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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에세이] 김한상, 어느 비정한 평화의 영화적 기록

 

  영화와 물질적 현실의 친화성에 대한 글에서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는 “삶의 흐름”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 영화적 매체만이 지닌 고유한 특징임을 지적한다. 연속체로서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숱한 감정과 생각, 가치 역시도 그러한 끝을 알 수 없는 흐름에 포함된다. 사건을 증명하는 증거로 자주 쓰이는, 고정된 무엇을 보여주는 사진과는 다른 영화의 이러한 특징은 훗날 연속체로서 ‘역사’를 사유하는 그의 이론적 여정에 큰 바탕이 되었다.

  지금 소개하는 푸티지는 아마도 그러한, 사건과 사건 사이의 삶의 흐름을 보여주는 영화적 기록일 것이다. 제임스 H. 하우스만, 이른바 “한국 국군의 아버지”로까지 불렸던 미군 대위가 찍어 남긴 이 푸티지는 1949년 3월을 떠들썩하게 했던 ‘국군 내 남로당 세포사건’의 당사자 김종석 중령 등 다섯 명의 처형 장면을 담고 있다. 여순사건 이후 대대적으로 진행된 숙군(肅軍) 사업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김종석은 본래 군에서 신임 받던 인재였지만 남로당 조직원임이 드러나 사형에 처해졌다. 당시 한국군의 주한미군측 고문관이었던 하우스만 역시 그의 재능을 높이 샀다고 하지만, 한국 “반공체제 형성의 굳건한 지원자”라는 평가에서 볼 수 있듯 ‘공산주의자’ 김종석에 대한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여기까지가 이 푸티지를 있게 한 ‘사건’에 대한 설명이라면, 이 푸티지 속에 비친 영상은 그러한 사건으로 집약해서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화면이 열리면 트럭 뒤에 탄 다섯 명의 수인이 포승줄에 묶인 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묶인 손을 앞으로 들어 올려 담배를 입에 무는 젊은 남성들의 표정은 무척 담담하다. 곧이어 중절모에 선글라스를 한 국군 장교의 한 마디에 파안대소를 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무언가 익숙한 농담을 익숙한 이들과 나누는 여유가 엿보인다. 트럭에서 내려 일렬로 늘어서 있는 다섯 명 중에서 김종석으로 보이는 이가 웃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다가 무표정한 얼굴의 하우스만 대위와 반갑게 악수를 나눈다. 그리고는 헌병의 안내에 따라 처형장으로 걸어가는 다섯 사람의 뒷모습, 성큼성큼 걸으며 별다른 주저함이 없는 발걸음이 비친 후 카메라는 한참 뒤로 물러나 멀리 서 있는 다섯 명과 그들을 조준하고 있는 총 든 군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바탕 먼지가 일고 군인들이 일렬로 퇴장하자 목을 늘어뜨린 채 숨을 거둔 다섯 사람의 모습이 멀리서 얼핏, 그리고 클로즈업으로 자세히 비친다.

  [김종석 중령 등 처형장면 기록영상]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그들 다섯 명의 담담한, 그리고 때때로 웃음을 띤 그 표정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화기애애한 대화가 다섯 명의 총살로 이어지는 2분 30초 동안의 급격한 전환은 사운드가 없는 고요한 푸티지의 화면 속에서 요동치는 어떤 정서, 어떤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다. 그것은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자가 그 죽음을 선사하는 자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고자 짓는 미소에서, 그리고 얼마 전까지 웃으며 인사를 나눴을 상대의 죽음을 결정하고서 무표정하게 응수하는 미군 대위의 다문 입에서 드러나는, 그 시대의 공기이다. 방금 전까지의 동료가 일순간 적이 되어 처형의 대상이 되고, 그 급격한 변화를 이쪽도 그리고 저쪽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그러한 공기. 그것은 공산주의와 반공주의라는, 어쩌면 당연한 대립에 의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또 한편으로 아직 역사서에 기록된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평화시(平和時)’였던 시점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그 흔한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름 붙이기에도 어색한 그런 공기이다.

  ‘제정’된 국가보안법이 국가 변란 세력을 막아줄 것이라고 누군가는 굳게 믿던 그 시점에 이미 전쟁은 그렇게 안으로부터 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숙군사업의 원인이 되었던 ‘여순사건’은 진압되었지만 정부군의 잔혹한 민간인 살상을 동반했고, ‘보안’의 대상인 국가는 어느 순간 국민을 등질 수 있음을, ‘국민’ 내에서 어느 순간 ‘적’을 만들어 도려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평화와 안보는 이처럼 비정한 것이 되어 있었다.

  정전 60주년을 맞는 올해 7월, 이를 되새기고 “일상 속에서 전쟁을 끝”낸다는 것은 ‘전쟁’이라는 사건의 시작과 끝을 규정하지 않고, 이를 연속체로서의 역사 속에서 사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터이다. 그것은 1950년 6월이 오기 전에 이미 시작된 전쟁의 공기, 그리고 1953년 7월이 지나고도 사라지지 않은 그 공기를 이제는 정화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2분 30초의 비정한 기록은 그래서 60년 넘는 그 역사의 현실과 짙은 친화성을 띠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참고자료

《Military 2》, Harvard-Yenching Library, James Hausman Archive, Box 10.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제5화 여수 14연대 반란》, 문화방송, 1999년 10월 17일 방영.

김득중(2001), “여순사건과 제임스 하우스만,” 여순사건 제53주기 학술세미나 발표문.

Kracauer, Siegfried, Theory of Film: The Redemption of Physical Reality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7)

 

@ 김한상 선생님께서는

7월 13일(토) 13시부터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진행되는

<강연> 전쟁기억의 기원-한국전쟁의 이미지 만들기에서

이야기해주실 예정입니다. 많이들 좋은 강연 들으러 오세요 :)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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