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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

[회보 제58호 중에서] 2014년 연구소 정기심포지엄 감상기 (고태우, 연세대)

 

   2015년 역사문제연구소 회보(제58호) 중에서

 

 

정상성강박의 다의성, 그 사이의 가능성과 역동성을 찾아가기:

정상성에의 강박 - 한국 근현대 가족의 역사심포지엄 감상

 

고태우(연세대)

 

 

급속한 이혼율 증가와 출산율 감소, 기러기 아빠, 어느 누구의 돌봄 없이 맞이하는 쓸쓸한 죽음, 가족 동반 자살…….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에서 가족의 해체 현상은 점점 두드러졌다. 분단과 전쟁 이후 개인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운데 가족은 최후의 보루와 같은 의미가 있었다. 여전히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한국사회에서 가족의 해체 이후 특별한 대안이 모색되지 않으면서 생활의 사각지대로 몰리는 이들의 소식은 심심찮게 접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보듯이 기존의 가족이데올로기(영화 속에서는 엄혹한 시대를 굳세게 버텨온 아버지)가 많은 이들의 뇌리에 여전히 깊이 가로놓여 있는 것도 현실이다. 복지를 방기하고 여전히 개인의 나태를 운운하는 지배권력에 대한 비판을 경주해가면서도, 사회적으로는 가족의 재구성, 대안적인 생활공동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이런 차에 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반 내의 소모임으로 가족사반이 탄생했고, 가족사반 주최로 20141025() 정상성에의 강박이란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심포지엄의 취지는 김성보 소장의 초대의 글(심포지엄 홍보물)에서 잘 드러난다. 소개의 글에 따르면, 심포지엄의 목표는 가족의 형성, 주체의 의지와 생활을 역사적으로 규명하여 정상을 강요하고 타자를 억압해온 권력을 비판적으로 제고하려는 데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 근현대 시기는 체제와 사회의 급격한 변동 속에 가족을 형성하는 주체와 주체가 형성하는 가족이 끊임없이 고투해왔. 이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정상성인식을 돌아보고, 다원화되는 사회 속에 다양한 주체와 가족이 민주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전망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여기에서 심포지엄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가족을 애정을 동반한 결혼과 출산이라는 생물학적 과정의 산물로 보는 통념이 다분하다고 할 때,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개입이라든가 역사적인 구성물로서 파악한다는 점에서 정상성에 주목한 것은 충분히 의의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강박은 어떤 강박, 무슨 강박을 말하는 것일까? 국가 또는 지배권력이 정상을 강박한 것일 수도 있고, 가족이나 개인(또는 사회)정상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일 수도 있다. 또한 양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성을 띠고 있다. 때로는 거꾸로 개인과 사회가 가족의 정상적인 형태를 요구·강박할 수도 있을 것이며, 지배권력이 정상에 대한 추구를 강박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 정상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와 범주의 문제, 그리고 강박하거나 당하는 것에 대한 여러 주체의 개입과 상호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상성이라는 것도 형성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변동되어가는 양상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떠오르니, 주최측에서는 그러한 다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강박을 의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의심(?)도 든다. 이러한 의문과 생각을 머금고 심포지엄의 내용과 당시 느꼈던 점, 지금 생각나는 점을 간략히 적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발표자 장용경은 靈肉一致支配 없는 결합에서 식민지 조선에서 남녀결합과 재결합의 원칙에 대한 논의를 콜론타이 이론 수용의 두 양상을 통해 정리하였다. 우선 자유연애론을 중시하던 이들은, 육체를 둘러싼 배타적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사회주의자들의 자유로운 우애가 가능할 것이라는 콜론타이의 주장에 대하여 영육분리(중심주의)로 왜곡하여 해석했다. 그런데 자유연애론자들의 영육일치를 현실에 들이댔을 때 오히려 영육일치의 효용과 규범성을 해체할 수 있었고, 결국 여성의 정조문제로 귀결되었던 한계가 있었다. 한편 사회주의자들은 계급 및 혁명의 당위에 남녀관계와 가족 영역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콜론타이가 경제적 지배의 해소가 사랑이라는 감정 구조의 해소를 자동적으로 불러오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으나, 조선의 사회주의자들은 남녀관계를 계급적 규율에 종속시키고 혁명을 위해 성적 금욕주의로 접근하였다. 이러한 두 가지 수용의 방식은 해방 후 남북으로 이어져 여전히 영육일치라는 정상적인 것에의 강박이나, 가족 안정을 위한 정책적 개입이 지속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현실을 이제는 개인이 모두 견뎌낼 필요는 없다고 발표자는 주장한다. 이에 토론자 염복규는 당시 인식을 발표자가 합리화로서 모든 문제를 해소하려 하는 방식으로 정리한 것, 그리고 해방 후 남북으로의 유산으로 이어졌다는 발표자의 주장에 대한 보충 설명을 요청하였다.

 

둘째로, 이정선은 식민지 조선의 내선결혼(內鮮結婚)’ 가정을 통해 내선결혼에 대한 민족주의적 시각을 넘어서서 민족·계급·젠더의 여러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시켰다. 낭만적 사랑을 전제하며 두 민족의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가져올 방편으로 내선결혼을 선전했던 조선총독부의 의도와 달리, 현실에서는 사랑과 가족이 일치하지 않는 양상들이 노출되었다. 또한 같은 민족끼리의 결혼을 당연시하는 조선사회 내 정상성의 존재는 내선결혼을 통한 가정과 가족 꾸리기를 쉽지 않게 만들었다. 이 글은 지배권력이 의도한 이상형(일종의 정상성’)의 가족이 현실에서 여러 가지 모순에 직면하고 있었던 사실을 다종다양한 사례를 통해 생동감 있게 설명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홍양희는 내선결혼 가족의 정상성’, 내선결혼의 식민지적 특성을 설명할 때 이원적 구도(선전과 현실의 괴리)의 문제를 지적하고, 내선결혼에 대한 시기별 변동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다음으로 김아람은 1950-60년대 합동결혼과 자활의 모범에서 공적이면서 사적이었던 합동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1950~60년대 국가와 사회가 무엇을 문제로 삼고 있었고,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는지를 밝혀 정상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논문에 따르면 정부나 민간단체는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었던 상이군인과 고아, 부랑자들에 대하여 합동결혼식이라는 퍼포먼스를 행했다. 이로써 이들도 정상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가족을 형성하는 정상화로써 각자를 돌보고 자활해가는 길을 의도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정진아는 1950~60년대 전후재건과 구호, 근대화를 추진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빈약한 상태에서 생존과 부양의 기초단위로서 가족이 주목되었다는 점을 거론하고, 인위적으로 구성된 합동결혼 가족들이 끊임없는 해체위기 속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었던 사실을 강조하였다. 더불어 합동결혼한 이들이 만들어낸 삶의 의미에도 주목할 필요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마지막 발표인 1950-60년대 가정의 재건과 가정법률상담소의 활동에서 소현숙은 가정법률상담소의 활동을 살펴보며 일부일처법률혼 규범이 정상가족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해갔던 과정을 추적하고자 했다. 전후 기존 가족 질서의 해체 국면에서 국가는 가족의 안정화를 지향하면서, 신민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남녀평등의 요구를 일부 반영하면서도 전통의 이름으로 부계주의와 타협하며 가부장적 가치들을 승인하였다. 이때 남녀평등과 민주적 가정의 구축을 목표로 여성법률상담소가 개설되었다. 그런데 상담소에서는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여 내담자에게 법적 해결보다는 인내와 도리를 강조하고, 가정 내 부인의 법적 권한을 확보하기 위해 혼인신고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여성권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법률혼이라는 법적 관계망 속으로 개인들의 삶을 끌어들여 규율화하고 법률혼 범위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에 대한 차별을 공고히 하는 과정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곧 저자는 한국사회의 일부일처법률혼에 기반을 둔 정상가족모델 구축에 젠더가 연루되어 있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에 대하여 김은경은 상담소의 활동에서 정상/비정상가족의 이미지가 생산된 양상과, 여성계·상담소가 법률혼을 배타적으로 옹호했다는 서술에 대한 더 면밀한 근거를 요구했고, 50년대 가정의 재건이 강조되는 다양한 맥락들을 고찰할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개별 발표 후 진행된 종합토론이 진행되었다. 토론 직전에 청중질문지를 배표하여 청중의 참여를 유도했던 것은 여느 학술회의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참신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토론 내용에서는 본래 주제와 같이 얼마만큼 근현대 가족사에서 정상성을 돌아보고 전망을 제시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남는다. 아마도 연구팀의 총론이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닐까 한다. ‘정상성을 열쇠말로 가족사를 바라 볼 때, 주로 어떤 점들에 초점을 맞추었고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와 관련한 이야기가 빠진 점이 아쉬웠다. 연구자 각자의 개성들이 존중하더라도 공동연구의 산물이라 했을 때 좀 더 합의된 지점을 보였으면 토론의 생산성이 좀 더 제고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니면 각 시기별 정상성또는 정상가족으로 그려진 이미지는 어떤 것인지, 또는 어떤 과정에서 정상성이 발현되었는지에 관한 전망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다. 물론 이는 앞으로의 과제이기도 할 터이다. 

 

한편 정상성을 염두에 두더라도 강박이라는 단어가 토론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상을 강요하고 타자를 억압해온 권력을 비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의 권력은 폭력을 법적·제도적 합리성으로 독점하고 자원 분배의 정치 능력을 지닌 권력으로서 주로 식민권력이나 정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푸코식 통치성 개념과 권력의 쌍방향성을 고려할 때, 여러 주체들과 그 가족에서 볼 수 있는 정상성으로의 복귀와 지향도 서술되고 분석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사회의 과잉교육열은 기존 체제의 유지에 순기능을 해온지 오래이다. 교육열이 한국의 가족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필자 역시 그 행렬의 어느 대열에 속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정진아도 언급했듯이 피압박 주체라 하더라도 막상 그들 자신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물을 필요가 있다. 강박이 남의 뜻을 내리누르거나 자기 뜻에 억지로 따르게 하는 것이라 할 때,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무엇인가. 전후 가족의 변화와 가정의 재건에 대한 강박도 존재했지만, 일 개인에게 가족이 아니라면 무엇이 생활 안전과 복리 추구의 발판을 대신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중요할 것이다. ‘정상성으로의 지향을 통해 기존의 정상성을 강화하기도 할 것이다. 또한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살아나가면서 정상성을 비틀고 또 재구성하고 균열을 내는 과정 역시 존재할 것이다. 이는 가족의 해체가 운위되는 현재적 의미에서도 더욱 비중을 두고 의미 부여를 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담론 분석에 치중된 연구가 많은 가운데 실제 가족에 대한 역사상에 접근해가고자 한 점에서 본 심포지엄은 충분한 의의가 있었다. 다채로운 발표 속에 귀동냥할 거리도 많았다. 앞에서 제기한 아쉬움 역시 연구반 내에서도 공유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구반뿐만 아니라 함께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구명해가야 할 차원의 사안일 것이다. 끝으로 이 글을 쓰면서 들은 소식이지만 가족사반이 해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록 해산되었을지라도 각개각진하며, 앞으로도 더욱 풍부한 가족사 연구의 열매를 틔우는 씨앗을 많이 뿌려놓았으리라고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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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비매품인 2015년 역사문제연구소 회보(제58호)에 수록된 원고입니다. 연구소 회보는 후원회원 여러분들께 제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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