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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문연 광장

[인천 개항장 답사 후기] 근대의 교차로, 제물포에서 인천으로 소감문 (강기현) '근대의 교차로, 제물포에서 인천으로' 소감문 강기현 (신성고역사동아리 등불) 인천까지는 1시간정도 거리였다. 인천에 답사간다고 들었을 때 그냥 별 생각 없이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했던것 보다는 길었지만 지루 할 순 없었다. 앞에서 설명해주는 분들이 준비를 많이 하셨다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하나의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 같았다. 인천역 광장에 모여 기차를 보고 기차에 대한 진실을듣고 짜장면 박물관에 가서도 또 진실을 듣게 되었다. 진실이 뭐였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긴하는데 뭔가를 들었다. 그걸 듣고 웃었던 기억은 난다. 그리고 현재 인천화교학교인 청국영사관터를 보고서 점심을 먹었는데 점심은 소스가 진하고 짭쪼름한 맛이였는데 이게 전통짜장면이고 우리가 주변에서 먹는 짜장면은 한국에 짜장면이 들어.. 더보기
[인천 개항장 답사 후기] 개항장 140주년기념, 그 주위를 둘러보다 (정재호) 인천 개항장 140주년 기념 그 주위를 둘러보다 정재호 (신성고역사동아리 등불) 시험이 그 주의 목요일날 끝나서 빈둥빈둥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상황 속에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토요일날 인천 개항장에 가고 싶은 사람에 대해 물으셨을 때 번쩍 손을 들었다. 그 전날 체육대회가 있었기에 다음 날 일찍 일어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약간 비몽사몽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명학역까지 간 후, 동아리 일원들과 동아리 선생님을 만난 뒤, 약 1시간 만에 인천역에 도착했다. 이번 답사의 일정은 인천역 광장에서 시작해서 배다리 일대까지 인천 주변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철도 하나를 놓은 데에도 부설권 수취를 위해 돈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차이나타운.. 더보기
[인천 개항장 답사 후기] 개화기와 인천 차이나타운 (유동호) 개화기와 인천 차이나타운 유동호 (신성고역사동아리 등불) 인천 차이나타운과 개화기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번 역사 답사를 가기 전 가진 의문이었다. 처음 역사 동아리 담당 선생님께 이번 답사에 대해 들었을 때에는 시험 끝나고 놀기만 하느니 의미있는 체험을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답사 참가 신청을 했다. 또한 답사지가 평소에는 관광지로만 알고 있었던 인천 차이나타운이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다. 나 말고도 이런 호기심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나 보다. 10명 정도의 친구들이 함께 답사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답사 당일, 화창한 햇살 아래 지하철을 타고 인천역에 도착했다. 역 앞에 가 보니 우리 동아리 부원들 말고도 20명 정도 더 와있었다. 다른 분들과 답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눠보니 모두들 역사에 흥미가 있고.. 더보기
[인천 개항장 답사 후기] 근대의 교차로, 제물포에서 인천으로 소감문 (황찬익) '근대의 교차로, 제물포에서 인천으로' 소감문 황 찬 익 (신성고역사동아리 등불) 나는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신성고 역사동아리 ‘등불’에 가입하였고, 이 역사 기행에도 신청하게 되었다. 이번 답사는 인천의 제물포에서 근현대사에 대하여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인천에 도착하여 역사 문제 연구소 팀과 만났던 장소는 인천역이었다. 이 인천역은 우리나라 근대 철도의 시작점으로 노량진_인천을 오가던 경인선의 시작이었다. 경인선의 개통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장소를 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가게 된 곳은 내가 가보고 싶었던 차이나타운이다. 조선 말 개항 이후 인천이 청나라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설정되면서 화교인들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딱히 중국인들은 많이 보지 못한 거.. 더보기
[인천 개항장 답사 후기] 근대의 교차로, 제물포에서 인천으로 소감문 (황윤찬) ‘근대의 교차로, 제물포에서 인천으로’ 소감문 황윤찬 (신성고역사동아리 등불) 동아리 활동 중 역사탐방이라는 말에 처음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장소가 인천이라는 부분에서 마음이 가게 되었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가 사시는 지역이 인천이었고 그러다보니 다른 장소보다 이끌리는 느낌과 익숙한 느낌이 들어 참여를 결정하게 되었다. 우리의 인천탐방은 4월 30일 안양역에서 1차 집결을 하고 그 곳에서 역사탐방이 시작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천 개항장은 나에게 단지 ‘개화기의 산물’ 이라는 내용뿐이었다. 이번 역사탐방은 인천역에서 전체 집결을 하게 되었다. 아이부터 어른, 노인까지 여러 세대가 함께하는 탐방이었다. 인천은 제물포에 개항장이 생기면서 근대도시로써의 인천이 형성되었다. 인천에 개항장이 생기면서 외국인들이.. 더보기
[인천 개항장 답사 후기] 근대의 교차로, 제물포에서 인천으로 소감문 (이정훈) '근대의 교차로, 제물포에서 인천으로' 소감문 이정훈 (신성고역사동아리 등불) 나는 역사 교사라는 꿈을 갖고 있다. 나는 나중에 커서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에게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을 위한 역사가 아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의 역사를 가르치고 싶다. 또 그에 따른 바람직한 역사인식과 역사관도 형성할 수 있도록 인도자 역할을 하고 싶다. 그런 나에게 역사 동아리를 통해서 듣게 된 인천항 답사 일정은 흥미로웠다. 마침 일정도 지필시험을 마치고 난 뒤라서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었고, 나는 주저 없이 인천항 답사를 신청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우리 동아리뿐만 아니라, 우리처럼 역사에 관심과 흥미가 있는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인천항 답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인천 역을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국 철도 탄.. 더보기
[인천 개항장 답사 후기] 근대의 교차로, 제물포에서 인천으로 소감문 (김성준) '근대의 교차로, 제물포에서 인천으로' 소감문 김성준 (신성고역사동아리 등불) 아침 8시 안양역에 도착해서 선생님과 그리고 우리 동아리친구들이 모여 인천으로 출발했다. 이전까지 인천에 가본적은 없었지만 사회, 역사책에서 자주 언급되던 도시여서 내멋대로 인천을 상상하며 출발했다. 몇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10시 쯤에 인천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보인 것은 한국철도 탄생역이라고 쓰여있는 열차모양의 특이한 기념탑 이였다 나는 저런 기념탑이 인천역 바로 입구 앞에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인천역 앞에서 답사를 같이 하시는 분들이 오시고 답사를 시작할 때 답사를 진행하는 선생님이 저 기념탑이 거짓이고 사실 인천역까지 철도가 안왔다고 하셨다. 그때 나는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기념물까지 세우면서 .. 더보기
[인천 개항장 답사 후기] 제물포 속 인천찾기 (박소연) 제물포 속 인천찾기 박소연 인천은 자주 못갔다. 멀기도 하고 배가 아파서다. 부산의 입지를 좁게 만드는 것 같아서이다. 같은 개항장인 부산은 그렇게 근대유산이 많이 안 남아 있다. 부산근대역사관 외에는 잘 모르겠다. 먼저 발달했기 때문에 싹 쓸어 담아버렸다. 인천 개항장은 볼 것이 참 많은 곳으로 관광사업으로 특화하려고 하고 있다. 인천 개항장답사에 사람이 과연 많이 올까? 답사 주제가 특이한 것도 아니고 인천시에서도 도보관광 답사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역사문제연구소(이하 역문연) 답사에 많이 안 올것 같았다. 그런데 무려 40명이나 참가했다. 네살. 초등학생. 고등학생들이 온것은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지만 말이다. 인천부윤의 사택. 염교수님의 사전 답사 사진 한장을 보고 역문연 답사를.. 더보기
[연구소 30주년 나아가며 함께하기] 416을 마주한다는 것 (이봉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본 글은 연구소 회보 59호 창립 30주년 기념호에 실린 기사 중 하나입니다. 연구소 회보는 연구소 후원회원들을 대상으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의 글들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합니다. 416을 마주한다는 것 이봉규 연구원 재수할 때였지 싶다. 주류문화와 비주류문화 내지는 상위문화와 하위문화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밝히라는 논술문항을 접한 적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참 막연한 질문인데, 논술기계로의 자처를 마다않던 당시 나는 둘 사이의 조화라는, 어쩌면 더욱 막연한 답으로 글을 맺었던 기억이 난다. 거기에는 어린 나를 키웠던 가정교육의 영향이 겹쳐지고 있었다. 적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나아가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지지해 줄 해법을 찾아내는 것이 최선이라 믿고 가르쳤던 내 부모의 생각이 투영되었던 것이다.. 더보기
[연구소 30주년 나아가며 함께하기] 기획모임 이야기: 내 안의 차별과 폭력을 넘어서 (김아람,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본 글은 연구소 회보 59호 창립 30주년 기념호에 실린 기사 중 하나입니다. 연구소 회보는 연구소 후원회원들을 대상으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의 글들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합니다. 기획모임 이야기 내 안의 차별과 폭력을 넘어서 김아람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위원회 초대위원장 회보 원고를 쓰는 지금의 머릿속은 ‘차라리 논문이 낫지’, ‘왜 나는 펑크 낸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한편, 이 생각들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되고,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우선, 논문보다 어렵게 느껴지고 부담이 되는 것은, 내 주위에 적어도 네 명이 회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역사비평과 역사문제연구는 그렇지 않지만 회보는 어느 한 편 빼지 않..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