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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에세이] 서재정, 정전협상의 국제정치

  오는 7월 27일이면 정전협정이 조인된 지 60주년이다. 정전협정을 위한 협상은 1951년 7월 10일부터 시작됐지만 그 협상과정이 2년 이상을 끌어 1953년에나 조인이 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면 정전협상은 왜 2년이나 걸렸을까?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1951년 11월부터 불거진 포로송환 문제 때문이었다. 즉 중국과 북은 제네바협정 118조에 따라 전원 자동 송환을 주장했으나, 유엔군측은 인도주의를 제기하며 포로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전협정에 반대하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은 이 와중인 1953년 6월 18일 포로수용소에서 2만7천명을 일방적으로 석방시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한반도 주변국가들에게 전쟁의 지속은 그들의 국익과 일치하는 것이었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스탈린은 당시 북이 당하던 피해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전투원 사상자뿐만 아니라 미군의 폭격에 의한 피해를 잘 알고 있었던 것뿐만 아니라 여론동향까지 추적하고 있었다. 정전협상이 지연됨에 따라 북의 피해는 늘어만 가고 여론도 악화되고 있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며 “조선은 전쟁으로 생긴 사상자 이외에는 아무런 피해를 본 것이 없다”고 궤변을 펼쳤다. 소련에게는 미군을 동북아시아에 묶어두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의 폐허에서 경제를 재건하고 동유럽을 공고화할 시간이 필요하던 당시 미군을 한반도에 묶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기회였다.

  모택동은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정전이 되면 소련이 공여하던 군사원조가 감축되거나 중단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스탈린은 “미국이 이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절대로 대만을 획득하지 못할 것”이라며 중국을 부추기기까지 했다. 모택동도 전쟁이 계속되면 미군이 한반도에 묶여 다른 데 관심을 돌릴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는데 동의했다. 모택동은 김일성이 정전협상을 조속히 종결짓자고 종용하자 이를 스탈린에게 전달하겠다고 약속하고는, 그 날 스탈린에게 정전협상의 조속한 종결에 반대한다는 전문을 보내기까지 한다.

  트루만에게 한국전쟁은 무척이나 중요했다. 2차대전 종식과 함께 세계최강국으로 등장한 미국은 1950년 전후 세계전략으로 NSC 68을 채택했다. 전세계적 규모에서 공산권을 군사적으로 봉쇄한다는 이 전략은 한 가지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여론이 군대의 증강과 국방예산의 증액을 지지하지 않고 있었고, 국방예산은 계속 삭감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계기로 1950년 GDP의 5%였던 국방예산이 1953년에는 14.5%로 3배가 증액됐다. 애치슨의 말대로 “한국전쟁이 [NSC 68]을 구제해준 것”이다. 거기다 정전협상에서 공산권 포로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많은 이들이 자유세계를 선택했다고 선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은 한국전쟁을 세계적 냉전으로 진화시키는데 결정적인 것이었다.

  각국의 이해관계로 정전협상이 지지부진 2년을 끄는 동안 피해를 본 것은 군인과 민초였다. 이 기간에 유엔·국군과 공산측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대부분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유엔군과 국군은 12만 이상, 공산측에서는 25만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이 기간 북은 미 공군의 폭격에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었다.

  주변강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2년이나 더 전쟁을 치룬 끝에 정전조약이 체결되기는 했지만, 이 조약 4조 60항이 요구하는 “평화적 해결”은 60년이 되도록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평화적 해결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이익을 본 건 누구고 피해를 입은 건 누구일까? 정전협정 60주년을 앞두고 그 협상과정을 되새겨 봐야 할 이유이다.

2013년 6월 10일, 서재정(존스홉킨스대학)

서재정 대학 교수
출생1960년 00월 00일
출생지대한민국
경력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서재정 교수님께서는

 7월 6일(토) 14시부터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학술토론회> 끝나지 않은 전쟁 60년, 평화의 길을 묻다'에서

발표를 하실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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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동이 2013.07.13 00:35  Addr  Edit/Del  Reply

    언젠가 어떤 책에서 읽었던 내용 중에 '적대적 공범관계'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게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지식이 짧아서 자세히 설명은 못하겠지만, 제가 이해한 바로는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고 타자화시키면서도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살찌우고 강화시키는 관계' 정도가 아닐까 해요. 그 책의 저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개념을 사용했는데, 위 글을 읽어보니 여기서도 적용되지 않나 싶어 몇 자 적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