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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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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시대 사람들의 삶과 앎,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역사문제연구소 2015년 기획 강좌 후기

 

성준근

 

    우연한 기회에 역사문제연구소의 기획 강좌에 참석하게 되었다. ‘유신 시대 사람들의 삶과 앎,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를 주제로 진행된 강좌였다. 강의에 앞서 질문을 던져 보았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시대, 경험이 아닌 역사로만 이해하는 시대, 그런 1970년대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과 함께, 매주 수요일 저녁 5주간 다섯 번의 강의를 들으며 인상 깊었던 이야기들을 나눠볼까 한다.

 

    1980년대에 태어난 나에게 1970년대는 교과서 속 혹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암울한 느낌의 막연한 대상이었다. 키워드로 보면 유신, 독재, 긴급조치, 새마을운동 정도가 고작이다. 그런데 박정희라는 독재자, 통제된 사회, 자유를 억압당한 국민 등의 이미지로 인식되었던 1970년은 지난 201212월 이후, 커다란 물음 하나를 나에게 던져 주었다. 그 독재자의 딸이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당시 내가 가진 역사에 대한 이해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3년 차를 지나고 있는 오늘, 그때의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다섯 번의 강의는 내안에서 쏟아진 물음들에 속 시원하게 답을 해 주지는 못했지만, 강의마다 작은 실마리와 징검다리의 디딤돌을 하나쯤은 던져 주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강의 중 하나는 선데이서울과 1970년대의 문화를 주제로 한 김성환 선생님의 강의였다. 선정적 대중잡지의 대명사라는 소개말과 강의 중간 중간 자료화면을 통해 본 선데이서울은 내 머릿속에 그려져 있던 당시의 시대상과는 어울리지 않아 어색한 느낌마저 들었다. 강좌를 수강했던 사람들 중 20~30대가 비교적 많았는데, 선생님이 이야기를 하시며 내가 느낀 것과 같은 분위기를 인식하셨는지 잠깐의 고민 후 적절한 예를 들어주셨다. 요즘으로 치면 남성잡지 MAXIM과 같은 잡지라고. 그제야 아! 하고 퍼뜩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람들이 두 잡지를 읽는 환경도 조금은 비슷하다 할 수 있지 않은가. 우스개로 하는 말이지만 사회적으로 억압된 시대였던 1970년대에 선데이서울이 있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통제되고 억압된 환경이라 할 수 있는 군대에서 군인들이 가장 즐겨 보는 잡지가 MAXIM이니 말이다.

 

    이어지는 197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라디오와 TV가 가정으로 보급되었고 사회 전체의 교양 수준이 향상 되었다. 그리고 개발과 경제발전의 결과가 축적되었고, 배움을 향한 대중의 열망이 광범위하게 발현되고 실현되기 시작했다. 특히 잡지는 글을 싣는 매체이면서 담론이 모여드는 사상의 저수지였다. 잡지는 신문에 비해 훨씬 폭넓고 다양한 읽을거리가 있는 텍스트의 보고였다. 잡지에는 한편으로 대중의 다양한 욕망이 혼재했다. 대중은 값싼 판타지를 소비하며 이를 통해 서로의 동질감을 확인하는 것으로 위로를 얻기도 했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의 탄압과 검열도 거스르지 못했다는 대중문화의 흐름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정말 그랬을까, 당시에 대중의 욕망이 컸다한들 독재정권의 통제와 억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사실 대중의 욕망이 권력의 통제를 넘어서서 그것을 극복 했다고 보기 보다는, 정권과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대중의 욕망을 적절히 활용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TV와 라디오, 신문과 잡지를 비롯한 각종 매체들은 재벌’, ‘부자라는 말을 통해 노골적으로 에 대한 대중의 욕망을 부추겼다. 일부 방송사는 재벌의 소유로 넘어가면서 자본의 논리, 정부의 정책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평범한 대중의 시선으로는 재벌의 비리나 국가경제를 바라보는 눈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그 대신 어떻게 하면 우리도 부자가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오로지 개개인의 문제에만 관심을 쏟게 되기 마련이다. 나아가 부가 시대의 미덕이 되고 그에 대한 열망이 인정받게 되자, 부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결과로써 정당화 되고 말았다. 이는 오늘날의 재벌문제로 이어졌고, 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땅 투기, 고리대금, 착취 등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성공의 비결이 되었다. 그렇게 오늘날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 만들어진 것 아닌가 싶어 입맛이 씁쓸해졌다.

 

    ‘유신의 모더니즘과 대중의 문제를 주제로 한 천정환 선생님의 강의도 유익했다. 비록 강의를 통한 만남은 처음이었지만, 그의 저서 자살론을 흥미롭게 읽었고 페이스북을 통해 인연을 맺어 글을 종종 접해왔던 터라 다섯 명의 강연자 중 유일하게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강의 내용은 리얼리즘과의 대비를 통해 모더니즘을 설명하고 박정희 시대의 모더니티, 대중지성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사실 자살론이나 1970 박정희 모더니즘에서 다룬 바 있는 유신 시대 한국사회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강의의 주제가 달라서 조금 아쉽긴 했다. 자살론을 보면서 나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을 사회적 죽음즉 사회구조에 의한 자살로 이해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더 이상의 돌파구를 찾지 못했을 때, 뜻을 담은 마지막 외침으로써 목숨을 던지는 노동자들의 자살은 적잖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19701113일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것을 외치며 쓰러졌던 22살 청년 전태일의 죽음이 그랬고, 2000년대 이후로 넘어와서는 용산참사, 쌍용자동자 해고 사태가 그랬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사회의 약자들이 죽음으로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힘을 잃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대한민국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흐름이 본격화 되면서 자본이 지배하는 치열한 경쟁사회로 깊숙이 들어섰고, 효율성을 강조한 규제완화, 노동시장 유연화로 노동은 더욱 소외되고 배제되었다. 이는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을 낳았지만, 개인화되고 파편화 된 삶으로 인해 죽음의 외침은 이전과 달리 사회 속에서 힘을 잃었다. 그렇게 인간다움도 사회에서 사라져갔다.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달로 대중이 가진 정보와 지식의 양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축적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작동하는 대중지성에서 과연 긍정적인 방향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강의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역사문제연구소 황병주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강의내용도 물론 훌륭했지만, 속사포 랩을 하는듯한 빠른 속도의 말을 따라가느라 더욱 집중할 수 있어서 그랬다. 말씀이 어찌나 빠른지 숨도 안 쉬고 말을 쏟아내셔서 저러다 숨이 넘어가서 큰일 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다행스럽게 무사히 강의를 끝마치고, 마지막 강의 뒤풀이로 치맥(치킨&맥주)까지 함께 나누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15년에서 바라본 1970년대 정치와 경제를 주제로 빠르게 쏟아내신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이렇다. ‘유신은 반유신과의 관련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반공주의가 공산주의의 부재가 아니라 거꾸로 선 공산주의인 것처럼, 반유신은 유신의 부재가 아니라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존립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1970년대 정치와 운동을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이해하는 것이 지배적이지만, 그 내용은 사실 자유주의 대 반자유주의의 성격이 짙었다. 특히 자유주의가 만들어낸 개인이 저항적 주체로 등장하게 된 것은 유신체제의 공이 크다. 유신의 반자유주의야말로 자유주의를 위한 가장 비옥한 토양이었던 셈이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기존의 이해가 아닌 자유주의 대 반자유주의의 구도로 1970년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새롭고 신선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이념이 갖는 원형으로서의 틀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변형하고 활용해서 시대에 맞게,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 맞게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답을 찾는 노력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오늘 이 순간의 삶을 깊이 돌아보게 된다.

 

    다시, 강의를 시작하면서 스스로 던진 물음으로 돌아가 본다. 과거의 이야기로 거슬러 오르는 일은 결국 오늘을 사는 지혜와 더 나은 내일을 살아내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 2015년을 사는 나에게 1970년대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 아버지가 땀 흘려 일궈낸 가정과 사회, 내 어머니가 정성껏 길러낸 시대의 자식들, 박정희부터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를 결코 한 사람의 리더십으로 치환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우리는 박정희 정권의 시작과 끝 그리고 성장에는 대중의 참여와 결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바로 그 시대가 낳은 무한경쟁과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음도 기억해야 한다.

 

 

 

    천정환 선생님의 강의 말미에 씨알의 소리발행사를 들려주셨다. 큰 울림이 있어 계속 곱씹어 보게 된다.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민중은 어리석으니까 강력한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는 소리는 제법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틀림없이 압박 착취하는 독재자가 하는 소리입니다. 정말 어진 지도자는 그런 소리 절대 안 합니다. 민중에게 들으려 합니다. 지혜는 결코 천재에게서 나오지 않습니다. 전체 씨알(민중)에서 나옵니다.” 함석헌, 씨알의 소리나는 왜 이 잡지를 내나?’ (발행일 1970419)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모든 역사적 과정은 파괴와 변형과 재건을 의미하며, 모든 쇠퇴 속에 진보의 씨앗도 있다고 보았다. 2015년의 대한민국을 보면, 항쟁과 피의 역사로 이뤄낸 민주주의가 자꾸 뒷걸음질 치는 것만 같은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기번이 말한 진보의 씨앗은 도무지 보이지 않고, 한 개인으로서 느끼는 무력감만 켜켜이 쌓여가지만 씨알의 힘, 깨어있는 시민의 힘에 대한 기대와 믿음으로 오늘도 주어진 나의 몫을 묵묵히 살아낼까 한다.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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