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본 블로그는 사단법인 역사문제연구소의 블로그입니다.
역사문제연구소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146,764total
  • 2today
  • 27yesterday

* 공연이 끝난 후, '역사, 평화를 이야기하다' 전체 행사의 공식 뒷풀이 자리가 있습니다.

<닫는공연> 평화를 노래하다

 

  우리는 아직까지 평화를 구가할 수 있는 상황에 있지 않다.

  하지만 함께 평화를 노래하는 자그마한 실천을 통해

  우리는 군사화된 일상에 균열을 내고

  일시적인 평화의 공간을 현현케 할 수는 있다.

  아직 오지 않은 평화에 대한 희망을 담은 세 팀의 노래와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평화를 마음껏 상상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

 

* 일시 : 7월 20일(토) 늦은 6시~8시

* 진행 : 정재환

* 공연 : 사이, 드문(도시락밴드), 꽃피는학교

* 장소 : 북촌문화센터

          우천시에는 역사문제연구소 2층 강당으로 공연장소를 변경합니다.

* 공연이 끝난 후에는, '역사, 평화를 이야기하다' 전체 행사의 공식 뒷풀이 자리가 있습니다. 뒷풀이 비용은 무료!입니다.

 

공연자 소개

사이

유기농펑크포크의 창시자이자 슈퍼백수 겸 떠돌이뮤지션. 서울에서 길거리밴드 활동을 하다가 귀농을 결의해 2006년에 경남 산청을 거쳐 현재 충남 괴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2007년에는 첫 앨범 ‘아방가르드’를, 2011년에는 정규앨범 ‘유기농펑크포크’를 냈으며 2010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거리의 악사 페스티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사이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be2in

 

드문(도시락밴드)

문래동의 LAB39라는 공간에서 만난, 노래하는 손민아와 하모니카 부는 장창, 건반을 두드리는 이혜인, 기타 치는 권범철, 이렇게 네 명으로 구성된 밴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자신들을 '근본없는 밴드'라며 자학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조금씩, 드문드문 자신들의 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번 공연에는 손민아, 이혜인, 권범철 등 3명이 출연한다.

 

꽃피는 학교

꽃피는 학교는 2003년에 창립된 전국 규모의 대안학교로 2009년에 종로구 계동에 고등과정이 개설되었다. 10학년부터 12학년으로 구성되는 고등과정에는 현재 3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며,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교육목표로 삼아 평화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번 공연에는 고등과정 학생들이 참여해 교가를 포함한 합창을 선보인다.

꽃피는 학교 홈페이지 http://www.peaceflower.org/

 

 

공연장 지도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 북촌문화센터
도움말 Daum 지도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댓글을 달아 주세요

[평화에세이] 도시락밴드, 일상이라는 전장

 

  나는 지금 카페에 앉아 있다. 꽤 넓은 이 곳엔 그 넓이 만큼 많은 테이블과 사람들이 있고, 그 만큼 많은 목소리들이 있다. 친구, 연인 혹은 가족들과 함께 온 이들의 목소리는 경쾌하다. 평화로운 풍경이다. 바깥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다. 말쑥한 차림을 한 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주보며 웃는다. 슬픔 따위는 없어 보인다. 그런 게 어디에 있단 말인가? 모두가 웃고 있다.

 

슬픔은 어디로 갔을까? 모든 아픔과 고통은 마치 정기적으로 수거되는 쓰레기 봉지처럼 어딘가로 옮겨진 걸까? 우리는 수거된 쓰레기의 행방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슬픔이 옮겨간 자리를 알지 못한다.

 

거리에는 잘 차려입은 사람들만 보인다. 휠체어를 탄 사람, 한 쪽 팔이 없는 사람,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된 건 이미 오래된 일이다. 예전에 노숙인들이 많이 모이던 어느 지하도의 빈 공간에는 세련된 조명을 갖춘 빵집이 들어섰다. 빈 터는 더 깨끗해졌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게 되었다. 노숙인들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흩어졌다.

 

낡은 집들이 빽빽하게 있던 산비탈의 동네에는 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다. 재개발을 기다리는 그곳에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가재도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깨진 유리창과 마구 던져진 가구들. 나는 마치 시가전이 벌어진 전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전투는 이미 끝났다. 나는 아마도 격렬했을 그 광경을 떠올릴 뿐이다. 전장은 사라진 듯 보인다. 아니 다른 곳으로 옮겨간 것일까? 우리는 전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듯 느껴지는 일상 속에 있다. 아마도 전투가 끝난 곳에 세워졌을, 벽이 세워진 공간 안에서 우리는 평화로운 일상을 산다. 전투가 끝난 이 곳에는 기념비가 없다. 우리는 그 전장을 알지 못한다.

 

이제 전장은 어디론가 가버린 것인가? 아니,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다. 우리의 시선은 움직이는 것에 포획되어 있다. 버스정류장에서는 들어오는 버스 번호판에, 횡단보도에서는 언제 바뀔지 모르는 신호등에,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바뀌는 숫자에 시선이 머물러 있는 것처럼. 우리는 옆에 서 있는 사람에 대해 알지 못한다. 우리의 감각은 이 도시가 구성한 리듬에 맞추어져 있다. 감각을 잃어버린 우리는 전장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전선은 다른 어딘가에서 그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순간순간에 편재해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하지만, 우리가 서있는 이 무대에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전장 속에 있다. 이것은사는 게 전쟁이다와 같은 비유가 아니다. 실제 상황이다. 우리가 사는 이 평화로운 일상이 전장을 준비하는, 아니 바로 그 전장이기 때문이다. 

 도시락밴드

 

도시락밴드. 본 사진은 2011년 11월 30일 클럽 빵에서 있었던 '콜트콜텍수요문화제' 사진 중 하나입니다. 본 사진의 저작권은 '콜트빨간모자'님에게 있습니다.

@ 도시락밴드는

7월 20일(토) 18시부터 북촌문화센터에서 진행되는

<닫는공연> 평화를 노래하다에서

공연을 해주실 예정입니다. 많이들 오셔서 같이 평화를 노래해보아요 :)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댓글을 달아 주세요

[평화에세이]  김동춘, 평화는 바로 우리의 일상의 문제 

  사람들은 평화는 자신과 관계없는 아주 고상한 가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국가들 간의 전쟁과 갈등에 무력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국가 간의 전쟁은 국회조차도 통제하기 어려운 최고 권력자들의 고도의 정치적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이 그러한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노무현 정부 당시 이라크 파병 결정과정에서 보았듯이 애초 이라크 파병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대통령이나 정부조차도 결국 전통적인 한미관계의 틀을 넘어서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실을 지켜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 간 전쟁과 갈등 문제에 관한 한 더욱 무력감을 갖고 있고, 그 사회의 민주주의의 수준이 낮을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인간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고, 최고권력자들의 생각과 판단, 그러한 권력자들을 선출하는 국민들의 판단과 생각이 바뀌면 세상은 변하게 된다. 전쟁이 나서 죽고 죽이는 존재는 주로 군인이지만, 전선이 없는 현대전에서는 민간인들이 군인보다 훨씬 많이 죽는다. 그렇다면 민간인들은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을 지지하거나 그것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셈이다. 이 점에서 권정쟁 선생님이 2004년 당시 이라크 전쟁 발발 후 김선일씨의 사망을 보고 쓴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할 수 있다는 글은 일상적 삶과 전쟁의 관계를 잘 밝혀준 에세이였다. 그는 지금 내가 타고 가는 승용차 기름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사람들의 목숨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고 느낀다면 평화의 길은 멀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를 했다. 즉 풍요롭게 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미국은 이라크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한 전쟁을 감행했고, 우리는 그 전쟁의 들러리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풍요를 지속하고 싶어서 미국 군대가 한국에 주둔해야 한다고 엎드려 빌면서, 우리의 주권을 미국에 양도하고 남북한 간의 전쟁상태를 부끄럽게 여지기 않는다는 이야기다. 결국 승용차를 버리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다니고, 아파트 평수를 줄여서 좀 불편하게 살 준비가 되어 있어야 아까운 젊은 목숨이 죽은 일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권정생 선생의 주장은 미국의 평화주의자 니어링(S. Nearing)의 주장과도 통한다. 20세기 들어서 미국이 전 세계에 모든 분쟁과 전쟁에 개입한 것은 바로 오늘의 자본주의 유지 발전의 피라고 할 수 있는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미국의 정치가들이 그러한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들을 선출한 미국인들이 좋은 집, 좋은 차를 굴리면서 살고 싶어하는 욕망을 계속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미국의 중산층이 누리고 싶어하는 삶을 모든 미국인과 전 세계 사람들이 누리게 된다면 지구가 6개가 있어야 한다는 말도 있듯이,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풍요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착각하면서 전 세계 거의 천 곳 이상에 미군 기지가 설치되어 모든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일이나 전 세계의 모든 분쟁에 개입하는 일을 용인하거나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인들이나 유럽 부자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일자리를 위해 지난 시절의 냉전, 오늘날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전 세계에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인들은 지난 60년 동안 지속되는 중동의 피비린내 나는 갈등의 원인제공자가 바로 미국의 이스라엘 지지에 주로 기인한 것이며, 사우디를 비롯한 중공 여러나라의 독재자들을 지지하고 그들의 인권탄압을 묵인한 것도 자신들의 부와 일자리의 요구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동아시아나 전 세계의 군비경쟁의 강화나 아프리카 여러나라에서의 종족들 간의 분쟁과 학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 등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과 유럽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줄이고, 그러한 전쟁을 통해 이득을 얻는 세력을 제압할 정도로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1945815일의 남북한의 분단 역시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고, . 소의 패권전략에 기인한 것이었으며, 지난 1950년의 한국전쟁은 북한 김일성 세력의 무력통일의 열망과 상황 판단 착오에 주로 기인한 것이었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분단을 지속시킨 내외적인 조건은 바로 미국과 한국, 그리고 북한의 권력자들의 기득권 유지와 이해관계에 기인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이해를 국민의 이해와 요구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미국과 남북한 국민들의 판단과 의식은 전쟁이 실제 가져온 비참성과 그 주요 피해 집단, 그리고 사실상의 전쟁상태인 분단을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하는 비용들과 비용의 실제 부담자들에 대한 무지에 기초한 것이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이 그 전쟁의 희생자가 된 한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만 충분히 알고 있어도, 누가 이 전쟁으로 이득을 보았는지에 대한 자료나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고 그것이 교육된다면 한국사람들의 분단과 전쟁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른다.

  정전 60년을 맞아, 교육과 미디어의 영향을 받아 모든 것을 북한 탓으로만 돌리는 데, 익숙한 한국인들은 이 분단 전쟁 체재를 유지하는 데는 한국민들의 몰이해, 자신의 물질적 욕망을 계속 추구하고 싶어 하는 태도도 중요하게 깔려 있다는 것을 한번 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남북한의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세력을 권력권에 진출시키지 못한다면, 군사력에서 북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우위에 있는 남한이 왜 막대한 예산을 미국 무기도입에 지출해야하는지에 대한 정당한 의문을 품고, 또 정치가들에게 묻지 않는다면, 자신과 자신의 자녀가 또 다른 전쟁과 갈등의 희생자가 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김동춘 대학 교수
출생1959년 09월 29일
출생지대한민국 경북 영주시
경력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부교수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김희태 2013.07.16 22:23  Addr  Edit/Del  Reply

    평화도 힘이 있어야 이룰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반은 맞고, 반은 그르다고 생각됩니다. 힘을 강조하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독일의 히틀러는 파시즘으로 나라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습니다. 국민들을 힘으로 짓누르면, 언제가는 민중들이 들고 일어서는 것, 그것을 혁명이라고도 하지요. 이러한 것들이 역사적 현상이었던 걸 감안하면, 평화라는 이야기가 참 슬프게 느껴집니다.

    오늘 당장 국제뉴스에서 보여지는 중동의 불안, 이집트,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대륙의 내전 등 강대국들이 이권과 기득권을 놓치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비단 멀리 볼 것도 없이 남,북한 대결 국면을 조성하면서, 주변 4강은 평화를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남,북한의 대결 국면을 교묘하게 조장하는 국제정치에서의 평화는 이런 비열한 작태라고 봅니다.

    생각해보면 평화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너무 좋습니다. 대결 보다는 평화를~ 어찌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듯 하지만, 그것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는 일상이 현재의 모습이 아닐까요?

    지금 북한과의 대화를, 평화를 이야기하면 빨갱이로 매도되고, 매카시즘이 작렬하는 이 대한민국에서, 과연 남,북한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통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정녕 이대로 막히는 것인지, 답답하면서도 믿고 싶습니다. 고상한 평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서의 평화를 그것을 우리들이 깨닫게 되기를 말입니다.

역사, 평화를 이야기하다

 

  한국전쟁이 정전이라는 형태로 동결된 지 60년이 지났습니다. 전쟁이 끝났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60년의 세월을 통해 우리가 익힌 것은 일종의 판단정지가 아닐까요. 전쟁의 가능성을 늘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의식화하지 않는 습관은 전쟁불감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신상태입니다. 이러한 방어기제 덕분에 우리는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을 전하는 언론보도를 접하고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는 근본적인 평화에 대한 단념이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평화와 군대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60년 동안 묻은 때를 벗겨내고 새로이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서 역사문제연구소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평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정전협정이나 한미군사동맹과 같은 제도적이며 거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전쟁 이미지, 또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병역이나 원자력의 문제가 지난 60년 동안에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짚어보고, 일상 속에서 평화를 실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을 나누고자 합니다.

  함께 해주세요! 지금 여기서(now here) 하는 평화의 실천이 아직 아무데도 없는(nowhere) 평화를 만들어내는 힘이 될 것입니다.

 

주최   역사문제연구소

후원   평화박물관    역사비평사    전국역사교사모임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