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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문연 광장

[연구소 30주년 나아가며 함께하기] 시대와의 불화(不和), 세대 간의 불화를 두려워 말자-연구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이상록,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본 글은 연구소 회보 59호 창립 30주년 기념호에 실린 기사 중 하나입니다. 

연구소 회보는 연구소 후원회원들을 대상으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의 글들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합니다.


 

시대와의 불화(不和),                             
세대 간의 불화를 두려워 말자
― 연구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이상록
연구실장

    엉겁결에 떠맡은 실장직만큼이나 엉겁결에 회보 원고를 맡게 되어 난감하기 그지없다. 연구실에 대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연구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실장의 이름으로 ‘대의’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거나, 일종의 재현적 폭력을 내장한 것일 수밖에 없다. 연구실장이라는 직위의 관점에서 글을 쓰기보다는 10년간 연구실에 연구원으로 몸담았던 일개 연구원의 관점에서 연구실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더 솔직하고 편안한 방식이 될 것 같다.


    2006년에 연구원이 되었을 당시 나는 한편으로는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과 기대감도 컸지만, 그보다는 ‘연구소는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거지?’, ‘연구소에서 나는 무엇을 연구하고 무슨 활동을 해야 하지?’라는 막막함이 더 컸던 것 같다.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현대사 전공자들이 필요해서 뽑은 것이라는 설명만 되돌아올 뿐, 연구소는 어떤 곳이니까 무엇을 어떻게 같이 해보자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선배들이 몸소 보여준 것은 술자리에서의 전투성, 그리고 웃으면서 시작해 싸우면서 끝나는 연구실 총회의 풍경 같은 것뿐이었다. 80년대 학번들의 전투적인 술자리와 토론문화는 낯선 것이 아니었으나, ‘90년대 학번들도 80년대 학번들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치받는 이 분위기는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의 아름다운 전통(!)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연구실에 서서히 적응해갔던 것 같다. 후배세대들이 선배들을 비판하며 들이받았을 때, 선배들이 흔쾌히 후배들의 주장을 받아주지는 않았지만 일방적으로 무시하지도 않았다.(당시 연구소의 소통구조를 SNS시대에 맞게 바꾸자고 제기했던 후배세대의 H모 학형은 이러한 회고에 동의하지 않을 듯하다.)


    선배세대들이 후배세대에 대응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는, “그럼 너희가 연구로 한 번 보여주든가……”라는 것이었다. 연구소 정기심포지움에서 발표를 하고, ‘연구자로서 가야할 길이 멀고 험난하구나’라는 자각을 느끼게 되었을 무렵, 후배 연구원들이 들어왔고 ‘나’는 어느새 기성세대가 되어 있었다. 시집살이로 고생한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닮는다고 했던가. 후배들로부터 ‘구닥다리’로 몰리는 신세가 되자, 나도 어느새 “그럼 너희가 한 번 해보든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후배 연구원들은 그런 선배들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연구실의 고루한 문화들을 비판했으며, 꿋꿋하게 학문적 열정을 보여주었다.

    연구소의 힘은 시대와의 불화로부터 나왔고, 연구실의 힘은 세대 간의 불화로부터 나온 것은 아닐까. 선배 세대들에 대한 비판이 용인되고, 후배 세대들을 존중해주는 문화 속에서 연구실은 ‘낡은 진보’가 되지 않고 ‘새로운 진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긴장감이 존속해올 수 있었다고 감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주장이 ‘기성세대는 낡았고, 청년세대는 새롭다’는 진부한 세대론을 펴기 위함은 결코 아니다. ‘같은 세대’로 분류되는 집단 내부에도 서로 다른 다양한 편차들이 존재하며, 어떤 면에서는 ‘다른 세대’가 서로 심각하게 또는 기묘하게 닮아있기도 하다. ‘세대’는 연구소 내부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지표이자 은유일 따름이다.


    한 조직이 30년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화되었다는 의미를 갖는 동시에 위기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역사문제연구소는 학술 연구 영역에서 권위를 획득하는 데에는 일정하게 성공했을지도 모르나, 사회적 실천이나 진보담론의 일신이라는 측면에서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던 것은 아닌지 성찰해볼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30년 전에 비해 연구 환경도 좋아지고 연구업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좋은 연구 성과를 찾기는 어려워졌고 연구자들은 대학과 한국연구재단의 평가 시스템에 갇혀 논문제조공장의 노동자 신세가 되어버렸다. 연구소와 연구실이 이러한 시스템에 얼마나 비판적이었는지, 오히려 그 구조에 편승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연구소와 연구실은 그동안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공통의 아젠다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하기도 했고, 연구소 ‘사업’을 연구원들이 준비하면서 연구와 실천을 연결해보려 하기도 했으며, 대중강연을 조직해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시도들에는 여러 가지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다. 연구원들의 생각하는 ‘실천성’이 특정한 아젠다로 수렴되기 곤란한 조건 속에 있다는 현실 인식, 사업과 연구를 결합시키자는 이상과는 달리 연구원들이 연구소 행사에 동원되는 양상으로 사업이 실현되고 마는 관행들, ‘계몽주의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한 일방통행 강연 형식의 지속 등이 아쉬움의 이유였다.

  

    그간의 여러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연구실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만과 반항의식이 여전히 들끓고 있기에, 위로부터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사회적 실천과 역사연구를 결합시키려 노력하는 연구원들의 꿈틀거림이 존재하기에 연구실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젊은 세대’ 속에 묻어가는 전략을 취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나는 ‘통일’이나 ‘민주화’를 이야기하면서 가부장주의나 권위주의에 찌들어있는 소위 ‘민주인사’들의 진보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와 보수정권을 비난하는데 열을 올리는 ‘진보교수’가 대학원생이나 연구교수들을 착취하면서 프로젝트를 지속시키고, 서열화된 학벌사회를 비판하면서 정작 인사문제에 대해서는 학연최우선의 원칙을 거스르지 않는 풍경이 너무도 일상화되어 있지 않은가. 거대담론이나 ‘적’들에 대한 적개심에 입각해 움직이는 운동에 대한 회의와 의혹이 젊은 세대에게는 감각적으로 존재한다. 차별이나 인권에 대한 감수성도 기성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그 감각과 감수성이 연구소의 미래를 이끌어갈 것이라 믿는다.

 

 

    비록 미래를 꿰뚫어보는 눈은 없지만, 우리는 이 작지만 발달된 더듬이에 의지해 내 발밑에서 벌어지는 일상에서의 문제들로부터 연구와 실천의 접점을 찾아가고자 한다. 지금 연구원들은 4.16 세월호 사건의 울림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유가족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동안 한국사 연구자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섹슈얼리티의 문제나 소수자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고 활동가들을 만나는 모임을 갖고 있기도 하다. 무너진 학문세계에서 동료 연구자들의 글을 함께 읽고 비평하면서 연구쟁점이 무엇이고 앞으로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함께 토론해보기도 한다. 반면, 연구실이 기존 분과학문의 폐쇄성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성도 해보게 된다. 토론마당 등을 통해 다양한 학문전공자들 간의 소통과 교류를 더욱 넓혀가야 할 필요성도 깊이 느끼고 있다. 또한 가사, 육아, 학업, 직장생활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연구원의 고충이나, 시간강사법 개정 유예 등의 상황에서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연구자의 삶을 살아가는 실존적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국정교과서 문제로 연구자들이 다시 깃발을 드는 시대가 되었지만, 어쩌면 그 안에는 허상이 함께 있는지도 모른다. ‘깃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별과 폭력에 맞서고 공감해주는 인문학적 감성과 그에 기반한 실천의 회복이 아닐까. 전선은 일상 속에 널려있고, 진영을 넘나든다. ‘총화(總和)’, ‘단결’은 차이에 대한 두려움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차이를 두려워않고 오히려 차이로부터 생산적인 에너지가 나올 수 있다는 ‘불화’의 힘을 나는 믿는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믿음 위에서, 우리 두려워말고 ‘불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