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제연구소 2017년 연속기획 '혁명': 전시 

 

혁명전

http://www.revolutionpage.com/

시작합니다. 

 

"2017년의 ‘지금’에서 혁명을 기억하는 작업 역시 특정 사건의 기념이나 실증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가능성을 전망하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클릭하고 되돌아가며 새 창을 띄우는 ‘다시 읽기’의 순간들로부터 또 다른 방향을 만들어내는 흐름을 찾고자 한다."

 

#검은네모단

#혁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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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부터 연구소에서는 연구자들과 예술인들이 함께 활동활약해왔습니다. 

더불어 준비한 웹 전시 <혁명전오픈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그와 함께 참여한 예술인들과 대화하는 전시토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참여작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 역사와 예술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그간의 시도갈등교류협업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 하는 자리에 초대합니다

또한이 전시토크는 여러분을 모시는 송년의 밤을 겸하려 합니다전시토크와 연계해 '2017년의 우리들'을 돌아볼 예정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의 활동을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한 자리에 참석하시어 함께하는 순간으로 빛을 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혁명전 전시토크 + 2017 송년의 밤>

일시 : 12/19 화 저녁 7

장소 : 역사문제연구소 5층 관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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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연속성의 관점에서 본 왕조교체

세계인식과 국제관계

 

2017년 겨울호의 특집은 지난 호에 이어서 여말선초 시기의 변화와 연속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이번호에서는 당시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서 몽골(), 명과의 외교관계를 지속하는 가운데고려와 조선이 어떻게 왕조의 위상을 설정하고 통치의 기반을 수립했는지 살펴보면서 조선 건국을 전후한 시기의 연속성과 단절성을 분석하고자 했다이러한 시도는 조선의 건국을 새로운 사회와 체제의 탄생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연구와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것으로서향후 학계의 생산적인 논쟁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5세기 천하질서하에서 고려와 조선의 국가 정체성」(최종석)은 원 복속기를 기점으로 고려와 조선의 자기정체성 인식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원 복속 이전의 고려는 중국 왕조와 대외 방면에 한해 군신 의례를 매개로 결합하였을 뿐국내적으로는 독자성이 뚜렷했다그러다 원 복속기를 분수령으로 하여 국가(국왕)의 자기정체성 설정 방식이 혁명적으로 변화하였다원 복속 하에서 고려는 국내적으로도 신하+군주’ 위상과 제후국 체제를 받아들였다자신이 보통의 오랑캐와 달리 중화 문명(문화)을 추구·구현하였고 원의 천자를 정점으로 한 천하 질서 내에서 제후()라는 본분을 다하고 있다는 식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정당화하였다이는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를 경과하면서 더욱 내향적·자기 신념적 면모를 강화해 나갔다.

「성지(聖旨)를 통해 본 여말선초의 정치·외교환경」(이명미)은 황제의 말씀즉 성지(聖旨)가 고려 혹은 조선의 정치에서 작용하는 양상을 통해 고려 말 조선 초의 정치·외교 환경이 갖는 연속적인 측면을 살펴본 것이다중국 황제가 고려의 내정 문제를 언급하고그 성지가 고려 정치에서 실제로 작용한 것은 원 복속기에 처음 발생한 현상이다이 현상은 명과의 관계에서는 변화를 보여명 황제권은 고려 혹은 조선의 내정 문제에 직접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다그러나 고려 말 조선 건국 세력은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명 황제권을 소환했고명 홍무제의 성지는 해석의 과정을 거쳐 폐가입진(廢假立眞)’이라는 조선 건국의 명분을 제공했다.

「몽골제국의 붕괴와 고려-명의 유산 상속분쟁」(정동훈)은 고려가 명나라와 공존하던 25년 동안 어떤 식으로 관계를 설정하였는지 검토하고 있다몽골제국은 이전 시기의 송·금에 비해 중국의 크기를 키우고 위상을 높여놓았고명은 이를 고스란히 계승하고자 하였다고려는 의례적 차원에서 과거 몽골제국에 보였던 공순한 자세는 그대로 취했지만영토나 인구 등 실질적 사안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자신의 이권을 챙기고자 하였다. 1388명의 철령위 개설과 이에 반발한 고려의 요동 공격 시도는 그 갈등이 폭발한 장면이었다결국 양국은 의례적 차원에서는 양자의 상하관계를 엄격히 밝히고실질적 차원에서는 관할 영역과 인구를 분명히 가르는 방식으로 유산 상속 분쟁을 마무리지었다이렇게 마련된 양국 관계의 기본 틀은 이후 조선-명 관계에서도 대체로 준수되었다.

「고려·조선의 국제관계에서 역서가 가지는 의미와 그 변화」(서은혜)는 역서의 반사 양태를 통해 원-명과 고려-조선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했다조선의 역서 편찬에서 보이는 가장 큰 특징은 조선이 천자국의 시간질서를 따라야 한다는 관념하에 중국에서 반사한 역서와 완전히 동일한 역서를 편찬하고자 했다는 점이다그 전제는 중국으로부터의 정기적인 역서 반사 시행이었다정기적인 역서 반사는 몽골 복속기에 처음으로 시행되었다여말선초 시기에 명은 고려국왕을 책봉하고 정기적으로 역서를 반사하고자 했으나 양국관계의 악화로 인해 현실화되지 못했다영락제 즉위 후 매년 역서를 반사해주는 것을 제도로 삼았다이에 조선은 천자국의 시간질서를 따라야 한다는 관념을 역서 편찬에서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근대 신화와 우상의 탄생

거북선이 잠수함이 된 까닭은?

 

근대 우상과 신화의 탄생을 주제로 하는 기획연재는 이번호를 시작으로 앞으로 매호 1~2편씩 연재를 이어갈 예정이다이번호 거북선-잠수함론을 시작으로 허황한 소문이 역사적 사실로 둔갑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우상과 신화 탄생의 배경과 그 실체그리고 그 뒤에 감춰진 한국 근대의 속살을 살펴보고자 한다.

기억의 독점은 과장과 왜곡을 낳는다특히 민족’ 이야기라는 거대서사를 창출하는 과정에서이를 주도하는 권력과 지식인들은 민족’ 혹은 국가의식의 창출을 위해 구미에 맞도록역사를 활용한다거북선이 잠수함이라는 신화는 3·1운동 직후 한국의 민족주의가 한국인들의 문화적 역량을 입증해 보이려는 과정에서 창출되었다최초의 시작은 철갑선이라고 해야 할 것을 철갑잠항정이라고 몇 글자 더해 번역한 것에 불과했다그러나 매체와 매체를 건너 전하면서오역은 확신에 찬 민족주의적 감성과 결합했다학술적 검증은 물론이고 상식적인 의문조차 거치지 않은 채거북선-잠수함론은 의심할 수 없는 역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이제 잠수함 거북선의 역사가 생생하게 날조되었다자연스럽게 이순신은 위대한 과학 영웅으로 재조명되었고발명 천재 이순신의 일화들이 스스럼없이 만들어졌다거북선-잠수함의 신화는 해방 이후에도 바로 사라지지 않고 반세기 이상 한국인들의 민족주의적 감성을 자극하며 떠돌아 다녔다이는 민족주의적 역사가 어떻게 가공되고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며 확산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차례 

 

책머리에 항산항심(恒産恒心) / 박태균

특집조선 건국 다시보기연속성의 관점에서 본 왕조 교체 ② 세계인식과 국제관계

13~15세기 천하질서하에서 고려와 조선의 국가 정체성 최종석

성지(聖旨)를 통해 본 여말선초의 정치·외교 환경 이명미

몽골제국의 붕괴와 고려-명의 유산 상속분쟁 정동훈

고려·조선의 국제관계에서 역서가 가지는 의미와 그 변화 서은혜

시론 사드(THAAD)와 한국 보수주의의 중국인식 김희교

대담 한국전쟁과 동아시아 냉전 체제 션즈화·정근식

특별기고 10년 전의 기억새로움을 위한 제언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5·18 조사 활동과 평가 노영기

기획연재근대 우상과 신화의 탄생 

발명왕 이순신과 잠수함이 된 거북선민족주의 신화의 형성과 확산 이기훈

반론 왜 백성의 고통에 눈을 감는가광해군 시대를 둘러싼 사실과 프레임 오항녕

역비논단 군함도산업유산과 지옥관광 사이에서 한정선

박정희 시대 빙과열전(氷菓熱戰) / 이은희

인조의 대중국 외교에 대한 비판적 고찰 조일수

스탈린 외교를 바라보는 한 시각, 1927~1953 / 노경덕

서평 군인 박정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박태균

―『Park Chung Hee and Modern Korea: The Roots of Militarism, 1866~1945』(Carter J. Eckert, Harvard University Press, 2016)

일제하 개신교와 독일 가톨릭 선교 이용일

―『Koloniale Zivilgemeinschaft. Alltag und Lebensweise der Christen in Korea(1894-1954)』(You Jae Lee, Frankfurt a.M.: Campus Verlag, 2017)

반지성주의와 지식인의 한계 박진빈

―『미국의 반지성주의』(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유강은 옮김교유서가, 2017)

역사교육에서 시민교육의 길 찾기 김한종

―『역사는 왜 가르쳐야 하는가민주시민을 키우는 새로운 역사교육(키쓰 바튼·린다 렙스틱 지음김진아 옮김역사비평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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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2017년 10월 20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 관한 최종 권고안을 의결해 발표했다. 건설 재개를 최종 선택한 비율이 59.5%, 건설 중단은 40.5%였다. 공론화위원회는 정부에 핵발전소 건설 재개를 권고했고, 정부는 곧 건설 재개를 선언했다.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은 다양한 입장에서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핵발전소 건설 재개라는 결과만 가지고 ‘승리’ 혹은 ‘패배’로 단정할 수도 있겠고, 결과가 도출되는 과정에서 모색된 ‘집단지성’ 혹은 ‘숙의민주주의’에 주목할 수도 있겠고, 과연 이 문제가 ‘공론화’의 대상인지에 대해 ‘엘리트주의’는 물론 그 대척점에 있는 ‘피해주민의 당사자성’에 기반 해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겠고, 환경 문제의 해결을 ‘규범화’ 했다는 차원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공론화위원회 활동 과정에서 핵발전소 건설 재개에 대한 찬성과 반대 비율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관심의 대상 중 하나다. 9월 13일 시민참여단 500명이 구성되었을 때 건설 재개에 대한 의견은 찬성 36.6%, 반대 27.6%, 판단유보 35.8%였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10월 20일 최종 권고안 발표 때의 비율은 찬성 59.5%, 반대 40.5%였다. 산술적으로만 보았을 때 약 1달 사이에 판단유보 35.8% 중 22.9%가 찬성을, 12.9%가 반대를 선택한 것이다. 공론화위원회 활동이 찬반 양측의 지속적인 토론과 설득 과정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결과는 토론과 설득에서 찬성 측이 반대 측에 우위를 점했음을 보여준다.

 

더 많은 지지를 얻었다는 것이 결코 그것이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왜 반대 논리가 찬성 논리에 밀렸는가는 반드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 진보 언론이 시민참여단 10명을 선별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공론화위원회 활동 중 가장 큰 문제로 ‘팩트 체크 없음’이 꼽혔다. 공론화위원회에서 찬반 양측은 수많은 상반된 데이터를 제시했는데 특히 찬성 측의 데이터 공세가 집요했다. 문제는 이를 제대로 검증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에 있다. 이 경우 데이터 공세에서 기선을 잡은 측이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다. 반대 논리가 설득력이 떨어졌던 데에는 이러한 데이터 싸움에서 밀린 것이 크게 작용했다.

 

역사학과 관련해서도 데이터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근현대사 연구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식민지근대화론’은 수많은 계량적 데이터를 제시하며 기존 역사학계의 민족주의 역사인식을 비판했다. 그리고 일정한 영향력을 획득했다. 보수 정권을 등에 업고 식민지근대화론은 그 힘을 ‘교과서’로까지 확장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는 성공할 수 없었다. 1차적으로 역사 왜곡을 막으려 했던 시민사회의 적극적 대응 덕분이었지만, 이에 더해 역사 연구자들이 역사의 수많은 구체적 사례들을 근거로 식민지근대화론의 데이터와 이에 기초한 그들의 논리를 설득력 있게 반박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식민지근대화론의 공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근대화’, ‘개발’, ‘발전’ 그 자체를 문제시하며 복잡하고 모순된 한국근현대사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면서 대안적인 역사상을 모색하는 역사 연구자들도 점차 늘어났다.

 

『역사문제연구』 38호의 특집 ‘식민지 개발과 조선사회 되묻기’ 역시 이러한 모색의 결과물이다. 한국사회의 ‘개발 경험’에 대한 대안적이고 세밀한 역사를 서술하자는 데 의기투합한 일군의 젊은 역사 연구자들은 그동안 식민지 조선에서 벌어진 ‘개발’ 경험에 대해 지속적인 공동연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국정교과서’ 간행 시도에 맞서는 과정에서 결성된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내 학술 팀으로 전환하여 지난 2017년 8월 학술대회를 가졌다. 이번 특집에 실린 3편의 논문은 이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원고를 수정 보완한 것들이다. 패기 있는 젊은 연구자들의 연구답게 식민지 조선의 사회경제에 대한 ‘수탈’과 ‘발전’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을 지양하고, 식민지시기 개발 양상과 사회경제상을 다각도로 분석하고자 했다. 또 이를 통해 한국의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성찰과, 개발의 시대에 형성된 관행에 대한 비판을 시도했다. 각 논문의 완성도에 편차가 있으나 식민지 조선 사회는 물론 오늘날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한 개발 신화, 개발 이데올로기를 설득력 있게 극복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구체적인 특집의 문제의식 소개와, 식민지시기 ‘토건’, ‘철도’, ‘수도’ 문제를 다룬 특집 논문 3편의 내용 소개는 특집 맨 앞에서 제시한 ‘소개글’로 대신하겠다.

 

『역사문제연구』의 히트상품(?)이라 할 수 있는 ‘저작비평회’의 경우, 이번에는 기존과 달리 2권의 책, 이정선의『동화와 배제 - 일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역사비평사, 2017)과 소현숙의 이혼 법정에 선 식민지 조선 여성들 - 근대적 이혼제도의 도입과 젠더』(역사비평사, 2017)를 함께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했다. 최근 역사학계의 여성사(젠더사) ․ 가족사 분야에서 주목할 성과들을 제출하고 있는 두 연구자가 자신의 박사학위논문을 바탕으로 한 저작을 연이어 간행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두 책을 묶어서 ‘한국의 여성사’ 전반에 대한 논의를 해보자는 것이 애초 의도였다. 하지만 두 책이 각자 개성이 강하고 무엇보다 각 책별로 중요한 내용들이 많아, 제한된 시간 동안 두 책을 함께 묶어 논의하는 것 자체에 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학의 하위부문으로 ‘여성사’가 아니라 역사학의 패러다임을 전복하는 방법으로서 ‘여성사’의 필요성과 가능성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자리였다. 특히 여성(젠더) 관련 정책의 규정력(모순까지 포함)과 당사자로서 여성 주체의 능동적 힘 사이의 긴장관계는 앞으로 보다 천착될 필요가 있겠다. 진솔하고 성실하게 저작비평회에 임해주신 저자, 토론자, 사회자 그리고 자리를 가득 메워주신 청중 등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번 38호에는 저작비평회와 별도로 2권의 책에 대한 서평을 게재했다. 대상 서적 중 하나는 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반과 일본의 아시아민중사연구회가 공동으로 간행한 『민중경험과 마이너리티』(경인문화사, 2017)이고, 다른 하나는 박근호의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 정책 없는 고도성장』(회화나무, 2017)이다. 김성보는 『민중경험과 마이너리티』에 대한 서평에서, 최근 한일 양국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에 있는 ‘민중사’ 연구의 독특한 구별 양상을 지적하고, 특별히 ‘민중의식의 독자성 여부 및 그 사회적 토대’ 문제와 ‘민중의 폭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를 쟁점으로 제시했다. 김보현은『박정희 경제신화 해부: 정책 없는 고도성장』에 대한 서평에서, 경제성장의 인과성에 초점을 맞춘 저작의 패러다임이 경제성장의 규범적 이해를 암암리에 전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경제성장은 단지 ‘필요하고 좋은 것’이라는 성장주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시켜야 박정희 정부 시기의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술 서적의 간행은 물론 서평이 부재한 시대에, 꼼꼼하고 날카롭게 서평을 해 주신 두 분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연구논문으로는 모두 5편의 논문이 실렸다. 박형진의 「1930년대 아시아적 생산양식 논쟁과 이청원의 과학적 조선학 연구」, 김선호의 「북한 보안간부훈련대대부의 간부구성과 당·군의 정치연합체제 출현」, 이선우의 「한국전쟁기 거제도수용소 내 ‘친공포로’의 저항과 딜레마」, 김아람의 「1950년대 후반~60년대 전반 정착사업의 변천 과정과 특징」, 유경순의 「노동조합의 지도력과 젠더정치: 청계피복노조의 여성지도력 형성시도와 좌절(1970-1987)」이다. 지면 관계상 각각의 내용 소개는 생략하겠지만, 모든 논문이 그동안 연구 시야에 잡히지 않았던 한국근현대사의 중요 지점들을 짚어내고 있다는 점만은 강조하고자 싶다.

 

많은 분들의 참여와 도움 덕분에 이번에도『역사문제연구』를 나름대로 알차게 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냥 ‘우리 끼리’ 읽고 자족하는 학술지로 머물기를 바라지 않는다. 역사학계는 물론 비슷한 대상과 주제를 연구하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설득력 있는 학술지가 되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사회 전반에 설득력 있는 역사 지식과 인식을 제공하는 매체가 되었으면 한다.『역사문제연구』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한국근현대사의 복잡하고 중층적이며 모순적인 모습을 보다 구체적이고 성찰적으로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 그 길에 많은 응원과 질정(叱正)을 부탁드린다. (오제연)

 

목 차

특집 식민지 개발과 조선사회 되묻기

식민지 토건업자의 ‘과점동맹’ : 1920~30년대 초 조선토목건축협회 연구/고태우

1930년대 조선총독부의 사설철도 매수 추진과 특징/박우현

수돗물 분배의 정치경제학 : 1920년대 경성의 계층별 수돗물 사용량 변화와 수돗물 필수재 담론의 정치성/주동빈

저작비평회

한국의 여성사 연구, 어디까지 왔나? 내선결혼 정책의 자기모순과 이혼소송에 나선 여성의 주체성

- 이정선, 『동화와 배제 - 일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역사비평사, 2017)

- 소현숙, 『이혼 법정에 선 식민지 조선 여성들 - 근대적 이혼제도의 도입과 젠더』(역사비평사, 2017)

연구논문

1930년대 아시아적 생산양식 논쟁과 이청원의 과학적 조선학 연구/박형진

북한 보안간부훈련대대부의 간부구성과 당·군의 정치연합체제 출현/김선호

한국전쟁기 거제도수용소 내 ‘친공포로’의 저항과 딜레마와 폭동/이선우

1950년대 후반~60년대 전반 정착사업의 변천 과정과 특징/김아람

노동조합의 지도력과 젠더정치- 청계피복노조의 여성지도력 형성시도와 좌절 (1970~1987)/유경순

 

서평

민중의 민낯을 직시하기, 그리고 한 번 더 생각하기-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반·아시아민중사연구회, 『민중경험과 마이너리티』(경인문화사, 2017)/김성보

정말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하다!-박근호, 김성칠 역,『박정희 경제신화 해부: 정책 없는 고도성장』(회화나무, 2017)/김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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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혁명을 1980년대에 묻다

- 1980년대 혁명을 꿈꾸었던 사람들에게 러시아혁명은 어떤 의미였을까?

 

집담회는 1980년대 혁명을 꿈꾸었던 사람들에게 러시아혁명을 묻는다.

한국사회에서 1980년대는 뜨거웠던 시절로 기억되지만 2017년 현재의 관점에서 뜨거웠던 시절의 급진적 부분들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졌다.

그 이유를 87년 항쟁의 한계로 보든, 1990년대 초반 동구권 붕괴의 결과로 보든한국사회의 변화로 보든 ‘혁명’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잊혀진 이름이 되었다.

혁명을 꿈꾸었던 사람들에게 러시아혁명은 어떤 의미였을까? 1980년대를 상징하는 광주항쟁은 실제로 혁명운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1980년대의 혁명운동과 혁명사 수용방식그리고 현재의 평가를 함께 나눠본다.

 

 

일시 : 2017 11 25() 14:00

장소 : 역사문제연구소 5층 관지헌 (제기동역 1번 출구도보 3)

 

발제 : 이진경(수유너머 104), 최민(다음시대연구소)

서면발제 : 황광우(작가)

사회 : 전원배(역사문제연구소)

 

 

*패널소개

 

최민(발제)

1980년대 남한 자생적 사회주의운동의 조직가이자 이론가. 70년대 말부터 급진적 민주화운동 내부의 노선투쟁에 참여하여,

서울의 봄 회군을 둘러싼 "주전파-주화파논쟁, "무림-학림논쟁, "CNP" 논쟁 등을 가장 비타협적인 입장에서 이끌었으며제헌의회 그룹의 '총책'으로 활동했다.

장애인운동으로 눈을 돌려 장애인 노동권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썼으며사회적 기업과 같은 현실의 요구를 받아안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이진경(발제)

1987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며 혜성과 같이 등장했던, 1980년대 남한 학생운동이 배출한 이론가로서 이른바 "PD"계열 비합법 조직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다.

전통적 좌파 이론을 지양해 포스트 이데올로기를 소개했고, <철학과 굴뚝청소부>, <맑스주의와 근대성>, <노마디즘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현재 수유너머104에서 활동하며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황광우(서면발제)

대학 제적 후 야학활동을 거쳐 노동자의 길을 걸으며, "광주 너머"를 모색했다. 80년대 초반부터 "정인"이라는 필명으로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등의 대중교양서적을 펴냈고,

훗날 민주노동당으로 상징될 진보정당운동에 이론적-조직적 기반을 제공한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의 핵심 이론가로서 활동했다.

현재 광주 고전연구원에서 교사주부학생들과 함께 고전을 읽고 있으며, <철학 콘서트외 많은 저서를 펴냈다.

 

전원배 (사회)

1987년 여름 출소 후 노동자대투쟁의 소식을 접하고주저 없이 짐을 꾸려 단신으로 창원으로 갔다.

마창노련을 외곽에서 도왔으며이후 20년 동안 울산에서 노동자의 동지로서벗으로서 살았다. 3년 전부터 역사문제연구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올해 역문연의 연속기획 '혁명'의 대미를 장식할 집담회의 밑그림을 그린 뒤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볼셰비키혁명 100주년의 쓸쓸한 현장을 목격하고 돌아왔다.

세 분의 발제자들로만 대표될 수 없는 1980년대 비합법 조직운동의 다양한 고민을 되새기며 사회를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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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6 13:04 역문연 광장

45 역사문제연구소 토론마당

 

<'정치적 올바름' 혐오 사이에  ‘민주시민’의 역사인식>


 

발표 : 정무용(역사문제연구소)

토론 : 최은혜(인문학협동조합), 이혜인(성균관대학교)

사회 : 김수향(역사문제연구소)

 

일시 : 2017 11 8 수요일 오후 7

장소 : 역사문제연구소 5 관지헌 (제기동역 1 출구도보 3)

 

*기획취지

2016 가을부터 시작된 ‘촛불’ 정국이 대선  종결되었음에도많은 논평자들이 지적하듯 우리는 여전히 혐오 만연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각종 혐오 발언들 한편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혹자는 이를 두고 ‘정치적 올바름’이 유발하는 혐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시민들의 역사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예외는 아닌 듯이 보인다‘민주시민’이라면 모름지기 가져야  덕목인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보이는 태도에서 말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혐오’ 시대에 역사인식은 어떠한 잣대가 되어가고 있는가우리는아니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일까그냥 무시하면 되는 것일까아니면 적극적으로 맞서 ‘키배’를 떠야 하는 것일까

 

다른 방법은 무엇일까물론 결론은 없겠지만여러 사람이 가진 저마다의 현상에 대한 진단과 대처 방법을 듣고 지혜를 모으면 뭔가 답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한 기대와 함께 많은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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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제연구소 2017년도 정기 심포지엄 “혁명의 젠더, 젠더의 혁명”에 초대합니다.


    2017년은 87 6월 항쟁 30주년이자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부터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작년 한국 사회는 ‘촛불혁명’을 통해 정권 교체를 실현했습니다.

    그러나 혁명의 진실은 혁명의 완수/종결에 있지 않습니다. 역사 속 혁명은 늘 상상되었고

    시도되었고, 억압받았고, 그럼에도 지속되어 왔습니다그리고 애초 ‘혁명’ 그 자체가 그러하듯

    , 혁명은 늘 사회에 더 많은 갈등과 쟁투를 만들어냅니다.

    2017년 역사문제연구소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어제와 오늘의 혁명 역사를 젠더라는 프리즘을 

    통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혁명이 젠더와 만날 때 혁명 속 젠더는 어떻게 실천됐고, 재현되는지, 이를 통해 젠더 혁명은 

    떻게 지속되어 왔는지를 살펴보는 자리를

    2017년 역사문제연구소 정기 심포지엄을 통해 조명해보려 합니다. 바쁘시더라도 참석하시어 

    혁명이라는 ‘빛나는’ 시간이 가려 있던 ‘젠더’를 만나는 시간에 함께 해주십시오.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김성보

     

    *일정*

    12:20~12:30 

    개회사 : 김성보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12:30~14:00 1부 혁명과 반혁명 그리고 젠더 

    사회 : 한봉석 (역사문제연구소)

    12:30~12:50 

    1950년대 세계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남한에서의 젠더적 재현 양상 

    발표: 김도민 (역사문제연구소)

    12:50~13:10 

    여대생들, 거리에 서다 – 4.19 혁명과 6.3항쟁 당시 여대생의 참여와 그 의미

    발표: 오제연 (성균관대학교)

    13:10~13:30 

    5.16 군사쿠데타 이후의 유흥업 재편과 1960년대 유흥업 현장 

    발표: 김대현 (연세대학교)

    13:30~14:00 

    토론: 이민영 (서울대학교), 허윤 (이화여자대학교)

    * 휴식 (14:00~14:10)

    14:10~15:10 2부 사회주의 실험과 젠더 

    사회 : 한봉석 (역사문제연구소)

    14:10~14:30 

    지분과 유산 – 식민지 여성 사회주의자의 자기서사

    발표: 장영은 (성균관대학교)

    14:30~14:50 

    중국 사회주의의 성역할 타파 실험 – 사회주의 고조기와 대약진운동기를 중심으로 

    발표: 장수지 (연세대학교)

    14:50~15:10 

    토론: 류진희 (성균관대학교)

    * 휴식 (15:10~15:20)

    15:20~16:20 3부 혁명과 젠더 경험 

    사회: 이기훈 (연세대학교)

    15:20~15:40 

    198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혁명’ 경험: 순영언니의 고통과 용기 

    발표: 장미현 (역사문제연구소)

    15:40~16:00 

    광장의 페미니즘, 그 이후 

    발표: 오혜진 (성균관대학교)

    16:00~16:20 

    토론: 김아람 (역사문제연구소)

    * 휴식 (16:20~16:30)

    16:30~18:00 4부 종합토론 

    사회: 이기훈 (연세대학교)

    - 서울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 1번출구에서 도보 3분 거리입니다. 주차공간이 협소하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세요

    - 별도 신청 없이 누구나 오실 수 있습니다설명: 설명: https://www.facebook.com/images/emoji.php/v9/f9b/1/16/1f33c.png🌼 정기심포지엄 발표에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석 바랍니다.

     


    포스터디자인검은네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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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제연구소 2017 연속기획 '혁명' : 특강
    <전공투: 대안적 앎의 공간> 신청이 열렸습니다!


    * 일시: 2017년 9월 26일(화) 19:00
    * 장소: 역사문제연구소 5층 관지헌
    * 참가비: 10,000원 (자료 및 간식 제공)

    * 참가신청 방법

    참가신청 양식 https://goo.gl/forms/up4LMnbo4GjQ7SHB3 을 작성하시고, 해당 금액을 「신한은행 100-012-850436 예금주:역사문제연구소」 로 입금해주세요. 입금확인 후 최종 등록됩니다. 신청 후 3일 내에 입금이 확인되지 않으면 참가 신청이 자동 취소되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신청자명과 입금자명이 다를 경우 반드시 알려주세요. 
    ※ 전화와 메일로도 신청 가능합니다. 
    ※ 환불규정 : 참가신청 취소 및 환불은 강의 전날까지만 가능합니다. 환불 시 이체수수료 발생하는 경우 수수료를 제하고 환불됩니다.

    * 강사 :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지난 세기에 한국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한국 현대사를 전공했으며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나키즘과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다. 대표논저로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역사비평사, 2012), 옮긴 책으로 『번역과 주체』(이산, 2005), 『다미가요 제창』(삼인, 2011) 등이 있다.

    * 기획 의도:

    이른바 '68혁명'이후 반세기가 지났다. 세계를 휩쓴 '1968'의 흐름은 박정희 정권 하의 당시 한국에서는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못했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달랐다. 일본에서 ‘68’은 전공투라는 형태로 나타났고, 그 운동은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 전반에도 강한 영향을 미쳤다.

    90년대 이후, 뒤늦게 68혁명의 영향 아래 등장한 여러 사상적/문화적 흐름들이 한국에 소개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전공투 운동의 경우 상세한 연구나 분석보다는 주로 서브컬쳐적 형태의 파편화된 이미지들로 알려져 있는 상황이다. 일본 내의 각종 매체에 의한 진압과정 중계나 후대 세력의 폭력성에 초점을 맞춘 선정적 보도, 그리고 마스크와 헬멧을 쓰고 각목을 든 채 부수고 점거하는 이미지로 주로 기억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공투 운동은 2017년 현재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될 수 있을까? 이 기억은 어떻게 현재의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전공투 운동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은 ‘자기부정’이다. 그런데 이것은 막연하게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어떤 곳인지 철저하게 검증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도쿄대 전공투의 발단이 된 것은 의대의 인턴 문제로, 대학의 권위주의적 위계구조와 노동 착취가 그 시작이었다. 어떤 점에서 운동의 중심은 ‘대학생’이 아니라 대학 구조 내의 말단 연구자들이었고, 이들의 문제의식은 근본적인 "자기부정", 연구자란 무엇인가 하는 자기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앎의 모색을 가로막고 있는 제도로서 대학을 해체하자고 주장했다.

    지금 이 사회의, 대학이라는 제도 내에서 연구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약 반세기 전에 제기된 대학에 대한 질문들을 다시 불러내면서 대안적인 앎이 어떻게 가능할지 함께 고민을 나누어보고 싶다.

    +++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2017.09.07 13:29 연구소 소식

    역사문제연구소 인권간담회
    도시개발과 인권 – 청량리 재개발과 성매매집결지 여성의 삶

    강연 : 고진달래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
    일시 : 2017년 9월 18일(월) 저녁 7시
    장소 : 역사문제연구소 5층 관지헌 (제기동역 1번 출구)

    역사문제연구소가 올해 인권간담회를 개최합니다. 지난해에는 연구소 동네인 제기동의 서울발달장애인훈련센터 설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올해에도 우리 동네의 변화와 인권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서울 북부지역은 재개발이 지금도 한창 진행 중입니다. 청량리 지역은 ‘588’로 불렸던 성매매 집결지 혹은 여성들의 삶의 공간이 철거되었습니다. 한편, 여전히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용두동에 터전을 두고서 성판매자 지원과 연구를 하고 있는 ‘이룸’이 청량리 재개발 지역에 사는 여성들과 만나고 대안을 모색 중입니다. 이룸과의 간담회를 통해 도시개발이 초래하는 인권 침해의 문제, 성매매 집결지와 여성들의 삶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의 참석을 환영합니다!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2017년 연속기획 <혁명>

    영화와 대담 : 혁명과 영화

    파업전야 (이은, 이재구, 장동흥, 장윤현 감독. 1990)

    영화제작소 장산곶매의 두 번째 작품.

     

    “‘파업전야’는 1987년 인천 남동공단을 배경으로 노동조합 결성을 둘러싼 노동자와 회사 

    간 대결 양상을 그리고 있다. 실제 공장과 파업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촬영하여 

    노동운동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정부로부터 상영 금지 처분을 당하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순회상영되는 동안 상영현장인 캠퍼스에 최루탄이 터지고 

    전경이 투입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대학생들은 전투조를 만들어 

    영화의 상영을 지켜냈다. 이렇게 전국 30만 관객을 동원

    이로 인해 이 영화가 몰고 온 파장은 독립영화계의 중요한 획을 그은 사건이 되었다

    또한 주류 상업영화는 아니지만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 한국영화 운동이 

    한국사회와 어떤 영향관계를 주고받았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작품의 

    하나이기도 하다.

     

    - 상영일시 : 2017 9 8() 오후 7

    - 상영장소 : 역사문제연구소 관지헌 (1호선 제기동역 도보 3)

    - 상영 후 토크 패널 : 이은(감독), 장미현(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 참가비 : 1만원(술과 다과 제공, 후원회원 20% 할인)

     

    지난 금요일 알콜상영회도 성황리에 진행되었고, 이번 상영회도 입장시 

    맥주와 안주를 드린다고 합니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석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