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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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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3. 13. 14:47 역문연 광장

* 이 글은 지난 2017년 1월 24일 <'촛불 민주주의', 과거·현재·미래>라는 제목으로 역사문제연구소 관지헌에서 진행된 토론회의 발표문입니다. 







집회/시위와 깃발-저항과 참여의 문화사 



이기훈



역사연구는 어느 시점에서 현실과 항상 마주하기 마련이다. 2016년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과 변화는 정치학이나 사회학만이 아니라 역사 연구자들에게 많은 도전적인 문제를 제시했다. 특히 11월부터 지속되는 촛불집회에서는 정치적 저항과 사회운동 주체에 대한 우리의 고정 관념을 뒤집는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깃발이다.



그림1. 1993년 연세대 교내 시위


그림 1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저항 주체의 모습들이다. 강렬한 소속감, 확고한 신념, 명징한 주체의식을 확연히 드러내 보이는, 전형적인 근대적 저항 주체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강렬한 이미지들은 많은 부분 펄럭이는 깃발들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학생들 대오들 속에서 펄럭이는 깃발들에는 단과대학과 학과의 이름만이 아니라, 자주통일, 민족자주, 해방, 횃불 등의 구호가 함께 나부끼고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국가는 의례와 군대의 지휘를 위해 깃발을 만들었다. 의전을 위한 깃발은 국왕을 상징하는 교룡기처럼 특정한 지위를 구체적으로 나타냈고,[각주:1] 군사용 깃발들도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지휘관이나 부대를 표현했다.[각주:2] 조선 후기의 두레처럼 공동체가 깃발을 사용한 사례들도 있었다.[각주:3] 각각의 깃발은 개별적인 신분, 지위, 집단을 상징하는 것이지, 국민이나 계급 같은 보편적인 공동체를 지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근대 이후에야 국민, 계급 등 집단 전체가 하나의 깃발을 통해 정치적 주체로 재현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기다. 1883년 제정된 태극기는 초기에는 대외적 국가 표시였지만 점차 군주와 주권, 나아가서는 국민의식의 표상으로 정착했다.[각주:4] 1910년 이후 일제의 침략 속에서 대한제국의 상징이었던 태극기는 민족해방의 상징으로 전환되었다. 3·1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시각적 상징이 태극기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그대로 이어 받았다.


그러나 1920년대 새로운 정치가 등장하면서 다른 깃발이 등장했다. ‘적기가 출현한 것이다.  붉은 깃발은 아주 오래 전부터 끝까지 싸우겠다는 투쟁의 표시였다(백기와 정반대의 의미). 1831년 웨일즈 노동자 봉기, 1832년 프랑스의 공화주의자 봉기, 1848년 혁명을 거치면서 붉은 깃발이 투쟁의 상징으로 등장했지만, 노동자계급과 민중, 진보의 집단적 표상으로 확연히 드러난 것은 1871년 파리 콤뮌이었다.[각주:5] 1889년 제2인터내셔널이 메이데이를 정한 이후 붉은 깃발은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상징하게 되었다.


그림2. 1871년 3월 28일 코뮌 선거 경축



그림3 공제 창간호의 표지. (최유리, 󰡔시대의 얼굴 – 잡지 표지로 보는 근대󰡕, 소명출판, 230쪽)


 식민지에도 1920년대부터 붉은 깃발이 노동과 해방운동의 상징으로 등장했다. 그림 31920년 창간된 조선노동공제회의 기관지 <<공제(共濟)>>의 표지다. 이 무렵의 조선노동공제회는 사회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각주:6] 컬러로 인쇄된 <<공제>> 창간호의 표지는 둥근 지구 위에 수많은 민중들이 모여 붉은 깃발을 게양하고 있는 모습이다. 민중의 세계적 연대, 새로운 시대의 개막 등 사회주의적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펄럭이는 깃발은 한반도 형상을 하고 있다. 지구적 연대와 노동자의 붉은 깃발, 그리고 민족주의적 이미지가 깃발 하나에 집약되어 있다. 사회주의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광주학생운동이나 1930년대 노동운동에서 붉은 깃발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합법적인 노동 단체나 진보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깃발이 그 자체로 상징성을 가지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붉은 깃발에도 자신들의 주장을 표현하는 구호를 써넣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해방은 정치의 폭주를 가져 왔고, 깃발과 플래카드가 홍수를 이루었다. 예상과 달리 붉은 깃발보다는 각 단체가 새로 만든 깃발들이 집회 현장에 많이 등장했고, 구호를 적은 플래카드들이 훨씬 많았다.


 깃발의 시대는 분단이 확정되면서 소멸했고, 태극기 외에 다른 깃발들은 함부로 들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4월 혁명부터 1980년 서울의 봄까지 1960~70년대의 시위에는 태극기 외의 깃발은 등장하지 않는다. 정치적 저항의 상징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한국 현대 정치의 척박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림4 1980년 5월 15일. 태극기와 단국대 교기가 나란히 보인다.


학생운동에서 깃발이 등장하는 것은 1986년 무렵부터였다. 학생운동이 학생회를 장악하고 대중적 운동으로 거듭나면서 자연스럽게 학교와 학과의 깃발들이 등장했고, 19876월 항쟁을 거치면서 그림 4에서 보는 바와 같은 깃발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깃발들은 곧 시련을 맞이했다. 현실적인 답을 제시하지도 못했고, 참신함조차 사라진 운동 조직은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했다. 극단적인 것이 2008년의 촛불집회였다. 깃발을 들고 있으면 항의와 야유를 받았다. 사람들은 진보 진영까지 포함한 당시의 정치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림5 2016년 촛불집회의 깃발들


2016년과 2017년의 깃발은 새로운 상황을 보여준다. 그림 5의 사진은 20161231일 촛불집회 당시 광화문 바로 앞에서 촬영한 것이다. 총학생회나 시국회의, 시민연대의 깃발들과 함께 얼룩말연구회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얼룩말연구회’,‘장수풍뎅이연구회’, ‘대한민국아재연합’, ‘햄네스티 인터내셔널’, ‘범야옹연대’, ‘민주묘총심지어 혼자온 사람들까지 온갖 종류의 깃발들이 촛불집회에 등장했다. 실제 장수풍뎅이연구회는 장수풍뎅이를 연구하지 않고, 얼룩말 연구회도 얼룩말을 연구하지 않는다. 범야옹연대나 민주묘총은 고양이 애호가들이 내건 깃발과 구호지만 촛불집회에서만 모이는 조직이고, 햄네스티 인터내셔널은 햄스터 동호회의 촛불집회 깃발이다.[각주:7] 


대규모 시민 저항의 국면에서 사람들은 가상과 현실을 넘나 들며 새로운 주체를 구성하고 있다. ‘아무 깃발 대잔치라고까지 하는 이 현상은 새로운 정치의 측면들을 보여준다. 놀이와 저항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으며, 저항하는 주체로서 또는 우리를 정의하는 것은, 잠정적이거나 부분적인 성격들이다. 항의하고 저항하는 우리의 정체성은 문화적으로 구성되고 유지되며, 깃발은 그 상징이다. 오늘날은 차이와 단절 속에 형성되는 혼성적인 주체들이 등장하면서 싸움의 양상도 달라지는 시점일 수도 있겠다.   






필자 : 이기훈(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1. 김지영, 2005, 󰡔조선후기 국왕 행차에 대한 연구 ; 의궤반차도와 거둥기록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본문으로]
  2. 노영구, 권병웅, 2016, 「조선후기 의궤 반차도에 나타난 군병 배치 및 군사용 깃발의 표현양식」, 󰡔역사와 실학>> 56 [본문으로]
  3. 정승진, 2012, 「益山 金馬 두레와 勤大 共同體論」, 󰡔대동문화연구󰡕 80, 이 기싸움은 1930년대 민속조사까지도 중요한 풍속으로 남아 있다가 한국전쟁기 단절되었다가 1968년 이후 재현되고 있다. [본문으로]
  4. 목수현, 2006, <근대국가의 ‘국기(國旗)’라는 시각문화-개항과 대한제국기 태극기를 중심으로>, << 미술사학보>> 27 [본문으로]
  5.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 장면처럼 붉은 깃발들이 대규모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원작 소설에서도 1832년 6월의 봉기 장면에서 붉은 깃발들이 군중들 사이에서나 바리케이드 위에 종종 등장한다. (빅토르 위고, 베스트트랜스 역, 󰡔레미제라블󰡕 4, 5권, 미르북컴퍼니) 1980년대 제작된 뮤지컬의 대규모 붉은 깃발 장면 자체는 파리 콤뮌을 기록한 그림들에서 영향을 받은 듯하다. [본문으로]
  6. 이경룡, 1995, 「1920년대 초반 노동운동의 분화과정-조선노동공제회를 중심으로-」, 󰡔중앙사론󰡕 8 [본문으로]
  7. 「웃기는 깃발 들고 함께 울다」, 󰡔시사IN󰡕, 485, 2017.1. 4 [본문으로]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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