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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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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에세이] 김한상, 어느 비정한 평화의 영화적 기록

 

  영화와 물질적 현실의 친화성에 대한 글에서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삶의 흐름”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영화적 매체만이 지닌 고유한 특징임을 지적한다. 연속체로서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숱한 감정과 생각, 가치 역시도 그러한 끝을 알 수 없는 흐름에 포함된다. 사건을 증명하는 증거로 자주 쓰이는, 고정된 무엇을 보여주는 사진과는 다른 영화의 이러한 특징은 훗날 연속체로서 ‘역사’를 사유하는 그의 이론적 여정에 큰 바탕이 되었다.

  지금 소개하는 푸티지는 아마도 그러한, 사건과 사건 사이의 삶의 흐름을 보여주는 영화적 기록일 것이다. 제임스 H. 하우스만, 이른바 “한국 국군의 아버지”로까지 불렸던 미군 대위가 찍어 남긴 이 푸티지는 1949년 3월을 떠들썩하게 했던 ‘국군 내 남로당 세포사건’의 당사자 김종석 중령 등 다섯 명의 처형 장면을 담고 있다. 여순사건 이후 대대적으로 진행된 숙군(肅軍) 사업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김종석은 본래 군에서 신임 받던 인재였지만 남로당 조직원임이 드러나 사형에 처해졌다. 당시 한국군의 주한미군측 고문관이었던 하우스만 역시 그의 재능을 높이 샀다고 하지만, 한국 “반공체제 형성의 굳건한 지원자”라는 평가에서 볼 수 있듯 ‘공산주의자’ 김종석에 대한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여기까지가 이 푸티지를 있게 한 ‘사건’에 대한 설명이라면, 이 푸티지 속에 비친 영상은 그러한 사건으로 집약해서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화면이 열리면 트럭 뒤에 탄 다섯 명의 수인이 포승줄에 묶인 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묶인 손을 앞으로 들어 올려 담배를 입에 무는 젊은 남성들의 표정은 무척 담담하다. 곧이어 중절모에 선글라스를 한 국군 장교의 한 마디에 파안대소를 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무언가 익숙한 농담을 익숙한 이들과 나누는 여유가 엿보인다. 트럭에서 내려 일렬로 늘어서 있는 다섯 명 중에서 김종석으로 보이는 이가 웃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다가 무표정한 얼굴의 하우스만 대위와 반갑게 악수를 나눈다. 그리고는 헌병의 안내에 따라 처형장으로 걸어가는 다섯 사람의 뒷모습, 성큼성큼 걸으며 별다른 주저함이 없는 발걸음이 비친 후 카메라는 한참 뒤로 물러나 멀리 서 있는 다섯 명과 그들을 조준하고 있는 총 든 군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바탕 먼지가 일고 군인들이 일렬로 퇴장하자 목을 늘어뜨린 채 숨을 거둔 다섯 사람의 모습이 멀리서 얼핏, 그리고 클로즈업으로 자세히 비친다.

  [김종석 중령 등 처형장면 기록영상]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그들 다섯 명의 담담한, 그리고 때때로 웃음을 띤 그 표정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화기애애한 대화가 다섯 명의 총살로 이어지는 2분 30초 동안의 급격한 전환은 사운드가 없는 고요한 푸티지의 화면 속에서 요동치는 어떤 정서, 어떤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다. 그것은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자가 그 죽음을 선사하는 자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고자 짓는 미소에서, 그리고 얼마 전까지 웃으며 인사를 나눴을 상대의 죽음을 결정하고서 무표정하게 응수하는 미군 대위의 다문 입에서 드러나는, 그 시대의 공기이다. 방금 전까지의 동료가 일순간 적이 되어 처형의 대상이 되고, 그 급격한 변화를 이쪽도 그리고 저쪽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그러한 공기. 그것은 공산주의와 반공주의라는, 어쩌면 당연한 대립에 의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또 한편으로 아직 역사서에 기록된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평화시(平和時)’였던 시점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그 흔한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름 붙이기에도 어색한 그런 공기이다.

  ‘제정’된 국가보안법이 국가 변란 세력을 막아줄 것이라고 누군가는 굳게 믿던 그 시점에 이미 전쟁은 그렇게 안으로부터 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숙군사업의 원인이 되었던 ‘여순사건’은 진압되었지만 정부군의 잔혹한 민간인 살상을 동반했고, ‘보안’의 대상인 국가는 어느 순간 국민을 등질 수 있음을, ‘국민’ 내에서 어느 순간 ‘적’을 만들어 도려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평화와 안보는 이처럼 비정한 것이 되어 있었다.

  정전 60주년을 맞는 올해 7월, 이를 되새기고 “일상 속에서 전쟁을 끝”낸다는 것은 ‘전쟁’이라는 사건의 시작과 끝을 규정하지 않고, 이를 연속체로서의 역사 속에서 사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터이다. 그것은 1950년 6월이 오기 전에 이미 시작된 전쟁의 공기, 그리고 1953년 7월이 지나고도 사라지지 않은 그 공기를 이제는 정화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2분 30초의 비정한 기록은 그래서 60년 넘는 그 역사의 현실과 짙은 친화성을 띠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참고자료

《Military 2》, Harvard-Yenching Library, James Hausman Archive, Box 10.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제5화 여수 14연대 반란》, 문화방송, 1999년 10월 17일 방영.

김득중(2001), “여순사건과 제임스 하우스만,” 여순사건 제53주기 학술세미나 발표문.

Kracauer, Siegfried, Theory of Film: The Redemption of Physical Realit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7)

 

@ 김한상 선생님께서는

7월 13일(토) 13시부터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진행되는

<강연> 전쟁기억의 기원-한국전쟁의 이미지 만들기에서

이야기해주실 예정입니다. 많이들 좋은 강연 들으러 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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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대공개!!! 조만간 여러분들께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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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자보 대공개!!! 길쭉한 웹자보 속에서 풍성한 역사문제연구소의 행사들을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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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에세이] 서재정, 정전협상의 국제정치

  오는 7월 27일이면 정전협정이 조인된 지 60주년이다. 정전협정을 위한 협상은 1951년 7월 10일부터 시작됐지만 그 협상과정이 2년 이상을 끌어 1953년에나 조인이 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면 정전협상은 왜 2년이나 걸렸을까?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1951년 11월부터 불거진 포로송환 문제 때문이었다. 즉 중국과 북은 제네바협정 118조에 따라 전원 자동 송환을 주장했으나, 유엔군측은 인도주의를 제기하며 포로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전협정에 반대하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은 이 와중인 1953년 6월 18일 포로수용소에서 2만7천명을 일방적으로 석방시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한반도 주변국가들에게 전쟁의 지속은 그들의 국익과 일치하는 것이었다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스탈린은 당시 북이 당하던 피해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전투원 사상자뿐만 아니라 미군의 폭격에 의한 피해를 잘 알고 있었던 것뿐만 아니라 여론동향까지 추적하고 있었다. 정전협상이 지연됨에 따라 북의 피해는 늘어만 가고 여론도 악화되고 있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며 “조선은 전쟁으로 생긴 사상자 이외에는 아무런 피해를 본 것이 없다”고 궤변을 펼쳤다. 소련에게는 미군을 동북아시아에 묶어두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의 폐허에서 경제를 재건하고 동유럽을 공고화할 시간이 필요하던 당시 미군을 한반도에 묶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기회였다.

  모택동은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정전이 되면 소련이 공여하던 군사원조가 감축되거나 중단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스탈린은 “미국이 이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절대로 대만을 획득하지 못할 것”이라며 중국을 부추기기까지 했다. 모택동도 전쟁이 계속되면 미군이 한반도에 묶여 다른 데 관심을 돌릴 수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는데 동의했다. 모택동은 김일성이 정전협상을 조속히 종결짓자고 종용하자 이를 스탈린에게 전달하겠다고 약속하고는, 그 날 스탈린에게 정전협상의 조속한 종결에 반대한다는 전문을 보내기까지 한다.

  트루만에게 한국전쟁은 무척이나 중요했다. 2차대전 종식과 함께 세계최강국으로 등장한 미국은 1950년 전후 세계전략으로 NSC 68을 채택했다. 전세계적 규모에서 공산권을 군사적으로 봉쇄한다는 이 전략은 한 가지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여론이 군대의 증강과 국방예산의 증액을 지지하지 않고 있었고, 국방예산은 계속 삭감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계기로 1950년 GDP의 5%였던 국방예산이 1953년에는 14.5%로 3배가 증액됐다. 애치슨의 말대로 “한국전쟁이 [NSC 68]을 구제해준 것”이다. 거기다 정전협상에서 공산권 포로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고 많은 이들이 자유세계를 선택했다고 선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은 한국전쟁을 세계적 냉전으로 진화시키는데 결정적인 것이었다.

  각국의 이해관계로 정전협상이 지지부진 2년을 끄는 동안 피해를 본 것은 군인과 민초였다. 이 기간에 유엔·국군과 공산측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대부분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유엔군과 국군은 12만 이상, 공산측에서는 25만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이 기간 북은 미 공군의 폭격에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었다.

  주변강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2년이나 더 전쟁을 치룬 끝에 정전조약이 체결되기는 했지만, 이 조약 4조 60항이 요구하는 “평화적 해결”은 60년이 되도록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평화적 해결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이익을 본 건 누구고 피해를 입은 건 누구일까? 정전협정 60주년을 앞두고 그 협상과정을 되새겨 봐야 할 이유이다.

2013년 6월 10일, 서재정(존스홉킨스대학)

서재정 대학 교수
출생1960년 00월 00일
출생지대한민국
경력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서재정 교수님께서는

 7월 6일(토) 14시부터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학술토론회> 끝나지 않은 전쟁 60년, 평화의 길을 묻다'에서

발표를 하실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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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동이 2013.07.13 00:35  Addr  Edit/Del  Reply

    언젠가 어떤 책에서 읽었던 내용 중에 '적대적 공범관계'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게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지식이 짧아서 자세히 설명은 못하겠지만, 제가 이해한 바로는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고 타자화시키면서도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살찌우고 강화시키는 관계' 정도가 아닐까 해요. 그 책의 저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개념을 사용했는데, 위 글을 읽어보니 여기서도 적용되지 않나 싶어 몇 자 적어 봤습니다.

[평화에세이]  김동춘, 평화는 바로 우리의 일상의 문제 

  사람들은 평화는 자신과 관계없는 아주 고상한 가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국가들 간의 전쟁과 갈등에 무력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국가 간의 전쟁은 국회조차도 통제하기 어려운 최고 권력자들의 고도의 정치적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이 그러한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노무현 정부 당시 이라크 파병 결정과정에서 보았듯이 애초 이라크 파병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던 대통령이나 정부조차도 결국 전통적인 한미관계의 틀을 넘어서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실을 지켜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 간 전쟁과 갈등 문제에 관한 한 더욱 무력감을 갖고 있고, 그 사회의 민주주의의 수준이 낮을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인간세상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고, 최고권력자들의 생각과 판단, 그러한 권력자들을 선출하는 국민들의 판단과 생각이 바뀌면 세상은 변하게 된다. 전쟁이 나서 죽고 죽이는 존재는 주로 군인이지만, 전선이 없는 현대전에서는 민간인들이 군인보다 훨씬 많이 죽는다. 그렇다면 민간인들은 자기가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을 지지하거나 그것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셈이다. 이 점에서 권정쟁 선생님이 2004년 당시 이라크 전쟁 발발 후 김선일씨의 사망을 보고 쓴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할 수 있다는 글은 일상적 삶과 전쟁의 관계를 잘 밝혀준 에세이였다. 그는 지금 내가 타고 가는 승용차 기름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사람들의 목숨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고 느낀다면 평화의 길은 멀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를 했다. 즉 풍요롭게 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미국은 이라크 석유 자원 확보를 위한 전쟁을 감행했고, 우리는 그 전쟁의 들러리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풍요를 지속하고 싶어서 미국 군대가 한국에 주둔해야 한다고 엎드려 빌면서, 우리의 주권을 미국에 양도하고 남북한 간의 전쟁상태를 부끄럽게 여지기 않는다는 이야기다. 결국 승용차를 버리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다니고, 아파트 평수를 줄여서 좀 불편하게 살 준비가 되어 있어야 아까운 젊은 목숨이 죽은 일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권정생 선생의 주장은 미국의 평화주의자 니어링(S. Nearing)의 주장과도 통한다. 20세기 들어서 미국이 전 세계에 모든 분쟁과 전쟁에 개입한 것은 바로 오늘의 자본주의 유지 발전의 피라고 할 수 있는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미국의 정치가들이 그러한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그들을 선출한 미국인들이 좋은 집, 좋은 차를 굴리면서 살고 싶어하는 욕망을 계속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미국의 중산층이 누리고 싶어하는 삶을 모든 미국인과 전 세계 사람들이 누리게 된다면 지구가 6개가 있어야 한다는 말도 있듯이,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풍요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착각하면서 전 세계 거의 천 곳 이상에 미군 기지가 설치되어 모든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일이나 전 세계의 모든 분쟁에 개입하는 일을 용인하거나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인들이나 유럽 부자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일자리를 위해 지난 시절의 냉전, 오늘날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전 세계에서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인들은 지난 60년 동안 지속되는 중동의 피비린내 나는 갈등의 원인제공자가 바로 미국의 이스라엘 지지에 주로 기인한 것이며, 사우디를 비롯한 중공 여러나라의 독재자들을 지지하고 그들의 인권탄압을 묵인한 것도 자신들의 부와 일자리의 요구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국 동아시아나 전 세계의 군비경쟁의 강화나 아프리카 여러나라에서의 종족들 간의 분쟁과 학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 등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과 유럽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줄이고, 그러한 전쟁을 통해 이득을 얻는 세력을 제압할 정도로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1945815일의 남북한의 분단 역시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고, . 소의 패권전략에 기인한 것이었으며, 지난 1950년의 한국전쟁은 북한 김일성 세력의 무력통일의 열망과 상황 판단 착오에 주로 기인한 것이었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분단을 지속시킨 내외적인 조건은 바로 미국과 한국, 그리고 북한의 권력자들의 기득권 유지와 이해관계에 기인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의 이해를 국민의 이해와 요구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미국과 남북한 국민들의 판단과 의식은 전쟁이 실제 가져온 비참성과 그 주요 피해 집단, 그리고 사실상의 전쟁상태인 분단을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하는 비용들과 비용의 실제 부담자들에 대한 무지에 기초한 것이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이 그 전쟁의 희생자가 된 한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만 충분히 알고 있어도, 누가 이 전쟁으로 이득을 보았는지에 대한 자료나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고 그것이 교육된다면 한국사람들의 분단과 전쟁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른다.

  정전 60년을 맞아, 교육과 미디어의 영향을 받아 모든 것을 북한 탓으로만 돌리는 데, 익숙한 한국인들은 이 분단 전쟁 체재를 유지하는 데는 한국민들의 몰이해, 자신의 물질적 욕망을 계속 추구하고 싶어 하는 태도도 중요하게 깔려 있다는 것을 한번 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남북한의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세력을 권력권에 진출시키지 못한다면, 군사력에서 북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우위에 있는 남한이 왜 막대한 예산을 미국 무기도입에 지출해야하는지에 대한 정당한 의문을 품고, 또 정치가들에게 묻지 않는다면, 자신과 자신의 자녀가 또 다른 전쟁과 갈등의 희생자가 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김동춘 대학 교수
출생1959년 09월 29일
출생지대한민국 경북 영주시
경력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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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희태 2013.07.16 22:23  Addr  Edit/Del  Reply

    평화도 힘이 있어야 이룰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반은 맞고, 반은 그르다고 생각됩니다. 힘을 강조하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독일의 히틀러는 파시즘으로 나라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습니다. 국민들을 힘으로 짓누르면, 언제가는 민중들이 들고 일어서는 것, 그것을 혁명이라고도 하지요. 이러한 것들이 역사적 현상이었던 걸 감안하면, 평화라는 이야기가 참 슬프게 느껴집니다.

    오늘 당장 국제뉴스에서 보여지는 중동의 불안, 이집트,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대륙의 내전 등 강대국들이 이권과 기득권을 놓치 않으면서도, 겉으로는 평화를 이야기합니다. 비단 멀리 볼 것도 없이 남,북한 대결 국면을 조성하면서, 주변 4강은 평화를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남,북한의 대결 국면을 교묘하게 조장하는 국제정치에서의 평화는 이런 비열한 작태라고 봅니다.

    생각해보면 평화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은 너무 좋습니다. 대결 보다는 평화를~ 어찌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듯 하지만, 그것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는 일상이 현재의 모습이 아닐까요?

    지금 북한과의 대화를, 평화를 이야기하면 빨갱이로 매도되고, 매카시즘이 작렬하는 이 대한민국에서, 과연 남,북한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통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정녕 이대로 막히는 것인지, 답답하면서도 믿고 싶습니다. 고상한 평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에서의 평화를 그것을 우리들이 깨닫게 되기를 말입니다.

<행사일정>

 76() 14:00~18:00

<학술토론회> 끝나지 않은 전쟁 60, 평화의 길을 묻다

전쟁위기가 고조되는 한반도. 위기가 재생산되는 구조는 무엇이며 그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이 문제를 고민해 온 연구자들과 함께 깊이있는 토론을 해보는 시간.

 장소 : 역사문제연구소            사회 : 정태헌(역사문제연구소 이사)

* 정전협정 무엇이 문제인가? - 정전협정의 쟁점과 그 유산(김보영)

* 정전체제와 한미동맹, 그리고 한반도 핵위기(서재정)

*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김연철)

 

 710() 19:00~21:00

<대담> 총을 들지 않는 평화 : 한 병역거부자의 이야기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용석 & 병역거부자 길수

장소 : 역사문제연구소        사회 : 한봉석(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지금 당신이 누리는 일상의 평화는 누구의 덕분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 한국 사람들 대다수는 자연스럽게 국군장병을 떠올린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국가의 안보를 지킴으로써 평화를 실현하는 신성한 집단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것을 거부한 이들, 바로 병역거부자들이 우리 사회에 있다. 이들은 국가의 평화를 해쳤다는 죄목으로 전과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 전과야말로 평화를 위한 행위는 아니었을까? 이제 일상에서 폭력을 떼어내고 존엄한 를 지키기 위해 싸운 이들과 이야기 나눠 보자. 평화는 총을 들지 않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 선언의 당위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713() 13:00~18:00

<강연> 전쟁기억의 기원-한국전쟁의 이미지 만들기

한국전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어떻게 구축되었을까? 미육군통신대의 사진자료와 주한미국공보원(USIS)의 공보영화를 통하여 그 일단에 다가가 본다. 그들은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감추려 했을까? 어디에 서서,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장소 : 역사문제연구소  

           사회 : 후지이 다케시(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 한국전쟁의 '시각''사각'-미육군통신대 사진부대의 사진을 중심으로(강성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육군통신대 사진부대들의 조직과 활동, 그리고 그들이 생산한 사진들을 살펴본다. 이를 통해 전쟁사진의 시각사각’, 더 나아가 사진을 통해 재생산되는 한국전쟁의 시각사각을 드러낸다.

* 한국전쟁과 전후복구시기 USIS 영화의 응시메커니즘(김한상)

한국전쟁을 계기로 한국에서의 영화선전에 필요한 체계적 발전을 이루어낸 주한미국공보원(USIS). USIS의 상남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두 편의 영화 <사랑의 병실>(1953)<거리의 등대>(1955)를 통하여 휴전 직전의 서울, 휴전 직후의 마산을 찾아간다. 영화를 통해 나타나는 응시의 매커니즘을 살펴본다.

   

 717() 19:00~21:00

<강연> 핵과 평화

전력난에 대한 뉴스가 요즘들어 부쩍 잦아졌다. 예비전력이 부족하다는 소식과 함께 늘 거론되는 원자력 발전소 이야기. 후쿠시마에서의 끔찍한 사고 이후에도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의문은 크게 제기되지 않고 있다. 북의 핵실험 소식에는 온 나라가 들끓어도 원자력 발전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회. 그래서 질문해 본다. 핵은 어떻게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가?

* 핵발전과 핵폭탄, 그리고 민주주의(한홍구)

장소 : 평화박물관

 

 719() 09:00~18:00

<기행> 평화의 길을 찾아서

상품과 함께 평화를 생산했던 개성공단을 바라보고, 전쟁의 광기로 인한 희생을 기억하며, 여성폭력과 전쟁이 없는 세상을 꿈꾸고자 한다. 역사문제연구소와 함께 역사 속 평화의 길을 찾아 떠나는 기행.

참가신청 및 문의

: 712()까지 역사문제연구소

(02-3672-4191/kistory@kistory.or.kr)

* 도라산전망대, 개성출입사무소, 도라산역 정범진 선생(남북경협활성화추진위원회 사무국장) 고양 금정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720() 18:00~20:00

<닫는공연> 평화를 노래하다

우리는 아직까지 평화를 구가할 수 있는 상황에 있지 않다. 하지만 함께 평화를 노래하는 자그마한 실천을 통해 우리는 군사화된 일상에 균열을 내고 일시적인 평화의 공간을 현현케 할 수는 있다. 아직 오지 않은 평화에 대한 희망을 담은 세 팀의 노래와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평화를 마음껏 상상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

장소 : 북촌문화센터

* 진행 : 정재환

* 공연 : 사이, 도시락밴드, 꽃피는학교

 

 

주최   역사문제연구소

후원   평화박물관    역사비평사    전국역사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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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평화를 이야기하다

 

  한국전쟁이 정전이라는 형태로 동결된 지 60년이 지났습니다. 전쟁이 끝났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60년의 세월을 통해 우리가 익힌 것은 일종의 판단정지가 아닐까요. 전쟁의 가능성을 늘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의식화하지 않는 습관은 전쟁불감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신상태입니다. 이러한 방어기제 덕분에 우리는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을 전하는 언론보도를 접하고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는 근본적인 평화에 대한 단념이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평화와 군대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60년 동안 묻은 때를 벗겨내고 새로이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서 역사문제연구소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평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정전협정이나 한미군사동맹과 같은 제도적이며 거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전쟁 이미지, 또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병역이나 원자력의 문제가 지난 60년 동안에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짚어보고, 일상 속에서 평화를 실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을 나누고자 합니다.

  함께 해주세요! 지금 여기서(now here) 하는 평화의 실천이 아직 아무데도 없는(nowhere) 평화를 만들어내는 힘이 될 것입니다.

 

주최   역사문제연구소

후원   평화박물관    역사비평사    전국역사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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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17. 22:30 연구소 소식

역사문제연구소를 소개합니다. 

 

[설립]역사문제연구소는 우리 역사의 여러 문제들을 공동연구하고 그 성과를 일반에 보급함으로써 역사발전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통하여 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에 기여 하는 것을 기본목적으로 1986221일 설립된 순수 민간 연구단체입니다. 

 

[출판활동] 연구소는 역사학 전문 연구자 역사에 관심을 가진 여러 분야의 연구자와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여 운영해 왔습니다. 1987년 창간한 대중학술계간지 '역사비평'은 역사학 연구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1996년부터는 한국근현대사 분야의 전문 학술지 '역사문제연구'를 발행하여 새롭고 깊이 있는 연구를 촉진하고 있습니다. 

 

[연구 및 연구성과 확산을 위한 활동] 연구원들이 중심이 되어 역사학계의 쟁점이 될 문제들로 매년 심포지엄을 개최해 왔으며 토론마당과 학술발표회 등을 통해 비판적 역사연구를 이끌어 왔습니다. 이런 전문연구를 널리 알리는 것 또한 연구소의 중요한 활동입니다. 시민 대상의 강좌와 토론회, 역사기행 등을 개최하며 대중과 함께 하는 역사 연구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교류] 국내의 역사단체 및 관련 시민단체 외에도 일본, 중국, 대만, 독일 등 여러 해외 연구단체와 정기적인 학술교류를 진행하고 있으며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을 위한 국제 연대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역사문제연구소는 올바른 역사인식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를 위한 활동을 시민과 함께 할 때, 그것은 인권과 평화, 정의를 위한 강력한 힘이 될 것입니다.

 

1997~2014.8

 

역사문제연구소의 기존 홈페이지 : http://www.kistory.or.kr/

2014년 8월부터 연구소 새 주소

서울 동대문구 왕산로19라길 13

(동대문구 제기동 1158-36 MS빌딩)

tel. 02-3672-4191     fax. 02-3672-4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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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465993278 2016.06.15 21:21  Addr  Edit/Del  Reply

    잘보고가요~

  2. 1466981779 2016.06.27 07:56  Addr  Edit/Del  Reply

    반가와요

2013. 6. 15. 10:00 연구소 소식

역사문제연구소를 찾아오는 Tip!

** 본 글은 1호선 제기동역 1번출구를 기준으로 합니다. (도보 3분 소요됩니다!)

#1. 제기동역 1번 출구로 나오세요.

 

#2. 나와서 바로 오른편을 보시면 두 건물이 보입니다. 오른편의 탕미옥 건물 오른편 쪽으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3. 그리고는 그 뒤로 보이는 갈색 벽돌외장의 '어반넥서스' 건물 오른편 길로 쭉 들어오세요. (1층에는 '뷰티 바이오 센터'가 입점해 있습니다.)



헷갈리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세요. '왕산로 19라길'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천변에서 하나 안쪽 길입니다.



골목을 들어오면 안쪽에 '세종오피스텔' 간판이 보이고, 죽 들어오면 오른편에는 CU 편의점(CU 제기미래점)이 있습니다.

 

 



 #4. 세종오피스텔 간판을 지나고 나면 바로!! 역사문제연구소 건물이 있습니다.





 #5. 101호(역사문제연구소 사무국)을 호출해주시면 문이 열립니다. 

어서 오세요!


참고 :

401호 전국역사교사모임

501호 관지헌

601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

701호 민족문학사연구소&인문학협동조합

층층층 이웃으로 함께 있습니다 :)

2014년 8월부터 연구소 새 주소

서울 동대문구 왕산로19라길 13

(동대문구 제기동 1158-36 MS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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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적폐청산 2020.05.26 08:51  Addr  Edit/Del  Reply

    김대중 ♩♪♬♫
    노무현 ♩♬♬♩
    김정은 ♫♩♫♫♫
    문재앙 ♩♫♩♪ 새끼

  2. 적폐청산 2020.05.26 08:52  Addr  Edit/Del  Reply

    김대중 ♫♩♪♬♬♪♫
    노무현 씹 ㅅ ㅐ ㄲ ㅣ
    김정은 ♩♩♩♩ ㅅ ㅐ ㄲ ㅣ
    문재앙 ♩♩♩♪ ㅅ ㅐ ㄲ ㅣ

  3. 적폐청산 2020.05.26 08:53  Addr  Edit/Del  Reply

    김대중과 노무현은 부관참시
    김정은은 고사포로 즉각처형
    문재앙은 단두대에 매달아 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