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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4. 18:10 역사교과서를 논하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심의 과정 일체를 즉각 공개하고,

교육부는 검정 합격을 취소하라!

 

 

    국사편찬위원회는 2013년 8월 30일 ‘뉴라이트’ 성향의 학술 단체인 한국현대사학회의 전·현직 회장이 중심이 되어 쓴 교학사 교과서를 비롯해 8종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 합격 결정을 발표했다. 같은 날 국사편찬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9월 2일부터 최종 심사본을 열람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이틀 전에 이메일로 열람 신청을 에약한 사람만이 국사편찬위원회를 직접 방문하여 서약서를 쓰고 2시간씩 열람할 수 있도록 열람을 제한했다. 견본이 2부밖에 없어 한 번에 두 명씩 세 차례에 걸쳐 하루에 총 6명밖에 열람할 수 없다고 한다. “열람자에 의해 심각하고 중대한 범죄 행위에 준하는 사안이 발생할 경우 국사편찬위원회는 형사 고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 국사편찬위원회가 공지한 열람시 유의사항 중 하나이다. 교과서가 무슨 극비 문서인가?

 

    검정 합격 판정을 받은 교과서는 당장 내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하루 빨리 공개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예전에는 검정 이전부터 학계나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검토본이 나돌았고, 검정 이후에는 바로 전시본이 공개되어 학계나 교사들의 평가를 받았다. 이미 최종 심사를 통과한 교과서의 자유로운 열람을 이처럼 제한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스스로 정한 규칙을 어기고 있다는 데 있다. 최종 심사본의 방문 열람이 9월 2일부터 가능한 상태에서 검정 합격 결과를 발표한 당일인 8월 30일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요구로 최종 심사본의 관외 열람이 허용되었고,『조선일보』는 8월 31일에 교학사 교과서를 긴급 입수해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을 옹호하는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그런데도 국사편찬위원회는 여전히 일반인들에게는 방문 열람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속 시원히 그 이유도 밝히지 않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무서워 전면 열람을 허용하지 못하는 걸까?

 

    우선 이번 교과서는 심의 과정의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2013년 8월 30일 공개한 「2013년 고등학교 역사과 교과용도서 검정심사 본심사 적합 판정본 수정·보완 대조표」에 따르면 교과서 심의회는 <내용 조사>와 관련하여 교학사 측에 497건(전체 18건, 시대별 479건)의 수정·보완 권고를 요청했다. 단순한 문장 실수나 오류를 지적한 <표기·표현 조사> 113건까지 합하면 모두 610건의 수정·보완 권고를 요청한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가 400쪽(본문 367쪽, 부록 33쪽)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쪽 당 1.5건 이상이나 수정·보완 권고 요청을 받은 것이다. 평균 200∼300건의 수정·보완 권고 요청을 받은 다른 7종의 교과서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많다.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사 부분의 내용 재검토를 요청 받은 부분도 다른 교과서에 비해 두 배 이상 많다. 내용 검토 말고도 교과서의 기본적인 수준을 보여주는 단순 교정에 해당하는 사항만도 다른 7종 교과서의 전체 수정 요구 사항을 압도한다. 게다가 검정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결정적 문제점도 아직 교과서가 전면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지금 상태에서 확인되는 것만 부지기수에 달한다.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이명희 교수가 1944년부터 위안부가 동원되었다고 서술한 것은 잘못이라고 인정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기자들이 제한된 열람 조건에서 이틀만에 찾아낸 오류를 검정위원들은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도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검정심사 합격본 평가 결과」에 따르면 교학사 교과서는 교과기준평가 결과 80점 이상 90점 미만의 성적으로 합격 판정을 받았다. 다른 교과서에 비해 수정 사항이 두 배나 많은데도 총점은 합격 기준 안에 들고 다른 7종의 교과서와 비슷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공정한 검정 심사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적 결함과 문제점은 더욱 심각하다. 국사편찬위원회를 직접 방문하여 열람한 결과 심의과정에서 지적한 수정·보완 권고 사항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컨대 해방 후 정치 상황을 설명하면서(302쪽~304쪽) 소련, 미국, 미군정, 미소공동위원회 등을 중심에 놓고 서술하여 마치 해방 직후의 한국사가 미국과 소련의 의지대로 진행된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광복은 연합국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끊임없는 독립운동의 결과임을 유의한다”라는 교과부가 정한 교육과정 지침에도 맞지 않다. 특히 6·25전쟁의 참상을 설명하는 ’점령의 비극‘(314쪽)이라는 소항목은 검정심의회로부터 유일하게 전체 서술 내용을 재검토하라는 수정·보완 권고를 받았음에도 제대로 고치지 않았다. 북한군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의 학살에 대해서는 상세히 서술하면서 남한 정부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에 대해서는 보도연맹원 학살만을 간단히 언급할 뿐 경찰과 군인,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거창사건이나 노근리사건 같은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또한 “동네 불량배였던 ‘바닥 빨갱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사회적 불만을 폭력으로 행사하기도 하였다”고 서술하여 교과서에 사용되어서는 안 될 저속한 용어(‘바닥 빨갱이’)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4·19혁명 당시 경찰의 발포로 학생들이 숨졌다(323쪽)는 사실을 본문에 서술해 놓고도 이어지는 내용에서 장면 정부가 ”사회적으로 치안이 어려운 상황에서 4,500여 명의 경찰을 해고하고 경찰력의 대부분을 타지로 전출시키는 등 경찰의 치안 능력을 약화시켜 혼란을 자초하였다(324쪽)고만 서술할 뿐 장면 정부가 당시 사회적 개혁의 이슈였던 경찰 개혁을 단행한 이유에 대해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서술은 곧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박정희를 중심으로 일부 군인들이 쿠데타를 단행하였다”는 서술로 이어지면서 5·16 쿠데타를 정당화시키는 근거로 설명되고 있다. 이처럼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서술하지도 않고 이미 학계에 축적된 연구성과를 반영하지 못한 수준 미달의 교과서가 검정을 버젓이 통과한 이 현실 앞에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함으로써 우리는 역사 왜곡 극우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일본 정부를 비난할 자격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성찰과 반성 대신 오로지 ‘승리’한 국가에 대한 자부심만 고취시키는 것을 역사 교육의 목적으로 보고, 국가 혹은 지도자의 실패나 오류, 잘못을 은폐한다는 점에서 두 교과서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교과서를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에게 쥐어줄 수는 없다. 이에 우리는 국사편찬위원회는 검정 심의 과정 일체를 공개하고, 교육부는 검정 심의를 취소할 것을 촉구한다.

2013년 9월 4일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역사정의실천연대,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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