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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기타

[한겨레] 이젠 ‘시민’이 만드는 ‘대안적’ 역사 필요한 시대 (2014.8.14)

[짬] ‘제기동 시대’ 여는 역사문제연 김성보 소장
  서울 종로구 계동은 ‘역사의 거리’다. 지금은 현대그룹 사옥이 있는 휘문고 운동장에서 1945년 8월16일 첫 건국준비위원회 결성대회가 열렸다. 이날 모든 민족이 대동단결해야 한다고 연설한 몽양 여운형의 옛집터도 계동에 있다. 멀지 않은 곳에 3·1운동 당시 만해 한용운의 거처였던 유심사가 있고, 인근 인사동 승동교회와 중앙고 또한 3·1운동 유적지다. 근처에는 또 하나의 상징적 건물이 있다. 바로 역사를 고민하고 근현대사의 ‘기억 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문지방 닳도록 드나들곤 했던 역사문제연구소(역문연)다.

 

  지난 2월 제8대 소장으로 취임한 김성보(사진)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계동은 근현대사의 수많은 활동이 이뤄진 장소로서 뜻깊다”고 했다. 역문연은 86년 민주화운동의 과정 속에 탄생한 비판적 역사학의 산실이다. 사직동·충정로·필동 사무실을 거쳐 이곳으로 온 것이 97년이었다. 하지만 지은 지 반세기가 된 연구소 건물은 축적된 자료와 성과들을 시민들과 공유하기엔 너무 작고 낡았다. 그래서 18일 동대문구 제기동으로 사무실을 옮긴다.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한 세대’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민주화시대 ‘기억투쟁’ 함께한
계동 생활 마감하고 제기동 이사
강당·열람실 등 시민공간 만들고
‘비판’ 대신 ‘대안’ 역사 집중 계획
“개인의 주체적 자각 중심에 놓고
문화연구 가미한 역사 새로 써야”

 

  김 소장은 80년대 역문연에 대해 “양산박, 살롱 같은 분위기의 아마추어 낭만시대”라고 정의했다. 시민인문강좌인 ‘한국사 교실’을 활성화한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 계동에서 역문연은 젊은 연구자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뚜렷한 학술적 성과를 거뒀다. 계간지 <역사비평> 창간 10돌을 맞았고, 한국 근현대사 분야의 전문학술지 <역사문제연구>를 발행했다. 최근 10권으로 완간한 <20세기 한국사>를 비롯해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북한 현대사> 등 굵직한 작업도 이 집에서 해냈다. 지난해엔 정전 60돌을 맞아 ‘역사, 평화를 이야기하다’ 주제로 평화기행을 진행했다. ‘한반도 문제를 걱정하는 학자연맹’(ASCK·애스크) 회원인 미국 학자들도 참여한 덕분에 성황을 이뤘다. 이렇게 미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독일 학술단체들과 네트워크를 만든 것도 ‘계동 시대’의 큰 성과였다. 앞으로는 중·고교 역사 교사들과 함께 다양한 연수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개별 시민이나 여러 시민모임과도 연계하는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구상중이다.

“새로 맞을 ‘제기동 시대’는 대중과의 소통을 목표로 할 것이다. 강당, 서고, 열람실 등 시민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연구소 활동의 중심을 ‘비판’에서 ‘대안’으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역문연은 비제도권 역사 연구 생산기지로서 큰 구실을 했다. 대학 안의 연구와 다르게 이 단체는 정부와 비판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독립적인 역사학을 전개해왔다. 하지만 주체로서 시민, 민중의 역사학은 아직까지 본궤도에 올랐다고 보기 힘들다. 민중의 역사는 중층적이라, 60~70년대 무수한 사람들이 가족의 행복을 위해 분투한 땀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도 있다. 이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고민까지 적극적으로 끌어안을 때가 되었다.

 

  김 소장은 지금까지 ‘국가’ 중심으로 펼쳐온 역사 분석에 물음표를 던졌다. 특히 “한국은 민중이 스스로 아래에서부터 시민사회를 추동해 만들어온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예컨대 ‘박정희론’ 같은 집권자 중심의 역사해석은 모든 것이 한 사람의 공과로 분석되지만, 이런 권력·엘리트 중심의 역사 해석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족·민중의 시각에서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분단체제, 전쟁, 독재에 대한 비판적인 역사상을 구축하는 것이 지금까지 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과제였다면, 이제 ‘시민 주체’가 만들어가는 ‘대안적 역사’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개인적 소망으로는 민족·민중의 가치를 중시하되 개인의 주체적 자각을 중심에 놓고 시민사회의 역사를 새로 쓰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고전사회과학적 시각, 역사민속학, 문화인류학, 종교학 등 문화연구를 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금 역사학계에는 큰 숙제가 던져졌다. 이른바 뉴라이트 진영이 지난 10년 동안 대안 교과서 만들기에 나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기까지의 과정은 ‘역사 전쟁’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런 도발적 움직임은 역사 단체들한테도 하나의 도전이었다. 역사 논쟁의 첨예한 경합은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유신 회귀’라는 비판을 무시한 채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할 뜻을 내비쳤다.

 

  “보수 세력에게 친일·분단·독재의 기억은 콤플렉스로 작동하는 측면이 있다. 역사 연구의 순수성을 도외시하고 ‘민족’의 ‘영광’만을 찾아내려 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역사학의 비판의식을 순치시킨 보수주의적 민족주의를 정립하려는 움직임은 경계해야 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민중이 어떻게 자기 역사를 이뤘는지를 삭제해선 안 된다.”

역문연은 역사의 ‘주체’에 대한 분석과 고민으로 제기동 시대를 시작한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한겨레신문 본 기사는 다음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5121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