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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를 논하다/'뉴?라이트'교과서 사용설명서

[뉴?라이트교과서 사용설명서 1탄] ‘불량식품’교과서의 진실을 말한다

불량식품교과서의 진실을 말한다

-신채호 죽이기와 이병도 띄우기

 

 

    이상한 공개, 아니 사실상 은폐에도 불구하고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에 대해서는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논란의 핵심은 현대사이지만 일제 강점기에 관해서도 친일 미화, ‘위안부서술 잘못, 식민지 근대화론 수용 등이 문제로 거론되었다. 교과서의 일제 강점기 서술 중 언론의 조명을 덜 받았던 부분을 중심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지점을 짚어보겠다. 사소해보이지만 때때로 저의는 작은 곳, 세세한 곳에서 더 잘 드러난다.

 

1.

    교과서의 일제강점기를 다룬 5장의 제5절은 국외 민족 운동의 전개라는 제목으로 1. 무장 독립 투쟁의 전개, 2. 의열 투쟁과 국외 한인 사회, 3. 국외 민족 운동의 발전, [탐구활동] ‘미국과 중국에서의 외교활동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주목되는 부분이 의열 투쟁과 국외 한인 사회와 관련된 서술이다. 3·1운동 이후 전개된 의열 투쟁 사례를 열거한 다음, 의열단 활동을 마무리하는 문장으로 신채호의 조선 혁명 선언을 언급하면서 의열단의 초기 노선과 행동 강령이 잘 나타나 있다(1923)”라고만 서술하고 정작 의열단의 초기 노선이 무엇이고 행동 강령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지 않고 있다. 너무도 불친절하다. 도대체 학생들이 의열단의 초기 노선과 행동 강령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아보라는 것인가.

    힌트 같은 구성이다. 바로 293쪽의 하단에 배치되어 있는 [사료 탐구] 코너에 실린 조선 혁명 선언이다. 그런데 정작 인용문은 의열단의 노선이나 강령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신채호가 외교론과 실력양성론을 비판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조선 혁명 선언의 그 많은 문장 가운데 하필이면 왜 이 문장을 인용한 걸까? 신채호를 삐딱하게 보는 교과서 저자가 조선 혁명 선언을 인용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인용문 바로 아래에 [도움 글]이라는 형식으로 이어지는 다음과 같은 문장에 잘 드러나 있다.

 

미래의 미·일 전쟁 등 국제 정세의 변동으로 우리에게 독립의 기회가 오며, 그때까지 독립의 능력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독립의 방책이라는 외교론과 실력 양성론(준비론)을 정면 부정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외교론과 실력 양성론을 편들어 주고 있다. 신채호의 조선 혁명 선언의 정신을 이렇게 욕보여도 되는가? 이어지는 [생각해 보기]에는 집필자의 의도가 더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신채호가 외교론과 실력 양성론을 비판하는 근거는 무엇이며, 그 주장은 과연 타당할까?(273)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이렇게 쓰였다. ‘과연은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남의 주장에 대하여 그 실현성이나 개연성을 의심할 때 쓰는 말이다. 이럴 때는 주로 뒤에 의문문이 온다. 기껏 의열 투쟁을 설명해놓고 마지막에 운동 노선의 타당성이 의심스럽다고 뒤통수를 때린다. 요새 동네 양아치들도 창피하게 여기는 비겁한 수법이다. 비판을 하려면 근거를 대고 정정당당하게 논쟁을 하라. 교과서는 논쟁의 자리가 아니라고? 그러면 학계에서 논쟁을 하고 그러고 나서 검증된 내용을 써도 늦지 않다. 그런 절차도 거치지 않고 마지못해 쓴다는 투로 의열 투쟁을 쓰고 마지막에 쓱 디스(disrespect)’하는 것은 적어도 교과서에서 할 짓은 아니다.

    참고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조선 혁명 선언항목을 보면 무정부주의적인 요소를 문제로 지적하면서도 이렇게 끝난다. “항일독립운동기에 이것만큼 의열단원뿐만 아니라 모든 독립운동자들과 한국의 전민족구성원에게 독립에 대한 확신과 목표를 불어넣은 것은 없다고 할 정도로 귀중한 문서이다.” 집필자는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한 역사학자 이만열이다.

 

2.

    신채호의 조선 혁명 선언을 디스한 교과서 집필자의 의도가 외교론이나 실력 양성론 옹호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미 언론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친일 미화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친일파 대부분이 실력양성론에 빠져 친일의 강을 건넜다. 그런 인물들을 교학사 교과서는 여러 명 복권시키고 있다. 김성수, 최남선, 유치진 같은 인물들이다. 많은 친일 미화 대목 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국내 민족 문화 수호 운동의 전개중 식민사학에 맞선 민족주의적 역사연구를 소개하는 대목이다. 한 문단에 박은식, 신채호, 정인보, 문일평, 백남운의 업적을 간단히 소개한 뒤 이런 문장이 이어 진다.

 

이외에 이병도와 손진태 등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 서술해야 한다.’는 실증 사학의 입장에서 한국사를 연구하는 학풍을 세웠고, 1934년 진단학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의 역사 연구는 모두 일제 식민사학을 비판하고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려고 하였다.(266)

 

    이병도일제의 식민사학 비판이라는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한 문장 안에서 행복한 동거를 하고 있다. 그가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근무했다는 것은 잘 알지만, 식민사학을 비판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그는 민족주의사학이나 사회경제사학과 논쟁을 피한 채 철저히 역사 공부에만 애착을 가졌던”(김일수,이병도와 김석형, 실증사학과 주체사학의 분립,남과 북을 만든 라이벌, 역사비평사, 2008) 학구파 연구자였다. 이 시기 전공 연구자라면 이건 상식이다. 무엇보다 이병도는 자기 입으로 일제시대에 총독부 관리들은 독립 사상에 관계된 것이 아니면 그렇게 탄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안심하고 한국사 연구를 하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독립 사상과 관계없는 연구를 한 것이다. “일제의 식민사학 비판은 독립 사상과 관계 깊어 일제가 불온하게 보았고, 그는 그것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굳이 일제에게 미움 받을 연구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3.

    이병도가 변명 없이 자신의 독립 사상과 무관하다고 밝혔던 것은 아마 학문에 대한 자부심이 컸기 때문일 거다. 비록 아세(阿世, 세상에 아첨)는 했지만(본인은 부인하겠지만) 곡학(曲學)은 안했다(여러 사람이 부정하겠지만)는 자부심일 것이다. 그가 추구한 학문은 교과서 집필자도 잘 알고 있듯이 실증이다. 실증의 기본은 사료를 읽고 비판하며 평가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는 양질의 사료가 실릴 필요가 있다. 그런데 교학사 교과서 필자는 한국 실증사학의 대부인 이병도에게 식민 사학을 비판한 민족 사학자라는 영광을 안겨 주었지만, 정작 이병도의 실증 정신은 본받지 못한 것 같다.

 

    구체적인 증거를 들어보자. 교과서 5장 제5절의 [탐구활동] ’미국과 중국에서의 외교활동을 보면(277) 집필자의 실증 수준이 의심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료 1, 2에는 출전이 없고 자료 3에만 출전이 달려 있다. 부록(399)을 보면 자료 1, 2도 자료 3과 같은 출전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인용된 자료의 내용을 잘 읽어보면 자료가 아니다. 학술발표회 연구논문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은 단행본이다. 엄밀한 의미로 역사적 사실의 해석에 도움이 되는 1차 사료가 아니라 2차 사료, 그것도 연구자들이 자신의 관점을 드러낸 연구 논문이다. 식품에 비유하자면 원산지 표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 학생과 교사를 무시하는 처사다. 가급적 양질의 1차 사료를 제시하고 학생들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2차 사료에도 급이 있다. 인용된 자료에는 특히 임시 정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은 국제 정세 판단에서 놀라울 정도의 탁월함을 보여 주었다.”는 서술이 있다. 정말 놀랍고 탁월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다른 맥락에서 그의 탁월함에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쓰지는 않을 거다. “놀라울 정도운운은 논문 심사라면 통과될 수 없는 표현이다. 소위 고무 찬양에 가깝다. 학술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않다. 이승만에게도 누가 되는 표현이다. 이런 격한 표현과 찬양이 담긴 논문을 자료랍시고 인용하다니, 이병도가 경악할 수준이다. 게다가 출전의 편자명 이인희도 틀린 것 같다. 그가 누구일까?

 

    이쯤에서 전문 연구자로서 교학사 교과서가 인용한 자료의 실체를 공개해야겠다. 문제의 인용문이 적힌 대한민국 건국의 재인식2007년과 2008년 여름에 개최되었던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논문을 모아 발간한 책이다. 이 책에 실린 26편의 논문 집필자의 라인업은 화려하다. 유영익, 이영훈, 김일영, 차상철, 전상인, 김용직, 박지향 등. 여기까지만 열거해도, 이 분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들이 어떤 성향의 학자들인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이 책의 서문은 이인호가 썼고, 편집 책임은 강규형이 맡았다. 이 정도면 이인희가 이인호의 오기임을 짐작할 것이다. 본인이 이 책을 보았다면 얼마나 섭섭해 하였을까. 참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교과서이다.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아이들의 생각과 토론을 유도하기 위해 제시된 자료는 객관적이고 공평한 당대 자료여야 한다. 그 이유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작성하여 집필자들에게 제시한 교과용 도서 편찬창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에 분명 위배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편찬상의 유의점 3. 내용의 선정 및 조직 7, 8항에 해답이 적혀 있다.

 

(7) 교육과정에 제시된 학습내용을 중심으로 특정 이론이나 학설에 치우치지 않도록 내용을 선정한다.

(8) 사료, 지도, 연표, 도표, 사진, 통계 등의 자료는 해당 내용의 이해와 학습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한 것을 선별하며 출처를 정확히 제시한다.

 

    이 부분을 대표 집필한 저자는 특정 이론이나 학설에 치우치지 않도록 내용을 선정한다는 구절도 읽지 못한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당대 자료도 아닐뿐더러, 교과서 저자와 같은 이념적 색깔을 지닌(사실은 한 몸이나 다름 없는) 그런 단체에서 발간한 이승만 찬양논문을 자료로 제시할 수 있는가. 국가기관의 심사를 통과한 대한민국 검인정 역사교과서, 그것도 고등학생 교과서가 이래도 되는 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학습량이 많은 고등학생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묻고 싶다. 국편은 검정 심의를 제대로 하기는 한 건가? 왜 이런 내용도 걸러내지 못했을까? 왜 다른 교과서에 비해 두 배 이상이나 되는 수정 지시 사항에 이 부분은 빠진 걸까? 인력이 적어서 제대로 심사를 하지 못했다? 백번 양보해서 오타, 사실 오류, 문장 실수 같은 것은 얼마든지 애교로 보아줄 수 있다. 그런 건 고치면 된다. 그런데 이건 아니지 않는가. 아무리 인원이 부족해도 그렇지 검정 심사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가 일당 백의 전문 연구자들이 아닌가. 그들이 전문가로서 그런 것도 제대로 감식해 내지 못했다면 왜 그들을 임명했나. 검정 심의회의 변명대로 인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던 사소한 실수인가, 아니면 교학사 교과서 집필진의 집필 의도를 충실히 살려주기 위한 의도적인 직무유기인가? 실수라고 하기엔 너무도 중대한 실수, 의도된 실수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정말 진실이 궁금하다. 국편도 피해갈 생각은 하지마라.

   그래도 가장 중요한 책임은 교과서 필자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이명희 교수님 왜 그러셨나요? 설마 모르고 그러신 건 아니시죠?”

   교과서(교학사)가 포털사이트에서 자료사진을 대거 인용했다는 문제가 드러나자 교과서 집필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한 지적인 것 같다. 피곤하다며 더 이상 해명하지 않으셨는데,(한겨레신문2013.9.6.) 그럼 국편의 이 집필 기준을 어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변하실 건가요? 이 글을 보셨다면 제발 댓글이라도 달아주세요.

 

4.

    앞으로 더 흥미로운 분석이 남아 있지만, 이 정도만 살펴보아도 이번 교학사 교과서는 사실과 동떨어진, 이념/주장이 듬뿍 담긴, 저질 상품 같다. 한마디로 불량식품이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가 많은 불량식품이 국가 기관에서 심사한 검인정 심사를 통과했다? 이건 누가 보더라도 국가가 불량식품을 제작, 판매, 유통시킨 분명한 범죄행위이다. 대통령 말씀처럼 4대악의 하나로 근절되어야 한다. 이런 불량식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어른들은 부끄럽지도 않은가? 왜 이 교과서가 불량식품인지는 교과서 검정 심의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시한 교과용 도서 편찬창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에 잘 드러나 있다. 교과서 개발방향 2번 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2) 헌법 정신에 입각하여 올바른 역사관과 국가 정체성을 제고하고, 정치적, 종교적, 사회문화적으로 교육의 중립성을 유지하고 이념적으로 편향성이 없으며, 특정 국가, 민족, 지역, 종교, 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협된 시각을 갖지 않도록 교과서를 개발한다.

 

   헌법 정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오해와 편협된 시각을 갖지 않도록 교과서를 개발한다는 기본 규칙은 지켜야 하지 않는가.

    연구자이기 이전에 학생을 둔 학부모로서 이런 불량식품의 유통만은 막아야 한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없다. 불량식품을 만든 사람들은 소비자 검증 과정이나 마찬가지인 일선 학교의 교과서 전시와 채택 일정도 앞당겼다고 한다. 애초에 공정한 규칙은 없었다. 우리 연구자들도 침묵할 수 없는 이유이다. 잘못된 제작 과정은 막지 못했지만 잘못된 유통 과정을 막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지금 막지 못하면 당장 내년 3월부터 고등학교에 배포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고등학생들에게 불량식품을 안겨줄 수는 없지 않은가?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겨우 이것 가지고 수많은 사람이 애써 만든 교과서를 그렇게 폄하할 수 있느냐?”. 걱정하지 마시라. 이 글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이 교과서가 왜 불량식품인지, 학문적 소신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꾸준히 글을 쓸 것이다. 부디 최종 결정은 여기에 실린 글들의 연재가 모두 끝난 다음에 내려주시기를. 그리고 반론이나 이견도 얼마든지 환영한다.

 

 

역사문제연구소 교과서대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