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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문연 광장

[제44회 토론마당] <외상의 사회적 구성: 역사 커뮤니케이션 방법론의 가능성 모색> 참관기



<외상의 사회적 구성:

역사 커뮤니케이션 방법론의 가능성 모색>

참관기

 

조민지

 

SNS 게시물을 통해 접한 역문연 토론마당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순전히 기말 보고서 때문이었다. 기말 보고서 때문에 한창 일본군 위안부 증언집을 읽던 나는 외상이라는 단어가 전면에 배치된 이번 강연에 관심이 생겼다. 이번 학기 나는 한일관계와 동아시아 전후처리 문제, 그 중에서도 위안부문제에 초점을 맞춘 수업을 듣고 있었다. 기말보고서를 낼 때가 가까워오자 나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집을 분석하겠다는 요지의 연구계획서를 제출했다. 이미 상당한 분량으로 축적된 증언을 다시 꼼꼼하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제국의 위안부> 같은 연구에서도 증언집을 중요한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조각조각으로 인용된 증언을 보고 있자니 화자의 전체 이야기를 직접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정도의 간단한 결심은 막상 증언집을 읽기 시작하자 금세 벽에 부딪쳐 버렸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대한 특정한 해석이 있을 때, 그것이 당사자의 경험을 충분히 재현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해석을 제안하는 작업은 입장만 다를 뿐 방법론에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특히 역사적 사실의 진위가 (경험적) 입증 가능성이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암묵적인 (철학적) 전제가정들에 의존한다는 것을 숙고하지 않는다면 제국의 위안부 논쟁이 보여주듯 실증주의와 해석주의의 인식론적 폭력은 상호 순환적이다는 발표문의 설명이 어느 때보다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역사적 지식 또한 진공상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역사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실제 역사 과정에 변증법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위안부 피해와 같이 과거 발생한 사건에 의한 외상은 그것을 재현하는 사회과정과 상호작용하며 구성된다.


현재 상식으로 통용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개념은 피해자의 고통에 얽힌 다중적 행위자들의 공적 책임을 드러내지 못하며 그것이 하나의 정치적 결과라는 비판이 흥미로웠다. 외상 사건에 있어서도 사건에 대한 사회 전체의 해석보다는 오로지 피해자들의 주관적 증상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외상적 기억을 개인적이고 의학적인 관점으로 치환하기 때문이다. 특히 김명희 선생님이 소개하신 비판적 실재론의 개념은 인상깊은 것이었는데, 세월호 사건과 같은 집단적인 외상에 있어서 외상은 원인영역-사건영역-경험영역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직접 외상 사건의 처리과정에 참여한 경험을 통해 현장에서 조사와 치료가 어떻게 뒤섞여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들을 수도 있었다.


외상의 사회적, 관계적 차원을 고려하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가해자-피해자 개인의 관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외상이 재생산되는 사회적 환경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김명희 선생님은 그것을 생태적 접근이라고 명명하며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방관자라는 제 3의 행위자를 추가할 것을 제안했는데, 역사학에 있어서 그것은 사회적 치유를 위한 기억의 연대라는 개념으로 이어졌다. 특히 역사적 서술이 갖는 수행성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단순히 레포트를 쓰려는 생각에서 피해자들의 증언집을 펴들었던 내가 조금 작게 느껴졌다. 피해자들의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로 서술하는 작업이 갖거나 가질 수 있는 역할을 생각한다면 내가 부딪혔던 어려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김명희 선생님의 강연은 나에게 그동안 전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지식이었다. 급히 가느라 필기도구를 챙겨가지 못했지만 듣다보니 결국 휴대폰을 꺼내 메모장에 새로운 개념이나 용어를 적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 하염없이 펼쳐진 무거운 증언자료를 앞에 두고 이론이나 방법론의 부족을 절감하고 있었던 터라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 것 같다. 이어진 두 분 선생님의 토론 또한 외상문제에 대한 비전공자로서 가질 수 있는 의문을 적절히 짚어 주셔서 강의만큼이나 유용했다. 특히 나로서는 플로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시는 선생님들이 직접 발언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무엇보다 귀중한 수확이었다. 끝나고 이어진 뒷풀이 자리에서 나는 연구소 여기저기에 걸린 포스터를 유심히 보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시간을 함께할 수 있다면 다음에도 꼭 참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조민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한국현대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