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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문연 광장

<위로공단>이 우리 시대에 건네는 <위로사용설명서> (임광순, 역사문제연구소)

 

 

 

<위로공단>이 우리 시대에 건네는 <위로사용설명서>

 

임광순

 

  어느 저녁, 정신없는 일과를 보내는데 연구소 사무국장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내일 모레 <위로공단>을 보고 후기를 써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순간 망설였지만 이내 제가 보고 써도 될까요?”라고 덥석 물어버렸다. 괜히 일거리만 늘어나나 하는 걱정이 스쳤지만, <위로공단>이란 이름이 몇 주 간 머리에서 뱅뱅 돌고 있었다. 이미 영화를 본 지인들에게 불편한영화평을 들은 바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로>라는 단어가 마음속에서 쿵쾅대었기 때문이다.

 

  영화 보러 가는 날, 연구실에서 급하게 몇몇 후기와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보았다.[각주:1] 머리가 띵해졌다. 대개의 평론가들은 회화에서 사진으로, 사진에서 영상으로장르를 넘나들었던 임흥순 작가의 작업을 매력적으로 보았다. 아쉽게도 나는 회화니, 사진이니 하는 것들을 잘 모른다. 미장센, 오마쥬, 클리셰, 메타포 같은 말을 들으면 졸음이 쏟아진다. 관심 없다는 말이 더 솔직한 표현이다. 작품 곳곳에 상징적 장치들이 배치되었다는 것, 작품의 결말을 열어놓고 작업한다는 인터뷰를 보며 나는 드디어 멘붕에 빠졌다. 아쉽게도 나는 <파업전야>를 여전히 좋아하고, 최근의 말랑말랑하고 담담한 다큐멘터리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좌석에 앉고서야 어두운 조명만큼 차분한 마음이 되었다. 왜 제목이 <위로공단>일까. 이 질문을 작가에게 던지기 전에 나에게 위로란 무엇인가를 정리해야 했다. 몇 년 전 일이 떠올랐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비틀거리는 대학원생이었고, 그 해에는 여러 일이 겹쳐 공부를 정리하려고 했었다. 적당히 근황을 정리하고 선배들을 만났다. 어떤 선배는 따뜻한 조언을, 어떤 선배는 따끔한 충고를 전해주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선배는 시켜놓은 타코와사비도 먹지 않고 소주잔만 기울였다. 묵묵히 내 말을 듣던 그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많이 불안하고 힘들지? 근데 나도 그래.”

 

  신기했다. 나는 그 한마디에 <위로>를 느꼈다. <위로>는 따뜻하기보다 비루했고, 대안적이기는커녕 막막했다. 속된 말로 너만 X같지 않아. 나도 X같아란 뜻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말은 서로에게 아픈 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적어도 대학원 생활에서 혼자-걷지-않음을 느꼈다. 내게 <위로>란 그런 게 되어 버렸다. 누군가는 영화제목이 왜 투쟁공단이 아니냐고 묻던데, 나는 반대로 영화제목이 왜 자위공단이 아닌지 묻고 싶었다. 그 답을 영화 속에서 찾고자 했다.

 

 

  <위로공단>197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여성 노동자’()의 투쟁과 기억을 다룬다. 시간 순으로 보자면 동일방직 똥물사건, YH무역 농성, 구로동맹파업에 이어 최근의 기륭전자, 한진중공업,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캄보디아 유혈사태, 그리고 다산콜센터와 스튜어디스, 대형마트 직원의 문제까지 다룬다. 영화는 사건 당사자의 인터뷰, 실제 사건영상, 그리고 작가의 상징적 장치들이 어우러지면서 전개된다. 소리는 우리 주변에서 흔한 것들이지만 영상과 만나면서 불편함을 극대화시켰다. 나는 그리 길지 않은 영화를 보면서 크레디트 화면이 나오기까지 몸을 몇 차례나 뒤척여야 했다. 그 불편함이 누군가에겐 슬픔으로, 누군가에겐 분노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먹먹함으로 전달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이끌어 가는 가장 큰 힘은 인터뷰이다. 인터뷰의 내용은 각자의 상황, 경험, 세대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었지만 공통된 감정선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눈물을 흘린다고 내가 슬픈 건 아니다. 작가는 필름의 네모난 프레임에 그녀들의 목소리를 가두지 않았다. 때로는 정면에서 혹은 측면에서 그녀들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또 어떤 때는 그녀들의 얼굴, 안경, 먼지 등을 클로즈업 하면서 그녀들의 감정선을 따라가고자 하였다. GV에서 작가는 말의 내용만으로 담을 수 없는 것(분위기, 감정)을 작은 관찰로 담았다고 말했다. 또한 스탭을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하고 인터뷰 참가인원을 최소화했다고 한다. 심지어 작가(남성)가 인터뷰 과정에서 뒤로 물러나 있었단다. 작가의 선택은 현명했고 방법은 탁월했다. 내가 스크린 밖에서 영화를 보기보다 그 안에서 그녀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총각, 신순애, 강명자, 김영미, 김진숙 등, 그녀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작가의 섬세한 접근은 <위로공단>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작가는 노동운동의 주체들을 만났지만 영화는 어깨를 마주 거는 뜨거움을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작품에 출연한 여성들은 연탄난로로 데워진 공간에 둘러 앉아 있는 듯 보였다. 굳이 철지난 말로 표현하자면 낮은 수준의 연대성’, 그것보다 더 정확하게는 고립-되지-않음을 잘 드러내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작가에게 페이스북으로 작가가 직접 영상에 들어갈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예상했지만 작가는 적정한 거리두기가 좋다고 말했다. 영화를 한 번 더 보고나서야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는 화자로 직접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녀들의 삶이 작가의 영상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영화를 보면서 장치를 직접 발견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웠다. 이것이 <위로공단>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한편, 역사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작가의 접근방식과 수단이 참으로 부러웠다. 솔직히 말하면 질투라고 말하는 게 옳다. 작가는 작품의 모티브를 봉제공장 노동자로 살았던 어머니와 마트 노동자인 여동생에게서 얻었다. 출발은 개인이었으나 결과는 타인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했다. 작가는 영화가 불친절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이것은 지나친 겸손이다. 작가는 직접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작가의 시선으로 관객들을 이끌었다. 역사학에서도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으려는 시도들이 이어져 왔다. 그 노력 속에서 역사연구자는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있어야 할까. 또 어떤 형식으로 말을 빚어낼 수 있을까. <위로공단>은 이런 고민을 더 풍부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돌파한 듯 보였다. 작가는 앞선 누군가의 작품 위에 서있었고, 영상은 그것을 담기에 충분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다산콜센터 여성노동자였다. 그녀는 영화에서 공순이가 이제는 콜순이로바뀐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백한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세상살이의 비참함을 토로했다. 일해도 가난한 삶이 고단한 까닭은 내가 가난해서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나의 가난을 감내하고, 나는 그것을 지켜봐야하기 때문이다. 가족의 이해는 따뜻한 것이지만 현실은 그것을 날카로운 비수로 만들어 가슴팍에 내리 꽂는다. 작품 속에서 그녀는 다산콜센터 노동조합 집회에서 발언자로 다시 등장한다. 마이크를 잡은 손이 심하게 떨린다.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라는 노래가사처럼 그녀의 삶은 그렇게 지속되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절대로 대안적이거나 투쟁적이지 않다. 영화를 먼저 보았던 어떤 선배의 말처럼 영화는 여성 노동자를 희생자로만 보여주거나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 한계를 갖는다. (영화에서 남성은 단 한명, 동일방직 앞 사진관 주인만 등장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 속에서 일정한 <위로>를 받았다. <위로>AB에게 일방적으로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이렇게 같이 살아요란 메시지만으로도 충분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시대가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개인에게 능력주의에 기반 한 자기계발의 미덕을 가르치고, 삶의 고난조차 힐링으로 극복하라고 주문을 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자기계발의 미덕을 갖춰도 행복할 수 없고, 힐링의 뽕을 맞아도 평온함을 찾을 수 없다. 자위는 간편하고 소외를 풀어줄 수 있지만 땀이 식어갈 때의 공허함을 지울 수 없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절망의 수원지는 고난이라기보다 고립인 듯하다. 그렇기에 2015년 현재, <위로공단>은 나와 당신의 삶이 고립-되지-않음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당신이 외롭다고 느낄 때에 볼 만한 영화이다. 대안적이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은() 삶을 위한 영화이기도 하다. 뽕 말고 뽀뽀, 자위 말고 위로해요.

 

 

**<위로공단>은 당분간 DVD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공동체 상영을 원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협의를 통해 원하는 시간대/장소에서 영화관람이 가능하다. 구체적인 사항은 배급사 엣나인필름(communication9@at9film.com)으로 문의하면 된다.

 

 


 

 

임광순 :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오지랖은 넓은데 능력이 안따라주고, 강성을 좋아하지만 소심해서 심란한 대학원생. 혼자 바쁜 척은 다하면서 산다. 한국현대사에서 가족, 그리고 노동을 연구하고 있다.

  1. 임흥순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제 자신을 규정하는 건 피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감독이라고 부르면 감독이 되고, 작가로 부르면 작가가 되는 것 같아요. (중략) 제가 정의를 내리면 상상력과 생각의 틀이 좁아져요. 그래서 뭐라고 불리든 상관없습니다.”라고 밝혔다. 나는 그를 ‘작가’라고 부르고 싶다. 《허핑턴포스트》, [인터뷰]2015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위로공단>의 임흥순 작가, 2015. 9. 9.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