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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를 논하다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음’의 너머 -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 예고에 부쳐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음’의 너머
―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 예고에 부쳐


    우리가 알 수도 없는 시절부터 인간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이 겪은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나중에 ‘역사’라고 불리게 되는,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이야기들을 통해 많은 지혜가 축적되었고, 그것은 공동체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역사라는 것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현재,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의 밑바탕에 바로 이러한 ‘대화’가 있었음을 우선 상기해두자.

 

    그런데 근대에 들어 역사학은 국가로부터 받은 소명을 강조하며, 자신의 권위를 합리적이라고 규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합리성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을 추려내는 식으로 역사를 다루고는 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역사학이 역사로서의 우리네 삶을 어느 정도나 의식하고 있었는지를 비판적으로 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이 규정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우리는 삶을 통해 역사를 이루어왔다. 그리고 그러한 삶 속에서 기억들이 전승되면서 역사교육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15년, 우리는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예고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100년이 훌쩍 넘는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역사학과 국가의 밀월은 자주 있었지만, 21세기인 오늘 날 양자의 관계에 ‘올바른’이라는 도덕적 규정이 사용될 줄은 대부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언명은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음’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강요하는 것으로 그 너머의 삶에 대한 어떤 상상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역사를 사유화함으로써 우리를 옭아매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국가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유(共有)하는 것이다. 우리는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음 너머에서 각각의 삶과 기억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는다. 싸우거나 연대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면서 또 다시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올바름’이라는 낙인에 저항하는 최근의 모습들은 모두가 이를 감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났다고 봐야 한다.

 

    결국 국가가 역사를 독점하려는 시도는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지금의 연대와 저항들은 서로를 버팀목삼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것이다.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이 운동들이 고립되어 있지 않음을 확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젠더, 계급, 지역, 세대 등을 넘나들며 연결되는 관계들에 민감해짐으로써 비로소 ‘사회적 운동’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역사학 스스로가 자신만이 역사를 다룰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은 단 한 번도 누군가가 정해준 '올바름'을 향해 흘러간 적이 없었다.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경험과 기억들로만 ‘대화’를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역사의 밑바탕임을, 이 글의 마지막에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역사문제연구소는 다음의 몇 가지를 선언한다. 그리고 다양한 역사들이 고립되지 않을 수 있는 연구와 교육을 새롭게 생각할 것이다. 이는 <올바른 역사교과서>와 관련된 모든 작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기도 하다.

 

 

1. 역사는 국가에 의해서가 아닌, 다양한 개인들의 풍성한 해석으로 이루어진다. 역사는 국가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공유하는 것이다.


1.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국가가 역사를 사유화하려는 시도에 맞서 역사를 공유하려는 사회적 운동으로 존재해야 한다.


1. 역사문제연구소는 지금의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이 다양한 사회운동들과의 연대를 지향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이 관계를 저항의 거점으로 삼아 새로운 세계의 실현 가능성을 함께 상상할 것이다.

 


역사문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