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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0. 10:09 역문연 광장

 

제국의 위안부"표현의 자유" 소고.

 

김한상 (한국현대사연구자)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최근 법원이 내린 출판 등 금지 가처분신청 일부인용 결정을 두고 이른바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 본인 역시 과거 군사정권 치하에서 자주 쓰이던 '금서(禁書)'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비슷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우리는 특히나 이 "표현의 자유"라는 슬로건을 자주 보게 되는데,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것만 해도 샤를리엡도 테러 사건, 일베 댓글 판사 사건, 대북 전단 관련 인권위 입장 발표 등 올해 들어 고작 두 달 사이에 이를 인용하는 굵직한 이슈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그 대부분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 결코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기본권으로 옹호되고 있다.

 

  그처럼 불가침의 권리로 여겨져서인지 "표현의 자유"로 생각되는 영역에 국가가 제재를 가하면 이는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고 쉽게 인식되곤 한다. 더구나 제국의 위안부는 일찍부터 법정 공방으로 빚어졌기 때문에 학자의 표현의 자유가 법적 논리로 재단되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있었고, 그 공방의 중간결과가 나온 지금 저자의 옹호자들은 국가, 혹은 국가(민족)주의 진영에 의한 표현의 자유 탄압으로 이 사태를 단정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국가의 위치가 '금서'의 시대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과거 군부 독재 시절의 국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자였다. 그것은 당시의 국가가 억압기구로서 검열과 언론통제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당시의 국가가 사회에 대해 장악력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이후의 국가도 과연 그럴까? 대중예술계를 중심으로 큰 반발을 낳았던 음반 사전심의제가 IMF 직전인 1996년에 폐지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제 국가는 지속적으로 국가의 공공적 기능을 축소 혹은 폐지할 것을 요구받고 있고, 이는 정치사회의 민주화 과정과 기묘한 앙상블을 이루어왔다.

 

  국가를 향해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를 외치는 것이 허망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제 과거에는 공공적 가치로 국가의 보호를 받던 것들이 "자본의 표현의 자유" 속에 왜곡되고 비하되며 폐기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던 정치적 시스템은 자본의 자유라는 경제적 시스템에 맞추어 개조되었다. 이것은 문화적 시스템의 변화이기도 한데, 공공적 가치가 자신들에게 보장해줄 것이 없다는 불신을 쌓아온 파편화된 젊은이들이 그 분노를 표출하는 출구가 인터넷 공간의 표현의 자유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표현의 자유"는 억압기구에 저항하는 좌익의 슬로건이 아니라 공공성의 해체를 추구하는 ()우익의 슬로건이 되었다. 국가는 더이상 표현을 억압하지도 장려하지도 않는 소극적 영역으로 물러나 앉았고, 법원의 판결이 그나마 퇴화되지 않은 최소한의 공공적 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법원은 "표현의 자유"가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와 같이 민형사적 문제와 직접적으로 충돌할 때에야만 판결자로 소환될 뿐이며, 그것이 공익과 충돌할 때 이를 제재할 방법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공익훼손을 빙자하여 정부기구들이 개인들에게 거는 명예훼손의 혐의는 실제로는 특정 정치 분파의 사익에 관한 것이니 논외로 한다).

 

  이렇게 볼 때,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표현의 자유"의 외침은 그것이 비록 과거 억압기구로서 국가에 대해 투쟁해서 얻은 것이라는 상징성이 있을지언정, 그런 본래의 취지와는 방향이 상당히 어긋나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댓글 판사나 대북 전단 살포자들이 국가의 제재에 대항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억압기구에 대한 저항이라기보다는 국가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구조조정을 목표로 하는 행위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소송과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것 역시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 억압기구의 허상을 세워두고 타격하는 것이라 미덥지 않다. 연구에 동원되는, 혹은 연구결과의 공표가 앞으로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보호를 담당하는 공공기구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국가(법원)는 소극적 공공 장치로서 소환된 것일 뿐, 이를 억압적 국가기구의 탄압이라 규정하는 것은 과장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학계 바깥의 '비전문가'들인 판사들에게 언제까지 이러한 공공 장치의 역할을 맡길 것이냐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어떻게 하면 학계 내부에 그러한 연구윤리 검토 시스템을 만들 것이냐가 논의되어야 한다. 그것이 신자유주의와 우익의 공세 속에서 연구의 공공성을 지키는 길이다.

 

 


 

아래의 사진은 블로그 담당자가 임의로 첨부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연합뉴스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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