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22 11:46 역문연 광장

본 글은 연구소 회보 59호 창립 30주년 기념호에 실린 기사 중 하나입니다. 

연구소 회보는 연구소 후원회원들을 대상으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의 글들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합니다. 



기획모임 이야기

내 안의 차별과 폭력을 넘어서

김아람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위원회 초대위원장

 

  회보 원고를 쓰는 지금의 머릿속은 ‘차라리 논문이 낫지’, ‘왜 나는 펑크 낸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한편, 이 생각들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되고,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우선, 논문보다 어렵게 느껴지고 부담이 되는 것은, 내 주위에 적어도 네 명이 회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고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역사비평과 역사문제연구는 그렇지 않지만 회보는 어느 한 편 빼지 않고 정독한다. 요즘 논문의 독자가 심사위원 세 명 뿐이라는 씁쓸한 말을 떠올리면 회보에 내는 글을 많은 분들이 읽어주신다고 할 때 그 의미는 부담만큼 값지다고 생각한다.

 

  작년 오늘, 어떤 기획안을 쓰고 있었다. 연구소 연구원들이 관심 있는 회원이나 외부 분들과 함께 공부할 모임을 꾸려보기로 했다. 야심차게 시작한 기획모임의 대주제는 ‘차별과 폭력의 역사를 넘어서’. 그간 우리의 역사와 현실에서 차별과 폭력의 경험을 복원하고, 주체들의 삶과 운동에 대해 고민해보자는 취지였다. 연구원들의 뜨거운 관심으로 이주, 장애, 빈곤, 질병 등 여러 주제가 추천되었으나 그 첫 세션은 ‘섹슈얼리티’였다. 기획모임의 대주제가 정해진 계기가 2014년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 무산 과정에서의 성소수자 운동에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회보와 역사문제연구 33호에 그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공부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을 안고 출발하여 10회에 걸쳐 책과 영화, 공연을 함께 보았다. 한국에서 성소수자의 삶은 어떨까, 서구 역사 속 성소수자 운동은 한국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질까, 현재 한국에 급속하게 들어오고 있는 서구 이론의 흐름은 한국의 현실과 어떻게 만날까 등등에 대해 토론하고 나면 우리 모임이 주축이 되어 섹슈얼리티에 관한 한국의 경험과 현실을 역사적으로 규명하자는 목표는 그리 멀리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모임이 내게 의미 있는 데에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사랑이다. 오해마시라. 모임 안에서 애인이 생긴 것은 아니다. 기획모임에는 다른 성적 지향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모였고, 각자의 사랑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나의 사랑과 욕망에 솔직할 때, 서로의 취향과 경험을 존중할 때, 섹슈얼리티의 어떠한 이론이나 운동, 역사도 더욱 진지하고 심각한 문제로 다가왔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나의 성적 지향은 언제, 어떻게 생겼을까, 이성과 욕망이 충돌할 때 나는 어떻게 해왔나, 사랑하는 사이에서 나는 어떠한 사람이었나 하는 의문들이 계속 이어졌다. 성적인 문제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결국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고민하지 않은 채로 사회의 차별과 혐오, 폭력을 설명하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랑에, 사람에 여러 갈래의 기준을 세워두고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인권을 존중하고, 차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너무나 쉽고 당위적으로 사고하지 않는지. 

 

 

 

    모임이 즐거웠던 다른 이유 하나는 내 친구 이야기다. 친한 친구인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심정은 무척 복잡했다. 세미나 뒤풀이나 논문 마감이 아니고서 잠이 오지 않는 날은 처음이었다. 내게 직접 커밍아웃한 것이 아니었다. 왜 내게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나와 친한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왜 알지 못했을까? 하는 질문들의 바탕에는 서운하다는 감정이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전히 내 욕심뿐이었다. 

    곧 이어진 생각들은, 모르던 때에 실수한 것이 없을까?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까? 그는 계속 친구가 되길 원할까? 나는 어떤 친구가 되어야 할까? 였다. 그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는데 나는 관계가 변화될 수 있거나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복잡한 생각과 질문들은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달라진 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좋은 점이 많아졌다. 헤어진 애인이나 마음에 드는 사람 사진을 공유할 수 있게 된 것, 기획모임에서처럼 서로의 사랑과 욕망을 더욱 편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된 것, 구질구질한 내 얘기도 들어주고 공감해준 친구에게 이제 나도 그의 삶을 ‘그대로’ 알고 서로 응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소하고도 나름대로는 심각한 생각들을 그간 기획모임을 통해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나의 사적인 성과였을지도 모르겠다. 새로 다시 시작할 모임에서는 보다 ‘역사’에 충실해야하지 않을까 첫 목표를 상기하고 있다. 물론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 나의 친구, 나의 역사에서 출발하여 우리의 역사까지 고민하기를 원하는 분들이라면 새로운 모임에 함께 하시길! 

 

    기획모임이 생겨난 것의 한편에서 연구소도 의미 있는 변화를 맞이할 예정인데, 바로 인권위원회다. 기획모임은 관심 있는 연구원들이 주도하였지만 인권위원회는 그렇지 않다. 연구소 내에서 구성원끼리 서로 더욱 존중하길 바라고, 인권이 ‘나의 문제’로 진지하게 고민되길 원하며, 그러한 역사 연구를 모색하려는 연구원 전체의 뜻이 모아진 결과이다. 그런 점에서 기획모임과 인권위원회는 공통적으로 나 자신,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해와 그 노력을 하려는 것이자 새로운 관계와 연대를 조심스럽게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이제 ‘왜 나는 펑크 낸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까’로 돌아가면, 그 답은 내가 전영욱 전사무국장님에 대해 생각한 관계 문제였던 것이다. 30주년 행사 준비로 밤새는 사무국장이 마감 독촉 연락을 하면서도 내 논문을 걱정하며 “더 중요한 게 있을 텐데 미안하다”고 하는데 약속을 못 지키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약간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연구소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관계 의식이 과거와 현재의 차별과 폭력, 인권 문제를 자각해 가는 출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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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