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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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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11. 10:52 2020년도 행사

<대상저작>

정영환,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 ‘독립’으로 가는 험난한 길", 푸른역사, 2019

 

 

<초청의 말>

2019년 하반기 한일 관계는 극단적인 대치 상태에 놓였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고 대법원이 2018년 판결한 이래, 일본 정부는 핵심 소재의 수출을 규제했고 한국인들은 그에 대해 ‘노 재팬(No Japan)’ 운동으로 맞섰습니다. 일제 식민지기에 대한 양국의 인식 차이가 갈등의 배경에 있었음은 물론입니다. 나아가 한국의 식민지 경험을 1945년에 끝난 ‘과거사’로만 치부할 수 없음을 다시금 떠올리려 합니다. 부모가 1945년 이전 식민 본국이었던 일본으로 건너간 후, 일본에서 태어나 여전히 일본에 거주하면서 대한민국 국적, 혹은 식민지기의 ‘조선적’으로서 살아가는 재일조선인들에게 식민지 문제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역사문제연구소 2020년 첫 번째 저작비평회에서는 정영환 선생님의 『해방 공간의 재일조선인사』를 통해, ‘해방 5년사’(1945~1950)를 중심으로 재일조선인의 삶과 투쟁을 되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 시기 일본에서 조선인 지배의 틀이 새롭게 만들어질 때 식민지배 경험과 냉전체제가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재일조선인의 삶을 ‘민족·동포’, 일본 내 ‘소수자’, ‘지역민’ 등등 어떠한 정체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그리고 1945년 이후의 영토와 국민을 중심으로 설정된 한국사 및 일본사의 주류 인식이 재일조선인의 역사와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식민지’, ‘냉전’, ‘분단’, ‘독립’을 종횡무진하게 될 이번 행사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일시> 2020 2 20() 오후 3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5층 관지헌 (제기동 1번 출구, 도보 3)

 

 

* 패널

 

<저자> 정영환(메이지가쿠인대)

 

<토론> 정계향(울산대), 하종문(한신대), 홍정완(연세대)

 

<사회> 김아람(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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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11. 10:51 2020년도 행사

 

2020 2 22 12시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연회장에서 열리는 『정석종, 그의 삶과 역사학』출판기념회에 회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2020년은 한국 민중운동사 1세대 연구자이자, 역사문제연구소 초대 소장이었던 정석종 교수가 타계한 지 20주기가 되는 해입니다. 이에 역사문제연구소는 고인이 몸담았던 영남대학교 국사학과 총동창회와 함께 지인들의 회고를 담은 추모글과, 고인의 논문 중 민중운동사 관련 논문을 골라 뽑은  『정석종, 그의 삶과 역사학』을 편찬하고, 이를 기념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함께 자리하셔서 그의 삶과 역사학에 대해 추억하고 축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시   2020 2 22() 12~3

 

장소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연회장

 

주최   역사문제연구소, 영남대학교 국사학과 총동창회, 정석종기념문집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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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의 시야에 조선 민중의 삶을 드러낸 정석종을 기억하다

 

―‘민중사학 1세대’의 선두주자 정석종의 삶과 역사학

 

 

“종래에는 조선시대의 정치 현실을 당쟁사로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인 태도였다. 그러나 이는 일면적인 것이므로 지양되어야 한다. 물론 치자 계층 내부의 갈등으로서 당쟁 자체도 조선시대 정치사의 일부지만, 치자와 피치자 사이의 갈등으로 이루어지는 피치자의 사회운동이나 그 갈등의 폭발인 민란들도 정치사에 포함되어야 한다. 어떠한 정치 현상으로서의 입법 조치나 새로운 시책의 결정 등은 하층 민중의 반항과 그 지향에 대한 일정한 양보 또는 타협의 산물이거나 그 지향을 억압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사실들도 아울러 고려해야 할 것이다.”―정석종, 「조선 후기 정치사 연구의 과제 II」 중에서.

 

“조선 후기 당쟁사를 민중과 연결시켜 해석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 해석이 기발할 뿐 아니라 구체적인 실증 자료가 뒷받침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논문들은 조선 후기 정치사, 경제사, 신분사, 사상사 연구에 큰 획을 긋는 업적이 되었다. 민중을 강조하던 정석종이 드디어 조선 후기 민중운동을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신분적으로, 사상적으로, 다각적으로 밝혀내 화려한 파노라마를 펼쳐놓은 것이다.”―한영우(서울대 명예교수)

 

1945년 이후 분단 구조와 이승만 독재 정권 아래에서 일제 식민사학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력했고, 한국 사학계는 대부분 왕조사관에 매몰되어 있었다. 근대사의 이론이 정립되지 못한 학문 풍토에서, 이를 재정립하고 타파하려는 소장 연구자들이 하나 둘 등장했다. 이들은 민족 문제와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이승만 독재 정권과 박정희 군사 정권 및 유신 정권 아래에서 방황과 고통을 겪었다. ‘모순과 갈등의 시대에 역사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역사는 현실에 맞서 교훈과 무기가 될 수 있는지’라는 화두를 품고 치열하게 학문을 탐구했다. 이들 소장 그룹의 한 멤버로서 한국 역사학계에 ‘민중사’라는 새로운 시선과 영역을 개척한 정석종은 기존의 연구에 안주하지 않고 창의적인 이론을 제시하면서 독창적인 학문 세계를 수립했다. 특히 범죄인 조사·신문·재판 기록인 『추안급국안』을 발굴하여 장길산 부대, 무신난, 홍경래난 등에 참가한 인물들의 정치·사회경제·사상사적 궤적을 생생한 역사적 사실로 그려냄으로써 민중운동사를 개척한 제1세대로 평가받는다. 그의 사후 20, 이제 동료와 후학들이 그의 삶과 역사학을 되돌아봄으로써 ‘역사학자’로서, 그리고 ‘시대의 증인’으로서 늘 눈앞의 과제를 정면 돌파하고자 했던 인간 정석종을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한다.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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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머리에

 

전 세계가 시위의 열기로 뜨겁다. 6월 홍콩에서 시작된 범죄인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가 대표적이다. 한 홍콩인 남성이 대만에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다시 홍콩에서 돈을 훔친 사건에 대해, 홍콩에서는 홍콩에서 일어난 절도만 처벌할 수 있었던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언뜻 보면 범죄인을 대만에 인도해 살인죄도 적용할 수 있게 한다는 송환법의 취지에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나 200만 홍콩 시민이 그에 반대해 거리에 나선 배경에는 중국 정부에 대한 오랜 불신이 있었다. 홍콩은 아편전쟁 이후 150년 동안 영국에 할양되었다가 1997년 중국에 반환되었고, 중국의 일개 행정구역이면서도 독자적인 헌법, 행정부, 법원을 보유할 수 있도록 허가받았다. 그러나 중국은 행정장관을 간접 선출하게 하는 등 홍콩의 입법·행정에 간여했고, 2017년부터 직접선거를 시행하겠다고 약속하고도 후보자는 중국에서 추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맞서 완전 직선제를 요구한 시위가 2014년의 우산혁명이었다. 홍콩 시민들은 이러한 대치 국면에서 중국 정부가 정치범을 제거하는 데 송환법을 악용할 것을 우려하며 반대 시위에 나섰고, 송환법이 철회된 뒤에도 행정장관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 홍콩 민주화 시위에 한국 5·18단체 등 국내외에서 지지와 연대를 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위를 정치의 문제로 볼 수만은 없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 자본가들은 중국 공산당과 손잡았고, 부동산 개발업자는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이 싼값에 방매한 토지를 사들여 호화 아파트를 지었다. 그 결과 홍콩의 빈부 격차, 주택 문제, 부동산 투기 문제가 심각해진 데다가 청년 실업까지 겹쳤다.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 엘리트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홍콩에서는 송환법이라는 촉매제를 만나 폭발한 것이다. 칠레에서는 지하철 요금 50, 레바논에서는 메신저 앱에 부과된 세금 20센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물파이프 담배값, 인도에서는 양파값이 촉매제가 되었다고 한다. 사회안전망이 무너지고 무한경쟁에 내던져진 청년층에게, 고매한 정치보다도 일상의 폭력과 그를 외면하는 기득권의 위선이 더 크게 다가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들이다. 한국에서도 조국 사태를 둘러싸고, 검찰개혁이라는 민주적 요구에 우선순위를 부여한 구 386세대와 불공정한 입시 제도를 목격하면서 계급적 박탈감을 절감한 20~30대 사이에 현저한 시각 차이가 드러났다. 우리는 말 그대로 일상이 정치가 된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제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도 재점검할 때가 되었다.

우연이지만 필연적이게도 『역사문제연구』 42호의 특집에는 ‘1980년 사북사건-배경, 주체, 지역이라는 주제 아래 사북사건이라는 시위를 새롭게 해석하는 논문들이 수록되었다. 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반 사북팀이 2016년부터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면서 공동연구해온 결과물이다. 김아람은 「1960~70년대 석탄산업 정책과 동원탄좌」에서 정부의 석탄 증산정책에 기대어 동원탄좌가 불법행위를 자행하며 성장한 것이 사북사건의 구조적 배경이었음을 밝혔다. 김아람의 연구가 사북사건의 원인에 대한 정통 역사학적 접근인 데 비해, 문민기는 「탄광사고를 통해 살펴본 사북사건의 배경」에서 사북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탄광에서 함께 일하던 전우 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본 광부들의 감정에 주목했다. 장용경은 「1980 4월의 사북, 광부들의 폭력과 폭력 앞의 광부들」에서 광부들의 노조지부장 부인 린치 사건을 국가 폭력에 대한 항쟁의 일환으로 쉽게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장미현은 「사북사건의 여성들」에서 여성의 사북사건 참여에 주목하면서 그들의 활동이 드러나지 못했던 사회적 맥락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마지막으로 김세림은 「사북사건 이후의 사북」에서 전두환 정권이 지역에 약속한 후생복지가 국가 폭력 및 기업의 일상적 감시와 결합하면서 결국 사북사건 참여자들을 소외시키고 지역공동체를 와해시켰다고 주장하였다. 이 특집논문들은 사북사건을 독재국가 또는 악독기업에 맞선 항쟁으로 제한시키기보다는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해준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각 논문과 논문들 앞에 위치한 사북팀의 취지 설명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저작비평회와 집담회에서도 다양한 주체와 새로운 시각을 모색하려는 시도는 계속된다. 저작비평회에서는 이정희의 『한반도 화교사』를 통해, 1880년대부터 한반도에 살아왔지만 한국인의 뇌리에서 잊혀진 한반도 화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남아시아 화교와 다른 한반도 화교만의 특수성, 한반도 화교 내부의 출신 지역 및 계층에 따른 격차, 한반도 화교와 한국인의 관계를 억압 또는 피억압의 관계로 보려는 공식을 넘을 수 있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대화들이 이어졌다. 집담회에서는 한국 장애사의 현황과 과제를 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집담회는 당장 논문으로 발표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된 당대의 이슈를 다루는 코너였는데, 당초 서평으로 장애사를 다루려던 기획이 집담회로 커지면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게 되었다. 참석자들은 장애사가 기존의 역사서술에서 비가시화된 장애인의 존재를 드러내는 동시에, 장애 또는 장애인이 역사적으로 구성되었음을 밝혀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갖는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는 정상과 비정상,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근대주의적 인식 틀에 문제를 제기하고, 다양하고 중층적인 정체성을 전제로 한 새로운 역사인식, 그리고 우리의 새로운 삶의 태도를 모색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상례화된 가을 태풍과 일상의 무게에도 마다하지 않고 두 기획에 참여해주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역사문제연구』 42호에는 여느 때보다 많은 연구논문이 투고되었다. 그리고 마치 근대사의 비중이 적은 것을 아쉬워한 지난 호의 책머리에에 호응하기라도 한듯이, 근대사 논문의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권기하의 「독립협회의 정치운동 모색 과정에서 의리 관념의 역할」과 이기훈의 「만세 현장의 미디어와 상징체계, 3·1운동의 깃발과 선언서」는 전통적인 관념과 시위 수단이 근대적 운동의 매개가 되어 공존하는 양상을 그렸다. 윤현상은 「1920년대 군산 지역 학교 설립 과정에서의 민족 간 협력과 갈등」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의 관계에 주목한 반면, 장원아는 「근우회와 조선여성해방통일전선」에서 근우회를 일본인에 대항한 민족통일전선으로만 이해하는 민족주의적 서술을 비판하고 여성해방을 위한 통일전선이었음에 주목한다. 식민권력과 토건업계의 통제 및 타협 관계를 다룬 고태우의 「1920년대 말~1930년대 전반 토목담합사건 연구」와 함께, 이들 연구는 다양한 주체들이 상호 길항하는 역동적인 역사상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예진이 「1920~1930년대 조선 배우들의 고용불안정성 인식 및 다각적 생계활동에 관한 연구」에서 배우를 고용불안정 상태에 놓인 생활자로 접근하고, 임유경이 「메이퀸과 페미니즘」에서 메이퀸을 통해 한국의 여대생 표상과 여성 담론의 변화 양상을 추적한 것은 주체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서 주목할 만하다. 연구논문들 덕분에 모처럼 역사문제연구 42호에서는 근대사와 현대사의 비중이 균형을 이루었고, 동시에 일정한 문제의식이 전체를 관통하면서 『역사문제연구』만의 색깔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여기 수록된 다양한 코너와 논문들이 독자들과 함께 새 시대를 열어가는 상상력의 원천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목차

 

 특집: 1980년 사북사건  배경, 주체, 지역

김아람, 「1960~1970년대 석탄산업 정책과 동원탄좌」

문민기, 「탄광사고를 통해 살펴본 사북사건의 배경」

장용경, 「1980 4월의 사북, 광부들의 폭력과 폭력 앞의 광부들」

장미현, 「사북사건의 여성들  사라진 억센 여자들과 말하는 여성들」

김세림, 「사북사건 이후의 사북 - ‘복지라는 외피를 쓴 일상적 감시」

 

 저작비평회

 

한반도 화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정희, 『한반도 화교사  근대의 초석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경제사』, 동아시아, 2018.

사회: 김헌주

논평: 김종호, 박준형, 임광순

 

 연구논문

 

권기하, 「독립협회의 정치운동 모색 과정에서 의리와 관념의 역할」

이기훈, 「만세 현장의 미디어와 상징체계, 31운동의 깃발과 선언서  판결문 자료를 중심으로」

윤현상, 「1920년대 군산 지역 학교 설립 과정에서의 민족 간 협력과 갈등」

장원아, 「근우회와 조선여성해방통일전선」

고태우, 「1920년대 말~1930년대 전반 토목담합사건 연구」

차예진, 「1920~1930년대 조선 배우들의 고용불안정성 인식 및 다각적 생계활동에 관한 연구」

임유경, 「메이퀸과 페미니즘  1960~1970년대 한국의 대학문화와 여성 담론의 변천」

 

 집담회

 

한국 장애사의 현황과 과제

사회: 이정선

참석: 문민기, 박은영, 소현숙, 이순영, 하금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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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돈의 시론은 최근 각광받고 있는 가야사 붐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분석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한다. 원로 고대사학자는 역사가 지역 정치와 개발의 소재로 오용되는 와중에, 학문적 연구와 성찰은 사라지고 이벤트성 행사와 역사상의 왜곡만 남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는 가야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역사가 정치에 종속될 때 역사는 오히려 그 사회적 효용성을 잃게 된다. 그렇다고 역사가 정치와 현실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도 없다. 역사는 끊임없이 현실에 의해 부름받기 때문이다. 역사의 정치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만 정치에 매몰되지 않는 긴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양한 주체의 자발적 봉기, 혹은 공화국 시민주체의 확립

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을 어떻게 기억했는가?

최근 3·1운동에 대해 진지한 연구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연구들은 크게 두 가지 경향을 가지며, 각각은 현실 정치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함축하고 있다. 일단의 연구자들은 민족적 단일주체의 저항 서사에서 벗어나 다원적 주체와 기억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3·1운동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반면 주체의 다양성이라는 측면보다 공화국과 주권자 시민주체의 형성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연구자들도 있었다. 전자의 입장에서는 촛불항쟁을 기존 정치 범주로 해석할 수 없는 다양성의 도전으로 해석할 것이고, 후자는 공화국의 시민주체와 민주주의의 확립 과정으로 볼 것이다. 실제로 3·1운동 연구에서 이런 차이는 어떻게 드러나며 어떤 문제점과 전망을 가지고 있는가? 『역사비평』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2019년 초부터 연구진을 구성했다. 학술, 대중문화, 공공기억으로 연구 분야를 나누고 학술연구와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연구팀을 만들었으며 공적 행사와 전시 등 공공기억 분야는 개별 연구자에게 연구를 부탁했다. 그 성과를 이번 호와 다음 호에 실을 것이다.

이번호에서는 학술 연구와 특별전을 대상으로 <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을 어떻게 기억했는가>를 살펴보았다. 장원아는 다양한 주체와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최근 연구들을 비교, 평가했다. 그는 3·1운동을 나라 만들기의 출발점으로 해석하는 것의 위험을 지적하면서도, ‘다양한 주체론의 문제점을 비판한다. 명백히 존재하는 집단주체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도식적으로 다양성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성 자체가 새로운 획일화일 수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백승덕은 촛불시위의 스펙터클 속에서 3·1운동을 비폭력, 평화의 운동으로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다. 기존의 사례 연구들을 비교 검토하면서 3·1운동 과정에서 폭력과 평화의 문제를 좀 더 엄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은정은 올해 각각 문학과 역사학계의 대표적인 3·1운동 연구 저작인 『3 1일의 밤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과 『1919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을 집중적으로 비교했다. 이 평화의 꿈을 꾸는 다양한 주체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은 운동의 기획과 실행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다. 방법론과 자료, 이야기 구조의 형성 등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비교를 통해 두 책의 의미를 평가한다. 김민환은 총 44개의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특별전시를 고찰했다. 그는 전시의 구성과 특징을 분석하고 이 특별전들이 대체로 동질적이고 균열없는 민족적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많은 지역 전시들이 중앙 상설전시관 전시물품의 대여에 그치고 있어, 엘리트 중심, 서울 중심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3·1운동의 모습을 시각화할 필요를 제기하고 있다.

 

 

강제동원 판결과 일본의 수출규제, 역사적으로 살펴본 오늘

흔들리는 한일관계, 위기의 기원과 전망

한일관계는 과거의 기억이 국제관계와 현실 정치의 쟁점이 되는 또 다른 전형을 보여준다.이번호에서는 한일관계의 위기를 각각 청구권 문제와 한일 경제분업의 역사 속에서 분석한 두 논문으로 기획을 구성했다. 오타 오사무는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과거사의 문제가 해결 완료되었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다각적으로 분석 비판하면서,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인만은 1960년대 이래 최근까지 한일 경제분업관계의 변화를 분석했다. 그는 2000년대 이래 한일 간에 새로운 균형과 수평적 분업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평가하고, 여기에 입각하여 일본의 대한 수출 규제의 향후를 예측했다.

 

 

삼국통일론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된다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삼국통일을 둘러싼 논쟁은 이번호에서도 계속된다. 지난 호에 신라 삼국통일론의 관점에서 전덕재와 기경량의 논문이 실린 바 있었는데, 이번호에는 그에 대하여 김영하와 윤경진의 반론 논문이 수록되었다. 김영하는 신라와 발해의 남북국 병존의 근거로서 백제통합론이 삼국통일론보다 유효할 수밖에 없다는 본인의 입장을 재차 강조하였다. 윤경진은 전덕재와 기경량의 비판이 실증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통설적 입장에서 기존의 삼국통일론을 옹호한다고 보고, 향후의 논쟁에서는 실증적 논점이 강화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차례

책머리에 · 3·1운동 100주년의 해를 보내며역사와 정치의 긴장 / 이기훈

 

[특집] 우리는 3·1운동 100주년을 어떻게 기억했는가? ①

· 3·1운동 100주년 연구와 현재의 시선민주주의와 다양한 주체들 / 장원아

· ‘비폭력의 스펙터클을 넘어서3·1운동 100주년의 폭력론 / 백승덕

· 3·1운동 100년의 · 바람박찬승과 권보드래의 3·1운동 서사 / 조은정

·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별전의 지형도 / 김민환

 

[시론] · ‘슬픈 가야, 만들어진 가야 / 주보돈

 

[기획 1] 흔들리는 한일관계: 위기의 기원과 전망

· 한일청구권협정 해결 완료론 비판 / 오타 오사무(太田修)

· 한일 경제분업관계의 역사와 대한 수출규제의 의미 / 여인만

 

[기획 2]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④

· 신라의 삼국통일론은 타당한가 / 김영하

· 신라 삼국통일 논쟁의 논점과 방향 / 윤경진

 

[역비논단] · 1960년대 이후 식생활문화의 변동과 삼양-농심 라이벌전 / 이휘현

· 인종주의의 역사와 오늘의 한국 / 박진빈

 

[서평] · 해석에서 해방된 병자호란―『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구범진, 까치, 2019) / 노영구

 

· 탈이념화된 동아시아 세계의 행방―『조선연행사와 조선통신사』(후마 스스무, 성균관대출판부, 2019) / 박상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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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4. 16:50 2019년도 행사

2019년도 정기 심포지엄이 다음주 토요일로 다가왔습니다.

 

“만세후의 시대: 3.1운동 이후의 '융화' '불화'”에 회원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자세한 내용과 일정은 아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석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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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는 글

 

역사문제연구소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 이후의 시대, 즉 ‘만세후의 시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3·1운동은 일제에 대한 전국적 규모의 저항이었던 동시에 조선과 조선인의 삶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정치적 · 사회적 운동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정기 심포지엄을 통해 ‘만세가 열어낸 시공간’에 집중해보고자 합니다. 3·1운동 자체보다 그것이 열어놓은 “삶”을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만세후의 시기’, 그 끝은 어디일까요? 3·1운동의 파급력은 어디까지 미치는 것일까요? 그리고 만세와 그 이후를 살아가는 주체들은 어떤 정치적·사회적 선택을 하였을까요?

 

 

우리는 이러한 고민들을 하며 각자의 주제에 ‘만세후의 시대’를 녹아내려 했습니다. 1부에서는1920년대라는 시공간의 이미지를 ‘만세후의 시대’로 새롭게 보아 이 시기의 통치와 정치의 관계를 다각도로 포착하고자 하였습니다. 2부에서는 ‘만세후의 시대’가 만세를 ‘함께’ 경험한 주체들의 ‘융화’와 ‘불화’, 그리고 양자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졌음을 살펴보려 했습니다. 이로써 ‘만세후의 시대’의 국가와 사회가 어떤 목적으로 또한 어떤 전략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서로에게 인지시키고자 하였는지, 식민지 조선의 주체들이 3·1운동의 자장 속에서 어떻게 움직였는지, 나아가서 그 자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 또는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시도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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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26. 16:42 2019년도 행사

2019년도 역사문제연구소 기획강좌 <대한민국 헤게모니: 8가지 시선>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위기를 알리는 징후가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소득·기회·주거·교육 불평등의 심화, 학벌·재벌·고용의 세습과 특권의 확대, 그리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대불평등과 사법의 정치화 등. 왜,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요?  

역사문제연구소는 분단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한을 지배하였던 다양한 형태의 대한민국 헤게모니를 역사적 시각에서 조망하는 기획강좌를 마련하였습니다. 단지 하나로 수렴되지 않고 역사적으로 변동하고 외연을 확장하며 시시때때로 자기 갱신하는 대한민국 헤게모니의 다양한 모습과 그 효과를 주목하고 성찰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함께 고민하고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세부일정

 

제1강(10월 10일) [법] '87년 체제'와 사법 정치의 기원 / 이국운(한동대) 

제2강(10월 17일) [정치] '87년 체제', 자유화로 가는 막다른 길 / 전원배(역사문제연구소) 

제3강(10월 24일) [경제] 성장하라, 자유로울지어다: 성장주의와 (신)자유주의 / 지주형(경남대) 

제4강(10월 31일) [국제관계] 동아시아 불화의 기원,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미국 헤게모니 / 권혁은(역사문제연구소) 

제5강(11월 7일) [도시] 도시가 성장하고 쇠퇴하는 원인들과 풍경들 / 임동근(한국교원대) 

제6강(11월 14일) [종교] 생존과 욕망: 초대형교회로 보는 한국현대사 / 이정연(서울여대) 

제7강(11월 21일) [교육] '공정한 차별'의 재생산, 학교에서 공장까지 / 황병주(역사문제연구소)

제8강(11월 28일) [사회] 한국 사회가 성을 말해온 방법: 정상가족과 이성애 제도의 형성 / 김대현(역사문제연구소)

  

- 참가신청 : 신청(구글양식, 전화, 메일 중 선택) 및 입금 (입금 후 참가 확정됩니다.) 

  구글양식 주소입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1DPXxFde13Dn654xxppCPrcqEnVCiaVvjHgLZcszzs2I/viewform?edit_requested=true 

 

- 수강료 : 1회 개별 수강시 1만원, 전체 수강시 6만원입니다. 

  학생(대학원생 포함) 및 역사문제연구소 회원은 전체 5만원, 1회 8천원으로 할인됩니다.

  [입금계좌] 신한은행 100-012-850436 역사문제연구소 

 

* 월 1만원 이상 후원회원은 "역사비평"과 "역사문제연구" 중 하나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월 2만원 이상 후원회원은 두 잡지 모두 보내드립니다. 후원회비는 월 5천원 이상입니다. 

 

- 후원안내: http://www.kistory.or.kr/index.php?subPage=610 

 

- 오시는 길 안내 : http://www.kistory.or.kr/index.php?subPage=150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왕산로 19라길 13 MS빌딩(제기동 1158-36)) 

 

- 문의 : 02-3672-4191 / kistory@kistory.or.kr  

 

※ 신청자명과 입금자명이 다를 경우 반드시 알려주세요.

 

※ 수강은 입금확인 후 최종 등록됩니다. 

 

※ 환불규정 : 참가신청 취소 및 환불은 각 강의 전날까지만 가능합니다. 

     환불 시 이체수수료 발생하는 경우 수수료를 제하고 환불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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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20. 16:51 2019년도 행사

초대의 글

 

안녕하십니까.

깊어가는 가을날 풍성한 한 해의 수확을 회원 여러분들께서도 거두시기를 소망합니다.

한국과 독일의 역사를 비교사적 시각에서 공부해온 <역사문제연구소 한독비교사포럼>은 독일 <튀빙엔대학교 한국학연구소>와 함께 9월 27(금)-28(토) 양일간 한독관계사 심포지엄을 중앙대학교에서 개최합니다.

작년 튀빙엔에 이어 금년에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학술대회는 특별히 중앙대학교 독일유럽연구소에서 지원하는 행사입니다.

여기에 행사 프로그램을 함께 보내드립니다.

아무쪼록 오셔서 자리를 빛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역사문제연구소 한독비교사포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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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국 사회에서는 현실의 정치가 역사를 광범위하게 동원하고 있다. 역사의 정치성을 부정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 정치의 과정에서, ‘동원된 역사들은 역사를 오용하고 남용하는 전형을 보여준다. 동원된 역사들은 현재에 이어지는 우리의 과거를 민주주의와 번영을 향한 대한민국의 일관된 발전 과정으로 묘사한다. 이렇게 절대적 과거, 부동의 역사를 상상하는 것은 이미 역사학의 영역 밖으로 벗어난 것이다. 우리는 항상 특정한 방식으로 과거를 기억할 수밖에 없고, 기억되지 못한 과거의 단면을 찾아내고 사회적 기억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역사학의 임무 중 하나다. 자신의 방법과 기술만이 과거를 확증할 수 있다는 독선을 실증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실증을 근거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거짓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학문의 기본적 윤리를 저버리는 폭력이다.

 

 

역사적변화와시대구분,그리고역사를기억하는방식에 대하여

1979, 위기와 전환

이번호 특집은 <1979, 위기와 전환>이다. 일부에서는 한국 현대사를 끊임없는 성장의 시대와 문명화의 과정으로 서술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에 그런 성공신화가 있을 리 없다. 1970년대 한국 사회는 정치, 외교, 사회, 문화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었고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박태균은 1979년 박정희 정권의 성장 중심 경제 정책이 심각한 위기 속에서 경제 안정화 종합시책을 통한 전환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그 역사적 의미를 살폈다. 박정희 정권의 위기는 국제적 변화와 국내 정치와 사회적 저항이 교차하는 와중에 더욱 강화되었다. 카터 외교와 한미관계를 다룬 박원곤의 논문,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을 다룬 이상록의 논문을 교차해서 읽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YH노동조합의 신민당사 농성을 다룬 김원의 논문은 여성 노동자의 시각에서 당시를 세심하고 두터운 서술로 재구성하고 있다. 오제연은 1970년대 대학정원의 증가가 일관된 교육 정책의 기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의 압력을 받아 진행되었고, 고등교육의 대중화 또한 혼란스럽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음을 밝혔다.

 

 

삼국통일전쟁인가백제병합전쟁인가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논쟁의 본격화

지난 126호부터 시작된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기획은 3회차를 맞아 네 편의 논문을 실었다. 전덕재는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신라의 주도성이 분명히 존재했고 통일전쟁의 결과 오늘날 한국 민족의 원형이 만들어진 까닭에, ‘백제병합전쟁이나 ‘7세기 중·후반 동북아시아 전쟁보다는 삼국통일(통합)전쟁이 여전히 가장 합리적인 명칭이라고 강조했다. 기경량은 신라인들이 주장한 일통삼한개념에서 삼한7세기 초 수와 당이 고구려를 침공하는 과정에서 창출한 표상으로서의 공간 개념이었는데, 이 가운데 옛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 지역이야말로 삼한개념의 핵심 지역이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전쟁 직후인 7세기 말에 보이는 신라의 일통삼한의식은 백제와 고구려 지역을 아우르는 일통 의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논문은 삼국통일에서 신라의 주도성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관점의 연속선상에 있는 만큼, 다른 입장을 가진 연구자들의 반론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한편 여호규는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 신라 도성의 공간구조 변화를 검토하고, 신라 도성이 당 장안성을 모델로 삼으면서도 통일 이전의 도성 조영 전통을 계승했음을 강조했다. 여호규의 이러한 입장은 중고기 이래 형성되었던 신라 전통의 지배 체제가 삼국통일 이후에 더욱 공고해졌다는 지난호 기획 논문들과 인식상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연식은 의상의 화엄학이 8세기 중반 이후에야 주류적 위상을 차지하고, 선종이 유행하는 9세기 후반 이후에도 그 영향력을 꾸준히 유지했음을 치밀하게 논증했다.

 

 

다시 학문의 영역에서 역사를 논하다

국가정통론의 동원과 역사전쟁의 함정

이번호의 또 다른 기획은 <국가정통론의 동원과 역사전쟁의 함정>이다. 올해 412일에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한국역사연구회 3개 역사연구단체가 합동으로 개최했던 학술회의의 발표문들을 논문으로 다듬었다. 홍석률은 역사 교과서 문제를 중심으로 왜 한국 사회에서 정통론적 역사인식이 주류를 이루는지, 이것이 어떤 식으로 오늘날 역사학의 진전을 막고 있는지 분석했다. 이용기는 대한민국임시정부 법통론의 역사를 21세기 한국 역사학계의 재편과 대한민국 민족주의의 등장이라는 측면에서 추적했다. 임종명은 초기 이승만 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실제로 민주주의적 기반을 파괴하고 있었음을 지적했다. 특히 홍석률과 이용기의 글은 역사전쟁의 와중에 눈 감아왔던 역사학계의 성찰과 자기반성이라는 측면에서 꼼꼼히 읽어볼 가치가 있다.

 

 

차례

 

책머리에 · 역사는 역사다역사의 오용을 경계하며 / 이기훈

 

[특집] 1979, 위기와 전환

· 박정희식 경제성장 정책의 종점으로서 경제안정화 종합시책 / 박태균

· 카터의 인권외교와 한미관계충돌, 변형, 조정 / 박원곤

· 1979년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을 통해 본 한국의 인권 문제 / 이상록

· 1979, 그녀들의 선택YH노동조합 신민당사 농성 / 김원

· 1970년대 후반 대학정원 정책의 전환과 고등교육 대중화 / 오제연

 

[기획 1]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의 재조명

·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려고 하였을까 / 전덕재

· ‘일통삼한 의식과 표상으로서의 삼한’ / 기경량

· 삼국통일 전후 신라 도성의 공간 구조 변화 / 여호규

· 통일신라 시기 화엄학의 성격과 위상의상의 화엄학은 어떻게 통일신라 불교계의 주류가 되었나 / 최연식

 

[기획 2] 국가정통론의 동원과 역사전쟁의 함정

· 역사전쟁을 성찰하며정사(正史정통성(正統性)론의 함정 / 홍석률

· 임정법통론의 신성화와 대한민국 민족주의’ / 이용기

· 건국절 제정론과 비((()역사성19488월 직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성을 중심으로 / 임종명

 

[시론] · 홍콩을 직면하다대중운동의 민주화 요구와 정당정치 / 샹뱌오(项飚)

 

[역비논단] ·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상설·비상설 논쟁 / 임경석

· 18세기 새로운 부()의 인식과 이재론(理財論)이재운의 해동화식전연구 / 안대회

 

[서평] · 착종된 협력의 경계를 찾는 지난한 작업의 이정표―『지배와 협력일본제국주의와 식민지 조선에서의 정치참여(김동명, 역사공간, 2018) / 염복규

· 무역으로 재조명된 16세기 한중관계사의 외교적 레토릭, “예의지국―󰡔16세기 한중무역 연구혼돈의 동아시아, 예의의 나라 조선의 대명무역󰡕(구도영, 태학사, 2018) / 조영헌

· 한국에서 쓰는 영제국의 역사―『제국의 기억, 제국의 유산(이영석, 아카넷, 2019) / 염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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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22. 12:53 2019년도 행사

2019 역사문제연구소 두 번째 저작비평회

 

<한반도 화교사>

 

<초청의 말>

20세기는 이주의 시대라고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전 지구적인 인구 이동을 경험했습니다. 전반부에는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지배가, 후반부에는 생산·분배·투자의 국제화 및 냉전체제의 종식이 인구의 이동을 촉진시켰습니다. 우리에게도 일제시기 조선인의 만주 이주나 일본으로의 강제징용, 1960년대 이후 파독 광부·간호사 등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낯선 주제가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과거 한국인의 해외 이주 경험을 들으며 함께 분노하고 눈물 흘리는 동시에,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벅찬 가슴으로 응원하곤 합니다.

 

하지만 눈을 한반도 내부로 돌려보면 조금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난민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로 이미 이주했거나 이주하려는 새로운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반드시 우호적이지만은 않으며 혐오 발언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평소 잘 의식되지 않지만, 중국 출신의 화교들이야말로 한반도로 이주한 이방인들 중 선구이자 핵심적인 집단입니다. 이에 역사문제연구소의 2019년 두 번째 저작비평회에서는 이정희 선생님의 한반도 화교사와 함께, 일제시기까지의 조선 화교를 중심으로 한반도에 이주해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중국인들이 한반도에 이주·정착하게 된 시대적 배경과 한반도에서의 경제 활동, 한국인·일본인과의 관계, 그리고 () 화교로도 분류되는 조선족의 이야기까지. 한국인과 한반도의 안팎을 짚어볼 수 있는 이번 저작비평회에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대상저작>

이정희,한반도 화교사: 근대의 초석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경제사, 동아시아, 2018

 

<일시> 2019 9 7() 오후 3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5층 관지헌 (제기동 1번 출구, 도보 3)

 

* 패널

<저자> 이정희(인천대)

<토론> 김종호(서강대), 박준형(서울시립대), 임광순(고려대)

 

<사회> 김헌주(충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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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 14. 14:49 2019년도 행사

다큐멘터리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공동체 상영에 회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974 8 30, 도쿄 중심에 있는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건물 현관 로비에서 시한폭탄이 터졌다. 이 사고로 8명이 사망하고 300여 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한 달 후,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이름으로 성명서가 발표되면서 범인들이 밝혀졌다.

이들은 미쓰미시 등 일제의 침략기업과 일본의 전쟁책임을 촉구했으나 당시 일본사회에서는 이미 다 끝났다고 이들의 주장을 외면했다. 1975 5, 이들은 일제히 체포되었다.

'늑대'부대원 2명은 사형이 확정되었고, 2명은 일본 적군의 비행기납치투쟁으로 석방되어 아랍으로 갔다. 지금도 사형수로, 무기징역수로, 국제수배자로 감옥에 있거나 감옥 밖으로 나왔거나 일본에서는 '극악무도한 살인범'으로만 말하여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일본사회에서 배제되고 철저히 잊혀졌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나서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던 한국의 김미례 감독이 이들의 흔적을 쫓아 일본으로 갔다. 왜 일까?

“과거 36년간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한국인인 나는 ‘반일’정서 속에서 성장했다. 나에게 ‘반일’투쟁과 저항은 옳고 영웅적인 행위였지만, 일본인에 의한 ‘반일’투쟁은 반역의 행위인 것이었다.

일본제국주의 타도를 위해서 일제침략기업을 폭파시키고, 천황을 암살하려고 했던 일본인들. 일본사회에서 그들은 언급조차 하기 어려운 혐오의 대상이었다. 이 영화를 만드는 내내, 주제의 엄중함이 나를 짓누르고, 도덕적인 질문들이 나를 멈추게 했다. 그럼에도 무언가에 끌려서 계속 그들을 만나러 갔다.

40여년 동안 사형수로, 무기징역수로 감옥에 있거나, 지명수배자로 살아가는 그들은, 일본사회로 부터 평생 용서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영화는 그들처럼 용서받지 못하는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선과 악 사이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뒤를 나는 바라본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문제의식과 행동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에 참여하였거나 지지한 사람들은 대부분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에 출생한 이른바 일본의 전후세대이다. 그리고 대부분 하층노동자이거나 일본 내의 소수자들이었다.

특히 이들 중 일부는 재일조선인 문세광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에 큰 영향을 받았고, 한국의 진보단체와 연락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9년 여름 아베 정부의 경제보복조치로 한일관계가 다시 뜨겁다. 반성과 책임이 한-일간의 뜨거운 역사적 쟁점이 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들의 문제의식과 삶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화를 함께 보고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다린다.

 

참여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연구소 이메일, 페이스북 댓글달기를 통해 신청 후 참가비를 아래 계좌로 입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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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 2019 8 29() 오후 7

 

□ 장소 : 역사문제연구소 5층 관지헌(제기동역 1번 출구 방향 3)

 

□ 주관 : 역사문제연구소

 

□ 관람료 : 1만원(캔맥주 1캔 서비스), (입금계좌 : 신한 100-012-850436, 예금주 : () 역사문제연구소)

 

영화관람 후 감독과 패널들의 대화가 진행됩니다.

 

□ 진행 : 배경식(역사문제연구소)

 

□ 패널 : 김미례(감독), 신지영(연세대), 오제연(성균관대), 전원배(역사문제연구소)

 

 

※ 김미례 감독 주요 작품 : 『노동자다 아니다』 (2003), 『노가다』 (2005), 『외박』 (2009), 『산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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