있다. 마치 경제사는 정치사와는 다른 순경제적인 논리가 작동하는 영역처럼 서술되고 있다. 경제정책은 국정수행의 일환으로 추진되므로 결코 순경제적 논리로 작동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중화학공업화는 유신독재를 뒷받침하기 위해 급속하게 추진된 측면이 있다. 국정 역사교과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또한 당시 중화학공업화에 대해서는 박정희정권의 경제정책을 이끌었던 경제기획원조차 반대했다. 공업화를 추진하면서 발생한 기업의 부실문제와 노동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므로 공업화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박정희정권은 노동문제를 도외시하고, 8.3조치로 기업 부실 문제를 미봉한 채 중화학공업화를 밀어붙였다.

 

국정 역사교과서 현대 경제사 서술 기조의 두 번째 특징은 공업화 과정에서 제기되고 있었던 위와 같은 문제조차 서술하지 않은 채, 경제정책의 큰 흐름이 변화하는 계기를 안보위기로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정치사와 경제사의 분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정책의 변화를 안보위기와 직결시켰다. 이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박정희정권의 경제정책에 안보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국정 역사교과서 현대 경제사 서술 기조의 세 번째 특징은 물질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문제를 부차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성장의 성과만이 부각되어 그 속에서 누가 어떻게 성장했고, 누가 어떻게 고통을 받았으며, 결국 한국사회가 어떠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관권경제를 통해 성장한 재벌의 문제, 빈익빈부익부의 심화, 심각한 노동문제와 비정규직 문제 등. 한국경제가 과거에 경험했던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경제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극복방안을 논의할 수 있도록 인과관계적 맥락이 분명히 제시되어야 한다.

 

 

2. 국정 역사교과서 현대 경제사 서술 내용과 전략

 

국정 역사교과서의 현대 경제사 서술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2. 냉전 시기 권위주의 정치 체제와 경제·사회 발전이다. 원고본에는 5.16군사쿠데타로 2절을 시작하였으나, 완성본에서는 5.16군사쿠데타의 내용을 1절에 배치하고 경제개발계획으로 2절을 시작했다.

 

이는 5.16군사쿠데타를 2절에 배치하여 경제개발계획과 직결시킴으로써 군부등장의 정당성을 합리화했다는 비판을 피하는 한편, 경제개발계획을 전면에 배치하여 박정희정권의 경제적 성과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경제개발계획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권위주의 체제의 문제는 경제발전의 성과 뒤에 발생한 부분적인 잘못이라는 스토리를 완성하고자 했다.

 

이처럼 국정 역사교과서의 현대 경제사 서술은 앞서 언급한 서술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구체적인 서술의 내용과 배치방식에서 독특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첫째는 사실을 언급하되, ‘사실과 그 사실이 전개되는 역사적 맥락을 언급하지 않는 전략이다.

 

한일협정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한일회담이 추진될 당시 학생과 시민들이 굴욕적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음을 언급한다. 박정희정권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시위대를 탄압한 사실을 언급한다. 한일협정이 체결되어 차관이 들어오고 경제건설에 큰 도움이 되었음을 언급한다. 이어서 과거사 청산이 미흡했다는 점을 언급한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적극적인 해석없이 사실을 나열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피하는 전략이다.

경제개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일협정을 추진했기 때문에 초점이 사과와 보상이 아니었다는 점, 결국 그것 때문에 한국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과와 보상 문제가 누락되었고 그것이 지금도 문제(위안부 및 강제징용에 대한 사과와 보상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은 해석되지 않았다. 이렇게 사실을 나열하되 내용을 해석하지 않으면, 결국 모든 사실을 이야기했다고 하더라도 문제의 역사적 맥락과 현재적 문제를 이해하기 어렵다.

 

둘째는 문제가 되는 사실과 평가할만한 사실을 직결시켜서 문제가 되는 사실의 구체성과 문제성을 숨기는 전략이다. 2-2. 유신체제의 등장과 중화학공업의 육성, 2-3. 민주화운동과 경제성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2-2. 유신체제의 등장과 중화학공업의 육성에서는 민주주의에 역행한 유신체제를 별도의 장으로 분리하지 않고 1페이지로 간략하게 요약하였다. 긴급조치, 노동운동 탄압, 간첩조작 등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유신체제 하에서 인권이 어떻게 유린되었는지를 밝히지 않은 채 유신체제의 시스템만 개괄적으로 정리했다. 뒤를 이어 자주적 안보, 중화학공업의 육성, 새마을운동, 중동 진출에 대한 내용이 이어지고 있다.

 

2-3. 민주화운동과 경제성장에서는 5.18민주화운동에 이어 경제발전과 중산층의 확대, 6월 민주항쟁, 1987년 직선제 개헌과 평화적 정권이양이 무매개적으로 서술되고 있다. 중화학공업에 대한 중복투자의 문제, 외부경제에 좌우되는 경제구조의 취약성, 부의 불균등한 분배와 노동문제의 심화 등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 결과 그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고통은 전달되지 않은 채 유신체제는 박제화 된 사실로만 존재하고, 그것이 갖는 독재적 성격, 심각한 인권유린은 경제적인 성과 속에 가려진다. 또한 5.18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항쟁의 사이에 경제발전과 중산층의 확대를 배치함으로써 민주화운동이 마치 경제성장 및 중산층 확대의 결과인 것처럼 인식되도록 했다.

셋째는 경제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안보위기를 강조하는 냉전적 서술전략이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한일국교정상화,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되는 과정에 1967년 동백림 사건, 19681.21사태 및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 통일혁명당 사건 등 계속되는 안보위기가 발생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안보위기에서 언급한 사건 중 동백림사건은 박정희정권의 무리한 간첩단 조작사건이었다. 2006126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박정희정권이 단순 대북접촉과 동조행위에 국가보안법과 형법상의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하여 사건의 외연과 범죄사실을 확대·과장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서술전략은 안보위기를 강조함으로써 박정희정권에게 정치적 면죄부를 주는 한편, 경제정책에 안보적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냉전적일 뿐 아니라 퇴행적이다. 특히 동백림사건을 간첩사건으로 불러옴으로써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이중적 가해문제를 낳고 있다.

 

넷째는 판잣집 철거, 열악한 노동환경과 노동운동 탄압 등 의 생존권과 관련된 사안을 경제성장에 따라 불가피하게 파생되는 문제로 취급하는 전략이다. 2-2. 유신체제의 등장과 중화학공업의 육성 말미에 고속성장의 그늘산업재해와 환경문제를 배치한 것이 그러한 전략을 보여준다. 이는 중화학공업의 육성에서 중화학공업 발전의 주역으로서 재벌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이병철, 정주영을 박스기사로 처리한 것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이는 고속성장에는 빛과 더불어 그림자도 있게 마련이라는 서술방식으로서 박정희정권의 경제정책이 갖는 친기업적이고 반민중적 성격을 은폐하려는 시도이다. 또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민의 생존권 문제가 고도성장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문제들로 산업재해, 환경문제와 같이 상대화되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정 역사교과서 현대 경제사 집필을 담당한 김낙년 교수는 20161214󰡔데일리안󰡕과 한 단독인터뷰에서 균형 잡힌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학생들이 충분한 팩트를 보고 당시 위정자들이 큰 결정을 내리기 위해 했던 고민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역사교육의 목적은 팩트를 통해 위정자들의 고민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팩트의 연결고리를 통해 위정자들의 정책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 이해하는 한편, 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하는데 중심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사회에 미치는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가운데 해결방안을 모색하는데 중심을 두어야 한다. 그것이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역사교육의 올바른방향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 시기 민주주의, 인권, 노동 분야 서술 검토

 

허은(고려대 한국사학과)

 

1.

배포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의 한국 현대사 서술은 냉전반공주의와 성장주의가 기조를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한 역사적 국면이나 사건들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하거나 누락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 기초한 역사서술은 크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점을 낳고 있다.

 

20세기 후반 일제 식민지배 및 식민지주의의 영향, 동아시아 열강의 이해 추구, 그리고 이를 극복하며 더 낳은 사회를 만들고자 한 다양한 주체들의 지난한 운동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역동적으로 전개된 역사를 공산진영/자유진영이란 진영대립 논리나 용공/반공이라는 냉전반공주의적 대립구도로 재단함으로써 한국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기조의 교과서를 통해 역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탈냉전이후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남북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며 미래를 모색할 수 있는 인식을 갖추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현대사 역사서술의 가장 큰 과제이자 목표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서의 실내용을 성취해 가는 과정과 한계를 정확하게 기술하여 개개인이 주권자로서 시민의식을 형성하는데 기여 하는 것이라 본다. 그러나 냉전반공주의와 성장주의에 기반 한 역사서술은 국가안보, 경제성장 그리고 반공주의를 최우선시하며 이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중시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이를 성취하기 위한 운동이 지닌 의미를 축소하거나 역사 이해를 왜곡하기도 한다. 역사교재 집필자는 한국현대사에서 냉전반공주의와 국가안보지상이라는 입장을 취한 정치세력이 민주주의 정치제도 폐기,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권 및 인권을 말살하는 국가폭력 자행, 그리고 주권자인 국민을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것 등을 정당화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교육자들이 안보와 반공이란 명분 앞에서 민주주의(또는 민주적 법치주의)와 시민권은 언제든지 폐지 또는 유보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인식을 용인하게 될 여지가 상존하게 된다. 달리 말하면 민주공화국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인식을 용인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러한 극단적인 인식은 5·16군사쿠데타 세력, 1970년대 유신체제를 구축한 박정희 정권 또한 거슬러 올라가 일제 침략전쟁을 주도한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주창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2.

국정 역사교과서 현대사 서술에서 박정희 정권시기 민주주의, 인권, 노동 분야 관련 서술은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러한 평가를 하는 이유는 첫째, 불충분한 서술은 두말할 것도 없고 그간 축적된 연구 성과들이 충분히 소화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야인사, 학생, 종교계 인사들이 전개한 반독재 민주화 운동뿐만 아니라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의 생존권 투쟁, 그리고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 언론 및 문화학술 운동, 인권운동 등이 충실히 서술해야 한다. 특히 민주화운동을 전개했던 이들이 지녔던 국제정세 인식, 안보 및 민주주의 이해 그리고 사회정의 인식 등에 대해 분명히 적시해 주어야 한다. 예컨대 252쪽에서 ‘3·1민주구국선언은 막연하게 제시하는 수준에 불과하며, 이는 그 민주화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전달하는데 충분하지 않다. 박정희 정권시기 민주화운동에 대한 최근 연구는 문헌자료 검토를 넘어서 다양한 구술 작업을 통해 당시 여성노동자를 비롯한 여러 주체들이 생존권과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다. 또한 한발 더 나아가 부랑아, 소년범, 기지촌 여성, 그리고 복지원의 신체장애자 등이 국가안보제일주의와 총력안보체제 구축을 외치는 정권아래서 비국민으로 내몰리며 억압·차별 받았음을 조명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까지 서술될 때 박정희 정권이 외쳤던 반공과 총력안보의 실체 및 그 역사성이 정확하게 파악될 수 있을 것이며, 박정희 정권시기를 포함한 한국현대사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민주헌정질서를 부정하는 정권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방향을 모색하며 운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이 전달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일상생활과 사회문화 영역에서 민주주의의 억압을 다루는 부분이 전무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용공조작사건과 같이 국가폭력이 노골적으로 자행되며 인권이 말살되었다는 점에 대한 지적과 함께 일상에서 일어났던 국가폭력을 분명히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현대사는 민주공화국 건설의 구체화 과정과 그 실현 정도를 주요한 서술내용으로 삼는다. 이러한 기준에서 박정희 정권 시기를 역사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생활문화 영역에서 민주주의에 가해졌던 억압과 그 극복과정을 충실히 서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른바 유신체제가 국가안보제일주의라는 명분을 내걸고 일상 수준에서 대중의 의식과 행위를 철저히 통제하고 주권자가 아닌 동원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교과서에는 196812국민교육헌장의 선포와 이후 국가주의 및 반공주의 주입, 총력안보태세의 일상적 실천 강요, 정권안보를 위한 감시와 사찰 강화 특히 19755월 긴급조치 제9호 선포이후 국민동원 및 국민감시체제 구축과 국민의 일상생활 규제 등에 대해 언급조차 되고 있지 않다.

셋째, 성장주의 기조의 서술 속에서 유신체제 말기 부마민주항쟁과 같은 민중항쟁이 발생한 이유를 분명히 서술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노동자가 처했던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라는 열악한 노동 여건은 1970년대 후반에도 개선되지 않았고, 반면 정경유착 속에서 특혜를 누리던 재벌을 중심으로 한 특권층과 정부는 서민가계를 압박하면서까지 이윤을 독점하고자 했다.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했듯이 열악한 노동조건,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특권층의 부정부패,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에 대한 정권의 폭력적 탄압 등이 지속되며 서민 또는 민중이 체제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식을 공유했기에 민중항쟁으로서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것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성장의 그늘이란 항목에서(259) 노동문제는 단지 노사갈등 문제로 국한되고, 유신시대 사회경제적 상황에 대한 서술은 없이 종종 정치적 사건’(?)을 일으키는 사안으로 정리된다. 또한 그 어느 지면에서도 유신정권의 재벌 중심의 경제성장정책이 낳은 사회적 문제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생존권을 위협하는 유신정권이 진정 심각한 안보위기를 초래한다는 당대 재야 민주화인사들의 비판은 성장주의 관점에 입각한 역사서술에서 고려될 여지가 없다.

 

3.

이 국정 역사교과서 중 민주주의, 인권, 노동 분야 관련 서술은 양적 빈약함을 넘어 역사교과서 서술로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역사적 전환 국면이나 시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언급되어야 할 민주주의, 인권, 노동 분야 서술 자체가 누락되어 있고, 둘째, 냉전반공주의 입장에서 역사 사건을 실제와 전혀 다른 맥락에서 파악하도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의 사례로 5·16군정시기 군사쿠데타세력이 반공법’, ‘특수범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등 악법을 제정하여 ‘4월혁명시기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인사들을 용공분자로 몰아 처벌했다는 사실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 자행으로 빼앗긴 투표권을 포함하여 냉전반공체제(이념)에 박탈되거나 억눌렸던 민주공화국 주권자의 권리를 회복하고 한국사회가 나아가야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투쟁으로서 ‘4월혁명을 탄압한 정치세력이 5·16군사쿠데타 세력이라는 사실을 언급조차 하고 있지 않다. 교원노조를 비롯한 노동운동의 분출과 경상도와 제주도에서 전개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운동 등이 분출한 사실은 이승만 정권기와 ‘4월혁명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두 번째와 관련한 사례는 계속되는 안보위기라는 소항목(253~254)의 서술방식이다. 1967년부터 1968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다룬 이 소항목 부분은 박정희 정권시기에 일어난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동백림 사건을 다루고 있다.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했다시피 이 사건은 부정선거로 얼룩진 19676·8총선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게 일자 이를 주도하는 학생운동을 탄압하고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기획된 간첩단조작사건이다. 하지만 국정 역사 교과서는 이점을 분명히 서술하지 않고 단지 각주에 중앙정보부가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확대, 과장한 것으로 외교적 관계의 위축을 불러 일으켰다고 언급하고 있다. 정권안보를 위한 간첩단사건 조작과 이 과정에서 자행된 불법연행, 고문 등 인권유린이 문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안보위기 국면에서 중앙정보부의 실수로 대외적인 관계가 위축된 사례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계속되는 안보위기항목은 향토예비군 창설, 교련교육 전면적인 실시로 단락을 끝맺음으로써, 3선개헌 이후 야당, 재야인사, 대학생들이 국가안보와 정권안보를 혼재시킨 박정희 정권의 국제정세, 남북관계 인식 그리고 전 사회의 병영화로 요약할 수 있는 체제 개편 노선과 인식을 달리하며 강력하게 반대한 사실이 누락되고 있다. 그간 축적된 현대사 연구와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등에서 규명한 성과를 검토하여 박정희 정권시기 일어난 국가폭력과 인권유린에 대해 제대로 서술되어야 한다.

 

끝으로 역사학계가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듯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조치는 민주공화국의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퇴행적 조치라는 점에서 이 교과서는 그 내용의 충실도, 완성도와 상관없이 나와서는 안 될 교재라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 또한 민주공화국으로서 대한민국의 등장과 발전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민주주의의 성취 관련 분야가 냉전반공주의 중심의 서술 구도 속에서 누락, 왜곡, 또는 축소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국정 역사교과서는 역사교육 교재로서 근본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고 판단된다.





박정희 시대 이후 북한과 남북관계, 통일문제의 서술 구조

 

기광서(조선대)

 

분석 대상: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세계의 변화, 3. 국제질서의 변화와 대한민국의 발전, 3-4 북한의 3대 세습독재체제와 남북한 관계(pp. 284-287)와 기타 관련 부분

 

북한 관련 서술은 김일성 3대 체제의 권력 문제에 집중됨

- 북한 관련 소제목 <김일성 독재체제의 구축><3대 세습 체제 형성>에서 보듯이 서술의 주안점이 독재체제의 구축과 강화에 맞춰져 있음

 

<김일성 독재체제의 구축>

- 요약: “스탈린의 지원하에 권력을 장악한 박헌영을 숙청하고 그후 소련파와 연안파를 제거하여 1인 권력체제를 강화하며, 중소이념분쟁을 이용하여 주체를 명분으로 수령독재체제를 공고히 하고, 주체사상을 통해 김일성 독재를 이념적으로 정당화하였다. 1972년 헌법 개정을 통해 주석제를 도입하여 절대권력을 행사하였고, 김정일을 후계자로 선정하여 부자세습체제를 구축하였다.”

 

- 해방 후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의 기술 전체가 김일성의 권력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당연히 언급되어야할 북한의 사회경제적 내용과 체제의 작동 구조 등이 생략되는 등 인식의 심각한 편향성을 노출함

<3대세습 체제의 형성>

요약: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표방하였지만 1990년대 중반 식량난으로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하는 등 배급제 붕괴와 경제난이 심화되었다. 2011년 김정일이 죽고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여 3대 세습체제가 형성되었다.”

 

북한은 인민이 굶어죽고 권력이 세습되는 참혹한 사회라는 인식을 보여줌으로써 전형적인 냉전논리로의 회귀를 보여주고 있음. ‘3대 세습 체제는 교과서에서 쓸만한 학술적 표현이라고 보기는 어려움

 

- 요컨대, 짧은 지면 속에 북한 관련 기술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가장 특징적 사실이 담겨지고 아울러 북한체제의 작동원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본 교과서는 북한 독재권력의 형성과 강화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음

 

남북관계 서술에서 남과 북은 피해자 대 가해자로 각각 규정되며, 북한은 악마로 묘사됨

대표적으로 1960년대 후반에 발생한 동백림사건, 김신조 무장공비 침투, 울진·삼척공비 사건이 10행에 걸쳐 다소 상세하게 기술되는데(p. 249), 냉전 시기, 특히 월남전이 한창인 시기 북한의 정치적·군사적 도발이 강화된 것은 분명함. 하지만 알려진대로, 남한 역시 북파공작원의 파견을 통해 대응함. 북한의 공세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고 남한을 일방적인 피해자로 단정하고 있음

 

<탈북자와 북한 인권, 이산가족문제>

- 요약: “1990년대 중반 이후 탈북자가 증가하며, 인간의 기본권이 무시되는 북한은 억압과 차별을 통해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정치범 수용소와 공개처형이 있고, 이에 대해 유엔은 북한인권결의안으로 대응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이산가족 상봉이 실시되었으나 북한측의 비협조로 제한된 수만이 상봉의 기회를 얻었다.”(35)

 

- 북한의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 기본권의 제약이나 탈북자 문제를 서술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북한과 남북관계 전체 서술 분량의 약1/5가량을 할애하는 것은 지나친 편중이며 균형을 상실한 처사임

 

- 북한인권 문제의 제기는 실질적인 인권 증진을 목적으로 해야 하나 대북 정치적·심리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해온 것이 사실임. 과도한 분량의 북한 인권 관련 서술은 순수하지 않은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음. 이 점은 현재 상당수 탈북자들의 인권이 보호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명백히 입증됨

 

<북핵위기와 북한의 대남도발>

- 요약: “1991년 북한의 NPT 탈퇴 이후 북한은 핵개발을 추진하였고, 199410월 북미제네바합의로 핵무기개발을 일시 중단하였지만 비밀리에 개발을 계속하여 2002년 이 합의는 파기되었다. 북한은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을 지속하고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의 평화는 큰 위협을 받고 있다. 또한 대남도발로서 3차례의 NLL 침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이 있었고, 이로 인해 남북대화 추진 및 교류협력을 어렵게 하고 있다.”

 

- 북핵문제와 남북관계의 파행에 대해 북한의 책임을 서술하는 것이 응당할 지라도 글의 전체 논조는 북한의 일방적인 도발과 책임만이 지적됨. 북한의 상대방은 피해자정의가 되고 북한은 가해자불의로 묘사하는 전형적인 이분법적 서술구조임. 이러한 북한의 악마화시도는 흑백논리에 입각한 대북 적대감을 상승시키고 남북관계 진전의 무용론을 유도하는 반평화적인 태도라고 말할 수 있음

<평화통일의 노력>

- 7.4남북공동성명,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6.15남북공동성명, 10.4선언 등 남북간 합의를 해당 자료를 첨부하여 소개하고 남북한관계는 민족이란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상호신뢰와 협력을 통해 공존을 모색하고 상생해야할 특수 관계로 언급함

 

- 평화지향적인 남북관계의 발전을 염원하는 이 서술이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앞의 남북대결적 논조에서 급작스러운 논리 전환 때문임. 앞의 서술이 지나친 편향성을 띠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서 이를 보완하려다보니 맥락이 맞지 않는 논조를 지니게 된 것으로 추측함

 

기타 사실(Facts)상의 오류 문제

가장 눈에 띄는 오류는 . 1. 1-1 2차세계대전의 종전과 광복에 기술된 다음 글

- “한반도에 진주한 소련군은 38선 이북 지역에서 군정을 실시하였다. 스탈린은 반일 민주주의 정당의 연합을 통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라는 지령을 소련군에 하달하여, 38선 이북에 소련에 우호적인 정부를 수립하고자 하였다.”(p.246)

*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정부로 가기 위한 전략의 한 단계로서 자본가(부르주아)들을 전면에 내세운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를 상정하였다.

 

- 1945920일 자 스탈린은 부르주아민주주의 권력(буржуазно-демократическая власть) 수립 공조를 지시함. ‘권력정부로 둔갑하여 해석된 것은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이지만 의미상에서도 소련이 처음부터 분단정부를 지향했다는 해석을 불어넣기 위한 것으로 보임

 

- 부르주아민주주의 권력은 상하급 권력을 의미하며, 그 당시의 실체는 인민위원회를 가리키는 것이었음. 인민위원회와 정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위상과 지위를 갖는 것임

‘2. 냉전 시기 권위주의 정치 체제와 경제·사회발전. 2-1 박정희정부의 출범과 경제개발계획의 추진

- “1967년과 1968년 김일성정권의 대남도발은 6.25전쟁 이후 최고조에 달하였다. 19687월 동베를린 주재 북한대사관을 중심으로 유럽에 거주하던 교포들과 유학생들을 포섭하려고 했던 동백림 사건이 발표되었다.”(p. 249)

 

- 동백림 사건은 관련자 203명 가운데 대법원 판결에서 간첩죄로 인정된 사람이 1명도 없었고, 중앙정보부가 정권 안보를 위해 활용한 사건임에도 무장공비 침투와 병렬선상에서 열거하고 유사한 대남 도발 사례로 보는 것은 견강부회식 서술임

결론: 반공 정치교과서로서의 국정교과서

- 북한 및 남북관계 영역의 서술은 김일성 독재권력 강화와 3대 세습 문제, 북한의 대남도발, 북한 인권 등 북한의 부정적인 현상에 거의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 것을 볼 때 북한에 향한 적대적 태도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음. 또한 이분법적 흑백논리에 입각한 냉전회귀, 남북대결, 반공이념 등이 투영되는 정치 교과서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음

- 분단체제하의 북한은 적과 동포라는 상호모순된 규정 속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북한을 동족으로서 포용하려는 지향성을 담고 있어야함. 대북 평화와 협력 지향은 국민 대다수의 희망으로 볼 수 있으며, 북한과 남북관계 서술은 이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함

- 결론적으로 국정 교과서는 북한과 남북관계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통일의 희망과 실천을 심어주기보다는 북한에 대한 혐오감과 무관심을 더욱 확대하는데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음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현대사 분석 긴급 발표회

- 박정희 정부 시기를 중심으로토론 요지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


1. 밀실의 역사 대 광장의 역사


- 최근 한 여론 조사에서 학부모의 95.4%가 역사 공부가 자녀 교육에 중요하다고 응답. 또 같은 조사에서 60% 이상의 학부모가 촛불집회와 같은 현장에 자녀와 동행하는 것이 역사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응답.

- 광장의 촛불이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으로 대통령을 탄핵 소추하게 만들고,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국정농단 사례의 하나로 지목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

- 국민들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어 새로운 역사를 쓰고, 그 촛불이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를 열망하고 또 그것을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밀실집필로 명명되었듯이 편찬과정이 편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민주적인 교과서 편찬 원리를 난폭하게 유린했던 교과서를 정부와 새누리당, 그리고 일부 언론은 올바른 역사라고 강변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주인들에게 강요하려 하고 있음. 연인원 천만 가까운 시민이 엄동설한에 광장에 나와 촛불을 밝혀도 그 촛불이 밀실까지 밝히지는 못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고, 그 밀실에서 여전히 은밀한 거래와 야합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줌.

 


2. 비선 교과서


-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거듭되는 공개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는 밀실에서 복면 집필을 통해 교과서를 제작. 정부는 교과서 편찬 과정의 공개를 통해서 국민의 알 권리와 문화 향유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유엔 인권이사회가 제시하고 국제사회가 준용하는 역사교과서 편찬의 원칙 따위는 애시당초 철저히 무시됨. 그 결과물이 박정희 예찬 교과서라는 별칭이 붙게 된 국정 역사교과서. ‘올바른 역사교과서의 편찬 목적은 비선에 의한 교과서 집필로 달성할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증명.

- 박근혜는 키친캐비넷이라는 외래어까지 주워섬기며 그와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을 호도하거나 부인하고 있지만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 소추한 뒤에도 여전히 박근혜 즉각퇴진을 외치는 촛불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은 비선에 의지한 반민주적 국정 운영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 그리고 시민들은 참여와 감시를 통해 민주주의적 국정 운영 능력을 스스로 증명 중. 국정 역사교과서를 강행하는 것은 그러한 국민적 의사를 무시하는 것.


 

3. 시녀의 역사 대 주인의 역사


-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파동 시 교육부가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사들이 지적한 오류와 문제점을 잽싸게 수정에 반영하여 검정을 통과시켰던 경험을 생생히 기억하는 역사학계와 현장의 역사 교사들은 또 다시 빨간 펜역할을 하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현장본 검토에 일체 응하지 않음. 그러자 현장본 교과서에 진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정부와 새누리당에다 일부 수구 언론까지 거들며 국정 교과서가 내용이 개선되었고, 경쟁력이 있다며 옹호하고 나섬. 오늘 발표회를 통해 역사학계가 문제점의 일부를 공개했지만,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본격적인 조사 결과 공개를 기대하기 바람.

-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기도가 처음으로 공개되어 학계, 교육계는 물론 시민사회가 이에 반대한 것은 작년 가을이었지만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듯이 박근혜 정부는 재작년에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교육현장의 전면적 거부로 0%대 채택율을 기록하자 바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준비하기 시작. 이 사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옹호 세력들이 국정화 작업을 통해 추구한 것이 시종일관 친일·독재세력의 역사적 복권이자 수구세력의 정치적 결집이었지, 역사교육의 개선이 결코 아니었음을 의미.

- 최근 정부, 새누리당, 일부 수구 언론이 국정 역사교과서의 내용적 장점을 운운하며 국정화를 옹호하고 나선 것도 결국 탄핵 정국에서 반칙을 써서라도 지지세력들을 결집하여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해보려는 정치적 기획이지 역사교육의 개선을 도모하려는 것이 아님.

- 결국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은 역사학을 권력의 시녀이자 정치적 도구로 만드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국정화 추진·옹호세력의 역사의식은 스스로 역사의 주인이 되기 위해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의 역사의식과는 정반대의 대척적 위치에 있음.

 


4. 예찬의 역사 대 비판적 역사


- 2017년은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첫 순간부터 국정 역사교과서가 그 제단에 바치기 위한 제물이라는 인식은 알만한 사람에게는 다 알려진 사실. 특히 개정된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시기가 2018년임에도 정부가 규정을 어겨가며 유독 국정 역사교과서만 2017년에 배포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그 얘기는 더 이상 소문이 아니게 됨.

- 역사교육의 목적은 역사를 통해 학생들의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를 함양하는 것. 애초부터 박정희 예찬 교과서를 의도한 국정 역사교과서는 역사교육의 본령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비교육적 교과서.





 


토론 : 국정 역사교과서 현대사 서술의 문제점

 

김성보(연세대)

 


1. 사실 오류로 가득 찬 교과서

 

현대사 부분의 집필에는 전문 역사학자들이 전혀 참여하지 않았으며, 역사학을 비롯한 인문 사회과학의 최근 연구성과들이 거의 무시된 채 집필되었다. 그러니 기초적인 사실 오류로 가득 찬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고등학교 한국사 검토본 VII장의 ‘1. 대한민국의 수립과 자유민주주의의 시련을 보면, 첫 쪽(246)부터 무지로 인한 사실오류와 의도적인 왜곡에 의한 사실오류가 반복된다. “만주를 거쳐 남하하는 소련군이 미군보다 한반도에 먼저 들어왔다고 하는데, 소련군의 태평양함대는 연해주에서 동해를 통해 바로 함북으로 상륙하여 한반도에 먼저 들어왔다는 사실은 역사적 상식에 속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권력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로 둔갑시킨 오류는 발표자가 지적한 바대로이며, 기껏 친절하게 설명한답시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부자본가들(부르주아)을 전면에 내세운정부라고 해설했는데, 이는 혁명이론의 ABC도 모르는 무지의 소산이다. 그 다음 쪽에는 조만식이 소련의 정책에 협조하지 않자연금했다고 하는데, 조만식이 연금상태로 놓인 정확한 이유는 미국, 영국, 소련 등 연합국이 합의한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아서이다. 이 결정이 발표되기 전까지 조만식과 소련군의 관계는 협조적이었다. 이는 의도적인 왜곡에 속한다. 248쪽에는 한반도에 새로운 임시 정부를 수립하고 신탁 통치를 실시한다는 모스크바 3국 외무 장관 회의 공동 성명의 내용이 국내에 전해지자신탁통치 반대운동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이 또한 사실 오류이다. 당시 동아일보 등의 매체는 한반도에 임시정부를 수립한다는 결정 사항은 빼버리고 오직 신탁통치한다는 내용만 보도하여 외세에 대한 반감만 일방적으로 촉발시켰다.

기가 막히는 점은 원자료까지 왜곡한 점이다. 5.16 군사정변 주도세력이 발표한 혁명공약[역사돋보기]에 소개되어 있는데, ‘반공 태세라는 원문을 반공 체제로 임의로 바꾸었다. 원자료까지 집필자 마음대로 바꾸는 역사교과서가 세상에 어디 또 있겠나? 그 외에도 무수한 오류가 있으나 생략한다.

 

2.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정신을 훼손한 교과서

 

‘1948년 대한민국 수립주장의 위험성은 누누이 지적된 사항이다. 그만큼 심각한 또 다른 문제점은 검토본이 대한민국 수립의 정신 자체를 왜곡,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헌헌법은 그 기초자의 한 명인 유진오가 밝힌대로, 형식적·정치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실질적·경제적 균등을 지향하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중학교 역사 검토본은 제헌헌법이 단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의 원칙들을 중시한 것으로 서술하여 그 정신을 축소 왜곡하고 있다.

 

3. 시민 대신 정부를 역사의 주체로 만들어버린 반민주적 교과서

 

대한민국헌법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검토본의 현대사 서술은 국가·정부를 역사의 주체로 설정하고 국민·시민은 이에 종속된 존재로만 묘사하고 있다. 검토본에서 한국 경제성장의 공은 거의 전적으로 박정희라는 지도자 1인 또는 재벌에게 있고, 국민·시민은 단지 수동적인 존재로만 묘사된다. 지도자를 강조하는 북한 교과서와 다를 바 없는 서술체계이다.

검토본 현대사 부분에서 국민·시민이 주체로서 등장하는 경우는 단지 독재에 항거해서 민주화운동을 펼친 때에 불과하다. 이는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국민·시민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되고 정치는 정부와 정치인이 하면 된다는 국가주의적 사고일 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국민·시민의 일상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 민주화운동 이외에 일반 민이 역할을 한 것을 인정한 서술이라고는 북한의 토지개혁 소식이 전해지자 38선 이남의 소작인들도 토지개혁을 요구하였고, 이에 미군정와 이승만 정부가 농지를 분배했다는 서술 정도이다. 그런데 이 서술 또한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농민의 지향과 행동을 왜곡한 것이다. 38선 이남,이북의 구분을 떠나 한반도의 농민들에게 토지개혁은 오랜 염원이었다. 그런데 이를 마치 남한의 소작인들이 북한의 토지개혁에 선동되어 토지개혁을 요구한 것처럼 오독하게 하는 문장이다.

 

4. 분단 문제에 대한 역사적 성찰은 전혀 없는 교과서

 

현행 대한민국헌법은 전문에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라고 명시하고 있으나, 검토본은 정의 인도와 동포애의 관점에서 남북관계를 보지 않고, 오직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재단하여 민족의 단결을 저해하고 있다.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북한 체제의 문제점을 교육하는 일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여기서 심사숙고해야할 지점은 다른 교과서도 아닌 역사 교과서라고 한다면 북한의 역사를 어떤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적어도 역사교과서라면 북한 체제의 문제점을 단지 공산주의는 나빠요라고 하는 이념적 잣대에서가 아니라, 남북한을 포괄하는 한반도 전체 차원의 근현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해되도록 해야 한다. 일제하에 왜 사회주의가 한국에 수용되었는지, 남북 분단의 국제적 배경은 무엇인지, 해방 후에는 왜 일제에 맞서 함께 싸웠던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자본주의 계열이 분열, 대립하게 되는지, 남북이 대치하는 속에서 남북의 독재정권이 어떻게 자신의 정치적 반대세력을 적으로 몰아넣었는지, 분단 속의 적대적 공존이 어떻게 평화적 공존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근현대 한국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해하도록 서술해야 할 터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북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고 해도 학생들에게는 그저 북한은 나쁘니 상대하기도 싫고 이해하기도 싫다는 혐오감만 낳을 뿐이다. 그것은 역사교육이 아니며 단지 반공 정치교육일뿐이다. 분단 극복이 얼마나 중요하며 필요한지, 그 극복을 위해 남북간 대화, 교류와 한국안에서의 민주주의 실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역사서술이어야 할 터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검토본은 (1)사실 오류와 왜곡으로 가득 차고, (2)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정신을 훼손하였으며, (3)반민주적인 서술로 일관하고, (4)분단의 문제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성찰하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민족 단결을 저해하는 점에서 반헌법적이다. 민족도 없고, 시민도 없고, 오직 국가와 정부만 있는 교과서, 그것이 국정 역사교과서 검토본의 현대사 서술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현대사 분석 발표회 토론문

 

오제연(성균관대)

 


1. 강박적 억지 해석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 네 분의 발표와 같은 국정 역사교과서자체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교육부가 최근 공개한 <올바른 역사교과서 무엇이 달라졌나요?>라는 선전홍보물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선전홍보물의 맨 첫 장에서 교육부장관은 국정 역사교과서올바른 역사교과서라고 명명하면서, “올바른 역사교과서는 사실에 입각한 균형 잡힌 대한민국 교과서입니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사실에 입각한 균형 잡힌 대한민국 교과서라는 말은 50페이지가 넘는 이 선전홍보물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심지어 뒤표지에까지 이 문구를 다시 한 번 집어넣었다.

이 선전홍보물은 국정 역사교과서올바른 역사교과서이며 사실에 입각한 균형 잡힌 대한민국 교과서라는 것의 근거로, 크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고히 했다는 점역사적 사실에 대해 균형 있게 서술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일례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고히 했다는 점과 관련하여 국정 역사교과서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용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기존 검정교과서는 남한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북한에서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고 서술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였습니다.”(12) 오늘날 학생들에게 정통성문제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것이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것인지, 고정불변의 것인지 등등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하면 정통성을 부여하는 것이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하면 정통성을 훼손한다는 발상은 이분법적인 도식에 불과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중학교 역사교과서나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 모두 대한민국 수립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1948815일 당시 사진을 제시했는데,(중학교-128, 고등학교-250) 여기에는 당시 중앙청 건물에 내걸렸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글씨가 분명하게 나온다는 것이다. 당시 사진을 통해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는 용어를 굳이 정통성운운하며 억지로 수정하려는 태도는 강박증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또한 이 선전홍보물 14쪽에서는 제헌 헌법 및 현행 헌법의 주요 내용과 연계하여 대한민국의 국가체제와 정통성에 대해 충실히 서술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런데 중학교 역사교과서 129쪽을 보면 제헌 헌법이 마련한 자유 민주주의, 시장 경제, 법치주의의 원칙들은라는 서술이 나오고,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 251쪽을 보면 제헌 헌법은 국민의 자유 보장,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기본 틀로 삼았고라는 서술이 나온다. 우선 대한민국 헌법에서 자유 민주라는 용어는 역설적이지만 1972년 유신헌법에 처음 들어간 것이다. 제헌 헌법을 자유 민주주의라는 용어로 설명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합리적이지 못하다. 더구나 제헌 헌법은 경제의 맨 처음 조항(84)에서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흔히 통제경제라고 평가받는 조항으로서 일반적인 의미의 시장 경제와 분명한 거리가 있다. 이 조항이 보다 시장 경제원리에 가깝게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삼는다방식으로 수정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이러한 문제점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애초부터 정해진 틀에 맞춰 강박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고 제시하는 과정에서 나온 구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정 역사교과서에는 그밖에도 무수히 많은 강박적 억지 해석과 왜곡된 서술 내용들이 눈에 띈다.

 

2. 역사교과서가 아닌 반공 정치교과서

 

강박적 억지 해석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교과서는 결코 올바른 역사교과서일 수 없다. 사실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말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역사에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으며 이 중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며, 따라서 끊임없는 논쟁과 재해석이 필요하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해석과 서술을 올바르다라고 주장한다면 그 순간 이미 정당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것이 권력을 가진 정부라면 더 말할 것이 없다. 정부가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역사역사로서 정당하게 해석하고 서술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역사를 특정세력의 이해와 관철되도록 정치화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지금 나온 국정 역사교과서는 이미 발표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했듯이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이분법적인 냉전 논리에 사로잡힌 반공 정치교과서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반공 정치교과서역사교과서처럼 만들기 위해 많은 꼼수들이 동원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선전홍보물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해 균형 있게 서술했다라고 계속 강조했다. 얼핏 보면 국정 역사교과서 상에서 그 균형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발표자들의 분석에서 나오듯이 독재관련 서술에서는 명분변명이 수반되고, 긴급조치에 대한 설명처럼 사실의 선택 자체가 편파적이며, 정부의 행위를 오직 안보논리로 합리화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또 과거 정부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맥락이나 해석에 대한 서술을 생략한 채 단순 사실만을 건조하게 나열하다가, 새마을운동 같이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부분에서는 성과를 거두었다는 내용을 비교적 길게 서술하고, 문제점에 대해서는 그러나 유신 체제 유지에 이용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는 식으로 짧고 간접적인 전달방식으로 서술하는 모습들도 여기저기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례로 19876월항쟁에 대한 서술의 경우, 69일 이한열의 최루탄에 의한 치명상 서술 뒤에 이 사건으로 6월 민주 항쟁은 더욱 격렬해졌다는 단 한 줄로 처리한 반면, 노태우의 ‘6.29선언에 대해서는 본문 서술 자체가 훨씬 길 뿐만 아니라 별도의 자료까지 제시하는 등 자세하게 언급하였다. 이것이 국정 역사교과서가 내세우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균형 있게 서술하는 것의 실상이다. IMF 구제금융 관련 경제위기 관련 서술에서도 경제위기의 시작점이었던 한보사태등 대기업과 정부/정치권 사이의 뿌리 깊은 부정부패문제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서술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국정 역사교과서에는 수많은 이미지 자료들이 제시되어 있는데, 이것도 얼핏 균형있게 제시된 듯하다. 그러나 중학교 역사교과서 맨 마지막 페이지의 절반을 차지하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제목의 그림 이미지와,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 맨 처음에 한 면 가득 채워진 서울올림픽 폐막식 불꽃놀이사진은 역시 국정 역사교과서가 추구하는 균형이라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3. 최신 연구경향을 반영하지 못한 정치와 경제만의 교과서

 

그밖에 국정 역사교과서의 현대사 파트는 지나치게 정치와 경제 문제 중심으로만 서술되어 있다. 사회, 문화에 대한 서술은 대단히 빈약하다. 이는 집필진 중에 역사전공자가 거의 없는 것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최근 역사학계의 현대사 연구의 영역은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또한 최근 역사연구자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 국정교과서는 이러한 역사학계의 최신 흐름과 동떨어진 과거 시대에 머무른 고루한 결과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교과서로 학생들이 종합적인 역사상을 갖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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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0 11:29 역사교과서를 논하다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현대사 분석 긴급 발표회

-박정희 정부 시기를 중심으로

 

 

 

  서울시교육청과 역사교육연대회의 공동주최, 역사문제연구소 주관으로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현대사 서술을 분석하는 긴급 발표회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긴급 발표회에서는 한국현대사 전공 연구자들이 80년대 이후 학계 연구 성과를 토대로 박정희 정부 시기를 비롯한 현대사 관련 서술을 정치, 경제,

 

  사회(민주주의, 노동, 인권), 남북관계 및 통일 등 주제별로 나누어 세밀하게 분석하고자 합니다.

 

일시 : 2016년 12월 22일(목) 오후 3시

장소 : 서울시청 본관 3층 대회의실

 

주제별 분석 발표

 - 정치사 서술 분석 : 홍석률 (성신여대)

 - 경제사 서술 분석 : 정진아 (건국대)

 - 민주주의, 인권, 노동 서술 분석 : 허은 (고려대)

 - 남북관계, 통일분석 : 기광서 (조선대)

 

사회 :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토론 : 정용욱 (서울대), 김성보 (연세대), 오제연 (성균관대)

 

주관 : 역사문제연구소

주최 : 서울시교육청, 역사교육연대회의 (민족문제연구소,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전국역사교사모임, 한국역사교육학회, 한국역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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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9:57 역사교과서를 논하다

국정 역사교과서 긴급 분석 기자회견

일시: 20161130() 11:00-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5층 강당 관지헌

주최: 역사교육연대회의, 한국서양사학회, 고고학고대사협의회

 

분석 발표 순서

1. 김태우(전국역사교사모임) - 총론 분석

2. 김장석(고고학고대사협의회) - 고고 및 고대 부분

3. 강성호(한국서양사학회) - 세계사 부분

4. 이익주(한국역사연구회) - 전근대 부분

5. 이준식(민족문제연구소) - 일제강점기 부분

6. 배경식(역사문제연구소) - 해방 ~ 이승만 부분

7. 이신철(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 연대) - 박정희 시기 이후

 

기자회견_보도자료_총합(20161130).pdf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 공개본 문제점

 김태우(전국역사교사모임)

1. 교육부의 입장 중에서 바로잡아야 할 부분들
– 교육부의 공식 보도 자료와 발표 당일 일문일답 전문에 대한 입장 –

◦ “학생들이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는 역사관과 올바른 국가관을 가질 수 있도록…” → 국가가 ‘균형을 잡았다’고 주장하는 해석을 주입하는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다양한 가치를 접하고 이를 자신의 삶과 연계하여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의 핵심. 역사는 해석의 다양성과 비판적 사고를 배우는 과목.

◦ “사실에 입각한 교과서” – 고대사를 늘리고 현대사를 줄이고, 줄어든 현대사 영역에서 박정희 관련 서술(18년)은 크게 늘리는 대신 6월 항쟁이후 30년 세월은 4쪽 안팎. 박정희란 단어를 20회 이상 사용하면서, 긍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음. 거의 모든 교과서에 등장하던 쿠데타 당일 군복 입은 박정희 사진이 산업현장의 박정희 사진으로 교체한 것도 이상함.

▲ 국정 교과서와 검정 교과서의 서술 분량 비교표 (본문 쪽수임)

◦ 각 정권의 공과를 균형 있게 기술… ;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를 분명히 기술하면서도, 사회경제, 외교 분야에서 뉴라이트에서 공적이라고 평가했던 부분을 적극적으로 들여오고, 정부 주도의 산업화를 적극적으로 기술함. 결과적으로 안보를 지키며 산업화를 하기 위해서는 유신독재가 불가피했다는 식으로까지 논리가 이어짐. 그런데 공과의 균형을 잡는다는 원칙 자체가 문제. 히틀러나 연산군의 공은 무엇이고, 세종대왕의 과는 무엇으로 써야할지? 역사는 오히려 공과를 엄정하게 판단하고 명백하게 가려내는 역할을 하는 학문임.

◦ 기존 교과서에서 여성독립운동가 서술이 소홀했다거나, 교과서가 경제성장의 부작용에만 초점을 맞추었다거나, ‘지난 수십년간 대한민국 수립으로 사용하다가 최근에 정부수립으로 바꾼 것을 바로잡은 것에 불과하다’며 건국절 논리 전면화를 부정하는 발언, “현대사 전공자가 많지 않다거나 현대사 연구는 연륜이 짧고 독립운동사 전공자가 현대로 연결하는 경우가 간혹 있으며, 여러 분야를 포괄하면서 소화할 수 있는 현대사학자는 거의 없다”는 식의 장관과 국편 위원장의 이야기, 국편에서 만든 편찬기준이 바뀐 적이 없다는 말도 거짓.

 

2. 교과서 집필과 관련한 몇가지 문제

◦ 기초적인 사실 오류를 보여주는 사례가 부지기수. 부실 교과서의 대명사인 2013년 교학사 교과서 소동 당시 ‘빨간펜’ 역할을 할 생각은 없기에 모든 오류 사항을 알려줄 의향은 없지만, 대표적인 사항 2가지만 소개하면,

예 1) 고 190쪽 안중근 사진과 유묵을 보여주며 설명 캡션에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자서전이라고 설명. ‘동양평화론’은 미완성 논책임. 자서전이 아님

예 2) 고 210쪽 ‘(통합)임시정부는 대통령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 내무 총장 안창호 등 국내외의…’으로 서술하고 있으나, 1919년 통합 임시정부가 출범하고 난 뒤 안창호의 직책은 노동국 총판이었음. 안창호는 1919년 4월에 출범한 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을 맡았음.

◦ 11월 25일 공개된 편찬 기준과 교과서 서술 기조는 현저한 차이가 있음 → 국정화 결정 당시 정부는 9월 공청회 때 발표한 편찬기준안을 바탕으로 교과서를 집필하겠다고 밝혔는데, 지난 25일 발표된 편찬기준은 2015년 9월 안과 현저히 달랐고, 11월28일에 발표된 교과서는 그 편찬 기준안과 또 현저히 달랐음. 도대체 편찬기준을 갖고 작업을 한 것인지, 복면집필자들이 쓰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러움

◦ 검토본이긴 하지만, 일정에 쫓겨 황급히 매듭된 곳이 적지 않음. 특히 현대사 파트를 보면 문장, 편집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제법 보이고, 심지어 빈 공간도 여럿 보임. 다른 단원과 서술 체재도 제법 다름[탐구활동 관련 내용이 거의 없음]

◦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 내용이 매우 비슷한 경우가 많음. 편찬기준안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경우가 여럿이었는데, 교과서에서도 반복.

예 1) 고22쪽. 청동기 시대의 무덤으로는 고인돌, 돌널무덤 등이 있다. 고인돌은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큰 돌을 올려놓은 것이고, 돌널무덤은 지하게 판판한 돌로 널(관)를 만든 것이다. 중32쪽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는 고인돌, 돌널무덤 등이 있다. 고인돌은 시신을 매장하는 방을 만들고 그 위에 큰 돌을 올려놓은 것으로 지역별로 모양이 다양하였다. 돌널무덤은 지하에 판판한 돌로 널(관)을 만들어 시신을 매장하는 무덩이다.

예 2) 반민특위(중2 130쪽, 고 252쪽), 5.16(중2 141쪽, 고 241쪽)

예 3) 위안부나 유관순 관련 사진 반복

◦ 중학교 서술이 고등학교 보다 더 자세한 경우를 포함하여 중고등학교 사이의 역사교육의 차이가 무엇이라야 하는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음. 위안부 관련 내용(중2 107쪽, 고228쪽)은 중학교 서술이 훨씬 풍부함.

◦ 가장 큰 문제는 교과서가 학생이 공부하는 책이란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한 모습. 학생들에게 이 책은 흥미로운 역사책이자 풍부한 자료를 담고 다양한 학생활동을 배치한 수업 안내서여야 함. 그런데 세 부분 모두에서 낙제점.

– 가장 심각한 문제는, 중학생 고등학생 모두에게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실의 열거되면서도 맥락을 이어서 나름의 서사를 구성하기 어려움. 교육부 홍보물에서는 쪽수를 줄여 내용요소도 간추렸다고 하나 교과서 본문을 보면 놀랄만치 자세함. 그래서 가르치는 교사는 재미없고 배우는 학생에게는 지루한 교과서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음. 특히 수능을 치러야 하는 고등학생들은 교과서에 나오는 그 많은 사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통스러울 듯.

– 학생활동이 가끔 배치되긴 하나 해석의 다양성이나 비판적 사고를 배울 수 있는 맥락화 된 탐구자료와 학생활동을 찾기 어려움. 교과서의 <자료탐구>의 질문과 활동 내용은 구태의연하고. 대부분이 사료를 읽고 글을 쓰는 정도. 그나마 고등학교 근현대사의 경우 대단원을 통틀어 한 두 개.

– 보통은 본문 서술과 자료(그림, 도표, 사진 등)의 긴밀도를 높여 학습 효과를 높일 것인가가 상당히 중요한 교과서 제작 과정의 고민인데 그런 것은 전혀 보이질 않음. 자료와 본문이 따로 국밥.

– 2단 구성 자체가 교과서 구성 체제로 적절한지 의문. 빽빽이 서술된 편집 구조는 가독성을 현저히 떨어뜨림. 학생들에게 친절하지 않는 교과서.

 

3. 국정교과서를 바로 폐기해야 하는 이유

◦ 반대여론이 압도적인데도, 12월 23일까지 국민여론을 듣고 현장 적용 방법을 검토하겠다는 교육부의 발표는 시간벌기가 본질.

◦ 지금 학부모들의 구매거부, 학생들의 반대운동, 교사들의 불복종 운동이 진행 중. 게다가 시도교육감 협의회에서 국정교과서 보급 관련 절차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선언. 2017년 3월에 강행된다고 할 때 심각한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 국정화 정책이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로 이루어진 일인데, 2018년에는 다른 방식이 도입될 가능성이 매우 높음. 그렇다면 2년, 혹은 3년 연속 심각한 혼란이 이어질 수도 있음.



국정 역사 교과서 고고 및 고대 부분 관련 문제점

 김장석(고고학고대사협의회) 1130-3


 

국정 역사 교과서 세계사 관련 문제점

 강성호(한국서양사학회)

1.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ㅇ 세계사의 흐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한국 근·현대사를 세계사의 맥락 속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서술되어 있음. 맨 마지막 장이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기여하는 한국”이라고 되어 있긴 하지만 국수주의적인 역사는 글로벌 미래세대에 대한 거울이 될 수 없는 것이 자명함. 전체적으로 20년 전 상태로 후퇴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한국사 교과서는 급변하는 세계가 한국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게 만듦.
 – 개화기 조선 및 대한제국의 시련과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 관계 설명 누락 예) 거문도 사건(1885~1887)과 조선 중립화론, 을미사변, 아관파천, 러·일전쟁 등
 – 제1차 세계대전과 일제강점, 독립운동의 관계 예) 승전국 일본의 영향력, 민족 자결주의, 러시아 혁명과 독립운동 
 –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과 일제의 탄압 가속화, 한반도 분단.
 – 1960년대 세계에서 발생한 혁명들 중 하나였던 4.19 혁명
 – 1970-80년대 세계 경제상황과 한국 경제발전의 상관관계

 

2. 중학교 역사 교과서
ㅇ 먼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도 문제이지만 세계사를 국정 교과서로 가르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드문 경우임.

ㅇ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심지어 기존 교과서에서 역행하고 있는 후진적인 성격을 지님. 21세기 국제사회에서 점점 부각되고 있는 나라와 지역들(동남아시아, 인도,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에 대한 광범위하고도 철저한 무관심을 보여주고 있음.
– 이슬람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나와 있지만 별도의 코너로 기술.(28-29쪽)

ㅇ 학생들에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역사학적 의미를 깨우쳐주기보다는 단순한 사실 나열에 급급하여 조악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에 등장한 사건이나 이념, 사상 등의 의미와 의의가 전혀 설명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역사적 개념들도 구체적인 설명이 없이 일방적으로 제시되어 있음.
 예 1) 삼각무역이 어떠한 것인지 설명 없이 그냥 서술되어 있음.(35쪽)
 예 2) 영국 혁명과 미국 혁명의 의의가 제대로 설명되어 있지 않음.(41쪽)
 예 3) 프랑스 혁명의 이념은 무엇이고 그 역사적 의의와 한계에 대한 설명이 없음.(42쪽)

ㅇ 최신 연구 성과들이 반영되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조악한 역사적 사실나열로 과도하게 축약되면서 역사적 인과관계에도 맞지 않는 엉터리 사실들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 1) 델로스 동맹과 펠로폰네소스 동맹 성립과정 순서 뒤바뀜. 델로스 동맹 훨씬 이전에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독자적으로 존재했다.(12쪽)
 예 2) 서로마제국과 게르만족의 이동 사이의 관계-서로마는 게르만족 이동으로 멸망한 것이 아님.(18쪽)
 예 3) 11세기 말의 십자군과 14세기의 아비뇽 유수, 백년전쟁을 하나로 엮어 교황권의 쇠퇴와 왕권 신장이라는 틀에 견강부회로 맞추고 있음.(25쪽)
 예 4) 프랑스의 특징이었던 정치적 절대주의를 유럽의 시대사적 속성으로 일반화하여 모든 국가에 획일적으로 적용.(37쪽)
 예 5) 대공황과 전체주의를 매개하는 부분: “사람들은 안정과 질서를 가져다줄 강력한 정권의 출현을 희망하였다.”(95쪽)

ㅇ 인간주의의 입장에서 산업화와 자본주의 발전의 폐해가 나은 여러 문제점들을 단순하게 축소 서술함으로써 인간성이 상실된 기술과 제도발전의 역사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국가와 자본주의의 발전, 산업화와 공업화가 역사의 발전이라는 궤변으로 이어지며 박정희 체제를 우회적으로 정당화한다.
 예) 인클로저, 산업혁명(47쪽)

ㅇ 국정 교과서는 역사교육적 차원에서 비효율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존 교과서에서 역사를 다각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한 다양한 보조 자료들이 대폭 축소되었고 불필요하게 큰 사이즈의 이미지들이 독자의 시각을 사로잡게 만들어 놓았다. 또한 무미건조한 사실나열에 불과한 본문에 비해 이미지 자료들은 저자들의 이념편향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예 1) 불필요하게 큰 이미지들(10-11, 19, 22-23, 89, 163쪽)
 예 2) 러시아 및 소련과 관련된 일체의 이미지, 사진 자료들(90, 148쪽)



국정 역사교과서 전근대 부분 검토

 이익주(한국역사연구회)

1. 전체적으로 기존의 검정 교과서들과 다르지 않다.
◦ 체제와 내용 수준이 개선되지 않았으며, 검정 교과서의 문제점 역시 개선되지 않고 답습되었다.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서술, 학계에 이미 통용되기 힘든 학설이 포함되어 있다. 예컨대 균역법의 시행 관련 서술은 상당 부분 부정확하거나 오류이며, 신분제 동요와 관련된 신분 구성 비율에 관한 설명도(145쪽) 이미 학계에서 통용되지 않는 주장이다.

 

2. 최신 연구 성과가 반영되지 않았다.
◦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올바른 역사교과서는 역사적 사실을 보다 정확히 기술하기 위해 최신 연구성과를 적극 반영’했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 최신 연구성과의 사례를 든, 고려후기 권문세족을 권문과 세족으로 구분하는 것은 이미 1990년대 초에 제기된 학설에 따른 것이며, 최신 연구성과가 아니다. 게다가 이 학설은 그 이전 고려전기 문벌귀족과 고려후기 권문세족을 대비하여 고려시대 역사의 변화와 발전을 강조하던 민족주의 사관을 비판하면서 제기되었던 것으로,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다. 권문세족을 권문과 세족으로 기계적으로 분리하면 고려후기 사회의 발전을 설명할 길이 없게 된다.

◦ 2000년대 고려시대사 연구의 경향은 본관제, 고려의 천하관, 국제관계사, 친족제도, 여성의 지위 등이지만, 이 분야의 성과들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기존의 검정 교과서에 비해 퇴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3. <편찬기준>이 지켜지지 않았다.
◦ 교과서 집필의 정상적인 절차는 <교육과정>에 따른 <편찬기준>이 제시되고, <편찬기준>에 따라서 집필하는 것이다. <편찬기준>은 공청회 등을 거쳐 검증을 받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이고 반드시 필요한 절차이다. 그러나 국정교과서의 경우 <편찬기준>이 집필 전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가 교과서 공개 3일 전에야 공개되었고, 어떠한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 뒤늦게 공개된 <편찬기준>마저 교과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 공음전의 경우 편찬기준에는 “공음전은 공로를 세운 관료에게 지급하는 토지임에 유의한다.”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 서술은 “고위 관료들에게 지급되어 세습이 가능했던 공음전”(85쪽)이라고 되어 있어 <편찬기준>을 정면으로 위배하였다.

 

4. 교과서 집필자의 특정 저서가 많이 반영되었다.
◦ 고려시대의 경우 필자 3명이 모두 은퇴한 고령의 학자들로, 최신 연구성과를 소화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1명인 박용운 교수는 그의 저서 <고려시대사>의 내용을 국정교과서에 반영하였다.

◦ 권문세족을 권문과 세족으로 구분한 것이나 고려시대의 토지제도를 공전과 사전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한 것(85쪽의 <자료탐구 : 고려시대의 공전과 사전>)은 <고려시대사>에 있는 내용이며, 반대로 본관제, 양측적 친속, 다원적 천하관 등 견해가 달라 <고려시대사>에서 서술하지 않은 학설들은 교과서에서도 배제되었다.



국정 역사교과서 일제강점기 관련 문제점
– 신판 교학사 교과서(?) –

이준식(민족문제연구소)

◦ 중학교 역사 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일제강점기 서술이 거의 비슷함.
고등 한국사 서술은 중학 역사 서술에서 조금 살을 붙인 정도. 일부 서술은 아예 문장 자체가 같음.
  예 1) 고 217쪽 ‘일제 강점기 한국인의 대다수는 농민이었다. 일제의 수탈적 농업 정책에 농민들의 삶은 더욱 열악해졌다’ 
         중 115쪽 ‘일제 강점기 한국인의 대다수는 농민이었다. 일제의 수탈적 농업 정책에 농민들의 삶은 더욱 열악해졌다’

 

◦ 검정 교과서보다 서술 분량이 절대적으로 줄어듦. 

2015 교육과정 개정될 때부터 예상되었지만, 그러다보니 일제강점기 생활사 부분이 사라짐. 일제강점기 서술은 수탈과 저항의 서술로만 채워짐. 외견상 유신체제에서 나왔던 국사 교과서 비슷한데, 이 시기 일제강점기에 경제, 사회, 문화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특히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서술하는 내용은 거의 보이지 않음. 교육부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지난 2-30년 동안 이루어진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는 거의 반영하지 않은 시대역행 교과서임.

 

◦ 단순 사실 나열 중심
 중요한 사건의 배경과 전개과정이 축소 서술되어 역사를 구조적이고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는 사실의 단순한 나열에 그침. 반면 유난히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 설립운동은 기존 검정 교과서와 비슷하게 2쪽에 걸쳐 서술하고 있음. 두 운동을 중시하던 1970년대 국정 교과서가 연상되는 지점, 주요 통계도 대폭 축소되었음.
 예) 의병 참자가 수, 탄압의 수, 농민과 노동자의 생활지수 등이 통계가 사라짐

 

◦ 친일파와 관련된 서술은 물타기로.
‘친일 인사나 단체’, ‘친일 세력’, ‘친일파’,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는 서로 다른 용어가 뒤섞여 있음. 해방 이후 반민특위를 서술할 때는 ‘반민족 친일 행위’라는 희한한 용어까지 등장(252쪽). 229쪽에는 앞의 네 개념이 다 등장함. 이러한 개념의 혼용 현상은 집필자가 친일파에 대해 별 생각이 없거나 국편에서 원고를 ‘마사지’하는 과정에서 정리가 되지 않아 여러 개념이 섞였을 가능성이 있다 추정됨.

 

◦ 친일파의 범위를 축소하고 있음.
구체적인 대상은 조선 귀족, 중추원, 지방 자문 기관, 1920년대 친일 단체(국민 협회 등), 그리고 전시 체제하의 “이광수, 박영희, 최린, 윤치호, 한상룡, 박흥식 등 많은 지식인, 예술인, 종교인, 경제인”과 “조선 임전 보국단과 같은 친일 단체”에만 국한함. 군인, 경찰, 관료(사법 관료인 판사·검사 포함) 등 해방 이후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친일파는 대상에 빠져 있음. 아울러 국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중대한 친일 반민족 행위를 했다고 결정한 1,006명에 포함된 언론인(동아일보사 사주 김성수, 조선일보사 사주 방응모)을 친일파의 범주에서 뺌.

 

◦ 안익태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파임.
안익태가 일제의 괴뢰 국가인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해 만든 「만주 환상곡」이 「한국 환상곡」과 유사하다는 이유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국 환상곡」에서 따온 애국가를 바꾸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는 판국에 안익태의 「한국 환상곡」을 ‘민족 문화 수호 운동’의 한 사례로 언급한 것은 문제가 있음.

 

◦ 해방 이후의 친일파 청산에 대한 왜곡 서술.
예 1) 고 250쪽 ‘5·10 총선거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한 피선거권은 제한되었다’는 마치 5·10 총선거를 통해 남한에서의 친일파 청산이 상당 부분 진전되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킴.
예 2) 고 252 쪽 ‘이승만 정부 또한 반민 특위 활동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며 공산화 위협에 대처해야 할 시급성 등을 들어 반공 경험이 풍부한 경찰을 잡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담화문을 발표하였다’도 은 반민특위를 탄압한 이승만 정권의 책임 물타기임.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부의 소극적 태도’ 때문이 아닌 이승만 정권의 탄압 때문에 사실상 강제로 해산되었다고 쓰는 것이 맞음

 

◦ 사실의 오류가 너무 많음.
일일이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임. 정부의 국정교과서 ‘빨간펜’ 역할은 안하려고 하기에 구체적 사례는 다음 분석 보고회 때 공개할 예정임.



역사 국정교과서 광복 이후 시기 분석
– 현대사 서술 부분을 중심으로(1945-1959년까지)

배경식(역사문제연구소)

1. 전체적인 느낌(현대사 서술 중심)
◦ 이념적인 편향에 치우치지 않고 역사적 사실을 균형있게 서술한 교과서라는 교육부의 주장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줌.

◦ 이념적인 논쟁을 떠나서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교과서. 현대사 부분의 과도한 분량,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인과적인 설명이 누락된 사실의 단순 나열, 정치와 경제사 부분의 과도한 서술과 사회·문화·생활사 비중의 축소, 비판과 반성 없는 찬양 일색의 편협한 서술 논조, 중, 고등학교 교과서 내용의 중복.

◦ 현대사 부분 서술만 놓고 보면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반공과 안보라는 냉전논리에 입각한 국방부의 ‘정훈교과서(교재)’. 안보와 반공의 거듭된 강조로 민주공화국의 시민 양성을 위한 인권, 평화, 민주와 관련된 중요 사건을 서술하지 않거나 축소. 민주화 이전 시대로의 교과서 서술 퇴행,

 

2.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 시기 서술의 특징과 문제점
◦ ‘뉴라이트 법통사관’ : 임시정부 법통을 무시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뉴라이트의 핵심 논지 수용
-현대사 집필진 구성 : 현대사 집필진 6명 중 현대사 전공 역사학자는 한명도 없고, 역사교과서 집필 경험도 없음. 3명이 뉴라이트 연구단체인 한국현대사학회 소속 인물들이고 나머지 인물들도 보수성향의 법학자, 군사사 전공자.

◦ 대한민국 정통성 확립과 ‘대한민국정부 수립’ 서술 문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서 ‘대한민국 수립’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에서 ‘북한 정권 수립’으로 서술을 바꿈.
“대한민국 정부가 구성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1948.8.15.)”(현장검토본, 고등학교 한국사, 250쪽)라고 서술.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했음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임정법통을 무시한 ‘건국절’ 논란을 불러일으킨 뉴라이트의 논지를 수용.
-이 주장이야 말로 국정교과서가 폐기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교과서는 ‘국가’가 아닌 주권을 가진 ‘국민’을 주어로 서술한 교과서여야 한다. 그런데도 국민을 대신해서 국가의 역사를 서술하겠다는 주장이야말로 전체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 발상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대한민국 수립이란 용어가 이전 교과서에 쓰였다는 점을 강조됐다. 1956년 1차 교육과정부터 사용된 검정교과서엔 ‘대한민국 수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혼용돼 사용됐는데, 2000년부터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기술됐으며, 교과서 편향 논란이 있었던 걸 감안해, 2000년 이전 서술로 돌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다. 1990년에 초판이 발행된 국정교과서 『고등학교 국사(하)』(172쪽)에도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현장검토본 『고등학교 한국사』 250쪽 하단에 실린 사진에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 축하식’이라고 적혀 있고, 사진 설명에도 똑같은 문장에 쓰여 있어 교육부의 주장이 모순임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2008년 뉴라이트 주류들이 집필한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날 중앙청 광장에서 정부 수립을 선포하는 기념식이 열렸다(142쪽)”라고 서술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교육부는 현행 교과서가 같은 해 북한 상황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라고 국가가 완성된 것처럼 적으면서, 우리는 정부 수립이라고 밝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08년에 발행된 뉴라이트의 대안 교과서에서도 대한민국 수립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선포’(144쪽)라고 서술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북한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이라고 서술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에 사용하지 않았던 역사적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한 용어이고, 일부 뉴라이트 학자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고안한 이념논쟁의 산물이다. 따라서 교과서 서술에 적합하지 않고, 획일적인 국가의 역사인식을 강요하는 핵심 주장이라는 점에서 국정교과서가 폐기되어야 하는 핵심적인 이유가 된다.

◦ 국가폭력, 인권탄압 등 서술 일체 누락
-국민보도연맹 사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등 국가 폭력 사건을 전혀 서술하지 않음. 국가 차원의 과거사 진상규명 활동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고 명예가 회복된 사건임에도 일체 서술하지 않음.

◦ 민중항쟁에 대한 왜곡된 서술
-10월항쟁에 대해서는 “조선공산당이 주도한 유혈 충돌 사건”(248쪽)으로만 서술하고 있어 10·1 사건이라는 공식 명칭 언급 없이 이 사건이 왜 어떠한 이유로 일어났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공산당이 주도한 폭력 사건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하는 형태로만 서술.

-4.3에 대해서도 원인과 결과에 대한 정확한 설명없이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를 부각시키고 국가공권력을 통한 가혹한 탄압을 명확히 밝히지 않음.
“제주도에서는 1947년 3·1절 기념 대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1948년 4월 3일에는 5·10 총선거를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1954년 9월까지 지속된 군경과 무장대 간의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제주도 주민들까지 희생되었다(제주 4·3사건). 이로 인해 제주도에서는 총선거가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였다.(고등학교 한국사, 250쪽)”

◦ 한국전쟁 서술
-민간인 학살 등 국가폭력과 인권문제에 대한 서술은 삭제하고, 유엔참전국 참전국(고등학교 한국사, 255쪽) 표시 등 불필요한 내용과 전쟁의 전개과정만 지나치게 상세히 서술. 전쟁의 영향에서도 “반공이념이 자리잡게 된 배경”, “지주, 상공인과 종교의 자유를 찾아 월남해 온 사람들 중에는 향후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 이들도 많았다.”(256쪽)는 문장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전쟁이 반공국가와 경제성장의 기틀이 되었다는 학계에서 널리 인정되지 않은 유신시대의 반공논리에 근거한 주장을 하고 있음.

-또한 전쟁 자료 인용도 지금까지 기존 검인정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료만 3번 인용(『통계로 본 6·25전쟁』(고등학교 한국사, 253, 256쪽, 『6·25전쟁과 유엔군』(255쪽). 필자가 군인출신의 군사사 연구자로서 다양한 시각을 담은 교과서가 아니라 국방부 정훈 교재를 집필했음을 은연 중에 ‘과시’하는 듯한 느낌.

 

◦ 이승만의 단정책임 회피를 위한 사료 왜곡
『현장검토본 고등학교 한국사』 248쪽의 서술
[이러한 상황에서 이승만은 1946년 6월 전라북도 정읍을 방문한 자리에서 38선 이남에서도 “임시 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선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한 ‘정읍발언’으로 잘 알려진 이승만의 발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기 휴회된 공동위원회가 다시 열릴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 정부를 고대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 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선 이북에서 소련을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할 것이니 여러분도 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서울신문』1946.6.4.) 이 발언에 나온 ‘남방만의 임시 정부 혹은 위원회’는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의미하기 때문에 김구를 비롯하여 정치세력들이 격렬하게 비판했었다(같은 신문 같은 날짜에서 이승만 기사와 바로 이어서 김구가 이끄는 한독당의 엄항섭이 단독정부수립설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인터뷰 기사와 좋은 대조를 이룸). 그러나 현장검토본에는 남한단정론을 의미하는 “남방만이라도”라는 문장을 빼고 원문에 없는 “38선 이남에서도”라는 문장을 새로 ‘창안’하여 서술. 동일한 문장이 『현장검토본 중학교 역사2』 129쪽에도 그대로 서술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이는 이승만의 남한단정 주장(분단책임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적인 서술이 분명하다.


◦ 중, 고등학교 교과서 중복 서술 사례
<사례1>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서술
“제헌 헌법에 기초해 대한민국 정부가 구성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 대한민국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자유선거에 의해 수립된 국가였다.”(중학교 역사2 129쪽)

“대한민국 정부가 구성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1948.8.15.). 대한민국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자유선거에 의해 수립된 국가였다.”(고등학교 한국사 250쪽)

 <사례2> 유엔 승인 서술
“1948년 12월 유엔 총회는 대한민국을 한반도(코리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다. 한편, 1948년 9월 북한 정권이 38선 이북에서 수립되었다.”(중학교 역사2 129-130쪽)

“1948년 12월 12일 유엔은 총회 결의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코리아)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다. 한편, 38선 이북에서는 북한 정권이 수립되었다(1948.9.9.).”(고등학교 한국사 250쪽)



국정 역사교과서 현대사 서술에 관한 몇 가지 문제
– 박정희 정권시기를 중심으로 –

이신철(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1. 박근혜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박정희 교과서
◦ 압도적인 분량의 박정희 서술
– 261~269
– 261~267쪽까지 박정희 23회 언급, 262쪽의 경우 5회, 265쪽은 심지어 7회 등장
– 선거 때마다(5~9대) 승리, 당선 등으로
– (사례) 262쪽의 경우 5회 등장. 절 제목 항 제목 각 1회, 요약 1회 본문 2회 언급

   2. 냉전시기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경제·사회 발전 (요약 5·16 군사정변 이후 등장한 박정희 정부는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 정책을 적극 추진하여 고도성장 목표를 달성하였다. …)
    2-1 박정희 정부의 출범과 경제 개발 계획의 추진
         박정희 정부의 출범과 냉전 시기의 국제관계
※ 냉전 시기 강조함으로써 당시의 안보 상황을 독재 미화의 도구로 사용 / 독재 체제를 권위주의 정치 체제로 미화 / 박정희 정부의 출범을 경제 개발 계획 추진과 직접적으로 연결(비교. 장면 정권의 경제 개발 계획)
– 새마을 운동 부분에서는 박정희 언급하지 않는 세심함.

◦ 색인에서 사라진 박정희
– 박정희 색인에서 7쪽을 표기하면 가장 많은 인물이 되는 부담.
– 이병철, 정주영, 유일한 등 기업가도 색인에서 누락. – 정몽주가 5회 등장하는 것도 기형적.

◦ 안보논리로 미화시킨 박정희 독재와 외교
– 계속되는 안보 위기(263쪽 소항목 제목) : 냉전시기 국제 관계.
– 한미일 동맹의 정당성을 전제하고 거의 대부분의 외교 활동과 독재미화의 배경으로 언급.

 

2. 왜곡되고 편향된 경제사, 재벌 미화 교과서
◦ 경제 성장은 박정희 주연, 재벌 조연의 합작품
– 고속 성장의 그늘에 묻힌 민중 : 노동자, 농민, 소상인 등 경제성장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느낄 수 없는 서술.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애환 알 수 없음.
– 분량 자체가 절대적으로 소략. – 전태일의 분신은 “요구가 매번 묵살되자 1970년에 자살하였”던 사람으로 죽음의 의미를 축소 기술하고 있음.

◦ 기업홍보물로 손색이 없는 재벌 미화
– 재벌에 대한 친절한 설명 : “재벌이라고 불리는 대기업 집단이 성장…”(267쪽)
–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기업의 아름다운 가치를 보여”준 유일한과 유한양행을 내세우고 삼성과 현대를 내세운 재벌 미화. – 정주영의 일화 소개는 위인전에서나 가능한 서술.
– 교과서에 특정 기업인과 현존하는 기업명을 기재해 미화하고 선전한 것이 불법이 아닌지 검토 필요. 다른 경쟁 기업의 경우 소송도 가능할 것으로 봄.
– 1997년 IMF사태의 원인이 동남아시아의 외환위기와 외국투자자들의 대출 회수에 방점을 두어 설명. 대기업과 정부의 책임은 거의 알 수 없음.
※ “정경유착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이 책으로는 현재의 국정농단과 정경유착, 권력형 비리 등의 역사적 연원을 절대 알 수 없음.

 

3. 일본의 우익교과서보다 더 위험한 교과서
※ 일본 우익 교과서는 비판하고 수정을 요구하면 되지만, 국정 교과서는 누워서 침 뱉기. 한국 정부의 굴욕적 외교관 드러낸 셈.

◦ 한일협정에 대한 편향된 기술
–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추진하였다. 한국 및 일본과 개별적 동맹관계에 있던 미국 또한 양국의 국교 정상화를 원하고 있었다. : 한일협상을 경제적 문제와 한미일 동맹관계로만 바라보는 것이 가지는 문제점 망각. 민족의 자존감 폄훼하는 시각.
– 한일기본조약에 문제점을 ‘과거에 대한 반성과 청산은 미흡’했다는 것만으로 축소 : 실제는 ‘미흡’한 것이 아니라 없었다는 데 문제가 있음. 기본적으로 한일기본조약은 재산청구권에 관한 협정. 이 같은 문제는 ‘역사 돋보기’에 인용된 사료에 대한 해설에서도 그대로 드러남. 제조의 ‘이미 무효’ 항목에 대한 한일 간 해석의 차이만 서술. 무슨 말인지 고등학생들이 이해할 수 없게 되어 있음.

◦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굴욕적 서술
– 1993년 고노 요헤이 일본 관방 장관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식민지배 사과 담화를 미화하고, 아베 정권의 반역사적 태도는 누락함으로써 일본 정부의 입장을 왜곡. 학생들의 이해에도 혼란을 초래.
– ‘역사 돋보기’에서는 정부의 노력을 강조함으로써 시민사회의 노력에 의해 정부가 견인된 사실 왜곡. 칼럼 제목이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으로 되어 있어 12.28 합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도 있음.

○ 일본의 역사왜곡과 갈등 부분에서 사실 오류도 있음.
– 일본 우익세력의 반격에 직면할 수 있음.

 

4. 아직도 냉전논리에 사로잡힌 반북 교과서
– 기존의 민족사 서술 체계가 아닌 대한민국의 보론으로 북한사 서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의 입장 반영된 서술.
–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 ‘적’ 개념이 우선된 서술.

 

5. 60년 전 계몽주의 시각으로 쓰인 국가에 의한 국가홍보물
– 국정은 국가에서 정하는 전문가 집단이 집필하는 교과서. 박정희정권시기보다 훨씬 퇴보한 집필과정과 결과물.

– 국사편찬위원회의 집필 개입,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등 국가기관의 심의.

– 국가 기관이 직접 개입해서 쓰인 교과서는 국가의 홍보물에 불과. 국가의 홍보물은 정권의 성격에 따라 바뀌는 것. 그것은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을 선전하는 것. 김일성가의 세습을 비판하면서 박씨 가문 세습과 그 지지세력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주장하는 꼴.

– 전면적 집필 개입으로 국가 홍보기관으로 전락한 국사편찬위원회는 해체의 대상. 국가가 직접 개입한 정부기관장 교체, 기관 통폐합, 성격 조정 등 역사학 관련 기관 전면 재편의 필요성 제기.

– 국정홍보자료로도 사용하기 힘든 불량품
※ 오탈자나 사실의 오류 수정도 불가능한 시간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수정 불가 수준.
※ 특히 경제사 부분에서 새로운 내용요소가 대폭 늘어나 교사들의 수업 준비 시간 절대 부족, 학생들의 학습 부담 대폭 증가. 2016년 3월 사용은 절대적 시간 부족.
※ 재수생에게 절대 불리한 책. 내용요소를 이렇게 한꺼번에 바꾸는 것은 혁명적 상황에서나 가능. 그것을 1년 만에 쓰고 가르친다는 것은 문명국가에서는 불가능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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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_보도자료_총합(2016113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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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11:25 역사교과서를 논하다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음’의 너머
―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 예고에 부쳐


    우리가 알 수도 없는 시절부터 인간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이 겪은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나중에 ‘역사’라고 불리게 되는,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이야기들을 통해 많은 지혜가 축적되었고, 그것은 공동체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역사라는 것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현재,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의 밑바탕에 바로 이러한 ‘대화’가 있었음을 우선 상기해두자.

 

    그런데 근대에 들어 역사학은 국가로부터 받은 소명을 강조하며, 자신의 권위를 합리적이라고 규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합리성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을 추려내는 식으로 역사를 다루고는 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역사학이 역사로서의 우리네 삶을 어느 정도나 의식하고 있었는지를 비판적으로 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이 규정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우리는 삶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왔다. 그리고 그러한 삶 속에서 기억들이 전승되면서 역사교육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15년, 우리는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예고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100년이 훌쩍 넘는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역사학과 국가의 밀월은 자주 있었지만, 21세기인 오늘 날 양자의 관계에 ‘올바른’이라는 도덕적 규정이 사용될 줄은 대부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언명은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음’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강요하는 것으로 그 너머의 삶에 대한 어떤 상상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역사를 사유화함으로써 우리를 옭아매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국가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유(共有)하는 것이다. 우리는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음 너머에서 각각의 삶과 기억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는다. 싸우거나 연대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면서 또 다시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올바름’이라는 낙인에 저항하는 최근의 모습들은 모두가 이를 감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났다고 봐야 한다.

 

    결국 국가가 역사를 독점하려는 시도는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지금의 연대와 저항들은 서로를 버팀목삼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것이다.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이 운동들이 고립되어 있지 않음을 확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젠더, 계급, 지역, 세대 등을 넘나들며 연결되는 관계들에 민감해짐으로써 비로소 ‘사회적 운동’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역사학 스스로가 자신만이 역사를 다룰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단 한 번도 누군가가 정해준 '올바름'을 향해 흘러간 적이 없었다.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경험과 기억들로만 ‘대화’를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역사의 밑바탕임을, 이 글의 마지막에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역사문제연구소는 다음의 몇 가지를 선언한다. 그리고 다양한 역사들이 고립되지 않을 수 있는 연구와 교육을 새롭게 생각할 것이다. 이는 <올바른 역사교과서>와 관련된 모든 작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기도 하다.

 

 

1. 역사는 국가에 의해서가 아닌, 다양한 개인들의 풍성한 해석으로 이루어진다. 역사는 국가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는 것이다.


1.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국가가 역사를 사유화하려는 시도에 맞서 역사를 공유하려는 사회적 운동으로 존재해야 한다.


1. 역사문제연구소는 지금의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이 다양한 사회운동들과의 연대를 지향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 관계를 저항의 거점으로 삼아 새로운 세계의 실현 가능성을 함께 상상할 것이다.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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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8 16:33 역사교과서를 논하다

     

 

초등5-2 사회(역사)교과서 분석결과 중간발표

    

역 사 교 육 연 대 회 의

민족문제연구소|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역사문제연구소|역사학연구소|

전국역사교사모임|한국역사교육학|한국역사연구회

 

 

일시: 201597() 10:00-

장소: 흥사단 강당 3

주관: 역사교육연대회의

 

<발표자>

하일식(연세대 사학과), 이준식(민족문제연구소), 이익주(서울시립대 국사학과) 배경식(역사문제연구소), 방지원(신라대 역사교육과), 조한경(전국역사교사모임)

 

 

 

    최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여러 차례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강행하겠다고 밝혔으며, 황우여 교육부장관도 교과서는 한가지로 가르쳐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면서 9월 안에 국정화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함으로써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사실에 입각하여 오류가 없는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된 공언이 실상 국정교과서 제도에 대한 반발을 호도하려는 것일 뿐, 정권에 가까운 소수 인사들이 참가하여 편향될 뿐 아니라 심각할 정도로 오류가 많은 교과서를 만들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이 현실입니다. 2015역사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진과 심의진 구성의 편향성이 이미 확인되었고, 밀실 작업하듯이 진행되고 있는 집필 기준 마련 작업의 문제도 이미 확인되었습니다.

 

    지난 201412월 역사정의실천연대가 주관한 초등 역사교과서 근·현대편 실험본 분석 결과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조약을 성공시켰다거나, ‘일본군이 의병을 토벌했다는 식의 충격적인 표현과 페이지 마다 두 개가 넘는 사실 관계의 오류는 그 자체로도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결과가 국정교과서 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합니다.

 

    이번 검토 작업은 전국 모든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2학기부터 실제로 사용하는 정식 교과서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선사시대부터 17세기 초까지의 역사를 다룬 책입니다. 분석 작업에 참가한 역사교육연대회의 소속 단체의 관계자들은 교과서를 분석하면서 충격적인 실상을 접하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 교과서가 정식 발행되기 바로 6개월 전에 그토록 충격적인 양상이 드러났는데도, 이 교과서 역시 앞선 실험본 교과서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실험본이 아니라 이번 2학기부터 전국 모든 학생들이 공부하기 시작한 교과서이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우리는 정부와 여당이 그토록 국정제를 말하면서, 실제로는 교과서의 꼴을 제대로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책임감과 시스템을 결여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질 좋고 오류가 없는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주장은 모조리 허구이며, 그것을 구실로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역사인식을 역사교과서를 통해 주입하려는 것일 뿐이라는 의구심을 더욱 굳히게 되었습니다. 두 권의 초등학생용 역사교과서는 그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이제 이 교과서의 문제점을 몇 가지로 요약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사실 오류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역사인식상의 문제 혹은 역사이해의 오류 ; 현재 교과서에는 부여와 삼한의 역사가 거의 증발되어버렸습니다. 부여는 고구려보다 앞서 출현하여 고구려와 백제사로 직접 연결되는 민족사체계 속에서 매우 중요하며,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연원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국가입니다. 같은 고대사 안에서 볼 때 가야의 역사가 상세하게 다루어지고 50년 안팎의 후삼국 역사에 큰 비중을 두어 기술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또한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사실로서 뒷받침되기 어려운데도 저자의 과도한 해석으로 그릇된 역사상을 만들어 내거나, 저자가 당대의 역사상을 정확히 서술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앞뒤 서술이 충돌하거나 역사 이해를 그르칠 만한 곳도 여럿 발견하였습니다.

 

 

착오에서 빚어진 수많은 오류 ; 신라와 고려의 관리 등용 방식을 잘못 설명하였다거나, 신라 말 호족을 설명하면서 당시 사람들이 호족으로 불렀다(당시의 호족 용례를 극소수이며, 훗날 역사학자들이 개념화한 것)고 기술한 경우, 보신각을 종으로 설명하는 경우처럼 글로 된 오류도 많습니다. 고려 때 청자로 된 밥상에서 청자에 붉은 김치가 올라온 밥상을 받는 삽화나 노비 속량(贖良) 문서를 노비문서로 표현한 것, 서울의 궁궐을 그리면서 유독 창경궁을 빠뜨린 경우처럼 역사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의 역사이해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삽화와 지도의 오류도 엄청납니다.

 

 

역사상()의 오해를 불러올 비문(非文) ; 두 개의 조사를 한꺼번에 사용하는 문법상 오류를 비롯하여 문법에 맞지 않은 문장의 수를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입니다. 비문은 국어를 함께 배워야 할 초등학생에게 그 자체로 상당한 문제려니와, 정확하지 않은 서술로 인해 학생들이 역사상을 잘못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어 심각한 문제입니다. 실제로 선생님이나 전문가들은 저자가 하려는 바를 알 수 있다 해도, 학생들이 잘못 받아들여 결과적으로 역사를 오해할 수 있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명백한 사실 오류라 하기 어려우나 초등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나 표현이나 교육부가 정한 편수용어를 지키지 않은 곳도 적지 않습니다. 중요한 부분만 몇 가지 언급합니다.

 

요선철릭이나 목면시배 유지와 같이 학생들이 도저히 알기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 것,

편수용어나 집필기준과 다른 경우 ; 해인사대장경판(팔만대장경), 발해의 주민구성과 관련된 서술

 

    이와 별도로 중요하게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2009 교육과정에 따라 개발된 이 교과서를 2007 교육과정에 따른 교과서와 비교해보았더니 여러 곳에서 동일하거나 비슷한 문장이 현재 38군데나 발견되었습니다. 다른 개발진이 만든 교과서 내용을 고스란히 따 붙인 결과입니다.

 

    자료집을 펼치기 전에 두 가지만 더 확인합니다.

 

    먼저 이 발표는 중간보고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입니다. 최종 분석 결과가 아님에도 이 발표를 서두른 것은 이 교과서로 수업을 하고 있는 초등학교 선생님들과 공교육에서 처음으로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12살 초등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교과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시급히 교정되기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둡니다. 지금이라도 교육부가 국정제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중등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 중단을 약속한다면, 이 책으로 배우는 초등학생의 혼란과 가르치는 교사의 곤혹스러움을 조속히 수습할 수 있도록 교육부에 협력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교과서를 펼치면서 구체적인 문제를 확인해보겠습니다.

 

 

 

 

1. 부정확한 역사이해에서 비롯된 오류(예시)

내용 또는 본문

검토 의견

63

<삽화>

청해진을 설치하는 모습(상상화)”

- 민간 출판사의 비슷한 그림을 참고한 듯하나, 당시의 접안시설(接岸施設)에 대한 이해와, 접안시설이 확인된 완도 장군섬의 지형에 대한 지식이 없이 그린 것으로 추정됨. 현재 접안시설이 확인된 장군섬의 지형으로는 이런 절벽이 없고, 현재 그림은 접안시설도 아니고, 무슨 용도인지 교사가 설명할 수 없음.

86

<지도>

태조 왕건의 북진 정책

-“태조 북진 후 넓힌 영토의 영역이 지나치게 부풀려짐. 함흥 지역은 고려 말에 고려의 영토가 됨.

-87쪽 천리장성이 표기된 지도는 귀주대첩 이후에 축조된 것임을 감안하면 태조 왕건 시기의 영토가 더 넓을 수 없음.

89

신라에는 사람을 출신 가문에 따라 나누는 신분 제도가 있었다. 나라에서는 국학에서 공부한 학생들 중에서 시험을 치러 관리를 뽑으려고 하였지만, 귀족들의 반대로 시험을 치를 수 없었다.”

-통일신라가 국학에서 수학한 학생을 등용하는 독서삼품과를 시행했지만 중하급 실무자를 선발하는 정도였고, 높은 벼슬은 진골이 독차지하였다는 점을 제대로 서술해주어야 함. 귀족들의 반대로 시험을 못치다니?

신라사 연구자가 처음 듣는 이해할 수 없는 서술임

89

고려에도 고위 관리의 자손에게 과거를 치르지 않고도 관직을 주는 음서제도가 있었다. 그러나 공정한 시험으로 능력이 있는 사람을 뽑기 위하여 광종 때 과거제를 처음으로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관리를 뽑게 되면서 고려에서는 가문이 좋지 않더라도 능력이 뛰어나면 출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과거를 통하여 관리를 뽑던 고려가 신라에 비하여 개인의 능력을 중요시한 사회였음을 보여 준다.”

-고려가 신분제를 뛰어넘어 개인의 능력에 따라 관직 진출의 자유가 보장된 것으로 역사상을 오해하게 할 우려 있음.

-음서제는 통상 과거제가 실시된 뒤(성종)에 성립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임. 따라서 이 부분 설명은 순서가 바뀌었다. 특히 음서제는 과거제 실시 이후 형성된 고려 문벌 귀족들의 관직 독점에 활용됨.

 

 

91

송은 당 말기의 혼란기를 이겨내고 중국을 통일하였다.”

<수정예시>

송은 당 멸망 후의 혼란기를 이겨내고 중국을 통일하였다.”

당은 907년 멸망. 송은 960년 건국. 당과 송 사이에는 510(907-960)이 존재함.

 

81

지방에서는 성주가 성을 쌓고 군사를 모아 그곳의 백성을 다스렸는데, 한 지방을 독자적으로 다스릴 만큼 세력이 커진 사람들을 호족이라고 불렀다.”

-갑자기 성주라고 하면 당시 역사를 제대로 설명하는 문장이 아님. 국왕이 파견한 사람이 아니라 현지인 중에서 힘 있는 자가 성주, 장군이라 내세우며 성을 쌓고 자기 고장을 스스로 다스린 것.

-“호족이라고 불렀다” : 호족이라 표현한 것은 극소수 용례이며 주로 성주, 장군으로 표현됨. 이들을 개념화하여 호족이라 부르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임. 따라서 호족이라 부른다고 해야 적절한 표현임.

129

정도전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누명을 벗게 되었고, 그의 저술을 모은 󰡔삼봉집󰡕도 간행될 수 있었다.”

-태종 16년에 정도전의 자손들은 금고에서 해제되었고, 고종 2년에 훈작이 복구되었다. 조선후기에 누명을 벗게 되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삼봉집󰡕은 태조 6, 세조 11, 성종 17년에 이미 간행된 바 있으며, 정조 15년에 왕명을 이를 증보하여 간행하였다.

133

<한양 둘러보기> 보신각 캡션

조선 시대에 도성 문을 여닫는 시간과 화재와 같은 위급한 상황을 알리던 종이다.”

<수정 예시>

조선 시대에 도성 문을 여닫는 시간과 화재와 같은 위급한 상황을 알리던 종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누각이다.”

-보신각은 종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누각임.

-설명은 보신각종인데, 이 문장대로라면 보신각이라는 누각이 종이 되어버림.

 

133

<한양 둘러보기>

창경궁 빠짐

-궁궐을 그리면서 창경궁을 빠뜨림.

110

<청자 서술과 삽화>

청자는 주로 귀족들이 사용하였으며 이를 이용하여 찻잔, 접시, 항아리, 주전자뿐만 아니라 베게, 기와, 의자, 향로, 벼루, 연적 등도 만들었다.”

-본문의 서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에 네 개의 그림을 넣었는데 그림이 학생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그림에는 식탁, 밥그릇, 냄비, 바둑판 등마저도 모두 청자의 푸른빛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식탁 위 반찬은 붉은 색 김치를 그려 넣음. 고추는 조선 후기에 들어 온 것으로 고증 없는 삽화임.

125

<연표 >

1485󰡔경국대전󰡕 완성

-1485년은 경국대전이 시행된 해임. 완성은 1481, 1484년 등 명확히 못 박기 힘듦. 대부분의 중고 교과서는 경국대전 반포로 서술하고 있음.

141

<경국대전 번역문>

일본인이나 여진족이 조선에 올 때는 일반 백성의 집에 머물러 잠을 자지 못한다. 만일 마을이나 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가 있거나 제멋대로 노는 자가 있으면 곤장 80에 처한다.”

-원문 ·野人往來, 勿令宿閭閻, 如有侵擾諸邑·諸驛或出入放縱者, 押領員人杖八十압령인을 장 80에 처한다는 것으로 왜인이나 야인을 직접 처벌하는 것이 아니며, ‘곤장을 치는 것도 아님.

144

세종은 농민의 오랜 경험을 모아 정리한 󰡔농사직설󰡕을 만들어서 백성에게 나누어 주어 농사법을 익히도록 하였다.”

-󰡔농사직설󰡕이라는 한문 서적을 편찬하여 수령에게 나누어주고 백성의 농사짓기를 지도하라는 것임. 마치 한글로 쓴 책을 백성에게 직접 배포한 것으로 이해할 소지가 다분.

152

<노비문서 사진과 설명>

노비는 주인의 소유물이나 재산으로 취급되어 매매나 상속의 대상이 되었다.”

-제시한 노비문서는 노비에서 면해주는 내용을 담은 속량(贖良) 문서이다.

-7차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정 국사 교과서에도 같은 사진 아래 돈을 받고 노비를 양인으로 풀어 준 문서라는 캡션 있음

-내용은 이정명이 70냥을 받고 정만금의 3녀 옥련을 속량한 내용임.

-노비관련 문서는 맞지만, 서술과 함께 보면 학생들은 노비문서로 오해할 수 있음.

181

<문화재 지도>

비사성의 위치

-비사성위 위치(다렌)를 전혀 엉뚱한 곳에 설정함

 

 

2. 편수 용어나 집필 기준을 벗어난 서술, 지나치게 어려운 용어(예시)

내용 또는 본문

검토 의견

19

<본문>

그들은 돌칼로 곡식을 수확한 다음 무늬가 없는

<사진 캡션>

돌칼(오산리 선사 유적 박물관)”

-편수용어는 반달돌칼임.

-대부분의 중고 역사 및 한국사 교과서는 반달돌칼로 서술

-교과서가 사진을 인용한 오산리 선사 유적 박물관 홈페이지도 반달돌칼로 소개하고 있음.

112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경상남도 합천)”

-초등교육과정은 금속활자, 청자, 팔만대장경, 불교 미술 등을 통해 고려 시기의 과학과 생활, 문화를 파악한다.’로 서술되어 있음

-편수용어는 고려 대장경’, 또는 팔만대장경’. 대부분의 중고 역사 및 한국사교과서는 팔만대장경으로 표기

115

요선철릭

 

116

목면시배 유지

 

 

 

3. 역사 인식상의 문제/역사 이해의 오류(예시)

내용 또는 본문

검토 의견

18-29

<고조선 전체 서술의 특징>>

-고조선의 역사를 청동기 문화(비파형 동검, 미송리식 토기, 탁자식 고인돌)의 근거 위에서만 설명하고 있어 철기 시대까지 발전해 나간 국가라는 중요 사실 누락.

-고조선 후기의 대표 유물인 세형동검 등은 증발.

-고조선 멸망에 대한 서술 누락

-고조선 단원에 이어 삼국과 가야가 등장함. 고구려, 백제의 기원이 되고 5세기 후반까지 존속했던 부여에 대한 서술이 전혀 없음. 초등학생임을 감안해도 타당하지 않음.

-학생들은 고조선에 이어 바로 삼국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역사의 흐름을 이해할 것임

34

<삽화> 주몽이야기(고구려)

다른 왕자들이 주몽을 미워하여 죽이려 하자, 주몽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졸본에 고구려를 세웠다

-부여에 대한 서술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다른 왕자들이 등장함. 학생들은 이 왕자들을 고구려의 왕자들로 이해할 우려 있음.

35

<삽화> 온조 이야기(백제)

주몽에게는 부여에서 낳은 아들 유리, 졸본에서 낳은 아들 비류와 온조가 있었다

-여기서 부여가 느닷없이 처음 등장하여 당혹스러움.

-교과서 서술이 분절적이고 고조선 시기에 부여와 삼한을 서술하지 않아 교사는 부여의 역사를 새롭게 설명해야 하는 부담을 갖게 됨.

58

이때 고구려 장수였던 대조영은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나와서 동모산 기슭에 발해를 세웠다(발해 건국, 698).”

-마치 발해가 고구려 유민에 의해서만 세워진 국가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

-최근 중고등학교 집필기준도 지배층은 고구려 유민, 피지배층은 말갈이라는 이분법적인 서술을 지양할 것을 권하는 경향으로 발해는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인의 융합으로 이루어진 국가로 서술해야 함.

87

신라는 자기 영토에 들어온 고구려 유민을 통합하였지만 다른 지역에 사는 고구려 유민까지 통합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고려는 발해 유민을 받아들여 옛 고구려의 후손까지 포용하였다.”

-불필요한 비교 대조로 엉터리 서술이 됨.

신라의 삼국통일과 고려의 발해 유민 포용은 200년 넘는 시간차가 있음.

하지만이라는 접속사로 신라와 고려를 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님 : 고려가 받아들인 발해 유민도 망명해온 사람들에 한정된 극히 일부였음.

88

고려는 옛 고구려·백제·신라의 문화를 받아들여 새로운 민족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유교와 불교뿐만 아니라 도교도 소중히 여겼다.”

-이 부분은 69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는 서술과 중복되고 상충된다.

-고구려, 백제가 사라진지 200년이 넘었건만 대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움.

-마치 통일신라는 도교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듯한 서술. ‘소중히 여겼다는 표현 자체가 어색함. “널리 퍼졌다는 정도의 다른 표현을 모색해야 알맞음

 

 

4. 역사상()의 오해를 불러오는 비문(非文)/예시

내용 또는 본문

검토 의견

17

지붕에는 풀이나 짚을 덮고, 그 위에 풀을 올리거나 동물 가죽을 덮었다.”

-지붕에 이미 풀이나 짚을 덮었는데 다시 풀을 올린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임.

 

18

우리 땅에 세워진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이다.”

<수정방향>

우리 역사에 나타난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이다.”

-고조선이 처음 세워진 곳을 현재의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음. 고조선을 처음 건국한 지역이 한반도 안이라고 학생들이 이해할 것으로 보임.

42

일반 사람들은 평민이 되었고, 전쟁에서 졌거나 죄를 지은 사람은 노비가 되었다.”

<수정 방향>

두 문장을 분리하여 명확히 서술해야 함.

-일반 사람들은 평민이 되는것이 아니라(become), 일반 사람들 대부분이 평민이었음(be)

-전쟁포로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문장만으로 보면 전쟁에서 지고 돌아온 경우 노비가 되는 것으로 읽힘.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서술.

50

중국에서 받아들인 불교를 통해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학문과 음악, 공예와 건축, 미술과 같은 문화도 함께 전해졌다.”

-‘불교를 통해가 아니라 불교와 함께가 역사적 사실에 맞음

128

<선죽교 사진 아래 질문>

새 왕조를 세우려던 사람들이 정몽주를 죽인 까닭을 이야기해 봅시다.”

-정몽주를 죽인 것은 새 왕조를 세우려던 사람들이 아니라 이방원으로 특정해야 함.

-초등학생들의 토론 주제로 부적절해 보임. 차라리 고려를 지키려던 사람들과 새로운 국가를 세우려던 사람들의 생각 등을 이야기해 보는 것이 보다 좋은 토론주제라고 생각함.

65

<신라 민정문서> 캡션

신라에서는 평민을 모으고 세금을 거두려고 마을의 이름과 크기, 인구, 농사짓는 땅의 넓이, 가축의 수, 뽕나무의 수 등을 기록하였다.”

<수정 예시>

남녀를 나이에 따라 구분하여 인구수를 헤아리고, 농사짓는 땅의 넓이, 소와 말의 수, 뽕나무 수 등을 적어서 노동력을 동원하고 세금을 걷기 위해 기록한 문서

-“평민을 모으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구임.

 

161

<지도의 말풍선>

이웃 나라와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 조선은 군사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의지 때문에 군사 수가 적다는 표현은 매우 어색함.

 

124

고려의 뒤를 이러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운 사람들의 바람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이 생각한 새로운 나라어떤 나라였고, 고려와 어떻게 달랐을까?”

-두 줄에 나라란 단어가 4번 등장. 집필자의 표현력, 서술 능력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문장임.

-고려를 세운 사람들의 바람도 당연히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봐야 한다.

171

병자호란 때 일어났던 일을 상상하여 일기를 써 보자.”

우리 아들은 어디에

-일기라고 하지만, 짧은 문장에 아들이란 단어가 9번이나 등장

 

 

5. 이전 교과서 베끼지 또는 따 붙이기(예시)

2007 교육과정

2009 교육과정

16

기원전 약 2000년경부터 구리를 불에 녹여 주석이나 아연을 섞어 만든 청동기가 등장하였다. 청동기는 만들기가 어렵고 귀해서 주로 거울, 방울, 검 등과 같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도구, 지배 계급의 무기나 장신구 등으로 쓰였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 데에는 여전히 돌과 나무로 만든 도구가 사용되었다.

1단원 19<청동기 시대 설명>

기원전 2000년경부터 구리에 주석이나 아연을 섞고 불에 녹여 만든 청동기가 등장하였다. 청동기는 만들기가 어렵고 귀해서 주로 거울, 방울, 검 등과 같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도구, 지배자의 무기나 장신구 등으로 쓰였다.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때 여전히 돌과 나무로 만든 도구를 사용하였다.

37

노비는 가장 낮은 신분이었다. 이들은 주로 귀족들의 농사를 지어 주거나 주인집의 여러 가지 일을 해 주며 살았다. 그들은 주인의 소유물로 여겨져 사고 팔리기도 하였다.

1단원 43

노비는 가장 낮은 신분이었다. 이들은 주로 귀족의 농경지를 경작하거나 주인집의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살았다. 노비는 주인의 소유물로 여겨져 주인이 사고팔기도 하였다.

85

고려 조정이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돌아온 후, 원은 고려에 그들의 관청을 설치하고 고려의 왕자를 인질로 삼아 원으로 데려가는 등 고려의 정치에 간섭하였다.

2단원 103

고려 조정이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돌아온 후, 원은 고려에 그들의 관청을 설치하고 고려의 왕자를 인질로 삼아 원으로 데려가는 등 고려의 정치에 간섭하였다.

102

태조 이성계는 나라의 모습과 분위기를 새롭게 하기 위해 도읍을 한양(서울)으로 옮겼다. 한양은 나라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강이 있어 물을 구하기가 쉽고 육로 및 수로 교통이 편리한 곳이었다. 한양의 중심은 여러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유리하고, 주변에 넓은 평야가 있어 도읍지로 적합하였다

3단원 130

이성계는 나라의 모습과 분위기를 새롭게 하기 위하여 한양(서울)을 도읍으로 정하였다. 한양은 나라의 중심에 있으며, 한강이 있어 육로 및 수로 교통이 편리하였다. 그리고 산으로 둘러싸여 외적 방어에 유리하였고, 주변에 넓은 평야가 있어 도읍으로 적합하였다.

117

양반은 과거를 통해 관리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데 직접 참여하였고, 자신의 땅과 노비를 가지고 있기도 하였다. 남자는 어릴 때부터 글공부를 하여 관리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고, 여자도 글공부는 하였으나 관리가 될 수는 없었다. 양반집 여자들은 주로 집안 살림을 챙기고 자녀들을 교육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3단원 151쪽 양반

양반은 관리가 되어 나랏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땅과 노비를 가졌고, 자신의 땅을 농민에게 빌려주기도 하였다. 남자는 어릴 때부터 글공부를 하여 관리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여자도 글공부를 하였으나 관리가 될 수는 없었고, 집안 살림을 챙기고 자녀를 교육하는 데 힘썼다.

사회과 탐구 5-1 90

과거 시험에서 장원 급제를 한 윤장원이 첫 출근을 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의복을 단정히 하고 부모님께 문안을 드리고 출근을 하였다. 윤장원은 궁궐에서 왕에게 조언을 하고 관리들이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감독하는 일을 맡았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아들 흥문이 글공부를 게을리하여 아버님께 혼나고 있었다. 노비 송노, 분개, 복지에게 율무 밭의 풀 뽑는 일을 시켰다.

저녁을 먹고 나서 친구 이광춘의 사랑채로 가서 장기를 두었다. 안채에 있던 광춘의 부인이 나와 인사를 하였다.

3단원 155쪽 박스 안의 양반의 생활사례

과거에서 장원 급제를 한 윤장원이 첫 출근을 하는 날이다. 윤장원은 아침 일찍 의복을 단정히 하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후 출근을 하였다. 그는 관아에서 높은 관리들이 하는 일을 도왔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송노 분개, 복지 등 노비들이 율무밭의 풀 뽑는 일을 마쳤다고 한다. 저녁을 먹고 나서 친구 이광춘의 사랑채로 가서 바둑을 두었다. 안채에 있던 광춘의 아들이 나와 인사를 하였다.

131

육지에서도 곽재우를 비롯한 의병이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 일본군과 싸웠다. 의병은 양반에서 천민에 이르기까지 신분이 다양하였고,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의병은 관군과 협력하여 진주성과 행주산성에서 큰 승리를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3단원 166쪽 임진왜란 중 의병활동

육지에서는 곽재우를 비롯한 의병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일본군과 싸웠다 의병의 신분은 양반에서 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의병은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 관군과 협력하여 진주성과 행주산성 등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133

중립 외교 정책에 반대하던 신하들은 광해군을 임금 자리에서 쫓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세웠다. 인조는 명나라를 받들고 후금을 멀리하였는데, 이 때문에 조선은 후금의 침입을 받게 되었다. 조선과 후금은 형제의 나라로 지내자는 약속을 하고 전쟁을 끝냈다. 그러나 조선은 여전히 명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후금과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3단원 168

광해군의 중립 외교에 반대하던 신하들은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세웠다. 인조가 명을 섬기고 후금을 멀리하자 조선은 후금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 조선과 후금은 형제의 나라로 지내자는 약속을 하고 전쟁을 끝냈다. 그러나 조선은 여전히 명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후금과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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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그 오류의 끝은 어디인가?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2013.12.18

 


  12월 17일 교육부는 수정명령 승인을 내린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에 대해 재차 표기상 오류 수정사항을 접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논란이 됐던 대부분의 문제가 전부 해소됐기 때문에 이제 학교에서 교과서를 채택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 지 일주일 만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교육부 관계자는 "출판사들이 맞춤법, 띄어쓰기 등 표기 오류를 자체적으로 바로 잡을 것이 있다고 해 내용상 변경을 가져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표기 오류를 수정할 사항이 있으면 23∼24일 이틀간 내도록 요청했다"고 밝혔다. 교과서 검정 이후 829건을 수정 권고한 데 이어 수정 명령까지 내리고서 또 자체 수정을 허용한 것은 수정명령조차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내용상 변경을 가져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표기 오류를 수정하겠다?”
  교육부의 이 발표를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교육부의 꼼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아직도 눈에 선하게 보이는 무수한 사실 오류를 지난 번처럼 속시원히 ‘훈수’를 둘 수도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수정최종본으로 공개된 교학사 교과서는 교육부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몇 차례의 ‘특례수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류투성이의 엉터리 불량 교과서일 뿐이다. 단순히 표기 오류를 수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앞으로 조목조목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이번에는 한 가지 사례만을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수정최종본으로 공개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왜 아직도 총체적인 부실교과서인지는 293쪽에 서술된 화북조선독립동맹의 활동에 관한 서술만 읽어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교과서 원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1939년 민족 연합 전선 운동에서 이탈한 조선 의용대는 (2)한인들이 비교적 많이 활동하고 있는 화북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3)김두봉을 중심으로 화북에 모인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4)태항산 지역에서 국민 혁명군 제8로군에 소속되어 중국 공산당과 함께 항일전을 전개하던 무정 등 공산주의자들과 힘을 합하였다. 여기에 일본군에서 탈주하였거나 포로가 된 한국인 청년들이 가세하여 (5)김두봉을 주석으로 조선 독립 동맹을 결성하였다(1942). (6)이어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를 조선 의용군으로 개편하여 (7)조선 독립 동맹의 당군으로 만들었다.
  조선 독립 동맹은 처음에는 공산주의적인 색체를 드러내지 않고 중국 화북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한인 청년들에게 조국 광복의 대업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그래서 명칭도 (8)화북 조선 청년 연합회라고 하였다. 그러나 (9)곧 조선 독립 동맹으로 개칭하여 중국 공산당의 본거지인 옌안으로 옮겨가 중국 공산당과 협력하였고, 조선 의용군도 중국 공산당 군대인 팔로군과 연대하였다.

 

  밑줄 친 부분이 사실 왜곡이나 오류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13줄에 불과한 본문 서술에서 무려 9개의 서술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 가운데 김두봉이 독립동맹의 ‘위원장’이 아니라 ‘주석’(5번)이라는 것과 ‘조선 청년 연합’의 명칭이 ‘화북 조선 청년 연합회(8)’라는 간단한 사실 오류 2개는 역사단체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수정했다. 그러나 역사단체가 지적하지 않은 나머지 7개의 서술 오류는 최종수정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자세히 살펴보자.

 


1) 조선의용대의 화북 지역 이동 시점

  조선의용대가 화북 지역으로 이동한 것은 1939년이 아니라 1941년 3-5월 무렵이다. 1940년 11월에 열린 조선의용대 확대간부회의에서 화북이동을 결정한 뒤에 각지에 흩어져서 활동하던 대원들은 낙양에 집결하여 4개 그룹으로 나뉘어 1941년 3월 중순부터 5월 하순에 걸쳐서 황하를 건너 중국 공산당 지역인 화북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상황은 당시의 중국 국민당 보고서와 광복군 지도자 김학규 등의 보고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염인호,『김원봉연구』, 창작과 비평사, 1993, 224-247쪽 ; 한시준,『한국광복군 연구』, 일조각, 1993, 58-64쪽]

 

  조선의용대가 1941년 초에 타이항산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은 교학사 교과서 289쪽 오른쪽에 실린 ‘조선의용대의 분할과 북상’이라는 지도에 정확히 서술되어 있다. 지도에는 이처럼 정확히 서술된 내용이 왜 본문에는 이렇게 엉터리로 서술되어 있는 걸까? 아마도 이런 작업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본문을 집필하는 필자와 지도와 시각 자료를 편집하는 출판사 직원이 분업적으로 작업을 하면서 소통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집필자가 제대로 된 지식만 가지고 있었어도 본문 서술 오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소한 오류를 바로 잡을 시간은 많지 않았나?

 


2) 조선의용대의 화북 이동 이유

  조선의용대가 “한인들이 비교적 많이 활동하고 있는 화북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것도 정확한 서술이 아니다. 화북 지역은 행정구역명이 아니라 한반도 보다 몇 배나 넓은 중북 북부 지역의 통칭이다. 한국의 영남, 호남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조선의용대가 북상해서 도착한 목적지는 화북 산서성 진동남 타이항산(태항산) 기슭이었다.
  중국의 그랜드캐넌으로 불리워질 정도로 아름다운 산세를 자랑하는 타이항 산맥은 남북길이 약 600km, 동서길이 250km에 걸쳐있는 험준한 산맥이다. 한국의 소백산맥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소백산맥을 경계로 영남과 호남이 갈라지듯이 중국은 타이항 산맥을 경계로 산서 지방과 호북, 산동 지방이 갈라진다고 한다. 타이항 산맥 일대는 산세가 워낙 험해서 예부터 중국 고대 문명의 중심지인 서안과 낙양 일대의 중원을 지키는 최후 방어선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왜 조선의용대는 이렇게 험한 타이항산으로 이동했을까? 전략적 요충지인 타이항산에는 일본군에 대항하여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는 중국 공산당 팔로군 최전방 사령부가 주둔하고 있었다. 당시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만주지역은 만주국을 세운 일본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조선의용대원들은 중국 공산당과 연합해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기 위해 타이항산으로 이동한 것이다.

 


3) 김두봉의 독립동맹 합류 시점

  주시경의 제자인 김두봉은 한 때 공산당 조직에 이름을 올린 적도 있었지만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역사와 한글연구에 심취한 민족주의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그가 상해에 머무를 때 한인학생들의 교육기관인 인성학교 교장을 역임했다는 사실로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그는 김구의 아내가 1924년 1월 병으로 사망했을 때 그녀를 애도하는 뜻에서 한글로 된 비문을 써주기도 했다. 그런 그가 중경을 떠나 공산주의자들의 근거지로 가서 독립동맹에 가담했다는 것은, 당시에도 논란거리였지만, 지금까지도 역사연구자들 사이에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김두봉은 1941년 초에 북상한 조선의용대와 함께 타아항산으로 이동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는 1942년 4월 무렵 10여 세의 딸을 데리고 벙어리 행세를 하면서 중경에서 연안까지 걸어서 갔다.(김오성,「김두봉론」,『지도자군상』, 대성출판사, 1946, 52-53쪽 ; 심지연,『조선신민당연구』, 동녘, 1988, 36쪽) 조선의용대와 동행하지 않고 조선의용대가 북상을 완료한 지 1년이 지나서야 화북으로 간 것이다. 사실이 이러하기 때문에 “김두봉을 중심으로 화북에 모인 조선 의용대 화북지대”라는 서술 자체가 역사적 사실로 성립될 수 없다.  김두봉은 무장부대인 조선의용대의 지도자가 아니라 정치조직인 독립동맹의 지도자였다. 조선의용대를 확대 개편해 조직된 조선의용군의 총사령은 무정이었다.

 


4) 태항산의 명칭 표기 문제

  외국 인명이나 지명은 외국어 표기 규정에 따라 현지음으로 서술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교학사 교과서 본문에서도 ‘상해’는 ‘상하이’로, ‘중경’은 ‘충칭’으로, ‘연안’은 ‘옌안’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교학사 교과서는 ‘태항산’을 현지음인 ‘타이항산’으로 표기하지 않고 ‘태항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일관성도 없다는데 있다. 두 페이지 앞쪽인 289쪽 조선의용대의 북상과정을 그린 지도에서는 ‘타이항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렇게 많이 지적당하고 고치고도 단순한 지명 표기 오류하나 아직도 바로잡지 못한 것이다.

 


5) 조선의용대 화북지대의 조선의용군 개편 시점

  본문에서는 “이어”라는 표현을 써서 독립동맹 결성에 뒤이어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조선의용군으로 개편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서술대로라면 독립동맹이 결성된 지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점에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조선의용군으로 개편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조선의용군으로의 개편은 독립동맹 결성과 같은 날 같은 회의에서 결정되었다. 화북조선청년연합회는 1942년 7월 10일 제2차 대표대회를 열어 청년연합회를 독립동맹으로 개칭하고,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조선의용군 화북지대로 개편한다는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을 결정했다. [심지연, 『조선신민당연구』, 동녘, 1988, 32쪽]

 


6) 조선의용군은 조선독립동맹의 ‘당군’인가?

  본문에서는 ‘당군’이라고 표현했지만 조선독립동맹은 통일전선체를 지향한 연합조직이지 단일한 강령과 이념을 중심으로 결집된 정치적 결사체인 ‘당(黨)’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의용군도 독립동맹의 ‘당군(黨軍)’이라고 서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조선의용군을 독립동맹의 ‘군사조직’ 혹은 산하 무장세력, 무장부대라고 서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굳이 명칭과 관련해서 서술하고자 한다면 ‘당군’이 아니라 ‘연맹군’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군’이라는 표현은 어디서 나온 걸까? 교학사 집필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무차별적으로 인용한 위키피디아 조선독립동맹 항목에 적혀 있다. 위키피디아의 조선독립동맹 항목 서술에는 오류가 수두룩하다. 조선독립동맹이 특정 당파와 계급을 초월한 통일전선조직체 조직을 지향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 형태의 결사체” 조직이라고 서술하고, 동맹의 최고 지도자인 김두봉을 주석이 아닌 ‘당수’라고 적고 있다. 그런가 하면 조선의용군도 동맹 산하의 무장부대가 아닌 “당의 군사조직”이라고, 무정이 총사령인 조선의용군도 ‘조선의용대’라고 표기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이런 오류투성이의 위키피디아를 주자료로 인용해서 교과서를 편찬한 집필자들도 대단하지만, 그런 교과서를 망나니 자식 감싸듯이 두둔하는 교육부의 태도는 차라리 애처롭다. 이쯤에서 교학사 집필자들에게 한번 묻고 싶다. 당신들은 위키피디아를 인용할 때 사전 초기 화면에 적힌 다음과 같은 ‘경고’ 문구도 읽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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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피디아 측은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다”고, 그래서 신뢰할 수 없다고 분명히,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교학사 필자들이 인용한 조선독립동맹 관련 설명에는 참고 문헌이나 출처가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다. 인터넷의 한 카페에는 “'출처 필요(citation needed)' 표시가 붙어 있거나, 아예 인용 출처가 없는 경우 가급적이면 신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위키피디아 올바르게 쓰는 법’을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만큼 위키피디아 자료를 인용할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고, 웬만한 인터넷 사용자들은 다 알고 있지 않는가?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들은 정녕 눈뜬 장님들인가?

 


7) 독립동맹의 연안 이동 문제

  본문에서는 화북조선청년연합회가 조선독립동맹으로 조직의 명칭을 변경하고 나서 곧바로 옌안으로 이동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산서성 진동남 태항산 일대에서 조직된 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이 이동과 조직 개편을 거듭하면서 중국공산당의 본거지인 옌안으로 후퇴한 것은 1944년 초 무렵이다. 독립동맹이 결성된 지 2년이 지나서야 옌안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런데 289쪽에 실린 ‘조선의용대의 분할과 북상’이라는 지도에는 조선의용군이 옌안으로 이동한 것이 1944년 9월이라고 적혀 있다. 교과서 집필자들이 자신들이 집필한 내용만 꼼꼼히 검토했어도 이런 오류는 바로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문제제기에 이어 역사단체의 전문적인 분석 결과로 교학사 교과서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된 지도 벌써 3개월이 훌쩍 지났다. 그 귀중한 시간동안 고친다고 고친 것이 역사단체에서 지적한 딱 두 가지뿐이다. 그때 역사학자들이 미처 지적하지 않고 ‘숨겨둔’ 나머지 일곱 개의 오류는 왜 고치지 못했나? 역사학자들이 ‘친절하게’ ‘안내 싸인’을 보내주지 않아서? 이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지 않나?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교육부 책임자님 내용상 변경을 가져오지 않는 범위 내에서 표기 오류를 정말 수정하긴 할 수 있겠습니까?
  본문 13줄 서술에서 7개의 사실 오류나 왜곡을 고치면 어떻게 될까? 누더기 기운 옷이 되지 않을까? 이쯤에서 작은 결론 하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검인정 취소. 이 쉬운 길을 두고 왜 이렇게 고생을 하나.

 


부록에서 드러난 오류들

  이번 글을 마무리하면서 본문 이외에 부록과 관련된 사소한 실수들을 몇 가지 짚어보자.
  교과서 말미에는 검인정을 통과한 모든 교과서에는 집필자의 현재 소속과 약력이 소개되어 있다. 물론 교학사 교과서에 참여한 6명의 집필자도 현직 소개를 포함한 집필자 약력이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수정최종본에는 논란이 되었던 교학사 교과서 집필자 중 한 사람인 김도형의 약력 가운데 “(현) (사)통일미래사회연구소”라는 현직 소개가 출판사 자체 수정의 형식으로 슬쩍 빠졌다. 도둑이 제발 지린 것인가?
  “(현) (사)통일미래사회연구소”를 빼고 나니 김도형이라는 집필자만 현재 소속을 밝히지 않은 유일한 집필자가 되었다. 검인정을 통과한 8종의 한국사교과서 집필진은 대부분 현직 교수와 교사들이다. 그렇다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난 뒤 뚜렷한 연구단체나 학교 소속도 없는 사람이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건가?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교과서를 수정한 본인들은 정작 그 ‘어색함’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혹시 이제 최종본이 통과됐으니 이 문제도 그냥 넘어가기를 가슴조이며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부록과 관련해서 교학사 교과서의 ‘사소한’ 실수를 하나 더 지적해 보자.『사상계』에 실린 장준하의 글을 [탐구 활동] 자료로 교과서에 실었다가 국사편찬위원회의 수정권고 지시를 받고 삭제했다. 8월 31일 검인정본이 공개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그로부터 벌써 세 달이 훨씬 지났다. 왜, 아직도 400쪽의 ‘사진 및 인용자료 출처’ 목록에 [“사상계 1961년 6월호”, 사상계, 1961, -328쪽(장준하의 5·16 선언에 대한 평가)』]라는 자료 출전에 버젓이 남아 있는가? 도대체 교학사 집필자들은 무엇을 고치는 걸까?

 

  그런데 ‘사진 및 인용자료 출처’를 보다 보니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점이 눈에 띈다.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교과서 자료 출전 코너의 주인공인 구글, 네이버, 네이트, 다음, 위키피디아, 티스토리 같은 인터넷 자료 출처를 모두 수정했다. 교학사 교과서 내용이 얼마나 바뀌었고, 또 출판사측이 얼마나 교과서를 열심히 고쳤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분들은 단언컨대 교과서 본문을 보지 말고 교과서 제일 끝의 ‘사진 및 인용자료 출처’(395-400)를 살펴보시기를 권한다. 인터넷 인용 자료 목록이 장난 아니다. 얼마나 고쳤기에 그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는 5쪽 분량이 6쪽 분량으로 늘어났을까. 본문을 무수히 고쳤지만 편집의 문제를 고려해 쪽수를 바꾸지 않는 선에서 수정했다. 그런데 ‘사진 및 인용 자료 출처’만은 그 원칙을 어겨가면서까지 과감히 고친 것이다.

 

  얼마나 고쳤는지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교학사 집필자들이 좋아하는 수치로 한번 계산해 보자. 검정본을 기준으로 ‘사진 및 인용 자료 출처’에 적힌 출전 항목수는 총 538개. 이 가운데 인터넷 인용 출처는 모두 321개. 기타 자료 인용 출처 226개를 가뿐이 넘는다. 전체적으로 60%가 넘는 수치다. 근현대 부분만 놓고 보면 인터넷 자료의 인용 비율이 압도적이다. 인터넷 : 기타 자료 비율이 4단원(개항기) 78:29, 5단원(일제강점기) 108:42, 6단원(현대) 73:14였다. 눈이 아파서 2번만 카운트한 숫자라서 다소 수치의 차이는 있더라도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수치 기록 분석을 통해 교학사가 사진 및 인용 자료 작업을 얼마나 안일하게 진행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작업한 것을 불과 2달 남짓한 시간 동안 다 고쳤으니 요 몇 달 사이에 얼마나 고생들이 많았을까. 시각 자료가 많이 들어가는 책을 만들어 본 사람은 잘 안다. 이런 사소한 자료와 출전 하나를 새로 찾고 고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사실 역사단체와 시민단체 등의 ‘훈수’에 국사편찬위원회와 교육부가 친절하게 수정을 도와 준 본문을 고치는 것은 인용 자료 출처를 고치는 것에 비하면 누워서 식은 죽 먹기가 아니었을까. 유경험자로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이 많은 인용 자료를 다시 찾고 수정하느라 고생했을 교학사 출판사 편집자에게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조급하게 너무 많은 양을 고치다 보니 코미디 같은 실수도 더러 눈에 띈다. 그래도 교과서 집필진의 ‘본문 횡포’에 비하면 양반이니 애교로 봐 주고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팁이 하나 더 있다. 검정본에서 ‘한국역사연구회’를 ‘한국역사연구원’으로 잘못 표기한 것도 아직 고치지 않았다. 한국역사연구회는 한국사 최대의 연구단체로 이번 교학사 교과서 오류 분석에도 ‘큰 공을 세운’ 단체가 아니던가? 이런 사소한 실수마저 최종본이 공개될 때까지 수정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도대체 그 중요한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무엇을 고친 건가?
  그런데 어쩌나. 내일 오전 11시 당신들이 단체 이름도 제대로 표기하지 못했던, 바로 그 한국역사연구회를 비롯한 7개의 역사학회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검토 결과를 발표한다고 한다. 16일 민족문제연구소가 교학사 교과서 수정최종본을 검토한 결과 밝힌 개항기 100건, 일제강점기 200건, 광복 이후 현대사 100건 등 총 400건의 오류보다 더 많지 않을까? 내일이 기다려진다.

 

  교학사 교과서, 그 오류의 끝은 어디인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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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2013.11.12 13:24 역사교과서를 논하다

 

한국사 교육을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사태를 우려한다

   

여기 모인 우리는 그동안 길게는 50년이 넘게 한국사를 연구하고 교육하다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이들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함께 이 자리에 선 것은 최근 한국사 교육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걱정하던 끝에 정부 당국과 국민 여러분에 고언을 드리고자 함입니다.

 

이른바 한국현대사학회인사가 주도하여 만든 교학사판 한국사교과서는 교과서로서의 기본 요건과 수준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정책 당국은 검인정 과정에서 터무니없는 행태로 감싸면서 급기야 한국사 교육 자체를 파탄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이미 폭로된 바대로 검정과정에서 교학사판은 다른 저자들 것에 비해 23배의 부실한 점이 드러났고 검정을 통과한 뒤에도 300개 이상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오류들이 지적되었습니다. 말썽이 일자 교육부는 또다시 다른 교과서보다 2~3배에 이르는 많은 수정지시를 했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교육부 또한 일제식민통치·친일·독재를 미화하고 정당화한 왜곡된 기술에 대해서는 사실상 추인하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역사를 왜곡한 교학사판 교과서를 검인정에서 마땅히 탈락시켜야 함에도 무리하게 감싸면서 옹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 사태에서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정부여당, 보수언론, 뉴라이트 집단이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면서 펼치는 이념공세입니다. 이는 한국사 교육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통제가 다름 아닌 위험스러운 전체주의적 통제를 위한 전초 작업이라는 의혹을 갖게 합니다.

 

그동안 보수언론, 수구세력과 뉴라이트 집단은 다른 한국사 교과서에 맹목적으로 좌편향이라는 낙인을 찍으면서 한국사 교육을 이념대립의 장으로 내몰았습니다. 낡은 시대의 냉전적 논리로 한국사학계를 결딴내려는 듯이역사전쟁운운하면서 횡포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역사적 사실을 사실대로 서술하고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평가하고 독재와 인권탄압을 비판하는 것을 좌경·용공·종북으로 매도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제는 정부 여당이 앞장서 한국사 교육을 이념공세의 도구로 활용하겠다고 나서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역사교육이 이념통제를 위한 수단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잘못을 시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번 파동이 검정제도 때문에 발생된 문제인 것처럼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는 유신 독재하에서 강제로 시행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들은 정부가 강요한 전체주의적 획일화 교육이 초래한 역사교육의 황폐화를 일선 현장에서 생생하게 체험했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 국정교과서를 통해 정권의 입맛에 맞는 한 가지 역사해석만을 획일적으로 주입시키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망발입니다. 검정제도를 자유발행제로 바꾸기 위한 논의를 전개해야 할 시점에 거꾸로 검정제도 마저 국정화하겠다는 것은 백년대계의 교육을 스스로 망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국가 장래를 위한 교육이 한낱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임의적으로 유린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진국이 왜 국정교과서 제도를 채택하지 않는지 마땅히 헤아려보아야 합니다.

 

정부는 이번 검정 교과서 파동뿐만이 아니라 국사편찬위원장과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등의 주요 역사관련 학술기관의 수장으로 역사관에 문제가 많은 어용인사들을 임용함으로써 논란을 초래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지금처럼 이념논쟁, 정치논쟁의 한복판에 놓인 적은 없습니다. 이들 기관은 정권 교체에 영향 받지 않고 무관하게, 정권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국가의 근간을 세우고 유지하기 위한 학술기관입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오직 목전의 이익에 급급하여 시류에 영합한 인사들을 들러리 세워 선전홍보기구로 만들고 있습니다. 잘못된 인사를 시급히 바로잡아 이 학술기관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은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한국사 교육의 정쟁화를 더 이상 자행해서는 안 됩니다. 자라나는 세대가 교육을 통해 배워야 할 한국사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과거를 성찰하면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식민통치·친일·독재의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는 교육을 통해 장차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 작정인가요. 한국사 교육은 학생들에게 민주주의, 자유, 평등, 인권, 평화, 공생과 같은 인류사회가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를 가르치는 것을 지향해야 합니다. 이러한 가치관을 올바르게 담고 있지 못한 교과서를 정부정책으로 교육 현장에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정부 당국과 국민 여러분에게 다음의 몇 가지 고언을 드립니다.

 

하나, 교학사 교과서의 무리한 검정통과로 인해 야기된 사태를 정부가 조기에 현명하게 수습하기를 요구합니다.

, 정부는 국정교과서 제도로의 전환 등 한국사 연구와 교육을 이념대립의 도구로 악용하려는 올바르지 못한 정책들을 곧 바로 철회하기 바랍니다.

, 국민 여러분께서도 역사교육이 바람직하게 수행될 수 있도록 진지한 관심을 갖고 지혜를 모아 정성을 다해 대처해 주시기를 간곡하게 바랍니다.

 

 

20131112

 

강만길(고려대학교 교수), 김정기(제주대학교 교수), 노중국(계명대학교 교수), 박현서(한양대학교 교수), 서중석(성균관대학교 교수), 성대경(성균관대학교 교수), 안병욱(가톨릭대학교 교수), 유승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윤경로(한성대학교 교수), 이만열(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이병휴(경북대학교 교수), 이연복(서울교육대학교 교수), 이이화(서원대학교 석좌교수), 전형택(전남대학교 교수), 조광(고려대학교 교수), 조동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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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2013.11.12 09:11 역사교과서를 논하다

[한국사 교과서와 역사 교육 문제에 대한 한국사 원로 교수 기자회견]

역사교육에 대한 권력과 정치의 개입을 개탄한다

 

일시: 20131112() 오전 11

장소: 한국언론진흥재단 19층 기자회견장

 

 

우리 한국사학계 원로교수들은 최근 벌이지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와 역사 교육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우려하며, 정부 당국과 국민 여러분께 고언을 드리는 기자회견을 오는 12() 한국언론진흥재단 기자회견장에서 열고자 합니다.

 

강만길(전 고려대 교수), 성대경(전 성균관대 교수), 박현서(전 한양대 교수), 이연복(전 서울교대 교수), 이만열(전 숙명여대 교수), 이이화(서원대 석좌교수), 조광(전 고려대 교수), 윤경로(전 한성대 교수), 서중석(전 성균관대 교수), 안병욱(전 가톨릭대 교수) 등이 기자회견에 참석하며, 조동걸(전 국민대 교수), 노중국(전 계명대 교수), 유승원(전 가톨릭대 교수), 이병휴(전 경북대 교수), 전형택(전 전남대 교수) 등이 서명에 참여했습니다.

 

긴급히 올리나, 많은 분들의 관심과 성원, 참여 부탁드립니다.

 

 

 

찾아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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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2013.10.29 13:56 역사교과서를 논하다

[뉴라이트 교과서 검정 무효화 촉구 지식인 선언]

 

교육부는 수정권고안 철회하고 교학사 교과서를 검정 무효화하라!

 

 

1. 지난 916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김정훈 외 7,865의 이름으로 친일독재미화 교학사 교과서 검정취소 1차 교사 선언을 하였다. 뒤이어 친일·독재 미화 뉴라이트 한국사 교과서 무효화 국민네트워크가 중심이 되어 지난 달 16일부터 한 달 동안 주요학회를 중심으로 뉴라이트 한국사교과서 검정취소 촉구 지식인 서명운동을 벌인 결과 1,400여 명이 동참하였다. 우리는 교학사 한국사교과서 검정취소운동에 동참한 지식인의 목소리를 모아, 다시 한 번 교학사 교과서 검정승인 취소를 촉구한다.

 

 

2. 우리 주장의 근거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헌법정신을 부정하여 검정도서로 존속시키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헌법 전문(前文)“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하여,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역사적 규범기준은 독립운동 정신과 반독재 민주화운동 정신임을 밝혔다. 그러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친일반민족행위, 이승만 독재, 그리고 5·16군사쿠데타와 유신체제를 미화함으로써 헌법정신을 유린부정하고 있다.

 

둘째, 인터넷에서 떠도는 정보를 확인도 없이 마구 베낀 표절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특히 근현대사를 다룬 4.5단원의 경우, 포털 사진을 모아 인용한 것이 각각 67.5%, 82.1%나 된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지난 해 12월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와 저자들에게 배포한 검정심사 자료에서, “저작권 문제가 발생하면 합격을 취소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셋째, 서술내용이 오류투성이기 때문이다. 이미 검정과정에서 교학사 교과서는 다른 교과서의 2배에 달하는 479개의 국사편찬위원회(국편)의 수정 지시를 받은 바 있다. 검정 통과 이후에도, 역사학자들이 검증한 결과 무려 298건에 이르는 각종 오류가 있음이 드러났다. 국편의 특혜, 부실 검정 결과였다. 이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육부가 직접 나서서 검정 승인된 ‘8종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전부에 수정보완 조치를 내렸다. 문제가 된 것은 뉴라이트 계열이 쓴 교학사 교과서 하나뿐인데도 8종 모두에게 수정 보완을 지시한 것은 국민의 관심을 분산시키려는 전형적인 물타기 꼼수였다. 지난 1021일 발표된 교육부의 수정보완 사항을 보면, 교학사 교과서가 가장 많은 251건으로 다른 출판사의 23배에 달한다. 여기에 역사단체가 지적한 오류 가운데 교육부의 수정 보완에서 빠진 202건까지 더하면 총 오류는 453건이나 되는 셈이다. 이처럼 많은 오류가 있다는 것은 정확성을 생명으로 하는 교과서로서는 치명적이다.

 

 

3.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38)은 교육부 장관이 검정합격을 취소할 수 있는 네 가지 사유 중 하나로 저작자의 성명표지가 검정 당시의 저작자와 다를 때를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927일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 6명 중 현직교사 3명이 필진 명단에서 빼달라는 입장을 교학사에 공식 전달하였다. 교학사 한국사교과서 서술 내용에 대한 집필진의 내부반발로 자동적으로 검정 취소 사유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부가, 다른 교과가 교과는 모두 교과서 채택을 끝낸 시점에서, 오류투성이인 날림불량 교과서 하나를 지키기 위해, 수정보완을 요구하며 교과서 채택을 미루는 것은 지금까지 전례가 없으며 검정 제도의 근간을 해치는 것이다. 교육부의 수정권고는 명백히 불법적 조치이기도 하다.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대해 그 내용을 수정하려고 할 때에는 검정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수정권고안을 만든 이른바 전문가 자문위원회의 실체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교육부가 금성 한국근현대사 파동 당시 전문가협의회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마저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와 같은 불법적 조치에 대해 사과하고, 문제의 발단이 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검정승인을 취소해야 한다. 그것만이 교학사 교과서 문제로 인해 야기된 현재의 혼란을 수습하는 유일한 길이다.

 

 

20131027

 

뉴라이트 교과서 검정 무효화를 촉구하는 지식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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