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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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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공감의 연대로 세상을 바꾸자

 

  세월호 사건 이후 1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9년 씨랜드청소년수련원 화재 등 대형 참사 사건 이후에도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안전을 위한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빨리빨리”, “대충대충” 처리하며 안전보다는 돈이 남는 수익구조를 중시하는 사회풍토는 사고공화국의 기반이 되었다. 세월호 사건이 안타까운 점은 충분히 구조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학생들을 구명조끼만을 입혀 놓은 채 ‘가만히 있게’ 방치해두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투브에서는 세월호 생존 학생이 친구들과 유가족들에게 띄우는 편지를 읽는 영상을 볼 수 있다. 이 생존학생은 시종일관 눈물을 흘리며 친구들과의 소중했던 추억을 그리워하고, 자식 잃은 슬픔에 식음을 전폐하고 있는 부모님들을 향해 그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아파할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아프지 마시고 항상 건강하길 간절히 바랍니다”라는 당부의 말을 전하기도 한다. 평생 트라우마를 간직하고 살게 될 생존학생이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친구들 몫까지 다하며 살아가겠다고 울먹이는 장면은 보는 이들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저는 세월호 희생자 학생 누나입니다’라는 동영상을 보면, 인터넷에서 세월호 희생자와 생존자들을 향한 비방글들을 소개하는 내용이 나온다. 희생자 아이들에게는 “잘 죽었다, 물고기 밥이다, 좀 더 죽어라, 죽어 주는 게 효도다”라고 하며, 유가족들에게는 “유족충이다, 종북이다, 자식 팔아서 시체장사 한다, 세월호가 로또냐”라고 비방하고, 생존자 아이들에게는 “벼슬인 듯 행세하지 마라, 친구 버리고 살아나서 좋냐” 등의 욕을 했다고 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예의를 포기한 이 ‘일베’ 젊은이들의 혐오와 적대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들도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경쟁사회의 희생자들이겠지만, 사회 내부의 적대의식과 배타심을 강화시키고 공동체의 안녕을 저해하는 행위주체라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세월호희생자들에 대해 적대와 조롱을 드러내는 일베 젊은이들은 비록 소수이지만, 그보다 더 아득한 일은 ‘이제 세월호 이야기는 지겹다’거나 ‘그만 좀 해라’라며 세월호를 망각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무관심은 기억해야만 할 것들을 잊게 만들고, 지켜야할 가치들을 잃게 만들며, 공동체를 파괴하고 영혼을 잠식한다. 적대와 조롱, 그리고 무관심 속에서 세월호의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은 외면당하고, 세월호는 기억 저 편으로 멀어져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한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 1주기를 맞아 광장에 모여든 시민의 모습에서 우리는 희망의 조각들을 발견한다. 또래친구들의 사고를 생각하며 책상 앞에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는 고등학생들의 그 마음, 자식 잃은 슬픔에 공감하며 함께 유가족을 위로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 세월호를 덮고 싶어 하는 자들의 ‘비겁한 거래’에 굴하지 않고 이 사회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유가족과 함께 하려는 시민들의 그 마음. 그 감정의 연대가 세상을 조금씩 바꿔갈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역사학은, 아니 인문학은 ‘감정의 연대’에 어떤 기여를 해나갈 것인가. 인문학의 존재조건은 물론 학문의 생산과 소통 방식에 대한 성찰이 더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서있다.

 

  이번호 특집 <'정상성'에의 강박 - 한국 근현대 가족의 역사>는 지난 2014년 10월 25일 역사문제연구소 정기심포지움에서 발표논문들 중 일부를 수정·보완하여 구성하였다. 이 심포지움은 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반 내에서 ‘가족·젠더·섹슈얼리티’ 문제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이 가족사반을 결성하여 연구해온 성과를 발표한 것이었다. 그간 역사문제연구소의 학술대회는 거칠게 정리할 때 거대 진보 담론을 중심으로 조직되어온 측면이 있었는데, 가족사반의 정기심포지움은 거대 진보 담론으로 환원할 수 없는 젠더 문제와 섹슈얼리티 문제를 ‘가족’이라는 창으로 제기한 것이었다. 이는 젊은 역사학자들의 문제의식과 새로운 흐름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심포지움을 끝으로 가족사반은 해체되었지만, 젠더와 섹슈얼리티 문제에 대한 연구소 내부의 관심과 연구의욕은 진화하고 있어서 향후 활동이 주목된다.

 

  이정선은 「1920~30년대 조선총독부의 ‘내선결혼(內鮮結婚)’ 선전과 현실」에서 민족-젠더-계급 등 다양한 권력 관계들이 교차하는 내선결혼의 사회상을 상세히 복원하면서 내선결혼의 선전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드러냈다. 김아람은 「가족이 짊어진 구호와 자활-1950~60년대 합동결혼과 그 주인공」에서 1950~60년대 상이군인, 개척단, 재건대 등 남성주체를 주인공으로 하는 합동결혼식이 다분히 권력의 보여주기 정책의 일환이었다며, 가족을 잃거나 가족과의 불화로 ‘부랑’하게 된 이들을 합동결혼이라는 형식을 통해 ‘정상가족’으로 만들어 자활의 주체로 정착시키려 했던 국가전략의 문제를 부각시켰다. 소현숙은 「1950~60년대 ‘가정의 재건’과 일부일처법률혼의 확산」을 통해 1950~60년대 가정법률상담소 활동 등을 통해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자 했던 여권 운동가들의 활동이 일부일처법률혼의 정상가족 규범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수행되었던 점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였다.

 

  기획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기억정치>는 2014년 11월 7일 역사문제연구소와 역사학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동학농민전쟁 120주년 기념 학술대회 발표논문 중 2편을 함께 엮었다. 최선웅의 「일제시기 사회주의 진영의 동학농민전쟁 인식」과 오제연의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과 대학생의 ‘동학농민전쟁’ 인식」을 통해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기억의 역사가 어떻게 변천되어 왔고, 한국근현대사 속에서 그 기억이 어떤 의미로 작용하여 왔는지를 살펴보는데 유용할 것이다.

 

  최근 역사문제연구 편집위원회에서 가장 많은 열의를 쏟아붓고 있는 지면은 단연 저작비평회 코너이다. 이번호에는 이기훈의 『청년아 청년아 우리 청년아』(돌베개, 2014)에 대한 박찬승, 오제연, 허병식 세 토론자의 비평과 저자의 반론을 수록하였다. 20세기 ‘청년’ 개념의 변화에 대한 그에 대한 충실한 의미 정리 등 이 책이 담고 있는 여러 가지 미덕과 ‘청년’을 둘러싼 개념과 일상 사이의 간극 등에서 오는 연구 상의 난점들이 잘 드러난 토론이었다.

 

  일반연구에서는 지수걸의 「1894년 ‘공주대회전(公州大會戰)’ 시기의 '공주 확거 고수' 및 '호서 도회' 개최 전술」 등 5편의 논문이 수록되었다.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다채로운 연구논문뿐만 아니라 ‘미국 청소년역사책 디어 아메리카(Dear America) 시리즈에서 배제·포섭의 서사’를 분석한 이소영의 연구도 포함되었다. 다소 낯선 주제일 수 있겠지만, 역사교육, 내셔널 히스토리 서사의 배제와 포섭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현실비평에서는 역사문제연구소 한봉석 연구원이 「서울시민 인권헌장 사태를 통해 본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성 소수자 문제」를 상세히 정리하였다. 이 글은 ‘서울시민 인권헌장 사태’에 대해 ‘박원순 시장의 정치적 실수’ 내지 ‘안타까운 에피소드’ 정도로 의미화해 버리고 마는 진보주의자들에게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앞서 가족사 특집이 기존의 ‘거대 진보’로 환원될 수 없는 목소리들을 드러내려는 문제의식과 맞닿아있다고 했는데, 한봉석의 이 비평을 통해 보다 선명하게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난 31호 교학사 교과서 사태를 다룬 집담회는 교과서 문제에 대한 역사학계의 대응방식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비판적 목소리를 담아 주목을 받았다. 이번호 집담회는 사법부의 판매금지 판결로 인해 2라운드로 접어든 후 온라인·SNS 상에서 열기를 더하고 있는 『제국의 위안부』(박유하 저, 2013, 뿌리와이파리) 논란에 대해 젊은 역사연구자들이 나눈 대화내용을 수록하였다.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간 여성들이 민족수난의 아이콘으로 재현되면서 ‘위안부 문제’가 성역화 되어버린데 대한 비판의 필요성에 동조하는 젊은 연구자들이 왜 박유하 교수의 저작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기하는지를 관심있게 읽어본다면 흥미로운 논점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통치성은 인간들로 하여금 재화를 중심으로 사고하도록 하고 개인을 원자화시키는 것을 기반으로 해서 작동한다. 수익만을 위해 복무하는 직업인의 탄생과 부조리한 사회 앞에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고독하고 무기력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정치적 올바름이나 정권 비판의 구호만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부조리한 세상을 바로잡고자, 변혁을 꿈꾸는 이들은 이제 ‘감성’에 대해 심각하게 사유해야 할 것 같다. 누군가를 깎아내리며 거창한 구호만 내세우는 선전·선동보다는 타인의 마음에 공감해주고 찬 손을 포근하게 잡아줄 수 있는 그 감성이 더 큰 울림을 주는 요즘이다.

(이상록)

 

 


 

 

목    

 

책머리에

 

[특집 : '정상성'에의 강박-한국 근현대 가족의 역사]

이정선, 1920~30년대 조선총독부의 '내선결혼(內鮮結婚)' 선전과 현실

김아람, 가족이 짊어진 구호와 자활 - 1950~60년대 합동결혼과 그 주인공

소현숙, 1950~60년대 '가정의 재건'과 일부일처법률혼의 확산

            -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활동을 중심으로

 

[기획 :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기억정치]

최선웅, 일제시기 사회주의 진영의 동학농민전쟁 인식

오제연,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과 대학생의 '동학농민전쟁' 인식

 

[저작비평회]

20세기 한국에서 '청년'은 무엇이었나

- 이기훈, 『청년아 청년아 우리 청년아』(돌베게, 2014)

 

[연구논문]

지수걸, 1894년 '공주대회전(公州大會戰)' 시기의 '공주 확거·고수' 전술과 '호서

           도회(湖西都會)' 개최 계획

류호진, 덴마크식(式)으로 살기 - 1950~60년대 한국의 덴마크 담론

정무용,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중학교 능력별 학급편성 논란과 행동과학

           교육법의 도입

김소남, 1970년대 원주그룹의 부락개발운동 연구 - 새마을운동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이소영, 우리를 가르는 울타리, '우리'라는 울타리 - 미국 청소년역사책 『디어

           아메리카』시리즈에서 배제/포섭의 서사

 

[현실비평]

한봉석, 서울시민 인권헌장 사태를 통해 본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성소수자

            문제

 

[집담회]

젊은 역사학자들, 『제국의 위안부』를 말하다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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