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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정전60주년. 역사, 평화를 이야기하다/평화 에세이

병역거부자로 살기(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용석)

[평화에세이]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용석, 병역거부자로 살아가기

 

  나는 평화주의자여서 병역거부를 한 게 아니다. 물론 나도 군대 가기 싫어하는 수많은 남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대학시절 내가 속한 학생운동 그룹이 병역거부 운동을 열심히 했고,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병역거부를 접하지 않았다면 나는 군대 가기 싫어하다 억지로 끌려가는 대부분의 남성들처럼 군대에 다녀왔을 것이다. 내가 평화주의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오히려 병역거부자가 되고 난 뒤였다.

  병역거부자가 된다는 건, 내게는 단순히 군대 2년 대신 감옥 1년 6개월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었다. 평생을 평화주의자로 살아가며, 폭력이 작동하는 구조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병역거부는 평화주의자로 살아가는 한 시기에 거쳐 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폭력의 가해자가 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폭력의 일방적인 피해자도 되지 않겠다는 다짐, 폭력과는 언제고 맞서 싸우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렇게 평생을 살다보면 죽을 때쯤에서는 내 자신을 평화주의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물론 세상의 모든 폭력에 맞서기는 쉽지 않았다. 일단 감옥만 보더라도, 나는 너무 힘이 없었고, 무기력했다. 부당한 일이나 폭력적인 구조에 맞서려는 노력을 꾸준히 했지만, 그보다는 눈감고 외면해버린 일들이 훨씬 많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으면서.

  출소하고 전쟁없는세상 활동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전과자가 정규직이라니, 나름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출판사였는데, 내가 들어가서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수습사원 한 명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해고당하는 걸 보았다. 사장은, 수습사원이기 때문에 해고가 아니라 계약해지라며 노동법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사실 회사 들어갈 때 그저 돈이나 좀 벌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나는 권력과 폭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장이 휘두르는 인사권은 그야말로 노동자들에게는 생계를 위협하는 폭력이 되었다.

  결국 나는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사장의 폭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인사권과 경영권은 자신의 고유 권한이라면서, 사장은 납득 할 수 없는 인사 발령과 업무지시를 자주 내렸다. 노사 관계는 갈수록 안 좋아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만 두었다. 나 역시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지금도 남아있는 사람들은 힘겹게 사장의 폭력에 맞서 저항하고 있다.

  만약 내가 병역거부를 하지 않았다면, 노동조합을 만들자고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을 거 같다. 병역거부 덕분에 노동자 의식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을 만들지 않았더라도, 나는 노동자들이 사장과 싸울 때는 늘 노동자 편을 들고, 노동조합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병역거부를 한 것이 내게는 어떤 삶의 지침이 되었다. 폭력에 저항해야 한다는 지침. 병역거부를 하지 않았다면 머릿속으로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병역거부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내 삶의 방향은 정해졌다고 생각한다. 화두는 폭력이었다. 내 삶을 폭력으로부터 최대한 분리시키는 것. 군 입영 영장이 나왔을 때는 입영을 거부하는 게 내 삶이었고, 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회사 사장의 권력에 맞서는 게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이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내 앞에 펼쳐질지 모른다. 그저 내가 계속 평화주의자로 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용석

7월 10일(수) 늦은 7시부터 진행되는 '<대담> 총을 들지 않는 평화 : 한 병역거부자의 이야기'에서 말씀나누실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