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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소식/역사비평 & 역사문제연구

역사문제연구 32호 소개

 

 

역사문제연구 32호가 나왔습니다.

 

본 역사문제연구는 역사문제연구소의 후원회원이 되어 받아보시거나, 시중의 서점을 통해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당연히 연구소에서는 전자를 추천해드립니다. :)

 


 

책머리에

 

올해 유난히 군부대에서의 폭행치사 사건이나 총기사고 관련 뉴스를 많이 접하게 된다.

 

 예전부터 숱하게 있어왔던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군생활 중이거나 입영을 앞둔 아들을 둔 부모의 심정이라면 이같은 소식을 그냥 흘려 넘길 수 없을 것이다.

 

  지난 47일에 있었던 윤일병 사망사건은 군부대 내 일상화된 폭력의 양상을 여과없이 드러내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상습적인 구타는 물론이고, 개흉내를 내게 해 바닥에 뱉은 가래침을 핥아먹게 하기, 성기에 안티프라민을 바르기, 치약 한 통을 먹이기, 드러누운 얼굴에 물을 들이부어 고문하기 등의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가혹행위가 일상적으로 있어왔음이 사건 조사과정에서 밝혀졌다. 가혹한 폭행으로 윤일병이 실신한 상태에서도 의무대 소속의 가해병사들은 산소포화도와 심전도를 체크해 정상인데 꾀병을 부린다면서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갈비뼈가 14대 부러지고 온 몸에 피멍으로 뒤덮일 정도의 잔혹한 폭행을 당한 끝에 윤일병은 결국 숨졌다.

 

  가해병사들의 이 악마적 주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어쩌면 그들도 학교에서는 모범생, 가정에서는 착한 아들들이었을지 모른다. 윤일병 사망사건 소식에 많은 사람들은 분노하였지만, 군부대 안에서는 여전히 일상화된 폭력이 되풀이되고 있다. 한편 윤일병 사건에 분노한 사람들이 진짜사나이와 같은 예능프로그램을 즐겨 보며 출연자들이 군생활을 제대로하고 있지 않다는 식으로 비난의 댓글을 남기기도 한다. 군생활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경험으로 기억하면서도 징병제와 군사문화를 숭배하는 남성주체의 이중성은 어떻게 구성된 것일까. 일본군의 조선인 학대와 가해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도, 한국군의 베트남에서의 가해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부인하고자 하는 이중성은 바로 그 남성주체의 이중성과 무관한 것일까.

 

  정부와 여당은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많은 보상금을 노리고 물고 늘어지는 것이라고 호도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시민들을 사상이 불온한 자들로 몰아세우며 국가부재의 책임으로부터 회피하고자 하였다. 공감과 소통이 있어야할 자리에 오만과 불통이 가득하며, 화해와 상생이 있어야할 자리에 경쟁과 배타·반목·질시와 혐오가 가득하다. 일상화된 폭력 속에서 사람들은 피로와 무기력을 느끼며, 시스템의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거나 공범자가 되어 간다. 어떻게 해야 학교, 군대, 회사 등에 내재된 경쟁-지배의 폭력장치 속에서 공범자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역사가의 역할은 아마도 과거를 당대의 지배적 인식틀이나 가치로부터 벗어나 낯설게 인식할 수 있도록 환기시키는 데 있을 것이다. 망각되어 가거나 특정하게 기억되는 과거를 다르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상상력을 구축하는데 역사문제연구가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호 역사문제연구에서 과거를 낯설게기억하도록 이끌고자 하는 주제는 베트남전과 동백림사건, 유신과 긴급조치 하에서의 유언비어 등이다.

 

  이번호의 첫 번째 특집은 베트남전과 아시아 상상이라는 주제이다. 냉전 질서 하에서 자유우방을 돕겠다는 명분 아래 수행된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은 우방적국에 대한 상상 속에서 실제 전쟁의 양상과는 무매개적으로 이루어졌다. 김예림의 <정체(政體), 인민, 그리고 베트남(전쟁)이라는 사건>은 그 상상의 정치성을 심문하는 논문이다. 1960년대 한국의 국가-사회 구조에서부터 망탈리떼에 이르는 변화가 베트남(전쟁)이라는 타자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글이다. 백승욱의 <‘해석의 싸움의 공간으로서 리영희의 베트남전쟁>은 당대의 베트남전 인식과 확연히 구별되었던 리영희의 베트남전 인식이 1960년대 중반 조선일보 등의 지면을 통해 어떻게 드러나고 있었는지를 재구성한 논문이다.

 

  두 번째 특집은 ‘1960~70년대 불온의 문화정치이다. 이 특집은 지난 31식민지 불온열전저작비평회에 이어 불온의 역사성을 다시 한 번 의미화 시키려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1960~70년대 억압적 정치체제 아래에서 불온은 어떻게 규정되었고 역사적으로 그것은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임유경의 <냉전의 지형학과 동백림 사건의 문화정치>동백림사건이라는 공안사건을 통해 냉전이 낳은 비상시적 질서의 국제정치적 확장의 양상을 분석한 논문이다. 동백림 사건을 영외에 놓인 재외국민들을 냉전적 질서로 포획하려는 국민화과정의 일환으로 분석하고, 한반도의 냉전질서가 국외로 감염되는 양상으로 설명하고 있는 지점 등이 흥미롭다. 오제연의 <1970년대 유언비어의 불온성>은 유신과 긴급조치 하에서 유포되던 유언비어의 정치적 의미를 다룬 논문이다. 그는 억압적 통치체제 아래에서 사람들이 한편으로 순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언비어 등의 형태로 불온성을 키워갔던 맥락을 언론통제 하에서 통치자·통치질서에 대한 대중적 불신이 확산되는 과정으로 보고 이를 1970년대 말의 가시적인 저항과 연결시켜 분석하고 있다.

 

  이번호에는 두 편의 저작에 대한 비평회 지상중계글을 싣는다. 첫 번째는 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반의 연구 성과를 묶어낸 민중사를 다시 말한다에 대한 저작비평회였다. 보수언론 등으로부터 진보적 역사연구단체들이 민중사학에 빠져 시대착오적이고 불온하다고 지탄받는 오늘의 현실에서 불온 충만하게도 새로운 민중사를 표방하며 나온 이 책은 오히려 기존의 80년대 민중사 연구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러한 문제제기가 얼마나 유효적절한지에 대해 세 명의 논평자가 비판적인 문제제기를 하였고, 저자로 참여한 민중사반 소속 연구자들이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다소 산만한 난상토론의 자리였으나, ‘새로운 민중사를 둘러싼 고민과 비판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두 번째는 한국문학을 전공하신 김현주 선생의 최근작 사회의 발견에 대한 저작비평회였다. 1910년대 사회를 둘러싼 개념·사상·상상·정치의 각축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둘러싸고 활발한 토론이 있었다. ‘사회에 대한 개념·상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과 상호관계에 대한 시각차가 드러났고, 식민지라는 조건에서 사회에 대한 개념·상상이 어떤 현실 정치적 의미를 지녔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논의가 오고갔다. 날카로운 토론을 해주신 세 분의 토론자와 꼼꼼하게 반론을 제기해주신 김현주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번호 일반연구에는 총 6편의 논문이 수록되었다. 다채로운 주제의 논문을 투고해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특히 기획이 무산되거나 특집과 내용이 다소 맞지 않아 일반연구로 지면을 옮기게 된 것을 양해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서평을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진 안타까운 학계의 상황에서도 차승기, 배석만 선생님께서 귀한 글을 주셨다. 차승기 선생님은 네그리·하트의 공통체를 소개하면서 식민지시기 흥남지역 주인규 등의 사례를 재해석하는 흥미로운 주제비평을 써주셨고, 배석만 선생님은 남화숙 선생의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를 꼼꼼히 읽고 서평을 보내주셨다.

 

  이번 역사문제연구 32호부터 소명출판에서 출간을 맡아주시게 되었다. 새로운 표지와 함께 역사문제연구도 더 의미 있는 새 출발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창간호부터 31호까지 역사문제연구 제작에 노고를 쏟아주신 역사비평사 편집부에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상록)

 

 


 

목         차

 

책머리에

 

<특집 1 베트남전과 아시아 상상>

김예림, 「정체(政體), 인민 그리고 베트남(전쟁)이라는 사건」 

백승옥,「‘해석의 싸움의 공간으로서 리영희의 베트남전쟁 : 조선일보』 활동시기(1965~1967)를 중심으로」

 

 

<저작비평회 1>

「‘새로운 민중사의 가능성과 한계를 다시 묻는다」

- 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반, 민중사를 다시 말한다(역사비평사, 2013) 저작비평회

 

<특집 2 1960~70년대 불온의 문화정치학>

임유경, 「냉전의 지형학과 동백림 사건의 문화정치」

오제연, 「1970년대 유언비어의 불온성」

 

<저작비평회 2>

「식민지에서의 사회국가를 다시 생각한다」

- 김현주, 사회의 발견』(소명출판, 2013) 저작비평회

 

<주제비평>

차승기, 「식민주의적 신체의 변신을 위하여-네그리·하트의 공통체』, 식민지, ‘지하 세계’」

 

<연구논문>

홍동현, 「1894년 동학농민군의 향촌사회 내 활동과 무장봉기에 대한 정당성 논리경상도 예천지역 사례를 중심으로」

정병욱, 「식민지 기억과 분단 - 1940년 양구군 해안면 소학교 낙서사건을 사례로」

허영란, 「집합기억의 재구성과 지역사 -울산 장생포 고래잡이 구술을 중심으로-」

정영신, 「오키나와 반전·반기지운동과 조국복귀운동의 교차로-2·4총파업을 둘러싼 혼란과 그 유산-」

이정은, 「전경련의 합리적내자 조달방안 요구와 전개 : 1966~1972년을 중심으로」

이하나, 「유신체제 성립기 반공논리의 변화와 분단의 감각」

 

<서평>

배석만,「‘·사·정 삼중주의 역사 그리기」

-남화숙 지음, 남관숙·남화숙 옮김,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후마니타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