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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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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27. 17:48 역사교과서를 논하다

유영익 교수의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내정을 철회하고

국편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라!

 

 

  청와대는 9월 23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사편찬위원회(국편) 위원장에 유영익 한동대 석좌교수를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유 내정자가 “지난 50년 동안 역사 연구를 수행한 역사학자”로서 “사료수집·보존·연구 등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하는 역할을 담당할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적임이어서 발탁했다”고 내정 배경을 설명했다. 유 내정자는 지난 6월 국편 위원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언론 보도로 역사학계와 시민단체로부터 큰 비난을 받은 바 있는 인물이다. 이처럼 이미 국편 위원장으로 부적합 인물로 한차례 논란이 되었던 인물을 다시 그 자리에 내정한 것에 우리는 분노한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과연 유 내정자가 “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하는 역할을 담당할 국편 위원장으로 적임자”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유 내정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이승만을 ‘대한민국 건국에 절대적으로 공헌한 대통령’으로 재평가하는 작업을 주도한 대표적인 ‘이승만 예찬론자’이다. 주지하듯이 이승만은 위임통치청원사건이 계기가 되어 일제하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의 탄핵으로 임시 대통령직에서 면직되었고, 19604월혁명에 의해 대한민국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사람이다. 이러한 이승만에 대해 그는 여러 권의 저서와 강연 등에서 “이승만의 업적은 공이 7, 과가 3”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승만을 터키공화국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 중국의 진시황, 이스라엘의 모세 등에 비유한 것도 모자라 “이승만은 세종대왕과 맞먹는 DNA를 가졌던 인물”이라는 어이없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은 하느님과 밤새도록 씨름한 끝에 드디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낸 야곱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위업”이라고 찬양하는 등 엄밀하게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 역사가로서의 입장을 잃었으며, 2008년에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며 건국절 추진에 앞장서 헌법에 명시된 3·1운동 계승정신을 사실상 부정하기도 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인 권희영ㆍ이명희 교수가 이끄는 한국현대사학회의 상임고문이라는 점도 문제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일제강점기 관련 68쪽 가운데 이승만을 11페이지에 걸쳐 40여 차례나 언급할 정도로 이승만 찬양 서술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이승만과 관련된 연구 성과의 대부분은 유 내정자와 그가 주도한 현대한국학연구소의 연구 성과를 반영한 결과이다. 이른바 ‘이승만을 위한 교과서’로 불리는 교학사 교과서 재검토 작업을 교육부와 국편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이승만 예찬론자’인 유 내정자가 엄정한 검토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 우려되는 점은 그가 저서와 각종 기고문, 인터뷰 등을 통해 상식을 벗어난 특정 종교에 편중된 왜곡된 역사인식을 꾸준히 설파한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이승만은 제헌의회 개원식, 초대 정·부통령 취임식,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 등 공식적인 국가 행사에서 기독교식으로 선서를 하거나 취임사를 낭독할 정도로 친기독교적인 성향을 드러낸 인물이다. 이러한 이승만에 대해 유 내정자는 "이승만 대통령의 기독교 장려 정책에 힘입어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기독교 정권을 창출했고 아시아 굴지의 기독교 국가가 된 것"이라며, 이승만을 로마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데 기여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필적하는 인물로 평가했다. 이승만의 기독교 편향정책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헌법 제20조 제2항)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을 사실상 형해(形骸)화시키면서 기독교의 교세 신장에 도움이 되는 일련의 특혜조치를 취했다”고 누가 보더라도 과오임에 분명한 사실을 업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인물을 국편 위원장으로 내정했다는 것은 누구보다 헌법을 준수해야 할 대통령 스스로 헌법정신을 훼손한 행위이다. 또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승만과 자유당 독재에 대해 30억 달러의 외국 원조로 전력, 비료공장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한 사치경제로 농촌은 피폐하고 그 농민의 피와 살을 깎아 도시만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화하여 부패와 부정이 극에 달한 ’악몽의 세월‘이었다고 혹평한 역사적 사실과도 동떨어진 것이다.

 

  이처럼 정치, 종교적으로 편향적일 뿐만 아니라 헌법정신을 부정하면서까지 이승만의 업적 찬양에만 앞장서온 유 교수는 어느 모로 보나 국편 위원장의 적임자라고 할 수 없다. 국편은 역사 연구에 필요한 각종 사료를 체계적으로 조사·수집·보존·편찬 보급하는 일뿐만 아니라 한국사능력검정시험과 역사교과서 검정까지 책임지는 우리나라 유일의 국립 사료편찬기관이자 한국사연구 중심기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편의 수장에는 학문적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물이 임명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찬양론자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을 국편 위원장으로 내정한 것은 국사학계 전체를 불신하는 인사이자 국편을 권력(정치)의 시녀로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이는 검인정 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고 국편을 유신독재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권력의 앵무새로 만들었던 40년 전의 유신시대로 되돌아가려는 시대착오적인 처사이다.

 

  우리는 유 내정자의 국편 위원장 임명이 이승만의 복권을 시작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복권마저 시도하려는 전 단계 조치가 아닌지 우려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유영익 국편 위원장 내정을 철회하고 학계의 신망을 얻으면서 정치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인물을 발탁하기를 촉구한다. 또한 역사학계와 시민단체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 국편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교과서 검정 심의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의 조치를 취하기를 요구한다.

 

 

2013년 9월 25일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전국역사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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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2. 18:02 역사교과서를 논하다

교육부의 ‘뉴라이트 교과서’ 비호에 대한

역사단체의 입장

 

 

  9월 11일. 교육부는 ‘8종의 한국사 교과서 전부’에 수정・보완을 추진하고, 각급 학교 교과서 채택 마감을 10월 11일에서 11월 말까지 연장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뉴라이트 교과서’ 하나를 비호하기 위한 궁색한 조치로, 공교육을 책임지는 국가 기관의 자세가 아닙니다. 검증 과정에 미처 걸러내지 못한 중대 문제가 있어 결과가 엉뚱하게 나왔다면 장관의 권한으로 검증을 취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9월 10일. 역사 단체들이 ‘뉴라이트 교과서’를 검토하여 공개적인 설명회를 연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이 시험문제 답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저품질(경악할 수준의 오류들), 조악한 문장, 국민 상식을 벗어나는 비뚤어진 역사관(친일 미화, 독재 찬양)에 바탕을 둔 왜곡과 편향, 전도된 가치관으로 채워진 교과서가 공교육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역사학자의 양심과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를 외면할 수 없기에 취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육부는 기존의 관례를 완전히 벗어나, 이 교과서에 담긴 엄청난 오류를 시정할 시간을 추가로 제공하려 합니다. 이제 교무실의 모든 교사들이 새 책을 놓고 수업방식을 연구할 때, 역사 교사들은 그제서야 ‘어떤 책을 택할까’ 고민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가장 조악한 한 책을 위해서, 교육부가 이런 무책임한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더 주어도 이 교과서의 본질적 결함(반민족적 역사관, 정의롭지 못한 가치관 등)들이 시정되리라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우리 역사학자들은 ‘최악의 내용에, 청소년의 민족관・국가관을 위협하는’ 교과서가 공교육 현장에 작은 자리라도 차지하게 되었을 때 일어날 결과를 크게 걱정합니다. 그래서 그 우려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노력할 것입니다. 역사단체에 소속된 모든 한국사 연구자들은 교육부가 국사편찬위원회를 통해 구성하려는 ‘전문가협의회’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의했습니다. ‘뉴라이트 교과서’가 본질을 유지한 채 색칠만 다시하는 과정을 돕지 않겠다는 학자적 양심에 따른 것입니다. 4개 역사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어떤 한국사 연구자라 할지라도, 이런 결의에 널리 공감하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끝으로 교학사에 알립니다. 애초 우리가 걱정하지 않은 바가 아니었지만, 우리가 검토하여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들이 ‘위험한 교과서’의 외모를 고치는데 쓰이는 일이 없기 바랍니다. 우리가 많은 지적사항을 놓고서 그 일부만 드러낸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자신의 지식이 본래의 목적과 상반되는 방향으로 사용되는 것은 그 어떤 지식인도 원하지 않는 바일 것입니다.

 

2013년 9월 12일

역사문제연구소, 한국역사연구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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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ㅁㄴㅇㄻㄴㅇㄹ 2013.09.13 23:27  Addr  Edit/Del  Reply

    문제가 있어서 수정을 하는데 참여하지 않도록 담합을 하자는 거군요.

2013. 9. 4. 18:10 역사교과서를 논하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심의 과정 일체를 즉각 공개하고,

교육부는 검정 합격을 취소하라!

 

 

    국사편찬위원회는 2013년 8월 30일 ‘뉴라이트’ 성향의 학술 단체인 한국현대사학회의 전·현직 회장이 중심이 되어 쓴 교학사 교과서를 비롯해 8종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 합격 결정을 발표했다. 같은 날 국사편찬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9월 2일부터 최종 심사본을 열람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하지만 이틀 전에 이메일로 열람 신청을 에약한 사람만이 국사편찬위원회를 직접 방문하여 서약서를 쓰고 2시간씩 열람할 수 있도록 열람을 제한했다. 견본이 2부밖에 없어 한 번에 두 명씩 세 차례에 걸쳐 하루에 총 6명밖에 열람할 수 없다고 한다. “열람자에 의해 심각하고 중대한 범죄 행위에 준하는 사안이 발생할 경우 국사편찬위원회는 형사 고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 국사편찬위원회가 공지한 열람시 유의사항 중 하나이다. 교과서가 무슨 극비 문서인가?

 

    검정 합격 판정을 받은 교과서는 당장 내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하루 빨리 공개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예전에는 검정 이전부터 학계나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검토본이 나돌았고, 검정 이후에는 바로 전시본이 공개되어 학계나 교사들의 평가를 받았다. 이미 최종 심사를 통과한 교과서의 자유로운 열람을 이처럼 제한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스스로 정한 규칙을 어기고 있다는 데 있다. 최종 심사본의 방문 열람이 9월 2일부터 가능한 상태에서 검정 합격 결과를 발표한 당일인 8월 30일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요구로 최종 심사본의 관외 열람이 허용되었고,『조선일보』는 8월 31일에 교학사 교과서를 긴급 입수해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을 옹호하는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그런데도 국사편찬위원회는 여전히 일반인들에게는 방문 열람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속 시원히 그 이유도 밝히지 않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무서워 전면 열람을 허용하지 못하는 걸까?

 

    우선 이번 교과서는 심의 과정의 공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2013년 8월 30일 공개한 「2013년 고등학교 역사과 교과용도서 검정심사 본심사 적합 판정본 수정·보완 대조표」에 따르면 교과서 심의회는 <내용 조사>와 관련하여 교학사 측에 497건(전체 18건, 시대별 479건)의 수정·보완 권고를 요청했다. 단순한 문장 실수나 오류를 지적한 <표기·표현 조사> 113건까지 합하면 모두 610건의 수정·보완 권고를 요청한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가 400쪽(본문 367쪽, 부록 33쪽)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쪽 당 1.5건 이상이나 수정·보완 권고 요청을 받은 것이다. 평균 200∼300건의 수정·보완 권고 요청을 받은 다른 7종의 교과서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많다.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사 부분의 내용 재검토를 요청 받은 부분도 다른 교과서에 비해 두 배 이상 많다. 내용 검토 말고도 교과서의 기본적인 수준을 보여주는 단순 교정에 해당하는 사항만도 다른 7종 교과서의 전체 수정 요구 사항을 압도한다. 게다가 검정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결정적 문제점도 아직 교과서가 전면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지금 상태에서 확인되는 것만 부지기수에 달한다.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이명희 교수가 1944년부터 위안부가 동원되었다고 서술한 것은 잘못이라고 인정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기자들이 제한된 열람 조건에서 이틀만에 찾아낸 오류를 검정위원들은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도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검정심사 합격본 평가 결과」에 따르면 교학사 교과서는 교과기준평가 결과 80점 이상 90점 미만의 성적으로 합격 판정을 받았다. 다른 교과서에 비해 수정 사항이 두 배나 많은데도 총점은 합격 기준 안에 들고 다른 7종의 교과서와 비슷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공정한 검정 심사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적 결함과 문제점은 더욱 심각하다. 국사편찬위원회를 직접 방문하여 열람한 결과 심의과정에서 지적한 수정·보완 권고 사항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컨대 해방 후 정치 상황을 설명하면서(302쪽~304쪽) 소련, 미국, 미군정, 미소공동위원회 등을 중심에 놓고 서술하여 마치 해방 직후의 한국사가 미국과 소련의 의지대로 진행된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광복은 연합국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끊임없는 독립운동의 결과임을 유의한다”라는 교과부가 정한 교육과정 지침에도 맞지 않다. 특히 6·25전쟁의 참상을 설명하는 ’점령의 비극‘(314쪽)이라는 소항목은 검정심의회로부터 유일하게 전체 서술 내용을 재검토하라는 수정·보완 권고를 받았음에도 제대로 고치지 않았다. 북한군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의 학살에 대해서는 상세히 서술하면서 남한 정부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에 대해서는 보도연맹원 학살만을 간단히 언급할 뿐 경찰과 군인,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거창사건이나 노근리사건 같은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또한 “동네 불량배였던 ‘바닥 빨갱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사회적 불만을 폭력으로 행사하기도 하였다”고 서술하여 교과서에 사용되어서는 안 될 저속한 용어(‘바닥 빨갱이’)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4·19혁명 당시 경찰의 발포로 학생들이 숨졌다(323쪽)는 사실을 본문에 서술해 놓고도 이어지는 내용에서 장면 정부가 ”사회적으로 치안이 어려운 상황에서 4,500여 명의 경찰을 해고하고 경찰력의 대부분을 타지로 전출시키는 등 경찰의 치안 능력을 약화시켜 혼란을 자초하였다(324쪽)고만 서술할 뿐 장면 정부가 당시 사회적 개혁의 이슈였던 경찰 개혁을 단행한 이유에 대해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서술은 곧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박정희를 중심으로 일부 군인들이 쿠데타를 단행하였다”는 서술로 이어지면서 5·16 쿠데타를 정당화시키는 근거로 설명되고 있다. 이처럼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서술하지도 않고 이미 학계에 축적된 연구성과를 반영하지 못한 수준 미달의 교과서가 검정을 버젓이 통과한 이 현실 앞에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함으로써 우리는 역사 왜곡 극우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일본 정부를 비난할 자격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성찰과 반성 대신 오로지 ‘승리’한 국가에 대한 자부심만 고취시키는 것을 역사 교육의 목적으로 보고, 국가 혹은 지도자의 실패나 오류, 잘못을 은폐한다는 점에서 두 교과서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교과서를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에게 쥐어줄 수는 없다. 이에 우리는 국사편찬위원회는 검정 심의 과정 일체를 공개하고, 교육부는 검정 심의를 취소할 것을 촉구한다.

2013년 9월 4일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역사정의실천연대,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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