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22 11:43 역문연 광장

 

본 글은 연구소 회보 59호 창립 30주년 기념호에 실린 기사 중 하나입니다. 

연구소 회보는 연구소 후원회원들을 대상으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의 글들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합니다.


 

 

역·사·비·평을 생각한다

 


정병욱
前 『역사비평』 편집주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1 .
  지난 2012년 대선이 끝난 뒤 많은 비판과 회한이 뒤따랐다. 그 중 한 정치학자의 말이 한동안 머리에 맴돌았었다. 

 

     “……야권의 지식인들 역시, 역사의 후퇴를 막아야 한다거나 역사에 죄를 짓는다는 식으로 겁박하지 않았어야 했다. 역사와 옳음을 앞세우는 일은 민주적 태도와 양립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박상훈, 「선거 이후」, 『경향신문』 2012년 12월 21일자)

 

 

  당시 『역사비평』 편집주간이었던 나는 필자에게 연락하여 원고를 청탁했다. 그의 생각을 들어보고, 이를 기회 삼아 역사와 현실, 역사학의 실천에서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청탁은 성사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위의 지적에 대해 왈가불가하고 싶지 않다. 다만 역사를 앞세운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의제가 너무 빈약해 그렇게 보였던 것은 아닌지 말해두고 싶다. 현실의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의제들이 빈약했다. 집권당에 의제를 선점 당해서 졌다는 선거 평은 반대편의 의제 설정이 얼마나 부실했는지 반증해준다. 암튼 편집주간이 ‘현실’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고, 별로 읽지 않던 신문도 읽어야 하는 민감한 자리라는 점에서 지난 대선의 기억이 새롭다.

 

  역사를 무기로 현실에 개입하는 실천은 『역사비평』의 전통이다. 이 전통이 싫거나 틀렸다고 생각하면 다른 잡지를 보거나 만들면 되지 이 전통 자체가 문제인 단계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전통이든 실천이든 끊임없이 갱신하지 않으면 질곡이 된다는 점이다. 역사문제연구소가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글을 청탁한 이유도 아마 『역사비평』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현재 어떠한 갱신과 실천이 필요한지 고민하기 위함이리라. 


  이에 대해서 나는 『역사비평』 100호 발간 즈음해서 부족하나마 답을 했다. “‘실천’에 관해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수구냉전세력과 기억투쟁, 역사전쟁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실천의 전부는 아니라 점이다. 첫 호부터 내걸었던 “새로운 역사인식의 정립”을 위한 연구에서 제반 활동에 이르기까지 실천은 다양하다.” “현 정부의 퇴행은 역사분야에서도 예외 없이 일어났다. 예전에 비해 기동력 있게 전선을 형성할 매체는 많아졌다. 계간지인 『역사비평』은 전선을 지원할 진지를 구축하면서 장기적으로 역행할 수 없는 기초를 닦는 것이 바람직하다.”(이상 100호 ‘책머리에’에서). “그는 『역사비평』이 역사전쟁·기억투쟁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다양한 진보 담론의 풍부한 수원지로서 ‘후방 진지’ 구실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최원형, 「역사비평 100호…전·현 편집주간에게 듣는다」, 『한겨레』 2012년 9월 5일자). 


  마지막 신문보도는 서중석 초대 편집주간님과 대조해서 나를 소개해 민망했지만, 좀 더 생각을 풀어보면 이렇다. 1987년 창간 이래 『역사비평』이 펼친 기억투쟁과 역사전쟁은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는 것이었고 그 성과는 지금도 빛난다. 사람들이 현대사 책으로 가장 많이 읽는다는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을 펴보라. 수많은 『역사비평』 인용. 나의 고민은 여러 가지 겹쳐진 물음에서 비롯된다. 현재처럼 매체가 다양하고 신속해진 상황에서 느려터진 계간지 『역사비평』은 예전과 다른 방식의 투쟁을 펼쳐야 하지 않을까, 또 그렇게 ‘역사’를 바로 잡고 고쳐 쓰느라 싸워 왔음에도 사람들의 역사인식은 왜 제자리인가 또는 제자리인 것처럼 보이는가. 혹시 우리의 태도나 실천에 조금이라도 ‘겁박’이나 ‘비민주성’은 없었던가. 이러한 물음도 지난 선배들의 고투가 없었다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지금도 상황과 주제에 따라서는 1980, 90년대식 투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런 싸움을 하면서도 다른 차원의 모색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난 편집주간을 맡았던 5년간은 다른 한걸음을 내딛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것을 뒷받침해야 될 학계의 생태계가 얼마나 파괴되었는지 깨닫는 시간이었다. 지난 대선 당시 ‘역사전쟁’을 대표한 <백년전쟁>에 대해 한 신문사의 부탁으로 소감문을 쓴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동조하면서도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중 하나는 ‘박정희 공과론’이 갖는 위험이었다. “경제성장의 주역이냐 아니냐는 물음에 갇힐 경우 긍정이든 부정이든 박정희만 중요해진다. 박정희가 아니라면 다른 주역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다큐는 의도와 달리 경제성장의 숨은 주역으로서 미국만 부각시킨다.……경제성장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견뎌낸 보통 사람들, 조금이라도 배워서 남 준 그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우리의 부모님, 이웃이 경제성장의 주역인 것이다. 학계의 책임도 있다. 땀 흘려 일한 민중이 경제성장의 주역이라는 말은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삶을 실감나도록 연구하고 그들의 고난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재현하는 데 게을렀다.”(「역사전쟁, 최근 5년에 집중하자」, 『경향신문』, 2012년 12월 14일자) 우리는 박정희 신화 비판을 넘어서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주역들을 실감나게 연구하여 그들에게 돌려주지 못했고, 그들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경제성장의 의미를 곱씹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연구가 단시일 내에 ‘바로 잡기’ 식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 과연 게으름 탓일까.


  절망적인 학계의 상황을 알리바이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기억해줬으면 하는 것도 있다. 『역사비평』 편집위원이 중심이 되어 ‘역사정책기획단’을 꾸려 『역사비평』에 ‘전환기의 역사정책’을, 한겨레신문에 ‘역사정책, 미래를 열자’를 연재하고, 『역사를 바꾸는 역사정책 ― 7가지 쟁점과 해법』(역사비평사, 2013년)을 펴낸 일이다. “민주주의 정치 문화와 정의와 연대에 기초한 시민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비판적 역사 인식과 성찰적 역사의식이 필수불가결하고, 이를 위한 정치적 제도적 기반과 사회 문화적 공유의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7가지 분야의 역사정책을 검토하고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해, 민주주의와 평화의 버팀목으로 삼고자 했다. 7가지 분야에 걸친 우리의 주장은 상식적인 것이다. “공적으로 공유되고 전승되는 역사 인식과 역사의식,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사회구성원의 집단적 기억과 역사문화 기구와 제도에는 민주적 절차와 과정이 필수불가결하다. 학문적 성과에 기초한 전문 역사가들의 보조와 협력, 비판과 모니터링의 구조가 분명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몰상식적인 시대에 너무 상식적인 해법이었던가? 그래도 갑작스런 퇴행을 막기 위해서는 이렇게 한 겹 한 겹 논의를 쌓아가야 하지 않을까?


  실천은 다양하다. 생각해보면 사람이란 자신이 속한 시대의 과제를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내기 마련이다. 역사문제연구소와 『역사비평』이 세대 간, 개인 간 연대 속에서 서로 배워가며 보완하는, 다양한 실천이 축제처럼 모이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   

 

 


  2 .
  최근 몇 년 전부터 『역사비평』과 『역사문제연구』가 비슷해졌다는 소릴 자주 듣는다. 『역사비평』의 편집위원, 편집주간도 맡았지만, 『역사문제연구』가 초기에 정기적으로 발간되지 못하던 시절 당시 소장님께 믿고 편집권을 달라 해서 동료들과 힘써 잡지를 본 궤도에 올려놓았다고 자부하는 나로서는 묘한 감정이 든다. ‘역사 전문 대중지’로 출발한 『역사비평』과 본격 학술지로 출범한 『역사문제연구』가 수렴하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역사문제연구』 및 이를 만들고 있는 연구원과 『역사비평』의 관계를 다시 논의해봐야 될 시점이 도래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혹시 두 잡지의 수렴은 연구자의 현실 참여 욕구가 학술 등재지 유지라는 현실의 장벽을 만났을 때 가능한 모범 답안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현실 문제를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몇몇 기획들과 학술적으로 의미가 있는 몇몇 기획들의 조합. 그런데 이런 범생의 답안은 사회적 역사적 의제를 담아내기에 적합한가? 많이 읽히고 반향을 불러일으키는가? 어쩌면 지금은 다른 양식, 좀 더 특화된 틀을 모색하고 실험해야 할 시점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 구상을 말해보면 - 물론 이도 평소 얘기했던 바이다 - 학술적인 역사 연구에서부터 각종 박물관 기념관 등의 역사 전시, 다양한 매체의 역사물(영화, 만화, 소설, TV, 신문, 인터넷 등)을 비평하는, 그야말로 역·사·비·평이 필요한 것 같다. 기존의 서평을 좀 더 전투적으로 바꾸고 이를 연구 성과만이 아니라 역사물 전체로 확대하자. 출판계, 문화계의 사정이 좋지 않다 하지만 역사물은 넘쳐난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소리다. 그에 비해 다양한 역사물에 대한 소개와 비평, 과제와 방향 논의는 부족하다. 

  가끔 어린이, 젊은이들의 국수적이고 배타적인 역사인식을 접할 때 도대체 이런 인식은 어디서 기원하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들이 접하거나 접했던 만화, TV, 인터넷, 아동서적에서 역사는 어떻게 다뤄지는지, 아이들이 미래의 민주적 시민으로 커 가는데 적합한 역사의식을 담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체 각종 아동 역사물을 선택하는 데 신뢰할 만한 소개나 비평서가 있는가? 작금의 환단고기류 역사인식의 발호와 신문의 학술면 보도는 상관관계가 없을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처음 개장했을 때 모두 주목했지만, 지금 무엇을 어떻게 전시하고 기획하고 있는지 아는가? 416 참사 박물관은 만든다면 어디에 어떻게 만들어야 하고, 역사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편집위원이나 연구원 중에도 역사 만화 비평가, 역사 영화 비평가, 박물관 비평가, 아동 역사물 전문가가 나왔으면 좋겠다. 물론 역사학이, 역사가가 판정관 노릇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학문분야와, 각종 매체나 문화 전문가들과 협업은 필수다. 이는 역사문제연구소와 『역사비평』이 초기부터 추구해왔던 노선이 아닌가. 무엇보다 역사에 관한 생산적 논의를 통해 민주주의와 평화의 역사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목적이다. 먼저 인터넷 판으로 시도해 보아도 좋다. 이런 역·사·비·평이야 말로 “역사연구의 대중화와 새로운 역사인식의 정립을 위한 대중 역사지”에 가깝지 않을까.

 

  위는 하나의 작은 예에 불과하다. 새로운 길은 많다. 얼마 전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The Jewish Museum)에 설치된 "낙엽(Fallen Leaves)"를 밟으면서 416 세월호 참사에 희생된 학생들이 생각났다. 메나쉬 카디쉬먼(Menashe Kadishman)이 만든 이 설치미술은 뒤틀리고 잘린 얼굴의 형상을 한 수많은 철제 원반을 낙엽처럼 바닥에 쌓아 놓고 사람들이 밟아보도록 한 작품이다. 저마다 다른 얼굴이지만 하나 같이 입을 벌리고 있다. 소리 없는 아우성. 우리를 안내한 강릉원주대 이동기 선생은 얼굴들을 밟고 가만히 서 있어보라 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죠. 한번 움직여 보세요.” 자그락, 자그락…… “무고한 희생자들의 목소리가 들리나요? 우리가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 움직이고 또 움직이고, 새롭게 움직여야 한다. 아마 유대인 박물관 전체가 21세기형 기억 방식을 위한 실험이고 토론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 묻힌 희생자들의 목소리, 다른 가능성들의 소리를 그때그때 적절한 방식으로 현재와 미래에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역사가의 의무가 아닐까. 지금까지 해왔듯이 『역사비평』, 그리고 역사문제연구소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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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사문제연구소